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81년, 한 번도 처벌되지 않은 반역언론ㅡ응징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광복은 없다
이원영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광복 81주년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묻지 못한 질문 하나를 안고 있다. 나라를 팔아넘기는 데 앞장선 신문이, 해방된 나라에서 어떻게 최대 언론권력이 되었는가.
1920년 조선총독부의 사주로 대정친목회에 허가된 신문이 있었다. 1933년 방응모가 인수하면서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한다고 선언했고, 1937년부터는 해마다 정월 초하루 지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었다. 자매지 『조광』에는 조선 청년을 전장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논설이 실렸다.
그 신문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불린다. 단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도둑이 매를 드는 정도가 아니라, 도둑이 집주인 행세를 하며 81년을 살아온 것이다.
수치스런 역사와 현재
이것이 얼마나 비정상인지는 다른 나라를 보면 안다.
프랑스는 해방 후 나치 점령기에 15일 넘게 발행한 신문을 그 사실만으로 폐간시켰다. 논조를 따지지 않았다. 발행 자체가 부역이었다. 신문사 재산은 국유화됐고, 뚜렷한 혐의가 없어도 그 시기에 언론에 몸담았던 이들은 공민권을 박탈당해 다시는 그 일을 하지 못했다. 드골은 이렇게 말했다.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므로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 없이 처단해야 한다고.
네덜란드는 언론정화위원회를 두었다. 지난해 3월 노무현시민센터 국제심포지엄에서 탐사저널리스트 그리젤다 몰레만스가 그 구조를 소개했다. 부역자를 협력자·수익자·기회주의자 세 유형으로 나누고, 기자·편집자·발행인 각각의 윤리 위반을 평가해 직업에서의 일시적 배제부터 영구 배제, 형사기소까지 차등 적용했다. 정교했고, 무엇보다 실행됐다.
박인식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2차대전 후 해방된 22개국 가운데 민족반역자를 단 한 명도 처벌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반민특위는 해체됐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프랑스는 15일간 행위도 부역으로 보았다. 조선일보가 일제 치하에서 발행한 세월은 12년이다.
반역자가 권력자로 군림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처벌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우리는 81년에 걸친 실험 결과를 이미 갖고 있다.
한 번 면책된 자는 면책을 학습한다. 1950년에는 김일성 장군 만세 호외를 냈고, 1980년에는 광주를 매도하며 전두환을 칭송했으며, 사장은 국보위 입법회의에 들어갔다. 이념도 진영도 아니다. 매 시기 가장 강한 힘에 아부하는 하나의 습성이 있을 뿐이다.
그 습성이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
남북의 긴장을 상품으로 삼는다. 대북전단 처벌에 반대하고, 9·19 군사합의 복원을 걱정한다. 분단이 유지되어야 존재 이유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매파에 동조한다. 1990년 2월 이 신문은 사설에서 을지문덕과 강감찬을 불러내며, 전시라 해도 굳이 미군에 작전통제권을 의탁할 필요는 없다고 썼다. 1995년에는 전시작전권이 군사주권의 핵심이니 조속히 환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2025년 7월 11일 사설의 제목은 「전작권 전환, 이렇게 서두를 일인가」였다. 결론은 우리가 먼저 요청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이었다. 그사이 국력은 커졌고 신문의 기개만 사라졌다. 달라진 것은 국방력이 아니라 청와대의 주인이다.
같은 해 9월 조지아주에서 우리 기술자 수백 명이 결박당해 끌려갔을 때, 이 신문의 사설 제목은 「한미, 韓 근로자 체포 재발 방지책 시급히 마련해야」였다.
첫 두 글자가 '한미'다. 미국으로 쏠려야 할 시선이 그 자리에서 이미 절반으로 갈렸다. 7월에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말고 미국 편에 서라는 칼럼이 실렸다.
내란을 옹호한다. 2024년 12월 12일, 내란 피의자가 '2시간짜리 내란'을 강변하던 날 이 신문은 담화 전문을 지면에 실었다. 이듬해 6월에는 논설주간이 그 내란에 '불능 미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것은 논조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위협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81년 전에 매듭짓지 못한 하나의 일에서 비롯됐다.
응징은 우리세대의 의무
그러므로 응징해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논리의 결론이다.
민족반역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법리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정철승 변호사가 제시한 방안이 가장 구체적이다. 신문법 제22조 제2항의 등록취소 사유에 침략국에 협력하고 침략국 수괴나 그 지시를 받는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한 경우를 추가하는 것이다. 이 한 조항이 들어가면, 조선일보사가 등록된 광역지자체장인 서울특별시장이 같은 조 제4호에 따라 법원에 등록취소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새 기구도, 특별법도 필요 없다. 조문 하나다.
여기에 두 가지를 더할 수 있다. 2005년 친일재산귀속법에 근거해 방응모가 후손에게 넘긴 지분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일, 그리고 민족반역 언론에 정부와 공기업의 광고 집행을 끊는 일이다.
그다음이 제도화다. 언론은 사유재산이기 이전에 공유부다. 시민이 알 권리를 대행하라고 위임한 공론장이지, 한 집안이 90년을 물려받을 물건이 아니다. 토지가 사유화되면 지대가 소수에게 흘러가듯, 공론장이 사유화되면 의제설정권이라는 무형의 지대를 언론 카르텔이 독점한다. 그러므로 언론기관의 공익법인화로 세습을 끊어야 하고, 미디어바우처법으로 시민이 그 위임을 철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공유부도, 세습 금지도, 바우처도 처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처벌 이후에 오는 것이고, 처벌과 나란히 가는 것이다. 응징 없는 제도 개혁은 반민특위 없는 헌법과 같다. 아무리 훌륭해도 첫 단추가 없다.
1945년 8월, 총과 칼은 물러갔다. 그러나 나라를 팔아넘기는 데 쓰인 붓은 회수되지 않았다. 그 붓은 주인을 바꿔가며 81년을 더 썼다. '텐노(천황)'를 위해, 독재자를 위해, 이제는 태평양 건너의 매파를 위해.
광복(光復)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날 빛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빛을 가리던 손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손을 치우지 않고서는, 광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