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3호 심판은 정말있는가?
권두언 심판은 정말 있을까요? 많은 기독교인이 심판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 안에는 심판에 대한 기별이나 가르침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대신 은혜로만 구원을 얻으며,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잃어버릴 수가 없고,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편안하게 지내라는 거짓 평안과 위로의 기별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독교 안에 올바른 심판의 기별이 전해지지 않고 있어서 이렇게 기독교가 점점 타락하고 영적으로 퇴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신앙하는 이유가 되면 안 되지만, 심판에 대한 가르침이 빠진 거짓 복음은 올바른 신앙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자비와 은혜에는 기한과 끝이 있으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심판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기 쉽지만, 사실 심판은 너무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과 핍박을 받는 의인들을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오해받고 계신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불의와 부조리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너무나 이 세상에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이번 호에 다뤄지는 심판에 대한 기사는, 그동안 심판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인 개념과 심판에 대한 모호한 사상을 깨끗하게 불식시켜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며, 그 심판이 왜 복음처럼 좋은 소식이 되는지 가르쳐 드릴 것입니다. 심판이 곧 다가옵니다. 심판을 위해 준비되는 독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발행인 강 병 국 목사
신앙 제 1부: 복음은 심판을 말한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어서 속히 이 세상을 벗어나 하늘 본향에서 살기를 고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세상의 부조리와 죄악의 현상들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사람들, 그리고 불의와 부당한 억압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질문이 있다. 그것은"왜 하나님께서 지구의 역사를 빨리 끝내시지 않는가? 왜 6000년 동안이나 이렇게 오래 기다리시는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시는 것인가? 왜 악이 세상을 지배해도 가만히 계시는가?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하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유추해내기 위해서는 심판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심판에 대한 올바른 개념만이 이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올바른 복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심판이 빠진 복음은 올바른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과 심판은 함께 가는 것이다. 1) 복음과 심판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만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입으로 주를 시인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상은 매우 그릇되고 잘못된 사상이다. 우리는 믿음과 은혜로 구원을 얻지만, 행위로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그에 따르는 행함과 순종과 계명을 지키는 성품과 생애가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 죽은 믿음이며,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현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심판을 믿지 않는 이유는, 올바른 참된 복음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이다. 성경의 진리와 올바른 복음을 알지 못하면 심판에 대한 개념이 흐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구원을 얻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데, 그리고 죽으면 영혼이 천당이나 지옥으로 이미 가 있다고 믿는데, 그리고 예수께서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해 주셨다고 믿는데, 왜 구태여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시 모아 귀찮게 심판하신다고 믿겠는가? 참된 복음을 알지 못할 때, 그 꿰어지지 않고 이가 서로 맞지 않는 오류가 섞인 혼탁한 교리와 반쪽 복음은 희미한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할 뿐, 성경이 말하는 명확한 진리의 길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성경은 분명히 심판이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세상의 역사를 끝내실 것이라고 말한다. 참된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복음과 함께 명확한 심판의 개념을 이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복음을 알고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된 사람만이 심판을 위해 준비되기 때문이다. 참된 복음은,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진정으로 경험한 사람들을, 앞으로 오는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한다.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복음, 진짜 복음은, 하나님께서 최초에 인간이 타락하여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완전하게 되어, 다시 하나님과 함께 살 사람으로 회복될 수 있는지, 그 구원의 방안과 계획과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복음에는 한 가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에는 여러 가지 다른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복음의 면이 조화되고 어우러져야 복음의 결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음에는 회개와 용서로 얻는 칭의(신학적 용어로, 회개한 사람이 의롭다는 칭함을 받는 것)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죄의 승리도 포함되어 있고, 성화(거룩하게 변화되는 것), 곧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남과 성숙한 성품의 완전도 포함되어 있으며, 성품의 완전이 올 때 같이 오는 추수도 있고, 추수는 곳간에 들어가지 못한 쭉정이의 심판을 가리키기 때문에, 심판도 포함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기독교 안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복음은 시작에 불과할 뿐, 온전한 복음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현 기독교의 복음으로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 목적 - 즉 죄 많은 인간이 보혈의 피로 구속을 받고,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죄를 이기며,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어, 심판을 면하고 하늘에 가서 살기에 적합한 성품의 사람이 되게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올바른 복음을 모르면 심판에 대한 개념도 없고, 또 다가오는 심판을 위해 준비할 수도 없다. 2)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 사람들은 대부분 재판이나 심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재판이나 심판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두려운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이나 심판을 몹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재판이 빨리 열리고, 심판이 진행되어 자신의 잘잘못이 가려지고 자신의 처지가 변호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심판이란 단어는 매우 속 시원하고 유쾌한 단어가 될 것이다. 