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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보병사단(청성부대) 국군 제6보병사단. 일명 청성부대. 한국군 전 사단 중 가장 화려한 전과를 자랑하는 부대로 명성이 높다. 상징은 6사단을 상징하는 육망성.[1] 사단 구호는 수사불패 청성투혼 용문산부대는 수사불패 용문투혼 포병연대는 구국의 청성포 초탄명중 일격격멸 준비 쏴 청성인의 다짐(구호) 하나 우리는 천하에 제일가는 청성의 용사다 하나 우리는 압록강 물을 마신 청성의 용사다 하나 우리는 싸우면 필승하는 청성의 용사다 하나 우리는 조국을 수호하는 청성의 용사다 용사다 용사다 육군의 경례 구호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사용할 수 있는 구호마다 조건이 붙어있어 이 중 선택해서 사용하게 된다.무슨 타이틀 획득해? 이중 '필승'은 사단 단일작전에서 패배한 기록이 없을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데 그래서 3사단을 비롯한 여러 사단의 경례 구호로 사용되었으나 6.25 전쟁 이후 전부 박탈당했다. 6사단은 15사단과 더불어 육군 중 연합작전을 제외한 단일작전에서 패배한 기록이 없는 유일무이한 사단으로 기록되었고(6.25 전쟁 이후 설립 된 사단 제외) (사창리 전투는 선결 전투에서 승리했고 마지막에도 결국 6사단의 활약으로 승리로 종결됐다.) 기본 경례 구호 중 사단 이름이 포함되어 있어 이름이 필승부대인 30사단을 제외하고 육군 중 15사단과 같이 '필승'을 경례 구호로 사용하고 있다. 2012년 경례 구호가 해병대와 겹친다는 이유로 구국 등으로 바꾸려다가 정당한 이유로 사용하고 있는 경례 구호를 구태여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2] 6.25 전쟁 중 최다 전투(154회)와 최다 적 사살(92,669명) 기록을 세웠으며, 한국군 최초, 최다 대통령 부대표창(16회 2016. 10)을 받았다. 편제 •용문산연대 •초산읍성연대 •독수리연대 ◦신병교육대 •청포연대 •직할대 ◦공병대대 ◦정비대대 ◦보급수송대대 ◦수색대대 ◦의무근무대 ◦정보통신대대 ◦전차대대 ◦헌병대 ◦화생방지원대 ◦방공중대 ◦보충중대 ◦본부근무대 ◦토우중대 용문산연대는 용문산 전투에서 유래했으며 배치 받을 경우 운좋게 실제 용문산기념비를 가볼 수 있다. 또한 유일하게 GOP에서 평지 부분을 차지 하는 부대로 각 중대당 섹터가 넓고 소초 천장에 에어콘이 달려있는 곳이다. 실제로는 한 소초뿐이다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침낭이 덥다고 안쓰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신식이기 때문에 프랑스 외신에서 한번 취재 온적이 있었는데 이때 중대 장병들에게 크라제 햄버거를 주었다고 한다. FEBA 주둔지 중 병사 막사든 간부 숙소든 구리기로 악명 높았던 곳들도 2012년에 신형막사가 완공. 완공하자마자 물 샌 건 안 자랑 초산읍성연대는 초산/춘천 전투가 유래이며 산악 지형에다. 제2땅굴까지 이분들이 처리하시는 통에 6사단 내에서도 빡신 연대로 소문이 좀 나있다. 자동화 사격장이 가까워서 행군을 일부러 부대를 낀 산을 뺑 돌아서 넘나드는 부대. 독수리연대- 신병교육대와 사단예비연대의 역할 때문에 1년 365일 훈련에 치어사는 부대이다. 1년에 150일은 밖에서 훈련 뛰느라 정신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덕분에 분소대 전투는 끝장나는 곳이고 의외로 포상이 많이 나오는 부대이다. 훈련대대는 3대대로 신막사를 사용하지만 구식당은 여전히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2015년 11월 현재 신식당임을 확인하였다. 여름에 훈련을 받는 훈련병들의 안구에 습기차게 하는 장소이다. 주변이 계곡이기 때문에 눈 앞에서 염장지르는 인간들이 많아 심란한 곳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훈련소 과정 중에는 대학생 미녀에게서 '오빠 힘내요!' 소리를 아주 간혹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청포연대 - 예하 4개의 포병대대가 있다. 죄다 견인포 부대이며,허리 나가는 소리 들린다. 개편될 계획이다. 