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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 : 요11:25-26.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요11:25-26)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원자로 믿고 그분을 당신의 마음속에 받아 들였다면 당신은 구원 받았으며 영원히 삽니다. 성도들의 육신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죽어도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구원 받고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고(요1:12,13) 혹시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죽는다면 예수님이 오실 때에 당신은 변화된 몸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당신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있다면 주님이 하늘로 채여가실 때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의 몸을 입고 하늘에 오를 것입니다. 이를 살아서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공중 재림은(살전4:16) 믿고 죽은 자들이나 믿고 살아있는 모든 자들을 데려가시는 것이고 이 땅엔 큰 환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큰 환란 시작 전에 믿음과 불신으로 하늘에 거할 자와 이 땅에 거할 자들로 나뉘게 됩니다. 다른 것을 덧붙이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큰 환란 중에도 유대인들을 비롯한 많은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환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명령들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적그리스도를 따를 것이고 짐승정부에 충성할 것이며 짐승의 표를 받고 잠시 동안 거들먹거릴 것이나 그 권세는 7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은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천군천사들에 의해 비참하게 멸망당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사실을 믿어야합니다.
믿음의 결과로 하늘로 채여 올라간 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거쳐 어린양의 신부로 준비를 갖춘 뒤에 어린양과 혼인예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을 따라 이 땅에 내려와 큰 환란이 끝난 세상을 천년 동안 만왕의 왕이신 주님과 함께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한 모든 자들의 몸은 하늘에 속한 몸임으로 그들의 집은 이 땅에 없으며 하나님 아버지 집에 마련되어 있고(요14:2,3) 천년 통치기간에는 천국에서 지상으로 출퇴근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와 같기 때문에(마22:30) 하늘과 지상을 왕래하는 데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하늘에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딤전6:7). 그러므로 이 땅의 것에 욕심을 내거나 권력을 갖거나 속이거나 감출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부활의 몸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이 땅엔 주님의 거룩하신 의로 통치하시기 때문에 부활의 몸을 입은 자들은 육신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 마음껏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입니다. 믿고 믿지 않는 것은 각자 여러분들의 믿음의 문제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장래나 나라의 정치, 경제에 대한 불안한 마음은 다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죽음이나 죽음 이후에 있을 알지 못하는 불안함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에 임하는 육신의 고통은 각각 다름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기까지는 크고 작은 고통과 어려움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부활의 믿음에 따라 견뎌내는 힘이나 모습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가 지옥에 던져졌음을 알고 깨끗이 해결 됐음을 믿으며 우리의 부활도 믿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신앙생활을 하다 죽은 사람들도 헛되며 결국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음으로 멸망당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믿음 없이 세상을 즐기며 제멋대로 살다간 사람들보다 더 비참한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도 멸망하였느니라.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중에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고전 15:17-19)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히9:27). 그것은 정해진 것이며 인류역사상 그 법칙을 피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죽음인데 죽어도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그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임과 동시에 영원토록 후회와 고통만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요 11:25-26)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제가 괴산에 있는 복음의원에 다닐 때 한 백발의 노 목사님을 만나 교제를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분명하게 천국을 보여 주셔서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을 했다며 자기가 경험한 천국을 또 저에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그분의 아내 되는 사모님께서 목사님의 말을 가로채어 하시는 말이 “우리 목사님은 너무나 죽음을 두려워하셔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천국을 보여 주신 후로는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왜 기록된 말씀으로 위로를받지 못할까요? [참고로 괴산의 복음의원 이승희원장님은 각처에서 복음에 헌신하시는 목사님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성경책 첫 장 첫줄에 나오는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믿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믿어진다면 성경속의 모든 사건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홍해바다를 가르신 것이나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으면 영원히 산다는 말씀과 부활한다는 말씀은 왜 믿지 못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부활이 궁금한 자들을 위하여 주님은 친절하게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친히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취해 따로 그들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사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매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마 17:1,2) 변화된 주님의 모습은 그분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동일한 사건을 다른 복음서에도 기록하셨습니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취해 따로 그들을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사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매 그분의 옷이 빛나며 땅 위의 어떤 세탁공도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눈처럼 매우 희게 되었더라.”(막 9:2-3) 부활하신 주님이 입고 있는 옷은 이 땅의 것이 아닙니다. 땅위의 어떤 세탁공도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눈처럼 매우 희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들을 하신 뒤 여드레쯤 되어 그분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취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시더라. 그분께서 기도하실 때에 그분의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분의 옷이 희게 되어 눈부시게 빛나더라.”(눅 9:28-29) 주님의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분의 옷이 희게 되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대로 희고 깨끗하다는 것은 모든 죄가 깨끗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주님의 부활만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맛보지 않고 들림 받았던 엘리야와 한 번 죽어 장사되었던 모세도 부활의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변화산에 나타내 보이신 것은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보라, 두 사람이 그분과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더라. 그들이 영광 중에 나타나서 앞으로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셔야 할 그분의 별세에 관하여 말하였으나 베드로와 또 그와 함께한 자들은 깊이 잠드니라. 그들이 깨어나서 그분의 영광과 그분과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눅 9:30-32)
부활의 몸을 입은 모세와 엘리야는 영광중이 나타났습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을 우리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영광스러움이 더러운 이 세상과 어울릴 수 없으며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몸을 입은 자들이 부활하지 못한 이 더러운 세상에 함께 할 수 없으므로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장막 셋을 짓고 함께 있기를 원했으나 그들의 집은 아버지 집에 있으므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몸을 입은 사람들이 이 땅에 거하게 되는 때는 주께서 이 땅을 심판하신 후 친히 다스리게 될 때입니다.