성경에는 흥미로운 시 한 편이 있다. 그 시에는, 무엇인가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한 사람이, 남을 압제하고 고통을 주며 악하게 구는 악인이 왜 벌을 받지 않고 저렇게 활개를 치며 잘살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 시를 읽어보면, 심판은 정말 존재하는 것이며, 또 그 심판이 언제 있을 것이며, 심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심판에 대한 개념이 확실해진다. 그 시를 한 번 읽어 보며 심판에 대해 공부해 보자.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위의 시를 읽어보면, 고뇌하던 이 사람이 답을 찾은 것은"성소에 들어갈 때에야"였다. 그는 성소에서 악인의 결국, 곧 죄인의 마지막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소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시편의 시인은 성소에 들어가서 무엇을 보았길래 답을 찾았다고 말하는가? 성소에는 답이 있다. 성소에 대해 알면, 모든 의문이 풀릴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시인은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구원의 청사진이다. 성소 제도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보면, 거기에는 구원과 심판, 지구의 멸망과 회복,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 대해 모두 확실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성소를 알 때에 모든 답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성소에 깃든 의미와 구원의 사역 성소 제도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놀라운 구속의 섭리가 있다. 성소 제도 전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지상 생애와 그분의 사역,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셔서 하실 봉사 사업까지를 상징하는 기구들과 예식으로 가득 차 있다. 성소 건물은 세 개의 칸, 즉 성소 뜰, 성소, 지성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구속 사업의 세 가지 국면들을 상징하고 있다. A. 성소 뜰 성소 뜰에는 번제단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죄인이 끌고 온 희생 제물을 죽이고 번제단 위에 태우는 사역을 하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류를 위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돌아가실 것을 상징한 것이었다."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 10:12). B. 성소 첫째 칸 (성소) 첫째 칸 성소는,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하늘 성소로 가시어, 그분께서 흘리신 피를 힘입어 회개하며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며, 죄를 사하시고, 나아가서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나누어 주시는 일을 행하신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 일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해인 A.D. 31년부터 진행해 오셨다고 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 12). C. 성소 둘째 칸 (지성소) 둘째 칸 지성소는 예수께서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구속의 국면을 상징하고 있다. 지성소에 대한 연구는 명확한 심판의 개념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계속되는 기사에서 지성소와 심판에 대해 알아보자. 신앙 제 2부: 지성소가 말하는 심판 성소 제도 중에서 지성소는 심판과 직결되어 있다.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과 사역은 심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게 한다. 시편의 시인이 성소에 들어가서야 깨달았다는 것은, 바로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사역과 표상을 통해 심판의 명확한 개념을 깨달은 것이었다. 지성소에서 행해지는 사역은 세상의 마지막 심판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종말과 심판에 대해서도 해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시인은 그렇게도 궁구하며 고뇌하던, 악인의 결국과 악인의 심판과 멸망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소에서 어떤 사역이 이루어지는지 확실하게 공부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성소의 최종 목적지 지성소 지성소는 성소 제도의 결론이요, 최종 목적지였다. 지성소는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이었다. 성소의 맨 마지막 목적지인 지성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의 임재의 빛인 쉐키나 빛을 통하여 거하고 계셨다. 지성소 안에는 두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을 보관하는 법궤가 있었으며, 법궤 위에는 시은좌가 있어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인 쉐키나가 비쳐 나오고 있었다.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즉시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결하게 준비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정결과 도말을 위하여서 기도하였다. 그날을 성경은 대속죄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속죄일과 심판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에 대해 공부하려면, 대속죄일을 잠깐 살펴보고 지나가야 한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 일 차 속죄할 것이니라"(레 16:29, 30, 34). 1) 대속죄일 구약의 성소 제도에는, 매일 드리는 성소 봉사와 일 년에 한 번만 드리는 지성소 봉사가 있었는데, 일 년에 한 번 드리는 지성소 봉사가 행해지는 날을 대속죄일이라고 부른다. 대속죄일은 일 년에 한 번 이스라엘의 모든 죄가 속죄받고 정결하게 함을 입는 날이었고, 일 년 동안의 삶을 종결짓는 엄숙한 심판의 날이었다. 이날의 판결은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의 생명이 유지되느냐, 잃어버리느냐를 결정하였다. 일 년에 한 번, 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성소와 또 백성을 정결하게 하려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지성소 안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한 해 동안의 죄를 결말짓게 되어 있었다. 번제단과 성소에 뿌려진 피로서 남아 있는 그들의 죄의 기록이 하나님 앞에서 재검토되는 최후 심판의 날이었다. 대제사장은 제일 먼저 자기 자신과 자기의 권속들을 위하여 먼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 자신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은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를 할 수 있었다. 그다음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였다 (레 16:15, 16).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레 16:15, 16) 2) 조사하는 심판의 날 하나님께서는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모든 죄로부터 정결케 될 것을 명하시었다. 그들은 일 년 내내 죄들을 고백하며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면서 용서를 받아 왔다. 그러나 매년 마지막 날인 대속죄일,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을 그들의 회개가 정말 참된 것이었는지, 지금도 회개할 때와 같은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지, 정말로 죄를 참회하고 버렸는지를 심판하시는 일을 하셨다. 대속죄일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이 혹시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는지, 또 버리지 못한 죄가 있는지 자신들을 철저히 살피고 조사해야 하였다. 어떤 지파나 종족이나 가족 중에 회개하지 않은 죄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돌로 침을 당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이었다. 