더이상은 코렁탕 역사 1948년 4월 29일 수색에서 채병덕 대령을 초대 여단장으로 창설된 조선경비대 '제4여단'을 기반으로, 1948년 11월 20일 제4여단에서 '제6여단'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5월 12일 유재흥 대령을 초대 사단장으로 하여 창설된 한국군의 초창기 사단. 창설 당시의 구성과 편성[3]을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단이기도 하다.다른 사단들과 마찬가지로 빨치산 토벌전에 참여했으며 한국전쟁 직전 제4여단을 제6여단으로, 다시 제6보병사단으로 증편한 뒤 춘천에 배치되었다. 6여단 시절에 제8연대의 2개 대대가 통째로 월북한 흑역사도 있지만, 개전 이전부터 평소 교육훈련, 진지공사등을 열심히 해서 전투에 대비하였으며, 개전 직후 한국군이 온갖 삽질을 반복해 개전과 함께 북한군의 공격에 죽죽 밀려날 때도 6사단은 김종오 사단장이 직권으로 사단의 외출, 외박을 제한하고 유사시를 대비한 덕분에 빡친 장병들이 춘천-홍천 전투에서 3일간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오히려 역습을 노려볼 정도로 훌륭하게 방어전을 펼쳤다. 그 결과 공격을 담당한 북한군 2사단은 40%에 달하는 인력과 장비를 잃고[4] 북한군 2군단장 김광협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5][6] 6사단은 제자리를 훌륭하게 지켰으나, 6사단만 지켰기 때문에 다른 주변 북한군 전력에 의해 포위 당할 우려도 있었고, 전선균형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6사단도 후방으로 물러났지만 6사단의 초기 활약은 북한군의 전략에 큰 차질을 불러왔다. 춘천 점령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고, 이 때문에 서울을 포위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으며, 국군의 재정비를 허용함으로서 UN군이 참전할 시간을 내주었던 것. 후퇴하는 와중에도 제1보병사단과 함께 부대건제를 유지한 두 사단이었으며, 동락리 전투에서 7연대 2대대가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거의 전멸시켜 명성을 떨쳤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의 여러 전투에 참가했으며 영천 전투에 참전하여 신녕지구에서 북한 8사단에게 재기불능정도의 일격을 가하기도 하며 승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뒤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히자 북진을 시작해 1950년 10월 26일 한만국경에 위치한 초산에 도착해 압록강 물을 마시며 전쟁종결의 상징이 될 뻔했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면 최전선에 위치한 것이었고, 결국 중공군이 개입하자 큰 타격을 입고 후퇴, 거기다 사창리 전투에선 유엔군에게 겁쟁이 블루스타라는 욕을 먹을 정도의 추태를 보이며 패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에 1951년, UN군에서 대대적인 반격작전(작전명 - '썬더볼트 작전')을 개시했을때, 용문산 전투(주로, 가평군-양평군 일대에서 교전이 일어났는데, 특히 가평 일대 마석우리쪽이 격전지였다)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상대로 적군을 격퇴, 후퇴하는 중공군을 파로호까지 밀어치며 승리를 거두며 6사단의 건재함을 과시했다(이 당시 국군 6사단의 피해도 엄청 컸다. 전투과정에서 실종자만 해도 4천여명이나 생겼으니…). 한국전쟁 막바지의 금성돌출부 전투에선 꽤 당하기도 했지만. 자주국방 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2013년 7월 종편 채널A의 시사프로 쾌도난마에 출연하여 정전 60주년 기념특집으로 한국전에서 가장 잘 싸운 5대 국군 부대를 꼽았는데, 청성부대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정작 신인균은 6사단 경례 구호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청성부대이니 청성아니겠냐는 망발을 보여줬다.) 1위-육군 제6사단 2위-육군 제1사단(전진부대. 백선엽 장군 지휘.