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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홍성지구 장막 부흥회] 성소에 들어갈 담력 - 오재호 목사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행복한 안식일입니다.
우리 놀라운 사랑 감동적으로 찬양해 주신 살렘 동산 우리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이 찬양을 들으니까 막 놀라운 사랑이 좀 느껴지십니까?
막 좀 춤을 추고 싶고 막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놀라운 사랑 어제 제가 십자가와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가장 시급한 우리의 피로는 마음의 변화라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을 확인할 때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거 드시지요? 몇 분만 드시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제가 마태복음 18장 35절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하시겠다 그렇게 하셔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 안 해도 그분은 용서하셨어요.
근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못 삼았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된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분은 용서하셨지만 결국 내가 용서 못 받은 거나 똑같은 겁니다.
내가 용서를 못한다는 것은 용서를 못 받았기 때문이기 때문에 내가 용서를 못한다는 것은 용서를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못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용서가 안 된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교회 나오는 이유는 그런 용서를 확신하기 위해서예요.
어제 두 번째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강도가 그 십자가에 매어 달려서 몇 시간 뒤에 죽을지 며칠 뒤에 죽을지 모르는 그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의 구원의 그 기별을 듣고 마음에 하늘에 평안이 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런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우리 마음의 평화는 돈 없으면 사라집니다.
자식이 열받게 하면 사라져버려요. 배우자가 신경질 나게 만들면 마음의 평안히 사라집니다.
우리가 누리는 마음의 평안은 그런 것들이에요. 그런 우리가 환경이 바뀌어도 자식이 속을 썩이고 몸에 암이 있고 사업은 잘 잘 되어도 계속 마음에 평안히 있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그게 구원이에요. 그걸 배우기 위해서 교회에 오신 거고 그걸 배우기 위해서 여기 오신 거예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고 눈에 다 보이고 확신이 들 때 믿는 건 아무나 믿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깜깜하여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의 품성은 그분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믿고 자기 인생을 맡긴 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에요.
여러분 그런 믿음 배우려고 여기 오신 거예요.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는 그거밖에 없어요.
우리가 교회에 나오면 돈을 많이 벌게 된다든지 자식이 성공하고 몸이 건강하고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렇지 않을 때라도 우리의 마음이 평안히 사라지지 않는 그 구원과 평안을 배우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시간으로 성서에 들어갈 담력.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주저함 없이 나갈 수 있어요. 여러분 그러려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이 돼야 돼요.
내 마음에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 앞에 들어가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다 보니까 늦게 공부하러 갔고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은 먼 데 살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이제 방학을 맞아서 2년 전에 한국에 나왔는데 제가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재림연수원에 있는 우리 연수 프로그램에 한번 참석하면 좋겠다고 두 아이들을 이야기해서 그 아이들 둘이 연수를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빠서 또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이제 둘째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사택에 들어가서 자고 있어요. 처음에 왔을 때 연수원 안에 있는 그 사택의 비밀번호를 알려줬습니다.
방 모든 그때가 이제 코로나 막 있는 상황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연습생들이 다 독방을 받았습니다.
야 너 숙소 받았는데 왜 아빠 방에 가 있어? 그냥 왔어?
아빠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고 저는 이제 밤늦게 사무실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냉장고를 꺼내가지고 뭘 끄집어내서 먹은 흔적도 있고요.
침대에서 아빠 침대에서 자고 이불도 안 개고 그대로 이렇게 하고 기타도 치고 막 있고, 그 아이가 지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밤에 봤습니다.
여러분 이 아들이 왜 다른 연수생은 들어오지 않는 제사댁에 들어왔을까요?
얘는 겁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빠 냉장고 문 열어 가지고 맛있는 거 꺼내 먹고 아빠 침대에서 자고 정리, 정돈도 안 해놓고 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아들이라서요? 여러분 그 아이가 제 아들이라서 아빠 집에는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게 아들의 특권이에요. 아버지가 가진 거 자기가 쓸 수 있어요.
아버지 거 쓸 수 있어요. 아들이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은혜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고 사랑이에요.
여러분 그게 있어야 하나님 앞에 우리가 담대히 나아갈 담대함이 생깁니다.