이날에, 진실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또다시 바치는 경험을 하였으며, 그들의 회개를 확고히 하였다. 그리하여 대속죄일에는 전에 이미 용서를 받은 죄의 기록들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지만,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은 영원히 끊어짐을 당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소는 한 해 동안 쌓여온 죄의 기록들로부터 정결케 함을 얻었다. 그렇게 되면 대속은 완성되었으며, 더는 죄에 대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지성소와 대속죄일은 심판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대속죄일에 드리는 제사와 의식들은 하늘 지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 사업을 묘사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기록에서 깨끗하게 지우시기 전에, 각자들의 참된 상태를 살펴보시는 심판을 진행하신다. 그것은 그들의 생애가 정말 어떠했는지를 조사하시는 것이다. 용서와 구원은 우리의 마음과 품성이 하나님의 계명과 일치하는지를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이 있기 전까지 항상 조건적이다. 그래서 시편의 시인은 성소에 들어가서 그 사역의 의미를 보았으며, 지성소의 심판을 이해하고, 그곳에서 악인의 종말과 끝을 보았던 것이다. 복음의 결말은 심판을 부른다 성경 마지막 예언의 책 요한계시록은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가 심판의 시간이 가까웠다고 경고하는 것은, 마치 지상 성소 제도에서 대속죄일의 심판이 있었던 것과 같이,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죄를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중보 사역이 끝나가고, 이제는 그 결과(누가 진짜 성도 알곡이고, 누가 가짜 성도 가라지인지 결정되는 심판의 결과)를 거둘 날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심판이 이루어지고 누가 구원을 얻을지 결정되는 순간, 즉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중보사업을 마치시고, 심판을 당할 자들과 심판을 면할 자들을 결정하시는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말하는 천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온 땅의 족속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인 것을 알 수 있다. 영원한 복음, 변치 않는 진짜 복음과 심판은 서로 나눌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곧, 복음을 알고 복음의 진수와 복음의 결과인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일, 그런 성품을 이룬 사람들의 앞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쳐지는 일, 그리고 곧 임할 심판을 위하여 준비되는 일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반드시 그 결과를 드러내고, 그 결과인 심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그것은 진정으로 복음을 믿은 사람은, 복음의 능력으로, 그리고 그 복음이 뜻하는 대로 변화되어 구원을 얻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진정한 복음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복음대로 변화되지 못한 사람은 결국 구원을 잃어버리고 심판을 받아 멸망에 들어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과 복음의 결과에 따르는 심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왜 현대 기독교에서는 반쪽만의 복음을 전할 뿐, 그렇게 중요한 심판의 기별이 전해지지 않고 있는가? 왜 심판이라는 개념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왜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는 제거해 버리는가? 진정한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된 사람만이 심판의 때를 면할 수 있음을 왜 가르치지 않고 있는가? 심판에 대한 기별이 전해져야 사람들이 심판의 때를 위해 준비할 수 있고, 그래야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복음, 곧 심판의 때와 세상의 마지막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가 포함된 올바른 복음을 알고 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앙 제 3부: 왜 심판이 있어야 하는가? 혹자는 이렇게 질문한다."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숨은 동기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 경위와 배후까지 꿰뚫어 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시는 일이 필요한가? 심판을 통하지 않아도 누가 구원받을 사람인지, 누가 영생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인지 다 아시지 않는가?"라고. 물론 하나님은 다 아신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는 심판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경 여러 군데에는 심판이 있을 것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 29).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행 17:3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벧전 4:17, 18).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딤후 4:1).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롬 14:10).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롬 2:16).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7). 앞의 성경 구절들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명확히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심판이 필요하다고 성경은 시사하는가? 첫번째 이유 심판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천사들과 우주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고 공정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서이다. 이 세상과 우주는 사단이 하나님께 도전하고 발발시킨, 선과 악의 대쟁투의 장소이다. 사단은 시초부터 하나님의 법이 불공평한 것이며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천사인 사단을 즉각 없애실 수 있으셨지만, 사단의 고소와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실 필요가 있으셨다. 왜냐하면,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우주의 거민들이 사단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과 그 모든 반역과 죄의 결과가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이 의롭고 공의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반역의 시초에 급하게 사단을 벌하셨다면, 하늘의 다른 많은 존재자가 사단이 불공정하게 취급되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하늘과 그 밖의 우주 세계는 아직 죄의 본질과 그 결과에 대하여 깨달을 단계가 못 되었으므로, 사단을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은혜임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죄악이 충분히 성숙하여 드러날 시간이 허용되어야 했다. 사단의 기만은 너무 교묘하였으므로 그 찬탈자의 본성과 참 목적, 즉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증명되는 일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영원히 온 우주를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정부에 대한 사단의 비난의 진상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그리고 그분의 율법의 불변성이 영구히 의문시되지 않을 위치에 놓일 수 있게 하려고 심판이 필요하다. 