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정답을 아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이해가 안돼요." 어제 만난 제자가 답답함을 잔뜩 담아 한 말이다.
그녀는 지난 계절학기 수업에서 미디어 관련 법과 윤리에 대해 배우는 과목을 수강했다. 수강생이 아주 적어서 매일 깊은 사고와 토론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마치 우리 수업 같았다며 말이다.
미디어와 언론이 제 역할를 하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하거나 선동하고 있음을 수강생들과 교수 모두 인지하고 있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논의를 많이 했다고 한다.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쉽게 합의가 되는데 그럴 때마다 결론은 항상 "그런데 왜 안되고 있죠?"라며 회의감만 가득했단다.
미디어와 언론만 그러할까?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 관련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당연한 문제 해법을 언급하며 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윤리와 정의에 의해 매사가 실행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람이 하는 일에는 안타깝게도 선하게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편은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회가 늘 개선되고 진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님을 역사에서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사실을 배웠다. 왕정 국가의 곪은 문제가 터져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시민이 주인인 공화정이 시작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나폴레옹의 조카가 황제가 되어 결국 제정 국가로 회귀했다고 한다.
이럴거면 시민들이 왜 피를 흘리며 혁명을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여기에는 더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가 정의나 윤리에 의해 손쉽게 작동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실천이 어렵고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윤리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몰라서라기보다 알면서도 나에게 유불리를 따지거나 나의 호불호에 의해 선택적으로 취하기 때문에 윤리가 제대로 실천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 기레기가 되고 싶은 기자들이 몇이나 될까? 이유없이 이기적인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냥 직장이 좋아서 부하 직원을 비이성적으로 닥달하며 성과를 내고자 하는 직장 상사가 얼마나 될까? 사회 많은 사람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할 것이다.
사회가 요구한다고 해서 비윤리적이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을 모른채 넘어가도 되는 지 사회 구성원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고민하고 논의하며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디어 분야에서도, 교육 분야에서도, 심지어 직장과 군대에서도 말이다.
변화와 개선은 원래 더디고 답답하다. 지치고 힘들다. 변화와 개선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지쳐 나가 떨어지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관심을 끄도록 만드는 것이다. 고민과 논의 자체를 하지 않아야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사람들이 활개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정답을 찾는데 그치며 "어차피 현실에서는 안돼"라며 회의감을 갖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힘을 내고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다음주부터 내 강의실에서 나도 또한번 실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