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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독후감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가 주 시험을 응시하고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 년 반 정도의 이야기다. 한스는 독일의 슈바르츠발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 자그마한 마을에서 지난 8~900년 만에 처음 탄생한 천재 소년이다. 그는 학교수업이 오후 4시에 끝나면 교장선생님에게서 그리스어를 배우고, 마을 목사님에게서 라틴어와 종교 강의를 들었다. 일 주일에 두 번은 수학교사로부터 한 시간씩 개인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밤 늦게까지 복습과 예습에 매달렸다.
한스는 몇 주 후 슈투트가르트로 가서 주 시험에 응시하여 총118명의 응시생 가운데 2등으로 합격을 하였다. 여름방학이 지난 후 마울브론 수도원의 신학교에 35명의 합격생들과 함께 입학한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며 최우등성적을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였다.
한스는 아홉 명의 학우들과 헬라스 방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정서가 풍부하고 서정적인 헤르만 하일러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하일러는 시 쓰기를 좋아하였는데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일러는 공부에 싫증이 날 때마다 한스에게 건너와 책을 빼앗고 같이 어울리길 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일너가 욕심장이 루치아노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학교로부터 금고형 처분을 받았다. 그 후 하일러는 점점 더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어가고 한스도 점점 성적이 떨어지고 자주 두통을 느끼게 되자, 교장선생이 하일러에게 한스가 산책을 할 때 함께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린다. 하일러는 한스와 교제 금지에 강하게 반발하고 다음 날 수도원에서 도망을 쳤다. 이틀 후 경찰에게 붙잡혀서 신학교로 돌아온 하일너는 퇴학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일너와 헤어진 한스의 성적은 아예 곤두박질을 치고 이제 두통은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급기야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3주 전에 선생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반나절이나 침대에 누워있었다. 마을의사는 한스가 즉시 휴학을 해야 하고, 신경과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스는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휴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한스는 공부하느라 잃어버린 행복했던 소년시절을 다시 복원하기 위하여 기억을 더듬어 찾아다니다 보니, 친구들은 고향을 떠났거나 견습공이 되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한스에게 관심을 기울일 처지가 아니어서 더 이상 친구 관계를 다시 재개할 수가 없었기에 한스는 좌절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소개로 슐러의 작업장에 가서 견습공 일을 시작하였으나 손에 물집이 잡히고 체력이 부쳐서 주인에게 욕설을 듣는 수모를 당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일요일 오후에 친구인 아우구스트를 따라 숙련공들과 어울려서 맥주와 브랜디를 마시며 마음을 추스려 보려고 했으나 못 마시는 술에 만취하여 고생을 한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다 늦은 귀가로 아버지에게 혼날 일과 내일 아침 작업장에 출근하여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하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강물에 빠져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한 소년이 무사히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한스의 어머니는 여러 해 전에 이미 사망했는데 그 전에도 언제나 병들고 근심에 싸인 모습이었다.(9쪽)
아버지 요제프 기벤라트는 낡고, 우악스럽기만 한 가족의식과 자기 아들에 대한 자부심만 가득했다.(8쪽) 신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는 한스에게 말했다.
"자, 알겠지! 우리 가문의 명예를 높여주겠지? 그리고 어른들 말씀을 잘 듣도록 해라!"
"예, 물론이죠." 한스가 대답했다.(88쪽)
열네다섯 살짜리 어린 학생이 4년간 공부하기 위하여 기숙사에 들어가는 순간 아버지는 한스가 최우등생이 되어 가문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그러했으니 한스가 휴학을 하고 돌아와 신경쇠약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못했고, 친구와 놀러나갔다가 밤 9시까지 귀가하지 않자 회초리를 꺼내며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혼쭐을 내줄 궁리만 하고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한스의 장례식을 치루고나서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가 한 이야기조차 이해가 불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저기 걸어가는 신사 양반들 말입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들도 한스를 이 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준 셈이지요."