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전 등) 3위-해병대(진동리 전투,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작전, 서울 수복작전, 도솔산 전투 등) 4위-육군 제3사단(백골부대. 38선 첫 돌파, 원산 최초 입성, 현리 전투 등) 5위-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원산 최초 입성) 현재는 제5군단예하 사단으로 중부전선 철원 지역에서 GOP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제2땅굴을 발견했다. 하지만 좌측에 5사단, 우측에 3사단, 밑에는 8사단에 끼여서 인지도가 많이 낮아진 상태. 안습. 그래도 일단 메이커 사단.(좌열쇠, 우백골) 청성 영광의 10대 자랑 모든 육군의 부대들이 고유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6사단도 "청성 영광의 10대 자랑"이라는 부대의 10가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다. 제목은 10대 자랑에 정식으로 등록된 것이다. •창군 이전에 창설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부대 제6보병사단은 1948년 4월 29일 제4여단으로 창설되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육군이 정식으로 발족한 1948년 9월 5일보다 이전에 창설된 것이다. 이후 11월 20일 제6여단으로 개칭, 1949년 1월 15일 제6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보병연대 기준으로 창설 당시의 편성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단이기도 하다.[7] •유일하게 38선 방어에 성공한 부대 •최초로 적 전차를 육탄공격으로 파괴한 부대 6.25전쟁 당시 춘천-홍천 전투중 춘천 옥산포에서는 심일 소위와 부사관의 육탄공격으로 적 자주포 3문을 파괴하였고, 홍천 말고개에서는 조달진 일병을 비롯한 육탄 11용사가 육탄공격으로 적 전차 10대를 파괴하였다.[8][9] •최초로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은 부대 1950년 7월, 7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상대로 음성 무극리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는 도중, 7월 7일에 국민학교 교사의 제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7연대 2대대가 동락리국민학교에 모여있던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공격하여 섬멸시켰다. 이 일로 부대는 국군 창설 최초로 연대 전 장병이 1계급씩 특진하게 되었고, 대통령 부대표창 1호를 수여받았다. 이후 2대대는 이 전공으로 음성무극전승부대로 명명하게 된다.[10] [11] •국군과 UN군 중 가장 먼저 압록강까지 진격한 부대 1950년 10월 26일, 7연대가 압록강변의 초산을 탈환하여 전군 최초로 한만 국경선에 도달한 부대가 되었다. 부대는 이날 압록강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헌수하였다.[12] •중공군 3개 사단을 괴멸시킨 사주방어 신화창조 부대 •6.25 전쟁 최다 전투, 최다 적 사살의 전공을 세운 부대 총 154회의 전투에 참가하여 92,669명의 적을 사살하였다. •초병의 철통경계로 제2땅굴을 발견한 부대 1973년 11월 20일 새벽, GOP 경계 중이던 이기태 상병과 김효섭 일병이 미세한 진동과 원인 미상의 폭음을 듣고 상부에 보고한 것을 처음으로 이후 지속적인 지하의 폭음이 보고되자 땅굴 탐지 전담반을 편성하여 시추작업을 벌인 끝에 1975년 3월 19일에 제2땅굴을 발견하였다. •전략적 요충지 철원축선을 방어하며, 적 침투를 한번도 허용하지 않은 부대 1966년 철원 축선 담당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번의 적 침투를 허용하지 않았다. •늘 푸른 병영운동으로 새로운 군대문화를 선도하는 부대 늘 푸른 병영 운동을 통하여 상호 존중과 배려, 자율과 창의의 정신으로 전우애가 넘치고,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는 21세기형 