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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
본 문: 요한일서 3:1-3
설교일: 2024. 05. 05(주일 낮 예배) - 어린이 주일
부잣집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산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복이 얼마나 큰 복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 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모르고,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된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복인지를 알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 전반부 말씀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아멘
이 말을 쉬운 말로 표현하면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베푸셨는지요 !
우리를 자기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자기 자녀로 삼아 주셨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 첫 시작을 보십시오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떠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사랑”이란 사랑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크고 놀라은 사랑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제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마8:27)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바람과 바다를 말씀 한 마디로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런 경우 그들은 “어떠한” 곧 “크고 놀라운” 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오늘 사도요한이 말하는 “어떠한 사랑”이
바로 그렇게 “크고 놀라운 사랑” 이라는 뜻입니다.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여기서 “베푸사”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베푸사”라는 말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부어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근래에는 여름에 긴 장마가 없어지고, 그 대신 게릴라성 폭우라고 한번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립니다. 그렇게 비가 쏟아지면 아무리 좋은 우산도 소용 없습니다.
몇 발짝 안가서 온몸이 흠뻑 젖어 버립니다.
오늘 “베푸사” 라고 하는 이 말은, 우리가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거부할 수 없고,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나 알고, 아무나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 성경적 효현으로 하면 거듭난 사람, 그에게 성령이 오시면
그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5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아멘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어야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나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대로 내가 예수님을 믿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사람은 지난 달 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 대통령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를 가진 사람은 바로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사도요한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아멘
그런데 오늘 1절 후반절을 보세요!
(요일3:1)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아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모르니까 그 자녀를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그랬잖아요!
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출신의 한 목수로만 알았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자녀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압니다.
여러분 ! 주일이 어떤 날인지 아세요 ?
주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형제 자매가 된 기쁨을 맛보는 날입니다.
한 주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든지, 다 하나님께 나와 머리 숙여 기도하고, 입을 열어 찬송하는 것을 서로 서로 바라보면서 “참 멋있는 하나님의 자녀구나!” 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분을 한 번 보세요!”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간에 예수님을 믿는 이상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폭우같이 쏟아져 부어진 사람입니다.
세상적 기준으로 따진다면 우리는 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지식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따져도 우리는 열등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 앞에나 당당히 설 수 있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특별한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자랑거리는 우리의 특별한 소망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언제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 예수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영의 눈으로만 보고, 마음로만 보고 있지만,
그 때는 우리가 우리 눈으로 직접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우리에게만 있는 특별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리를 설레게 하는 특별한 소망은 우리 몸이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주님을 보고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몸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그 때에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이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그날 우리의 모습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우리의 이 연약한 몸, 병들고 아픈 몸, 그리고 결국은 죽어야 하는 이 사망의 육체를 벗어 버리고, 신비스럽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몸과 같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소망, 특별한 자랑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특별한 소망을 “산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산 소망이란 글자 그대로 살아있는 숨쉬는 소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그와 같이 된다고 하는 소망은 우리를 숨쉬게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할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숨을 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5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금년 한해도 정말 흐르는 강물과 같이 지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 오실 때까지 똑같은 한해가 앞으로 얼마나 반복될지 모르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젊어서 가졌던 소망은 다 허물어지고,
남는 것은 늙어 가는 육체와 인생의 허무 속에 누구든지 다 죽는 날만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소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직접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과 같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는 확실한 소망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자녀로 항상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랑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어떤 꿈과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처신이나 몸가짐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주님을 만나 주님과 같이 된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는 살아가는 태도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아멘
우리는 장차 거룩하고 흠이 없으신 주님을 만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주님처럼 깨끗하게 처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여 집사님은 학생시절에 점을 친 일이 있었는데,.
그 점쟁이가 하는 말이 학생은 40대가 되면 대통령 부인이 된다고 했답니다.
그 집사님은 순진하게 그 점쟁이 말을 그대로 믿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처신이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옷차림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하는 말 한마디, 심지어는 얼굴 표정까지 대통령 부인이 될 사람답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결혼하고 60이 다 되어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에서 대통령 부인이 되는 것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더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대통령 부인이 된다는 허황된 소망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처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장차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또 그분처럼 변화되리라는 확실한 소망을 갖고 있는데,
그러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처신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죄를 멀리 하면서 깨끗하게 처신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같이 변화될, 그날을 바라보기에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깨끗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특별한 자랑거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폭우처럼 쏟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아멘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보통 신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직업을 가지면 신분상승이 되고,
강남에 어떤 아파트에 살면 신분상승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신분상승이 아닙니다.
진짜 신분 상승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과 같이 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태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과 같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아멘)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어른들보다 어린이들이 더 많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없습니다.
많은 교회에 어린이 주일학교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둘도 많다고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둘도 적다고 하면서 세명 네명 가능한 많이 낳아야 합니다.
그러면 출산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은 나이와 상관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지금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연세가 90세 100세가 되었어도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도 하나님의 자녀,
자녀들도 하나님의 자녀
이 놀랍고, 자랑스러운 축복이 우리 나라 모든 가정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