"뭐라구요?" 기벤라트 씨는 흥분한 나머지 펄쩍 뛰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원, 세상에.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진정하세요, 기벤라트 씨. 전 그저 학교 선생들을 말한 것뿐이에요."(263쪽)
천재소년이 성인이 되고나서까지 천재로 남아있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우리와 비슷한 연배인 김웅용이나 요즘 언론에 가끔 등장하는 송유근 이야기를 보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스의 경우는 신경쇠약에 걸리고 가족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는 주변 환경만 왠만큼 갖추어졌다면 천재가 아니라도 평범한 사람으로 떳떳하게 자리를 잡고 행복한 생을 살아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소년 한스 기벤라트가 아깝게 어린 나이에 죽음에 이르게 된 데에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리게 된 요인들에 기인한다.
1. 어머니의 부재가 제일 큰 요인이고, 낡고 우악스런 아버지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한 점이 그 다음이다.
어머니도 없이 엄격한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던 한스는 사랑할 수 있는 기질을 잃고 말았다.(103쪽)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8쪽)만 있었고 한스가 주 시험 전부터 시달리던 두통에 대해서 인지하고 섬세하게 보살펴주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휴교 이후에도 똑같은 무관심이 지속된 부분도 뼈아프다 하겠다. 아버지가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 정도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다면, 한스의 삶은 행복했을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이 사회에서 동량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플라이크 아저씨는 한스가 주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하고나서도 매일 과도한 개인교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정말 어리석은 일이구나. 한스! 그건 죄악이란다. 너만한 나이에는 바깥 공기도 실컫 마시고, 운동도 충분히 하고, 편히 쉬어야 하는 법이라구. 도대체 뭣 때문에 방학이란 게 있는 줄 아니? 방 구석에 틀어박혀 그저 공부나 하라는 건 줄 아니? 넌 정말 뼈와 가죽만 앙상하구나."(80쪽)라고 충고했다. 한스는 어린아이였기에 어른들과 선생들이 강권하는 걸 거부할 힘이 아직 없었으니, 아버지는 당연히 한스의 나이와 능력에 기준하여 방과 후 개인교습과 복습시간을 조정해 주었어야 했다.
2. 어렸을 적부터 제대로 사귄 친한 친구가 없었고 사귀는 방법도 서툴렀다. 그래서 공부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휴식을 나눌 건전한 우정이 없었다.
3년 전부터 한스를 남다르게 살펴본 선생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개인교습을 강권하는 바람에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를 일찍 잃는 바람에 사랑에 대한 느낌도 제대로 없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가서 새 친구를 사귀는 과정도 서투르고 자연스럽지 못했다. 다른 학우들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부러워하다 결국 어울리지도 않는 하일너와 우여곡절 끝에 친한 관계로 발전하는 바람에 공부시간이 줄어들고 성적이 급강하 했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쇠약이 오고 휴학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유일한 친구였던 하일너도 사실 우울증 환자(140쪽)였기 때문에 한스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가장 어울리지 않는 예로 헤르만 하일너와 한스 기벤라트를 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방탕한 소년과 성실한 소년, 시인과 노력가와의 만남이었다. 물론 둘 다 영리하고 재능있는 소년들로 손꼽히기는 했다. 하지만 하일너가 천재라는 반쯤 조롱섞인 평판을 듣는 반면, 한스는 모범 소년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114쪽)
3.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를 제외하고 마을의 모든 어른들과 선생들은 한스의 공부와 성적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래서 한스의 목표는 항상 최우등생이고 그 외에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기에 그 목표가 무너지자 절망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들의 야비스러운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이처럼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 버리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 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 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당 쉬어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길가에 쓰러진 이 망아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173쪽)
4. 신학교의 선생님들도 한스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다. 한스는 성적이 떨어지자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교장선생은 한스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마치 바리새인이 세리에게 그러했듯이 경멸에 가득 찬 동정심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제 기벤라트는 더 이상 학생들의 무리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는 문둥병자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169쪽)
이렇게 신경쇠약에 걸려서 신학교를 휴학하고 집으로 돌아온 한스에게 우울증이 오고 결국에는 강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된다.
한스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
1. 돌아갈 수 없는 행복한 소년시절에 대한 그리움
휴학 후 집으로 돌아와 옛날의 행복했던 추억의 소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자신의 아픈 사정을 이야기하고 들어줄 친구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다.