어제 성서의 첫 번째 칸 번제단을 이야기했는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성서의 뜰 안으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짓고 희생 재물을 가지고는 들어갈 수 있어요.
여기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번제단에서 성서의 첫 번째 칸으로 들어가는 건 제한이 있어요.
아무나 못 들어갔습니다. 여기 누구만 들어가요?
제사장만 들어갑니다. 그런데 희생 재물을 통해서는 제사장이 들어갈 때 그 피와 함께 죄인은 믿음으로 이 성서에 따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이제 그 경험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22절에 있는 말씀을 읽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노란 부분 읽습니다.
시작 성서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산길이오.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심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자.
여러분 이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22절은 결론이에요.
그러므로 뭐에 대한 결론인가 하면 히브리서 7장 1절에서 10장 18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과 인간 대제사장의 직분을 비교합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낫다는 것을 설명한 다음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여기 담력이라는 단어가 당당함, 용기, 확신 대담함 좀 더 쉽게 말하면 뻔뻔함 이런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성서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요?
이 두 가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예요?
예수의 피가 있기 때문에 그래 여러분 예수의 피가 없으면 죄인은 성서에 못 들어가요.
들어가면 죽습니다. 첫 번째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자꾸 확인해야 돼.
두 번째 그 피를 가지고서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누가 계시기 때문에 큰 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에 여기 대제사장이 그 피를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중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 들어가기에 담대함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성서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로 표현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19장 10장 22절에 하나님께 나가자.
그러니까 곧 성서에 들어가는 건 곧 누구한테 가는 거예요?
결국 하나님 앞에 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데 담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근데 그건 그냥 안 생겨요. 두 가지를 확신할 때 생깁니다.
첫 번째 뭐를 힘입을 때 예수의 피가 나를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만들었다는 확신이 있어야 돼 그게 없으면 못 들어갑니다.
두 번째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중보를 하고 있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오늘 두 번째 시간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게 성서의 첫 번째 칸입니다.
일곱 등불이 있고 분향단이 있고 떡상이 있었습니다.
이게 성서의 첫 번째 칸이에요. 번제단에서의 피를 받아서 제사장이 이 성서에 들어가서 분향단의 귀에 모퉁이에 바르고 그 성서의 첫 번째 칸과 두 번째 칸을 막는 칸막이에 피를 뿌렸습니다.
그러면 죄인의 죄가 희생재물로 전가되었다가 성서로 전과가 되었습니다.
이거는 조금 두 번째 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성서의 첫 번째 칸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일곱 등불을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나무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내게로 가져오게 하고 노란 부분을 읽습니다.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대. 여러분 성서는 하나님 집이거든요.
하나님 집에는 뭐가 없느냐 하면 전구가 없어요. 여기를 밝게 만드는 것은 이 등불이었습니다.
등불은 꺼지면 돼요. 안 돼요. 항상 켜져 있었습니다.
끊이지 않게 떡상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6개로 된 떡을 두 줄로 매 안식일마다 교체를 했습니다.
떡이 항상 진설되어 있었습니다. 분향단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 살을 찌며 또 저녁때에 등불을 켤 때 살을 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뭐 하지 못할 것이며 끊지 못할 지 그러면 여기 끊지 못한다.
끊이지 않게 항상 이 히브리어는 다 같은 말이에요.
이 단어가 뭐냐 하면 혹시 한번 들어보셨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타미드라는 단어예요. 어디서 여러분이 들어보셨는가 하면 다니엘 8장에 보면 작은 불이 군대의 주제를 대적하여서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재하여 버렸다는 걸 들어보셨죠?
예언 전도회 때 매일 드린다는 말이 타미대 항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성서에는 이 세 가지가 항상 있었습니다.
항상 역할을 하고 빛을 바라고 있어서 등불 떡빵 그다음에 향이 항상 올라갔습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죄인들을 위해서 하고 계시는 중보 사역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이 세 가지 경험을 우리가 해야 우리가 십자가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실이 잊혀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살펴보겠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가 날마다 순간마다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신학대학원 시절에 한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논문 때문에 한 대학원생과 함께 그분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삼육대학교 재무실 직원이었는데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재무실에서 일하는 분이 그래서 그걸 허락을 받아서 공부를 하는 분인데 이제 논문을 쓰는데 그분 논문하고 제 논문하고 약간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그렇게 간 줄을 몰랐는데 기숙사로 이제 돌아가려고 그분 사무실을 나왔는데 캠퍼스 안에 있는 모든 가로등이 전부 다 꺼져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깜깜한 것을 경험한 적은 처음이에요.