사단의 고소는 우주에 반드시 그 해답과 변호를 요하는 심각한 우주의 법정 투쟁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공의롭고 전능하신 분이시라 해도, 이 문제는 하나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사단이 던진 이 고소에 대한 증명과 변호가 공정하고 명백하게 온 우주 앞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며, 또 시간이 요하는 일로서, 사단의 통치와 거짓말의 결과가 완전히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사단과의 그리고 죄와의 전쟁을 끝마치실 수가 없으시다. 이 전쟁은 힘의 대결로 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시간과 증인이 요구되는 전쟁이며, 온 우주의 영원한 행복과 질서가 달린 중대한 싸움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우심과 의로우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며, 심판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우심과 의로우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며, 심판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 심판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사단 앞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살기에, 그리고 천사들의 이웃이 되어 살기에 영원히 안전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셔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라고 말했다. 비록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와 우주와 천사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성도들의 생애, 실패와 쓰러지는 모습, 또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모습과 죄를 승리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아마, 구원받을 사람들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궁금해할 것이다. 정말 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다시는 반역하지 않을만한 성품으로 변화된 안전한 사람들인가? 혹시 사단이나 아담과 하와처럼 또 죄를 짓고 반역하여 이 우주가 다시 선과 악의 전쟁으로 휩싸이게 되면 어떻게 하나 그들은 우려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구원하셔서 하늘에 들일 자들이, 정말 하늘에서 살 적합성을 갖추었는지, 그리고 죄의 악함을 알고 죄를 너무나 미워하여 죽어도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을 마음과 성품을 갖추었는지, 그들이 정말 하나님 사랑의 성품으로 변하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지를 온 우주에 드러내셔야 한다. 그러므로 심판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신 심판을 우주 앞에 펼쳐 놓으시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 이유 심판이 필요한 세 번째 이유는, 지구의 죄와 반역의 역사를 마감하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품성을 조사하여 확정 짓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심판은 필요한 것이다. 그 죄인이 정말 죄를 미워하여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지 않는지, 다시는 그런 죄를 지을 마음이 정말 없어졌는지, 또 그런 죄를 마음에 품고 살 의도가 완전히 없어졌는지, 그리고 그 죄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을 진정으로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죄인의 마음이 정말로 거듭나서 새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우리 죄인들은 예수님 안에 항상 거하지 않으면, 옛날 죄 된 생활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회개하였지만 다시 마음을 바꾸어 죄의 습관으로 돌아가서 타락할 수 있다. 또한, 겉으로는 회개한 것같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죄를 품고 있거나, 아니면 죄의 습관을 버리지 않고 있거나, 아니면 죄의 우상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대속죄일 날, 즉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시기 전에 누가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조사하시는 것이며, 심판은 그래서 필요하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행함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죄인들이 진실로 회개한 것인지,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참된 품성을 가졌는지를 알아보시는 과정이 심판이며, 그 심판을 통과하면서 정말 그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어 하늘에 살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드러나게 되며, 그리고 의롭고 공정한 판결을 위하여 심판이 필요한 것이다.
신앙 제 4부: 심판은 어떻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심판을 하시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4, 12).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데, 책을 펴놓고 하신다. 곧 성도들의 모든 행실이 기록된 책을 보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행위와 마음의 동기를 기록하게 하신다. 얼마 전에 미국의 특수부대"네이비 씰"이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할 때에, 그 특수 부대원들이 쓰고 있는 헬멧에는 특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대통령과 각료들이 백악관 한 방에서 그 장면을 다 지켜보았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리는 영으로서 주신 천사들은 우리를 수종 들며 돌보기도 하지만, 또한 특수한 카메라 같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행위를 기록한다. 선지자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광경을 보고,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9, 10) 라고 그 장면을 기록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이 온 세계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펼쳐져서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를 따라 보응을 받게 될 그 엄숙하고 큰 날의 광경이었다. 심판을 주재하시는 분은 만물의 근원이시며, 모든 법칙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천천만만"의 거룩한 천사들이 수종하는 자와 증인들로서 그 큰 법정에 열석하게 된다. 그리고 책들이 펼쳐지고 심판이 진행된다. 1) 심판하는 책들(1) 생명책 요한은 심판의 광경을 묘사하면서"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라고 했다. 심판은 생명책에 기록을 따라 시행된다. 생명책에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겨온 모든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그의 성실한 동역자들에 대하여"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라고 했다. 다니엘은"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환란의 때를 미리 보면서"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라고 말함으로써,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을 시사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그 이름이"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계 21:27)만이 하나님의 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2) 기념책 하나님 앞에는 기념될 만한 기록들을 기록하는"기념책"같은 책이 있다. 거기에는"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말 3:16)들의 선한 행실이 기록되어 있다. 믿음에서 나온 그들의 말, 사랑의 행위가 다 하늘에 기록된다. 이에 대하여 느헤미야는"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 13:14)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기념책에는 의로운 행위가 빠짐이 없이 기록된다. 