한스는 왜 하필이면 오늘 그날 밤이 생각나는지, 왜 그 추억이 이처럼 아름답고 강렬한지, 왜 그 추억이 자신을 이다지도 비참하고 슬프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이별을 고하기 위하여, 이미 흘러가 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큰 행복의 가시바늘을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유년시절과 소년 시절의 추억의 옷을 입고 즐겁게 미소 지으며 자기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단지 그는 이 추억이 어젯밤에 있었던 엠마에 대한 기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옛날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다시 깃대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보이고, 친구 아우구스트가 웃는 소리가 들리고, 갓 구운 과자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건만, 이제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전혀 낯선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스는 껍질이 거친 아름드리 잣나무에 기대어 절망에 싸인 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 눈물도 그에게 순간의 위안과 구원을 줄 뿐이었다.(225쪽)
2. 바람둥이 엠마에게 버림을 받다
휴학 후 고통과 고독으로 병든 소년 한스에게 자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후 우연히 자신 안에 젊음이 있어 가느다랗게 생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때 한스는 두 엠마를 만난다. 먼저 3년 전에 짝사랑 했던 엠마 게슬러가 집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훌쩍 커버린 모습에 놀라워한다. 그녀와 좋은 관계를 맺었더라면 한스의 인생에 큰 변환점이 되었겠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관계는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다 플라이크 씨네 과일 압착을 도와주다 그의 조카딸인 또 다른 엠마를 만난다. 적극적이고 바람둥이였던 엠마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접근을 하였으나 큰 상처만 떠안고 만다. 짧은 만남 후 그녀는 작별인사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 역시 신학교에서 하일러와 잘못된 만남 이후 벌어진 서투른 관계맺기의 결과이며 한스에게 크나큰 절망감을 안겨준다. 한스는 사랑을 제대로 받고 주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관심을 조금만 받더라도 마음이 확 쏠려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엠마의 일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것이다. 한스가 어젯밤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벌써 언제 떠날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미소와 입맞춤 그리고 그녀의 능숙한 몸놀림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는 한스를 전혀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다.
분노에 찬 고통과 더불어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사랑의 힘은 흥분과 불안에 감싸인 채 음울한 번민으로 바뀌었다. 한스는 집에서 정원으로, 정원에서 거리로, 거리에서 숲으로, 그리고 다시 숲에서 집으로 헤매며 다녔다.
이렇게 해서 한스는 자신 속에 숨겨져 있던 사랑의 비밀을 너무나도 빨리 알고 말았다. 그것은 달콤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쓰디쓴 맛이었다. 부질없는 탄식과 그리운 추억 그리고 암울한 사색으로 물든 나날들, 숨가쁜 심장의 고동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무서운 꿈결로 빠져드는 밤의 연속. 꿈 속에서는 피가 이상하리만치 격렬하게 끓어올라 끔찍스러운 거대한 괴물이 되기도 하고, 목을 휘감아 죽음을 부르는 팔이 되기도 하고, 불타는 눈빛을 지닌 환상의 짐승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깊은 심연이 되기도 하고, 이글거리는 커다란 눈이 되기도 했다.
한스는 잠에서 깨어 홀로 싸늘한 가을밤의 고독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엠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다가 눈물로 뒤범벅이 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233쪽)
3. 슐러의 작업장에서 부적응
예전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만난 아우구스트가 기계공이 었으며 그가 도와주겠다는 말만 믿고 기계견습공으로 출발한 것이 패착이었다. 아버지는 체력이 약한 한스에게, 당시 돈을 잘 벌 수 있었던 기계공보다는 서기를 권했어야 했다.
'토요일에는 더욱 심했다. 두 손이 타는 듯이 아팠고, 물집은 더 커져 버렸다. 주인은 기분이 나빴는지 사소한 일에도 툭하면 욕설을 퍼부어댔다. 아우구스트는 며칠만 지나면 물집이 없어진다고 한스를 위로해 주었다. 게다가 그 뒤에는 손도 굳어지고, 전혀 통증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스는 죽고 싶으리만치 비통하고 불행한 심정으로 하루 종일 시계만 훔쳐보며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째 톱니바퀴를 갈고 있었다.'(242쪽)
4. 현실에 대한 수치심과 자책감
주변 사람들이 보내오는 불편한 시선들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는 자책감과 자괴감을 이겨내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옛날 학교 친구였던 두 명의 상점 견습원이 길거리에서 한스의 뒤를 쫓아오며 놀려댔다.