발을 한 발자국을 내디디기가 어려울 정도로 앞이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분 사무실에서 제 기숙사까지가 한 30~400m 돼요.
근데 그 길에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걸었냐면요.
팔 이렇게 2개 뻗어가지고 다리를 이렇게 앞으로 내가지고 그렇게 한 발자국씩 걸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요. 기숙사에 다 들어가고 나니까 등에는 땀이 은근하게 고였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은 게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깜깜한 곳에 들어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물건이나 사람이 있는 거 보이죠 보이는 이유는 그나마 거기에 뭐가 들어오기 때문에 빛이 희미하게나마 들어오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지, 빛이 하나도 없으면 사람은 절대로 못 봅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 육적인 것만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나님이 뭐를 만드셨어요?
빛을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뭐 드셨어요?
밥을 드신 분도 있고 빵을 드신 분도 있고 과일을 드신 분도 있고, 여러분 이 쌀, 현미라든지 고구마, 감자, 옥수수 이게 다 뭐냐 하면 빛의 광합성 작용에 의해서 생긴 포도당이에요.
여러분 이걸 저장한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게 포도당인데 결국 이거는 뭐냐 하면 태양 에너지예요.
이거 먹고 사시죠? 우리 오늘 이거 드시고 오셨나요?
다른 걸 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런 걸 먹는다는 것은 결국 뭘 먹는 건가 하면 빛을 먹는 것입니다.
태양 에너지를 먹는 거예요. 여러분 휴대폰은 뭘 먹고 운영이 돼요?
작동이 돼요 여러분의 휴대폰은 전기 에너지를 먹어야 작동이 되는 것처럼 여러분과 저는 뭘 먹어야 돼 우리는 태양 에너지를 먹어야 돼.
태양이 이런 걸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거죠.
여러분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왔어요. 눈이 많이 오고 난 다음에 여러분 양지하고 음지가 확실히 차이 날까요?
양지는요 눈이 금방 녹아요. 음지는 어때? 겨울 내내 그 눈이 있습니다.
여러분 태양하고 지구하고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아셔요?
모르셔도 됩니다. 1억 5천만 km 감이 안 옵니다.
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7바퀴 반을 도는데 그 빛의 속도로 8분이 넘어와야 됩니다.
그 먼 거리에서 그렇게 오는 그 햇빛이 눈을 녹여요.
그게 빛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빛을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살고 있어요.
우리는 빛을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살아요. 왜 빛이 없으면 못 보거든요.
빛이 없으면 식물이 안 자라거든요. 우리는 물리적인 빛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며 살아요.
근데 여러분 영적인 빛도 경험하셔야 그런 게 있어.
요한복음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빛이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다.
여러분 이 물리적인 실질적인 빛이 비추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도 비추고 있을까요?
비추고 있어요. 오늘 우리한테 내 마음에 여러분 물리적인 빛을 느끼는 것처럼 영적인 빛도 느끼고 계셔 빛이 어둠에 비쳤는데 그런 게 있나 그런 사람들 많아요.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도 왜 모르는가 여기 요한복음 3장에 빛을 심지어 뭐 하기까지 하는 거면 미워합니다.
빛으로 나오지 않아 왜 그래? 빛으로 오지 아니하는 이유가 뭐라 그래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합니다.
왜 이 빛이신 예수님 앞에 나오면 내 속마음이 다 드러나거든요.
잘 안 나와요.
아주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그런 기별들 듣는 것보다 유튜브에서 재미있게 깔깔거리고 웃게 만드는 영상은 보는데 내 마음의 죄를 깊이 드러내는 그런 설교는 잘 안 들어요.
여러분 영상 설교 많이 들으시나요? 어떤 설교를 클릭하시나요?
내 마음의 죄를 깊이 드러내는 그런 걸 봅니까? 아니면 재미있는 설교 들으시나요?