거기에는 유혹을 물리친 것, 악을 이긴 것, 부드러운 자비로 표현한 말 등이 모두 자세히 기록된다. 그리고 모든 희생적 행위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난과 슬픔이 모두 기록된다. 시편 기자는"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라고 말한다. (3) 죄악을 기록하는 책 책 중에는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하는 책이 있다."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주님께서는"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 37)고 말씀하셨다. 은밀한 목적과 동기도 실수함이 없는 그 기록에는 빠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고전 4:5)기 때문이다."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사 65:6, 7)라. 2) 심판을 결정하는 기록들 심판은 기록에 의해 진행된다. 각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심사되어 성실한 것과 불성실한 것들이 기록된다. 하늘의 책들에는 각 사람의 이름 아래 온갖 악한 말, 모든 이기적 행위, 온갖 의무 태만, 모든 은밀한 죄, 모든 기만 등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경고와 견책을 등한히 한 것, 시간을 낭비한 것, 기회를 놓친 것, 선악 간의 감화와 그 결과가 멀리까지 미친 일이 모두 기록하는 천사에 의하여 기록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심판 때에 사람의 품성과 생애를 측정하는 표준이다. 야고보는 그의 형제들에게"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2)라고 권면한다. 심판에서"합당히 여김을 입은"사람들은 의인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눅 20:35, 36)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또한"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라고 말씀하신다. 곧 죽은 의인들은 심판 때에 생명의 부활에 합당한 자라는 선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부활하게 될 것이다.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이 펼쳐지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대언자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의 사건을 제시하신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리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된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된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채 기록책에 죄를 남겨두고 있으면,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그들의 선행의 기록도 하나님의 기념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출 32:33)라고 선언하셨다. 선지자 에스겔은"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면...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겔 18:24)라고 말한다. 죽은 의인들은 심판 때에 생명의 부활에 합당한 자라는 선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부활하게 될 것이다.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이 펼쳐지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이다. 3) 심판을 위한 엄숙한 준비가 필요함 영원한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날마다 하늘의 책들에 기록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한 번 입에서 나온 말, 한 번 나타낸 행위는 결단코 돌이킬 수 없다. 천사들은 선악간의 행위를 다 기록하여 둔다. 세상의 누구라도 단 하루의 기록을 취소할 수 없다. 우리의 행위, 우리의 말, 심지어 가장 은밀한 동기까지도 모두 행복과 불행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모든 사람의 품성은 하늘의 모든 기록에 충실하게 묘사된다. 만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분해 놓은 휘장이 제거되어, 사람들이 심판 날에 다시 목격하게 될 모든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는 천사를 볼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날마다 하는 말을 그치고 많은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영적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 되기를 원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은혜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오늘날 죄를 슬퍼하고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한다. 그들은 심각하고 철저하게 마음을 살펴야 한다. 비록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밀히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되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한다. 의인과 악인은 그들의 생활 상태 그대로 여전히 세상에 살면서, 하늘 성소에서 철회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정이 내린 것도 모르고, 밭 갈고 집 짓고 먹고 마시고 할 것이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7일 동안 배 밖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 것을 모르고 쾌락을 사랑하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것처럼, 각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고 범죄한 인류에 대한 은혜의 초청이 철회되는 마지막 시간도 밤에 도둑이 오는 것처럼 가만히 눈에 띄지 않게 올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 13:35, 36). 깨어 있기를 소홀히 하고 세상의 매력을 향하여 마음을 돌리는 사람들의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 사업가가 이득에 마음을 빼앗기고, 향락을 즐기는 자가 방종을 구하고, 유행을 따르는 자가 몸을 단장하기에 겨를이 없을 바로 그때, 온 세상의 심판관 되신 예수님께서"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단 5:27) 라고 선고하실 것이다.
신앙 제 5부: 심판의 완결, 천년기와 심판의 집행 심판에 대한 완결을 알려면, 천년기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심판이 언제 어떻게 끝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심판과 함께 천년기에 대해서 공부해 보자. 1) 천년기천년기란 무엇인가? 먼저 이와 관련된 성경 절을 보자.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계 20:1~5). 이 성경 절에는"천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곧 사단이 천 년 동안 결박되어 갇히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천 년의 기간을 천년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천년기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된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계 6:4)울 것이며, 그분의 영광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인들은 다 죽임을 당할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하늘로 올라간 후, 지구는 완전히 황폐되어 살아 있는 거민들은 하나도 없고, 사단과 그의 사자들만이 폐허 속에서 거처할 뿐이다. 그때 천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2) 천년기가 시작될 때의 사건들1 예수님의 재림 천년기의 시작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된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 때에 땅과 악인들은 그분의 영광으로 폐허가 되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천 년 동안에 지구에 대한 사단의 영향은 제한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통치하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은 함께 연결되어 있는데, 이 두 장은 그리스도의 재림(계 19:11~21)과 재림 후에 바로 계속되는 천년기를 묘사하고 있다. 2 의인의 승천과 첫째 부활 재림 시에 첫째 부활이 있게 된다. 