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사고라스(Anaxagoras: 440 B.C.경)
아낙사고라스는 엠페도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존재는 존재하게 되지도 않으며 또한 사라지지도 않으며, 따라서 변화될 수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한 존재 혹은 원소적 입자들이 변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내의 변화는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혼합과 분리의 개념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낙사고라스와 엠페도클레스의 견해는 일치한다. 그러나 엠페도클레스가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를 4종류로 본 데 반해서 아낙사고라스는 원소의 종류가 무수하게 많다고 보고 있다.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우주 내의 대상들은 무수해서 4가지 원소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그래서 그는 대상들은 무수한 수의 원소 즉 ‘씨앗’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으며, 이러한 씨앗의 여러가지 결합방식에 의해서 대상들의 생성이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낙사고라스는 여러가지 결합방식에 의해 대상들의 생성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해서 머리카락이 아닌 것에서부터 머리카락이 생겨 나오고, 고기가 아닌 것으로부터 고기가 생겨나는가?’ 예컨대 송아지는 풀을 먹는데 고기가 커진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원소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나타난다. 이러한 모든 종류의 입자크기가 무한히 작다는 사실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렇지만 모든 종류의 원소들이 동일한 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대상이 그런 유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숫자상 우세한 힘을 가진 원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따라서 풀로부터 고기가 나오는 것은 풀의 원소가 수에 있어서 우세했다가 고기의 원소가 우세하게 된 것 이외에 다름 아니라고 설명될 수 있다. 아낙사고라스는 바로 이러한 설명이 자신을 엠페도클레스와 구별시켜 주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낙사고라스의 이러한 설명에서 특별히 가치있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상 그의 공헌은 정신(Nous)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아낙사고라스는 만약 세계변화 과정이 어떤 유형의 지성적인 힘에 의해서 방향지워지지 않는다면 원소입자들의 상호혼합은 무한히 혼돈스런 결합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가 ‘Nous’의 개념을 도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점은 아낙사고라스 이전의 철학자들과 아낙사고라스를 가장 뚜렷하게 구별시켜 주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세계 내에 내재해 있는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성적인 마음이 요구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누스는 존재했던, 존재하고 있는, 존재하게 될 모든 사물에 질서를 부여한다. 아낙사고라스는 태초에 거대한 질료덩어리가 이미 다양한 원소들의 혼합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질료덩어리가 정신의 힘에 의해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즉 원은 회전운동을 일으켜서 질료덩어리가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원소들을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모든 운동도 누스가 지배한다. 따라서 누스는 자연의 운동을 지배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낙사고라스가 누스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여 술 취한 사람들 중에 끼어있는 유일하게 맨정신인 사람이라 칭찬했다. 그렇다면 누스의 발견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의미를 가지는가? 첫째 아낙사고라스는 비록 희미하게나마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물론 그가 정신과 물질 사이를 날카롭게 구별하고 2원론적 입장을 견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구별을 가능케 한 특징을 우리는 아낙사고라스의 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둘째 세계의 운동을 지성적 존재의 산물로 봄으로써 목적론적 사고방식의 태동을 예고케 했다. 물론 그는 자연을 목적론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스가 물리적 사물에 작용하는 방식에 관한 설명은 기계론적 성격을 짙게 깔고 있다. 누스는 타자존재를 움직이게 할 뿐만아니라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누스에 관한 아낙사고라스의 설명은 목적론적 사고방식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가 누스에게 절대적인 힘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누스는 사물을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 다만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