우리가 그래요. 여기 보시면 나는 세상의 빛인데 나를 따르는 자는 어디에 다니지 않는다.
어둠에 다니지 않는다. 여러분 일단 빛은 빛의 속성은 일단 밝아요.
여러분 좀 밝으셔요. 재림 신자가 밝아요. 좀 우울해요.
안식일 학교 교장들 맨날 앞에 서가지고 좀 여러분 웃으세요.
웃을 일이 있어야 웃죠. 우리가 웃으면 돈 많이 벌고 자식 잘 되고 사업 잘 되고 몸 건강하고 그러면 우린 웃죠.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웃어요. 근데 우리는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빛이 비춰지는데 그거는 못 느껴봐.
그러니까 웃을 일이 별로 없는 거예요. 돈 없으면 못 웃고 사업 안 되면 못 웃는 거죠.
일단 빛은 밝고 일단 빛은 따뜻해요. 그래서 빛이 영적인 빛이 내 마음속에 비친다는 것은 사람이 밝아지고 사람이 따뜻해져요.
재림 신자들 좀 따뜻해요. 이렇게 말하시는 분은 좀 따뜻한 분 같아.
제가 알고 있는 개신교 몇 분이 계셔요. 한 분이 얼마 전에 전화했어요.
목사님 이분은 재림 신앙하시는 분은 아니에요. 근데 재림 신자 친구가 있어요.
근데 자기 아들은 재림 신자예요. 먼저 교회를 나왔어.
근데 이 아들이 재림교회에서 적응을 못해요. 이 교회 저 교회 막 다니는 거예요.
근데 이분이 답답하게 저한테 전화를 하셨어요. 목사님 우리 아들이 교회에 나가는데요.
몇 주를 안 가도 연락 한 번도 안 합니다.
그리고 가도 별로 반응도 없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절제를 잘해가지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말이 제 가슴을 아프 재림교회는요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초신자가 와서 신앙이 뭐고 믿음이 뭔지를 배우는 좋은 자료들이 많은데 근데 자기 신앙을 확실하게 가진 사람은 적응을 잘할 수 있는데 초신자들은 적응하기가 좀 어렵네요.
그 개신교인이 저한테 한 말이에요. 이분도 같이 아들 따라서 재림교회 많이 여러 군데 가봤어요.
제가 그분한테 죄송합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재림교회이 따뜻해요 안 해요 여러분 빛이 빛이면 따뜻해요.
빛이 비치면 환해요. 영적인 빛도 마찬가지예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적인 빛을 마음에 많이 받으면 따뜻해져요.
그리고 사람이 밝아져요. 힘든 일이 있고 집에 어려운 일이 있는데도 밝아져요.
여러분 그게 그리스도가 하는 빛이에요.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봄으로 실족하지 않는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물리적인 빛은 우리는 경험하고 살아요.
근데 영적인 빛이신 그리스도도 경험하고 사시나요?
여러분 이걸 해야 이걸 경험해야 성서의 첫 번째 첫째 칸의 경험을 하고 사는 거예요.
최근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한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굉장히 좋은 명문대학을 나왔습니다. 학창시절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명문대학에 사범대학을 갔습니다.
그래서 교사가 됐습니다. 보람도 있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큰 사고가 납니다.
그리고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나요?
근데 몸에 장애를 입었습니다. 생각은 또렷한데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니까 모든 것이 답답했습니다.
친구들은 다 잘 나가고 있는데 자기만 뒤처진 것 같아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누가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공부하게 되고 침례를 받게 되고 재림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짧은 내 인생 뭐라고 각성 깨달았다는 거지 나를 주인공 삼아 보니 모든 게 못마땅해 보이고 상대를 주인공 앉혀보니 눈치와 피해 의식뿐 남는 게 없었으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보니 모든 게 섭리요 은혜요 감사다.
이분이 침례받으면서 한 고백이 여러분 이전에 이분의 인생의 주인은 자기였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를 보니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남이었대요.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의해서 남들이 설정해 놓은 기준에 의해서 정신없이 살았다는 거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을 때나 남들이었을 때나 다 너무 눈치도 보고 힘들었다는 거.