병영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부대라고 적어놓았지만 10개 맞출려고 끼워놓은 흔적이 역력하다. [13] 사건사고 6사단은 성추행 사단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이전에 6사단 의무대[14]에서 임 모 상병이 구타가혹행위 및 성추행에 시달리다 정신병으로 의병 전역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메스를 배 밑에 대고 엎드려 뻗쳐를 시키거나 선임병 바지가랑이 사이로 개처럼 기어서 걷기, 바지벗겨 거시기 때리기 등등 성추행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과정과 결과가 심히 어이가 없는데 지속적으로 심하게 구타를 당했는데 땅콩 몇 대 때렸다고 별 것 아닌 일로 취급하거나 가해자들을 불기소를 해서 빠져나가게 했고.... 이에 대해 군 관계자들이 합심해서 사건 은폐, 축소하는 데 애를 많이 썼다는 카더라가 있다. 28사단 의무대 폭행치사 사건보다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장이 크다. 사건의 피해자는 의병전역 이후, 현재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있다. SBS 뉴스토리와 KBS 추석60분에서는 김상병이란 이름으로 가명이 나온다. 거기에 며칠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복무 중인 5선 국회의원 출신 현직 광역 자치단체장인 남 도지사의 자제분께서 친히 후임병을 폭행, 성추행하여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더구나 자신이 한 행동이 가족같아서 그랬다라고 말해 한때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가족같아서 그짓거리 하는구나 하지만 그 높으신 분의 빽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으로 빠져나갔다더라...... # 사실 선거 전에 알려졌다면, 도지사 당선은 실패가 되었을 정도로 파장이 컸음에도 쉬쉬한 것이 군 자체가 정권으로부터 비호를 받은 것이 아닌가란 의혹이 상당하다. 또한 2001년에는 사단장이 여군을 성추행하여 불명예 전역을 당하기도 했다. 훈련소 기초 군사교육을 받는 제1신교대, 병과별 실무 주특기를 받는 제2신교대로 나눠져 있었으나, 2012년 11월부로 제2신교대가 야전부대로 바뀜에 따라 제1신교대에서 기초 군사교육 5주+병과별 실무 주특기 2주를 교육하게 됐다. 전투 주특기를 받은 사람은 5주동안 교육을 받고 수료식 후 추가적으로 2주교육을 받는다. 비전투 주특기를 받은 사람은 기존처럼 5주교육 받고 수료하고 자대로 배치되고 있다. 더불어 분대장반 교육 또한 이 훈련소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훈련병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한다.(2000년 분대장교육생) 놀라운건 MLRS수입당시 시범사격을 훈련소 인근에 있는 포병사격장에서 했는데 연병장에는 온갖 종류의 견인포,다연장미사일,나이키미사일등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미장성들이 왔다갔다해서 훈련에 지장이 있을까봐 연병장을 가로지르거나 하지 못하는등의 불편함이 있었으며, 식사 때 소령이 배식을 하는 별세계를 겪기도 했다.(원스타가 우렁차게 경례하는 모습에 분대장반 및 훈련병은 불과 30분도 안되서 득음의 단계까지 갔다더라 하는 농담도 있다.)가끔 야간 MLRS 사격을 볼수 있는데, 굉음과 미묘한 진동이 있고. 조명탄을 씹어먹을 정도의 빛을 내뿜는다. 신막사를 쓰는 일부 사단 신병교육대에 비하면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니고 제1신교대만 해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컨테이너를 협조받아 활용하고 있다. 2011년 11월 현재. 제1신교대 신막사가 완공되었다. 사단 내 병영생활 개선 공사로 인해서 신막사들이 완성될 다른 대대들이 몇몇 군데 있다. 거기에 신막사라고 들어가보면 천장에 물곰팡이가 있어서...... 망했어요. 싸이의 증언에 의하면 밥은 논산이 6사단 신교대보다 맛있다고 한다. 6사단 신교대 밥은 밥도 아닌거다. 