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그림
강돈묵
하릴없이 빈둥댄다. 그마저 따분하다. 동네 한 바퀴 돌듯 인터넷 마을에 접속한다. 유장한 강물의 물빛과 쏟아지는 달빛이 내 손길을 잡아챈다. 무심히 클릭한다. 잡념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부랑자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가난해도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아무르강을 건너며 벼랑길을 걷는 사람들. 그들은 가족의 주검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면서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극락왕생만을 기원할 뿐이다.
한참 정지했던 커서를 움직여 제주도 앞바다로 왔다. 물빛이 오늘따라 검푸르다. 수면 위로 불어오는 마파람을 따라 마음이 한가로이 일렁인다. 뒤척이는 바닷물이 물비늘을 만든다. 하염없는 시간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속세살이의 번잡한 마음을 풀어 놓으니, 그것도 좋다며 화답이라도 하듯 포말이 일어난다. 저 멀리 수평선이 가물거린다. 한 무리의 고래 떼가 유영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무리의 대열이 일정하다. 흐트러짐이 없다. 뭍을 향한 그리움이 끓어올라 온몸을 적시면 수면 위로 솟구치던 고래. 그러나 오늘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정해진 트랙을 도는 마라토너 같다. 앞사람을 추월할 욕망조차 잃은 마라토너들이다. 한 마리가 선두를 서고, 그 다음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었다. 맨 뒤편에는 어린 고래들이 자리를
지키며 뒤따른다.
고래 떼가 가까이 오면서 그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푸르른 물결 위로 등지느러미가 기어 나왔다가 숨는다. 선두 고래는 전혀 뒤바뀌지 않는다. 앞장선 고래가 머리에 뭔가를 이고 질주한다. 허연게 수면 위로 드러났다가 물살속으로 숨는다. 전혀 움직임이 없는 하얀 물체는 머리에 쓴 관처럼 떠밀려 온다. 자세히 보니 새끼 고래다. 피부가 허옇게 변색한, 죽은 새끼 고래다.
이제야 그들의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장례 행렬이 분명했다. 죽은 새끼가 허옇도록 부패했는데 내려놓지 못하고 주둥이로 밀어 올렸다 가라앉으면 다시 떠올리며 유영하는 어미 고래, 죽은 자식을 가슴에 품고 주둥이로 다시 올리며 애도하는 어미의 모습이 숙연하다. 그래서 다른 고래들은 그 어미 앞을 추월하지 않고 차분히 뒤따랐던 게다. 죽은 영혼에 대한 예의는 철저히 지키면서도 어미 고래의 모정을 방해하지 않으려 차분히 헤엄쳐 나간다. 죽음을 사유하는 고래의 모습에 경건해진다. 신은 천당이든 극락이든 문을 열어주겠지 싶다.
나의 인터넷 마을의 순례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인터넷 마을에 머무르는 중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동네 저수지에 도착한다. 좀 쉬어가려고 멈춘다. 저수지의 물빛이 탁하다. 조금 전까지 바라본 제주 앞바다의 물빛이 뇌리를 뚫고 유영해 간다.
간이역처럼 들판에 홀로 선 저수지는 논배미에 댈 물을 가둔 채 지키고 있는 듯하다. 별 특색도 없는 흔한 저수지다. 주위에 아파트 단지가 있으니 제법 생활오수도 흘러들었을 것이다. 넓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던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일순간 모여든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가로막는다. 수면 위에 뭔가가 떠 있다고 지나가던 사람이 신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그 물체가 영아의 시신임을 확인했다. 더구나 태반과 탯줄이 그대로 매달려 있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을 거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깝게는 이백 미터, 멀게는 육백 미터에 대학의 캠퍼스가 둘이나 되고,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버티고 있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를 진행한다는 보도가 붙었다. 흐리게 지면 처리한 그림이 모니터를 채운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아도 태반과 탯줄이 덩그러니 달려 흔들거리는 거로 보인다. 분명 분만 직후의 아기일 거라는 추측이지만, 저수지 근처에서 출산하여 이곳에 유기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 살해하여 이곳으로 옮겨와 유기한 것인지, 산모의 배 안에서 사망하여 유기된 것인지, 산 아이를 물에 던져 살해한 것인지 수사를 해 봐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붙어 있다.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뒤흔든다. 어지럽다.
미숙한 산모가 출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겁이 나 유기한 것인지, 심리적 불안이 밀려와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일을 저질렀는지, 아이를 육아할 수 없는 산모가 경제적 이유로 살해한 것인지, 뒤따르는 기사는 나를 더욱 이 그림 앞에 잡아 놓고 꼼짝도 못하게 한다. 한참 동안 컴퓨터의 손아귀에 내 목덜미를 잡힌 채 있었지만 뿌리칠 수가 없다.
문득 하얘진다. 어떻게 죽었든, 어떻게 유기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 그림 안에 보이는 진실은 고래만도 못한, 제 새끼를 죽인 어미의 부끄러운 모습뿐이다. 갈 곳 몰라 하는 어린 영혼은 구천을 헤매고 있겠지 싶다. 이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민낯이라니.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제주 앞바다가 너울거리며 다가온다.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질서 있게 유영한다. 선두의 어미 고래가 죽은 제 새끼를 포기하지 않고 주둥이로 밀어 올리는 모성애가 눈물겹다.
분명 이 두 그림은 뒤바뀐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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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