의인들, 곧 "복이 있고 거룩" 한 자들은 부활한다. 죽은 의인들이 부활한 후, 그들과 산 성도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끌어올려 진다(살전 4:17). 그리고 예수님이 준비하신 장소, "내 아버지 집", "처소"로 성도들을 데리고 가신다(요 14:2). 이곳은 천년기가 끝나기 전에는 이 땅에 내려오지 않을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 시에 의인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때, 그들의 목적지는 하늘이지, 그들이 방금 떠난 이 지구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때에 당신의 영광 나라를 지상에 세우지 않으신다. 그분은 천년기의 끝에 그렇게 하신다. 3 악인들의 죽음과 땅의 황폐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백마를 타시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의 반역한 나라들을 치실 것이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죽임을 당한 후에, 사단을 따르는 자 중 남은 자들이 죽을 것이며, 살아남은 자들은 전혀 없을 것이다. 의인들이 주님과 함께 지내기 위하여 승천하고, 악인들이 예수 재림 때에 죽임을 당하고 나면 지구는 한동안 거민들이 없이 지내게 된다. 땅은 황폐되고 폐허가 된다. 4 사단이 결박됨 요한계시록 20장 1~4절의 성경 절이 시사하는 대로, 사단이 무저갱 속에 던져져서 인봉되어 천 년 동안 만국을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분과 싸우기 위하여 모였을 때,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죽임을 당한다(계 19:19, 20). 그다음에 계속되는 요한계시록 20장, 곧 천년기에 관한 장은 용의 운명을 취급한다. 용인 사단은 사로잡혀서 무저갱에 던져져 1,000년 동안 그곳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대속죄일 때에 표상으로, 제비 뽑힌"아사셀"염소 위에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레 16:21)어, 그 염소를 광야, 곧 "무인지경"(레 16:22)으로 쫓겨나게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백성의 죄에 대해 완전히 속죄하신 후, 그 모든 죄를 사단, 곧 악의 창시자요 선동자인 사단에게 전가하실 것이다. 사단은 그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범하게 한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민이 없는 황폐한 지상으로 추방하실 것이다. 요한은 이런 사단의 추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1,000년이 시작될 때 용,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계 20:2)이 결박되어 "무저갱"(계 20:3)에 갇히는 것을 보았다. 3) 천년기 동안의 사건들1 심판을 통과하고 구원받은 성도들 마지막 시대에 사는 성도들의 회개 기도와 고백이 다 드려지고, 하늘에서 은혜의 시간, 즉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중보의 사업이 끝나면, 누가 구원받을 사람인지 아닌지, 누가 불의한 자인지 아닌지 다 결정되게 된다. 즉 구원받을 사람들을 조사하는 심판이 결정 나고 끝난 것이다. 이제 심판이 끝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품이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고 환란을 통과하여, 고대하던 감격스러운 예수님의 재림을 맞아 하늘로 승천하게 된다. 하늘에 가서 성도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 영원이라는 세월 동안 성도들의 할 일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우선은 예수님과 온 우주의 환영을 받으며, 거문고와 면류관을 받고, 구원받은 기쁨과 감격 속에서 하늘 본향의 거할 집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또 그립던 주님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타락하지 않은 우주의 거민들을 만나 하나님의 인도 하심과 자비를 증거하는 감동스러운 간증을 나눌 것이다. 또 아마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도 배울 것이고, 성경의 기록대로 아름다운 하늘의 정원과 포도원들을 재배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를 둘러서서 그분의 공의와 자비를 증거하며 찬송하는 십사만 사천의 찬양 대에서 열심히 찬양할 것이다. 2 천년기 동안 성도들이 심판함 그러나 성도들이 천년기 동안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성도들이 악인들을 심판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다."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2, 3). 또한, 요한도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계 20:4) 라고 한다. 이때는 성경이 말하는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심판할 때이다(벧후 2:4; 유 6). 천년기의 심판은 누가 구원받을 것인지, 잃어버린 바 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재림 전에 그 결정을 하셨다. 재림 때에 부활하거나 승천하지 못한 모든 자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 의인들이 하는 심판은, 악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의인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데 목적이 있다. 만일 우리가 하늘에 갔을 때 분명히 그곳에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가 거기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 사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 종류의 의심이 바로 죄의 기초가 된다. 그런 의심을 품을 어떤 기회도 영원히 종식하므로, 죄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이 천년기 심판 기간에 이런 의문들에 대하여 대답을 하신다. 이 일을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은 선악간의 대쟁투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해서도 참으로 열렬하고 꾸준하게 돌보신 것에 대하여 영원히 만족할 것이다. 그들은 죄인이 얼마나 무관심하고 완고하게 그분의 사랑을 배척하고 거절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외관상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였던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마음속에 얼마나 더러운 이기심과 구주를 반역하는 정신을 은밀히 간직해 왔는가를 발견할 것이다. 천년기 동안의 성도들의 살피는 심판을 통하여, 이제 왜 사단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지, 왜 그들이 하늘에 오면 안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된다. 3 폐허 속에 갇힌 사단 천년기 동안에 사단은 심히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의 사자들과 함께 황폐한 지구에 갇힌 그는 그가 일생 끊임없이 수행해 온 기만을 더는 할 수 없다. 그는 다시는 다른 세계에 가서 미혹할 수 없도록 폐허 된 지구에 갇혀 있다.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반역한 결과를 그의 눈으로 생생하게 바라본다. 그는 선악의 대쟁투에서 그가 담당했던 역할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는 그에게 책임이 있는 모든 죄악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형벌에 대한 공포를 안고 미래를 바라볼 뿐이다. 4) 천년기 끝에 드디어 종결되는 심판 천년기 끝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도들과 거룩한 성과 함께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 2). 그때에 죽은 악인들이 부활하여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함께 그 성을 포위할 것이다. 천 년이 지난 후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악인들)이 부활하게 되고(둘째 부활), 사단은 갇혔던 무활동 상태에서 놓여날 것이다."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계 20:7~9). 사단은 악인들을 다시 한 번 속여서 "성도의 진"과, 이때쯤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왔을, "사랑하는 성(새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한다. 