신교대에서 사격장과 교육장을 넘어가는 곳에 담터계곡이 있어, 계곡 끝자락에는 펜션들이 무성하게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계절에 따라 이쁜 누님들이나 여성분들이 계곡에서 노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신교대에서 행군 중 유일하게 여자 목소리 들을 수 있는 곳이 이 펜션촌으로 올라가는 길목. 때만 좋으면 한번은 이쁜 여자 목소리로 "사랑해요" 라던가, "오빠 멋져" 등의 가슴 정화음을 들을 수도 있다. 여름 군번들의 축복.대신 겨울에 가면... 그럴 일 절대 없다. 신교대에서는 제2땅굴, 가평 용문산 기념비, 두루미 전시관, 월정리역, 평화전망대를 가는 과정이 있어 하루 정도는 맘 놓고 쉴 수 있는 기간이 있기도 했다. 출신인물 •유재흥 : 前 4여단장, 4여단장 시절 사단으로 승격하면서 6사단장으로 전임, 3군단장 시절 현리 전투 패전 3대 합동참모의장, 19대 국방부 장관. •김종오 : 前 6사단장, 6사단장 시절 춘천-홍천 전투 및 초산 전투 승전, 9사단장 시절 백마고지 전투 승전, 6,7,8대 합동참모의장, 15대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 前 6사단장, 6사단장 시절 용문산 전투 승전, 14대 육군참모총장, 12대 국방부 장관. •김재규 : 前 6사단장, 제3군단장, 중앙정보부장, 10.26 사건 발생. •권영해 : 前 6사단장, 국방부 기획관리실장, 국방부 차관, 30대 국방부 장관, 국가안전기획부장 •윤용남 : 前 6사단장, 제5군단장, 31대 육군참모총장, 27대 합동참모의장 •남재준 : 前 6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36대 육군참모총장, 국가정보원장. •김장수 : 前 6사단장, 제7군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37대 육군참모총장, 40대 국방부 장관. •임호영 : 前 6사단장, 제5군단장, 現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박찬호 : KIA 타이거즈 내야수. 사단 신교대 입소 사단가 1절.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맹호의 기세로 싸우고 이겨 새세기 선두에 이름을 떨치며 강철로 뭉쳐진 육사단이다 승리의 청성기를 높이 날리며 부르자 우렁차게 우리의 개가를 물과 불을 가리랴 우리는 용감히 싸운다 육사단 육사단 대한의 육사단 2절. 내겨레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악랄한 오랑캐 휘몰아치며 초산의 용문산 적들을 소탕한 전공에 빛나는 육사단이다 승리의 청성기를 높이 날리며 부르자 우렁차게 우리의 개가를 물과 불을 가리랴 우리는 용감히 싸운다 육사단 육사단 대한의 육사단 3절.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내조국 삼천리 강산에 방패가 되어 생명을 바쳐서 오늘도 싸우는 백전 백승의 육사단이다 승리의 청성기를 높이 날리며 부르자 우렁차게 우리의 개가를 물과 불을 가리랴 우리는 용감히 싸운다 육사단 육사단 대한의 육사단 기타 마크의 생김새가 마동왕 그랑조트에 나오는 마법진 비스무리하게 생겨서 그랑조 부대란 별명이 있다. 다윗의 별과 똑같기에 유대인부대 내지는 이스라엘 부대라는 별명도 있다.미국 제6보병사단과 마크가 똑같이 생겼다. 다만 미국 제6보병사단의 마크는 빨강색이다. 1996년에 방영한 KBS 병영드라마 '신고합니다'에서 차인표, 이휘재, 구본승 등 당시 군입대했던 스타들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는데 부대의 배경이 6사단이었다. 김재규가 사단을 맡기도 했으나 현재 사단에선 흑역사 취급하고 있다. 역대 사단장 명단에서도 유일하게 사진이 없을 뿐더러 아예 검은 색으로 칠해놨다. 현직 국방부 퀘스트 수행자라면 인트라넷으로 접속해서 구경할 수 있다. 인트라넷으로 역대지휘관 메뉴를 열람하면 김재규의 사단장 시절 사진을 볼 수 있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저격사건의 주범이었는데, 군부 출신의 간부가 대통령 암살을 했다는 국가적 수치를 감추고 나라 지키는 군대가 쿠데타는 자랑이고 이거는 수치냐? 