주께서 산 채로 들림 받은 엘리야와 죽어 장사되었던 모세의 부활의 모습 외에도 우리와 똑같은 몸과 성정을 가진 사람이 세상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바로 전도자 빌립입니다. 주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사막으로 보내시기도 하고 순식간에 다른 지역으로 옮기시기도 하셨습니다.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 남쪽으로 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 하였는데 그곳은 사막이니라.”(행 8:26) 그곳에서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여 침례를 주고 다시 옮겨져 아소도에 나타나 모든 도시에서 선포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물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므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가되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모든 도시를 두루 지나가며 선포하고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니라.”(행 8:39-40)
주께서 자신이 부활하게 될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시고 모세와 엘리야의 부활한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주께서 십자가에 고난 받으시고 죽어 장사 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한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성도들의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심은 부활의 믿음을 더해주시기 위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부활의 몸은 하늘에 속한 몸입니다. 하늘에 속한 몸은 거룩한 몸이며 영광스러운 몸이기 때문에 부활하지 못한 사람들과 이 땅에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큰 환란과 심판이 지나고 주님께서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열리면 부활의 몸을 입은 자들이 이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주님과 함께 통치하며 천년 동안 육체 안에 살아가는 자들을 돕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여 하늘에 속한 몸은 시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초월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과 함께 나타났다가 빛나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고 빌립이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사막에 이르러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주께서 빌립을 채어가시므로 아소도에 나타나 모든 도시에서 선포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부활의 몸은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게 되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 부활 때에는 그들이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하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29-30). 여러분들이 천사들의 활동을 잘 알 것입니다. 천사들은 필요하면 사람들에게 보이기도 하고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아침 일찍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안식일이 끝나고 주의 첫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돌무덤을 보러 갔는데 보라, 큰 지진이 났더라. 이는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는 가서 그 입구에서 돌을 뒤로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기 때문이더라.” (마 28:1-2)
부활의 주님은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낮 시간에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의논할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가까이 오사 그들과 같이 가셨으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더라.”(눅 24:15-16) 주님은 낮에 그들과 교제를 나누시고 같은 날 저녁에는 모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뒤 같은 날 곧 주의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서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요 20:19)
사람이 부활의 몸을 입으면 하늘의 천사들처럼 언제든지 어디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를 돕고 구출해 주기도 합니다. 능력 면에서도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는 가서 그 입구에서 돌을 뒤로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기 때문이더라.”부활하신 주님도 제자들이 숨어 있는 곳에 문들을 닫았는데도 열어 달라는 말씀 없이 모인 무리들 한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시고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서워하고 놀라며 자기들이 영을 본 줄로 생각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불안해하며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염려하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자기 손과 발을 보이시니라.”(눅 24:37-40)
부활의 몸은 유령이나 영이 아니며 사람들에게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게도 합니다. 분명한 몸을 가지고 있으나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마리아를 만나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후에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주]를 보았으며 또 그분께서 자기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셨다고 말하니라.”(요 20:17-18)
정리하면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주께서 아침 일찍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셋째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께 보이시고 낮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저녁에는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게 되면 하늘에 올라가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거치고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 혼인식이 있습니다. 이 과정이 7년 동안으로 지상엔 큰환란이 진행됩니다. 그 다음에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과 함께 이 땅에 내려 올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미래를 성경 기록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믿기 보다는 성경학자들의 주장이나 학설을 믿고 기독교 서적이라는 소설을 믿고 교회의 성경교사나 설교자의 말을 그냥 믿는데 이는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학자들이 성경을 잘못알고 전한 것들을 의심이나 과연 그러 한가하여 성경을 탐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전 천년설이나 후 천년설이나 무 천년설중 하나를 택하고 그대로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성도들이 교회가 큰 환란을 통과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큰 환란이 왜 있으며 누구에게 해당되는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발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기록된 대로 믿으십시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같이 기록되었은즉 ..............”(눅 24:46)
“대언자들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으리라, 하고 기록되었으니...........” (요 6:45),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롬 4:3)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대답이 무어라 말하느냐?..........”(롬 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갈 4:30)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딤전 5:18)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그가 범법자들과 함께 계수되었도다, 하시는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더라.”(막 15:28)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되, 이 성경 기록이 이 날 너희 귀에 성취되었느니라.”(눅 4:21)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롬 15:4)
성도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을 신뢰하는 것은 참으로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르치는 성경이나 설교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 하는지 살펴보지 않는다면 성경을 모르는 문맹자로서 인도자를 무조건 따르는 눈 먼 자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하셨고 기록된 말씀과 같은 가를 살펴보는 자들을 고귀한 자들이라 칭찬하셨습니다.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행 17:11) 도대체 믿는다고 말하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지도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뭡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요 주님과 교제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마 22:31),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한 이 성경 기록을 읽지 못하였느냐?”(막 12:11)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는 너희가 모세의 책에서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속에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막 12:26)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성도들이 성경을 많이 알면 시건방지고 교만하여 목사에게 대든다고 말하며 절대로 성도들이 성경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한심스러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목사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해야 교회가 부흥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며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마 15:9)
누구든지 사람들, 특히 목사들이 정한 교리에 거하고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않는 자는 어쩌면 그 안에 하나님과 아들이 없이 구원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있느니라.”(요이 1:9, )
사람들의 명령이나 사람들의 교리는 성도들로 하여금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자들에게 그리할지니라.”(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는 자기의 교리로 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교리, 말씀의 교리로 설교합니다.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반박하는 자들을 건전한 교리로 능히 권면하고 확신시키게 하려 함이라.”(딛 1:9)
저는 온전히 보존된 킹제임스 성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 했으나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를 위한 논쟁만 버리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누구의 주장보다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으로 그러한가하여 성경 기록들을 탐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기고집이나 주장보다 표준이 되는 성경 기록으로 판단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적을 네가 믿느냐?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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