악인들은 죽을 때에 소유했던 똑같은 반역 정신을 가지고 일어나기 때문에 사단이 선동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계의 나라들을 모으고 사랑하시는 성을 공격하게 한다(계 20:8, 9). 하나님께서 다시 악인들에게 생명을 주시자, 그들이 즉시 그분을 대적하고 그분의 나라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하는 사실은, 그들이 영원한 집행 심판을 받아 영원한 사망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성도들과 새 예루살렘과 함께 이 땅으로 내려오신다. 그분은 천년기 심판의 결정을 집행하심으로 대쟁투를 끝내시고, 또한 지구를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심으로 당신의 영원한 나라를 그 위에 세우실 것이다. 그때에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슥 14:9)실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성을 둘러싸고 공격할 준비를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크고 흰 보좌를 설치하신다고 기록하였다(계 20:11). 모든 인류는 이 보좌 주위에서 만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 안에서 안전하게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 밖에서 심판자의 임재 앞에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마지막 단계를 집행하실 것이다. 이 심판의 집행 부분을 실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록책들이 펼쳐질 것이다.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2). 그때에 하나님께서 운명의 선고를 하신다. 그들의 모든 행위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구원 하시려고 하시던 구속의 계획이 드러나자, 사단과 그의 부하들과 그를 따르던 자들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우셨음을 입으로 고백하게 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사 45:23).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롬 14:11).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선고가 내리자 즉시 형벌을 받는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당해야 한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계 20:9)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를 소멸한다. 성 바깥의 지구의 표면은 녹는 것처럼 보이고,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 (벧후 3:7) 을 위하여 하나의 큰 불못이 된다. 요한은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5) 고 말했다. 그들은 영원한 사망, "둘째 사망"(계 21:8)인 완전한 멸망을 하게 되며, 심판은 끝나게 된다. 이것이, 그렇게 오래 끌어오던 선악의 대쟁투가 종결되고, 그렇게 오래 진행되어 오던 심판의 대집행이 완결되는 순간이다. 이제 심판이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새롭게 창조되고, 의인들은 이제 아무 두려움 없이, 영원한 기쁨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된다.
마치면서 우리는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 복음과 심판의 관계와 심판의 필요성, 그리고 심판의 완결에 대해 함께 숙고해 보았습니다. 정말 언제 심판이 지나갈지 모르는 엄숙한 시간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의 이름이 불리고 우리의 케이스가 심판에서 다루어질지 모릅니다. 또 우리의 기록이 얼마나 우리의 의로운 삶을 증거할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직 우리의 중보자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 중보 하고 계실 때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며 정결케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렬히 기도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자로서 탄원하고자 하나님 앞에 나타나실 것입니다."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사단이 우리의 허물을 들추며 고소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변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 주시고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상한 손을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 드시고"내가 저희 이름을 압니다. 내 손바닥에 저희 이름을 새겼습니다!"라고 호소하십니다. 심판에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는 중보자 예수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은혜의 시간이 마치기 전에, 그리고 심판의 시간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의 흠 없는 의의 두루마기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새 마음을 입고 거듭나,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심판의 때에 의롭다는 판결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독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의 편지: 세상이 바뀐 이유는 고치에서 막 나비가 눈을 떴습니다. 무엇인가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이 느껴졌습니다. 무엇인가 세차게 가슴에서 고동쳐 올랐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뻗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과거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날개였습니다. 날아오른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풀밭은, 기어 다니다가 땅에서 올려다본 키 큰 풀밭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공중을 날아가면서 맡는 흐드러진 꽃밭의 향기는, 땅을 기어 다닐 때 한 번 스치던 꽃향기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나비 자신이었습니다. 땅을 기던 삶과 하늘을 나는 삶의 차이였습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똑같은데도,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늘의 색깔도, 땅의 색깔도, 나무의 색깔도 다 같은데, 더 푸르고, 더 윤기나고, 더 빛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생의 폭풍우 전보다 더 세차고, 고난의 바람 전보다 더 거세고, 침몰시킬 듯 밀려오는 격랑의 파도 무섭게 일어나도, 뱃전에 주무시던 주님 얼굴에 비치던 그 미소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유 무엇일까요? 더 못살게 굴고, 점점 더 속을 긁어 주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지나는 길에 발까지 거는 그 사람이 속 보이고 측은하여 조용히 두 손 모으게 되는 이유 무엇일까요?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달라진 것은 자신입니다.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삶과 하늘이 전부가 된 삶의 차이일 뿐입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달라진 것은 마음 하나일 뿐, 똑같은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똑같은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마음이 바뀌었을 뿐... . 옛 마음이 바뀌어 새 마음이 된 것, 내 한 생각만 주장하다가 이젠 예수님의 생각만 따라가게 된 것, 내 한 마음만 고집하다가 이젠 예수님의 마음만 닮고 싶어진 것, 나만 위해 살다가 이젠 예수님만 위해 살게 된 것, 그 차이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바뀐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늘에서 새 마음을 주셨을 뿐... . 강영은 시사와 성경: 총성 없는 전쟁 다가오는 위기 우리는 오늘날 참 풍요로운 시기에 사는 듯하다. 식탁에 늘 밥이 오르고 마음만 있으면 원하는 음식을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 유행하던"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는 이제 들어보기 어렵다. 