아직 군부가 건재하다는 명목을 세우기 위해 언론통제를 하던 중 사단장을 맡은 이력이 있는 6사단이 총대를 메게 된 것으로 보인다. 3군단장을 맡은 경력도 있으나 3군단은 유사시 최대 전략적 요충지, 철원평야에 있는 군단이었기에 최소화 하기위해 3군단장이라는 눈에 보이는 경력을 가리고 6사단장을 맡은 경력이 있다는걸 부각시켜 6사단에 대한 언론매체의 보도를 막는 등의 사후조치를 취했던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6사단은 다른 메이커 부대에 밀리지 않을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목에서 멀어져 갔다는 썰이다. 지금도 사관들에게나 병사들에게나 훈련은 더럽게 힘든데거기다 철원, 거기다 GOP 아무도 몰라주는 불운의 부대로 알려져 있다. 최전방 GOP를 맡는 사단이라 용문산부대와 초산부대가 각각 섹터를 맡고 있다. 만약 FEBA로 갈 줄 알았는데 GOP로 갑자기 차출이라도 되었다면 멘탈붕괴할지도 모른다. 군인밖에 없는 강원도에서 그것도 민간인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철책선 북쪽의 국방색과 갈색과 녹색만이 있는 세상에 떨어졌다고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참 쉬울지도 모른다. 용문산부대는 완벽한 평야지대인데 비해 초산부대는 평야가 있긴 하지만 GOP하면 생각하는 전형적인 급경사가 존재한다.옆 사단의 700고지 안 간 것을 위안으로 삼자 하지만 용문산부대라고 해서 겨울 칼바람을 피할 수 있으라 생각하지는 말도록. 바람을 막아줄 지형물이나 건물이 없기 때문에 바람이 정말 강하다. 살을 에는 추위가 무엇인지 몸으로 느낄수 있을 정도로. 덕분에 실제 기온이 영하20~30일 때 체감온도가 영하 45도까지도 내려간다. 혹한의 대명사로 통하는 철원 지역답게 무지막지하게 춥다. 귀가 얼음장처럼 굳어 깨지는 듯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굳이 GOP가 아니어도 사단 예하 어느 부대에 배치받게 되건 변함이 없다. 평야라면 칼바람 때문에, 산이라면 온도 그 자체가 낮아서 일기예보에 나오는 최저기온에서 대충 5도 정도 빼면 된다. 그냥 온도가 영하 30도를 밑도는 날이 1월중 사나흘은 꼭 있으니 참고하시길. 더불어 운이 좋으면 5월 초에 눈 내리는 진풍경을화이트 어버이날 볼 수 도 있다...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렇다고 여름에 시원할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가끔 초소 내부 온도가 30도 후반을 찍는다. 연교차가 무려... 6사단 장병들이 휴가, 외출 및 외박을 나와서 놀 곳이라면 철원의 신시가지이자 실질적인 경제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동송읍.[15] 전방에 위치한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동송도 전형적인 군인도시이다. 휴가나 외박을 얻어 동송 시내에서 군복을 입고 다니다 보면 어디든지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경례를 할 상황이 많다. 군장점부터 식당에 이르기까지 예외란 없다. 늦은 오후까지도 업무를 보느라 옆에 행정병을 데리고 왔다갔다 하는 중령급 이상의 고급 장교들도 심심찮게 보이는[16] 까닭에 곳곳에서 우렁찬 경례가 울려퍼지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그리고 휴가 출발자가 버스 잡는 이른 아침이나 복귀자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초저녁 쯤이면 큰길가에 군용차가 한 대 지나갈 때마다 수십 명의 장병들이 지나가는 방향 따라 도미노식으로 경례를 촤자작! 하고 또다시 촤자작! 내리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다! 직접 보면 가히 장관이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동송 모텔값이 너무 비싸서(7만원) 외박나오면 차라리 팬션을 간다. 피씨방은 평일에만 회원가입이 가능해서 대부분 주말에만 출타가 가능한 군인들은 그저 호갱이 됐다. 눈물 본부대 및 보병연대쪽은 신막사 완공 또는 막사 리모델링이 완료되었다. 보병연대의 경우 각각 연대본부 및 예비 2개 대대는 신막사를 사용하고 있고, 전방대대 또한 대부분 내부가 침대를 쓰는 신막사형 소초 및 통문에 거주하고 있다.(몇몇 침상을 쓰는 소초 및 통문은 안습...) 예비연대 또한 연대본부 및 신병교육대대는 신막사를 사용하며, 1개 대대는 2012년부로 막사 리모델링이 완공되었다. 