"주 시험에 합격한 대장장이!" 한 녀석이 소리쳤다.(242쪽)
'한스는 사과나무 아래 이슬에 젖은 풀밭에 드러누웠다. 온갖 불쾌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불안감, 혼돈에 싸인 상념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신이 더럽혀지고, 모욕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내일 나는 어찌 될 것인가? 그는 너무나도 낙심하여 자신이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원히 쉬고, 잠들고 또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머리와 눈도 아팠다. 한스는 더 이상 걸을 힘조차 없었다.'(259쪽)
학교의 성적지상주의
한스가 경험한 성적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학교 생활은 13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소설 '풀꽃도 꽃이다'(조정래 지음)에서 보면, 이런 폐해들로 폭력, 왕따 그리고 가출과 자살 문제가 발생한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한스의 경우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1. 폭력
하일너는 욕심쟁이 루치우스에게 폭력을 가해서 금고처분을 받는다. 그는 오토 벵어와도 주먹다짐을 벌였다. 한스도 학교 성적에 불만이 쌓여가면서 여러 학우들과 다투더니 급기야는 오토 벵어와 치고받는 싸움을 벌였다.
2. 왕따
먼저 하일너가 학우들과 선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수도원에서 무거운 금고형에 처해진 학생은 오랫동안 낙인이 찍힌거나 다름없었다. 이제부터 그 학생이 남다른 주의를 받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와 어울리는 일이 위험할 뿐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자기도 나쁜 평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123쪽)
하일너가 퇴교를 당한 후 한스도 마찬가지로 왕따를 당했다. '이제 기벤라트는 더 이상 학생들의 무리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는 문둥병자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169쪽)
3. 가출과 자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하일너는 학교를 탈출한 후 이틀 후에 경찰에 잡혀서 다시 돌아오나 퇴학처분을 받고 학교를 떠난다. 한스는 학교를 탈출한 적은 없지만 휴학 후에 자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성적을 최우선으로 하는 학교생활은 우수했던 학생들이 모였다 할지라도 낙오자를 양산하고 결국 한 개인의 고귀한 삶을 짓밟게 된다. 공부에만 몰두하던 학생은 친구를 사귀거나 애인을 사귀는 데도 어설프고 잘못된 선택을 할 확율이 높다. 공부를 유일한 목표로 삶고 생활해 왔기 때문에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대체 목표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 씨 말대로 어렸을 적에는 실컷 뛰어 놀고 재미있는 놀이도 함께하며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네 살 때부터 1년 반 동안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억지로 공부에 입문한 손자녀석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매일 놀이터에 나가서 신나게 뛰어놀며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사귈 시간을 많이 보장해 줄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오후 2시에 유치원이 끝나면 곧장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로 데려가는데 왜 그런지 몇 시간 동안 또래들이 보이질 않는다. 나중에 물어보니, 유치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한다고 한다. 내 손자녀석은 다행히 숙제가 없다. 해서 복습을 하는 적도 없었는데, 매일 아침 유치원에 가길 싫어하는 게 이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글과 영어를 배우는데 잘 못쫓아가니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다. 딸이 퇴근 후 책상에 앉혀놓고 매일 조금씩 복습을 시켰더니 아침에 유치원 가는 게 쉬워졌다. 어느 정도까지 관여를 하고 도와주어야 어린아이가 재미있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지 살펴보는 것도 부모와 나 같은 보조양육자가 신경을 써야 할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한스는 수동적 인간형이었기에 아버지 말에 잘 순응을 했고, 선생님들이 개인교습을 강요하면 군말없이 따랐고, 우울증 환자인 하일너가 공부하지 말고 놀자고 하면 책을 덮었고, 바람둥이 엠마가 유혹을 하면 보기좋게 넘어갔다. 친구가 기계공이 좋다고 하니, 대장장이 견습공으로 들어갔고, 피곤하여 쉬고 싶었지만 친구가 가자고 하니 술집까지 따라가서 못먹는 술을 마시며 늦게까지 어울렸다. 그러니 다 감당해내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리고 우울증이 온 것이고 결국에는 생을 접고 만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싫을 때는 노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주녀석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줌으로서 자꾸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 보도록 하려고 한다.
손주녀석은 제 스스로 미래에 할 일을 잘 결정하고 준비하여, 평생 즐겁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