영양실조로 생긴 질병보다는 너무 잘 먹어서 생긴 성인병이 더 많다. 음식이 없어서 끼니를 굶는 사람보다는 다이어트를 위해 굶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그러나 내가 풍요롭다고 온 지구가 풍요로운 것일까? 슬프게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 지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큰 식량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에서 10억 명 이상이 만성적 굶주림에 고통당하고 있다. 5초에 1명씩, 하루 약 18,000명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서규용 한국 농림부 장관은 최근 짐 로저(Jim Roser)씨의 말을 인용해서"곡물 공급부족을 해결할 방안을 구하지 못하면 몇 년 후에는 억만 금을 줘도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앞으로 가장 위대한 사업은 농업이 될 것이므로 농부가 되라."라는 말을 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매우 뜻깊은 말이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6%로 세계 제2위의 곡물 수입국이며 자급으로는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곡물 수출국의 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여러 곡물 수출국에서는 곡물 수출 금지령을 내리고 있고 그 결과로 세계 식품 가격 지수는 2011년 236으로 사상 최고치를 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보자면 필리핀은 전에는 우리나라에 쌀을 수출하는 나라였으나 산업화의 바람이 불면서 이제 세계 최대의 쌀 수입국이 되어 버렸다. 중국도 2011년 옥수수 수입량이 2010년에 비해 12배가 증가하였다. 세계 각국의 산업화로 말미암아 농업이 줄어들면서 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식량 부족을 채우기 위해 여러 방안이 나오고 있으며,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각 나라의 경쟁도 치열하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말하기를'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계 7:3 kjv). 위에서 말한 땅이나 바다, 또는 나무들이란 우리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생산되는 곳이다. 땅이나 바다 또는 나무들이 해함을 받을 때에 큰 기근 즉, 식량 위기와 재난이 오게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이 쳐지기까지 하나님께서 바람을 붙잡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바람이 놓일 때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사단은 이것을 알기에 앞으로 짐승의 표에 굴복한 사람들에게만 사고팔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다."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하더라" (계 13:17 kjv). 음식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생명보다 더 중한 것이 있을까? 또한, 자녀가 굶주려 죽는 것을 보면서도 진리와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시험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시험을 당할 것이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가 그때에 드러날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고 진리가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시험에 굴복당하고 말 것이다. 그 위기의 때를 위해 지금 준비하자. 육신 적으로는 한적한 시골에 작은 농토를 준비하여 자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다. 영적으로는 시련의 때를 위해 진리로 무장하고 그 진리를 실천하므로 굳센 믿음과 아름다운 성품을 가져야 한다. 나 자신이 죽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실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매일 말씀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자. 다음의 약속을 인해 감사하자. "의롭게 행하며 정직하게 말하는 자, 압제자들의 재물을 멸시하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고, 피흘림을 듣는 데서 귀를 막으며, 악을 보는 데서 눈을 가리는 자니, 그가 높은 곳에 거할 것이요, 방어하는 그의 처소는 바위로 된 요새가 되리라. 양식이 그에게 공급될 것이요, 물도 안전하리라"(사 33:15, 16 kjv). 생애의 빛 인터넷 방송(www.sostv.tv)에 접속하셔서 "다시 보기" 메뉴를 클릭하시면 "시사뉴스" 코너에서 관련 동영상(103회 총성 없는 전쟁, 식량 위기)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이야기: 아빠의 편지 아빠의 편지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써 준 편지로 수북이 쌓여 있는 편지함을 열었다. 그 중 가장 꾸깃꾸깃하고 이상하게 접혀 있는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오래된 아빠의 편지였다. 몇 년 전, 아빠는 자주 편지로 마음을 전하곤 하셨다. 많은 일로 피곤하신데도 새벽까지 편지를 쓰셨다. 아빠와 다투고 난 다음 날,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아빠가"미안해"로 시작해서"사랑해"로 끝나는 연애편지보다 더 달곰한 장문편지를 쥐여 주셨다. 그 외에도 꽤 많은 편지를 주셨던 것 같은데 꾸깃꾸깃한 이 편지, 하나밖에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아쉽기만 하다. 아빠는 항상 나보다 먼저 사과하신다."올바르지 못한 인격 때문에 괜한 자식만 상처를 입히는 못난 아빠를 용서해 주면 고맙겠구나""잘 참고 잘 해주어서 아빠는 우리 사랑이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단해!""겉으로는 늘 야단만 치는 모습이 너에게 어떻게 남았는지 모르겠구나, 미안해." 아빠는 내가 내 이름처럼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늘의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 모두)"주님은 사랑이를 너무도 사랑하셔. 왜? 평생 그 이름이 불릴 때마다'사랑하심'의 증거를 주셨기에...""사랑이의 이름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도 감사한단다. 그 이름처럼 사랑받으며 사랑하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사실 난 내 이름이 좀 부담스럽다. 난"사랑"이지만 나 자신을, 남을 진정으로"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당연히 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자꾸만 그런 자신의 모습에 지쳐가고 지겨워하고 포기해버리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하게 될까 봐, 아버지가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될까 봐... 이런 내 마음을 아셨을까? 아빠의 편지가, 아빠의 마음이 나에게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지치고, 쉬고 싶고, 힘들 때, 눈물 날 때, 사랑이가 가장 힘들고 낙망스럽고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아빠가 사랑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줘!""사랑이를 향한 주님의 계획과 섭리를 바라보며 기도하기를 쉬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사랑아! 사랑해!"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나 자신이 미울 정도로 싫을 때가 있는데,'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항상 나를 생각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구나.'너무 행복해서 정말 기쁘게,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아빠가 나의 아버지인 것이 정말 감사하다.'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요즘, 난 참 행복한 사람이란 걸 느낀다. 절대 놓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신 아버지의 사랑,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주님 안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리라."영원토록 주님 안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원하시는 삶대로, 사랑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