2002년 사단 본부 소속 상사가 총기(K-1)를 영외 반출 후 포천 농협 총기 강도사건을 벌인적이 있다. 이로 인해 사단장이 교체되는 일이 발생.[17] 게다가 후임 사단장은 논산 훈련소에서... 중국 영화 <집결호>에서 주인공이 소속된 중공군 부대가 한국전쟁 때 국군으로 위장하고 공작을 벌이는 파트에서 입고 있는 국군 군복에 바로 이 사단의 마크가 붙어 있다. 중국 측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6사단의 활약이 꽤 인상깊었던 듯 하다. 하긴 중공군 3개 사단을 아작낸 사단이니... 주둔지가 철원이고 GOP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사단이지만 다른 사단에 비해 한 가지 그나마 좋은 점은 사단 담당 구역의 절반이 완벽한 평지이고 나머지 절반마저 지옥의 산간구역 빼고 평탄한 지형이 많다. 하지만 이 동네 출신 최전방 수호병에게 그 동네 근무 어땠냐고 물어보면 다들 힘들었다고 치를 떤다. 특히 ㅊXX을 담당하는 부대 출신이라면 더더욱!- 체력을 그 많은 휴가랑 등가교환하므로 잘 생각해보고 들어가보자 [1] 공교롭게도 현재는 해체된 미육군 6사단의 마크도 육망성이다. 다만 색깔은 한국군과 다르게 빨간색 [2] 독수리부대에 한해 2012년 들어서 필승 뒤에 사랑합니다를 붙이게 변경되었으나 공식석상에서는 필승으로 경례를 붙인다. [3] 보병연대 기준임. 처음으로 배속받은 16포병대대는 현재 7사단 예하부대이다. [4] 전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군사적 개념에서 20% 이상의 손실이 나면 편제를 유지하면서 전투속행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전멸이라고 본다. 즉, 그야말로 개박살이 난 것. [5] 특히, 국군 정훈 내용에 따르면 북한군 2사단은 '6.25 직전 북한군 최후 전투사열' 당시 최우수부대 평가를 받을 정도의 정예였다고 하니 더더욱 6사단의 우월함이 돋보인다. - 이 부분은 확인바람. [6] 김광협 대신 2군단장으로 부임한 인물은 연안파의 거두인 무정이다. [7] 단, 위에서 언급한대로 16포병대대는 예외 [8] 조달진 일병은 이 전공을 인정받아 일등병에서 하사를 건너뛰고 이등중사로 2계급 특진을 하였다. [9] 하지만 심일 소위의 전공이 조작이라는 주장이 최근 나왔다. 참조바람. [10] 이때 노획한 북한군의 군장비에 소련 제품의 표시가 있어 소련이 전쟁에 개입하였다는 증거로 UN에 보내지기도 하였다. [11] 제보한 국민학교 교사의 이름은 김재옥으로, 후일 육군 소위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던 중 1963년, 살인사건에 휘말려 남편(당시 계급은 중령)과 같이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이 없는 것은 이 살인사건의 주범은 대대장에게 원한을 품은 옛 병사였는데, 정작 그 대대장은 당시 이미 다른 데로 전근간 상태였던 것이다. [12] 6사단에서는 이 일을 자랑삼아 압록강 물을 다시 마시자는 구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13] 물론 일부 부대에서는 정말로 부조리 및 악습이 개선되었다고도 하지만 악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부대 또한 아직 많다. 아니, 이게 악습인 것을 자기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14] 정확히는 6사단 의무대가 아니라 6사단 포병연대 예하 모 포병대대 의무중대이다. [15] 갈말읍 일대를 '신'철원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군청소재지라는 점 빼면 동송이 신철원보다 훨씬 더 발전하였다. [16] 좁은 동송 시내에 군인 관사가 아파트 형태로 밀집되어 있는 탓에 굳이 업무 때문이 아니라도 시내에서 고급장교를 보는 경우가 매우 많다. 퇴근 후에 동네 슈퍼마켓에서 잠깐 장을 보다가 운동복 차림의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께서 "수고가 많구먼." 하길래 "감사합니다." 하고 가볍게 목례했는데 어째 얼굴이 익숙해서 다시 봤더니 사단 참모장 이더라는 어느 영외거주간부의 일화도 있다 [17] 근데 검색해 보면 나오지만... 이 농협은 은근히 자주 털린듯 하다. 포천의 입지가 문제인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