그래서 너무 힘들어 사고가 났는데 예수님이 그 자리에 딱 와 있고 보니까 인생이 달라졌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눈이 열린 거죠. 영적인 빛이신 그리스도가 비춰져서 깨달음이 온 거죠.
여러분 이게 예수님이 빛인 것을 경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이걸 위해서인 거예요.
만약 이게 되지 않으면 우리의 성서의 첫 번째 칸의 경험은 굉장히 거리가 멉니다.
지금은 개신교의 목회자가 된 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제가 교회에 들어와 보니 이미 제가 교회에 들어오기 위해서 세상에 버렸던 것들을 교회 안에서는 다시 모으고 있었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해롭고 배설물처럼 여기던 것들이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귀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하여 자랑하고 없는 사람들은 못 가진 것 때문에 스스로 비참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뭐 했는가 하면 사회에서 데모하던 사람이에요.
이 사회 한번 바꿔보자. 그렇게 시위도 하고 경찰들을 향해서 돌을 뜨던지던 친구였는데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만나서 야 이렇게 해서 세상 바뀌는 거 아니지 그러고 나서 자기가 욕망하고 추구하던 걸 다 버리고 교회로 들어왔어.
근데 교회로 들어오니까 자기가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들어오기 위해서 세상에서 다 버렸던 것들을 교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걸 얻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며 사는 모습이 충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걸 누려가지고 아까 말한 구원과 믿음과 용서의 확신과 여러분 봐봐요.
세상에 돈 많은 사람은 우리가 돈 없이 고민하고 있을 때 돈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어요.
맞아요. 여러분 세상에 훨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저 자리에 좀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올려줄 수 있어요.
여러분 그것도 구원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 근데 예수님 그런 거 안 해요.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어 달려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사람한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안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에요.
여러분 돈으로도 줄 수 있고 자리로도 줄 수 있는 건 예수님이 안 해요.
예수님이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다른 사람 외에는 못 주는 구원을 예수님은 주셔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와서 그걸 받으려고 애를 써야 돼.
세상에 돈 많은 사람, 세상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건 예수님 말고도 줄 수 있는데 여러분 재림교회는 좀 다를까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상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의를 그처럼 높이는 까닭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실물, 159)
오늘 우리가 영적인 빛 가운데 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상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를 뭐 하는 것이다 쳐다보는 것이 여러분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의 빛을 자꾸 받으면 내가 자랑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만일, 우리가 영적으로 눈을 뜬다면, 압박에 눌리고 슬픔의 짐을 진 사람들이 마치 짐 더미 아래 있는 마차처럼 깔려서 낙망 가운데 죽어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보훈, 118-119)
여러분 우리가 그 영적인 빛이 내 마음속에 쫙 비추면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보이느냐면 저 사람 참 이쁘네 좋은 집이 있네 좋은 차 있네 이런 게 보이는 게 아니고 뭐예요?
영적으로 죄의 짐에 깔려가지고 죽어가고 있는 그 모습이 보인다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 그거 보이셔요? 영적인 빛이 임하는 사람이 깨닫는 거예요.
여러분 인류 역사들을 기록들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은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무용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분 세상 역사를 보면 힘 있는 사람에 의해서 역사가 움직여지는 거 보여요.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그 역사의 배후가 보여 집니다.
“인류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모든 민족의 발전과 제국들의 흥망은 마치 사람들의 의지나 무용(武勇)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가지 사건들은 대부분이 사람의 능력, 야심, 혹은 변덕에 의하여 꼴 지어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휘장이 열려 있어서, 거기에서 우리는 무대의 상부와 배후는 물론 자비가 충만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인간의 이해 관계와 권력과 욕망 등 일체의 승부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교육, 173)
여러분 연극 보신 적 있죠? 영화나 그러면 연극 이렇게 무대가 있고 여기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데 여기 보이지 않는 뒷면에 가면 대기실 같은 데 있죠.
옷 갈아입기도 하고 화장도 하고 분장도 하고 여러분 그게 이 관객들 눈에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여요. 근데 그런 거 있어요. 있어요.
무대가 전부 다가 아니라는 거죠.
여러분 연극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 연극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가장 권위가 있는 사람 누구예요?
제일 높은 사람 감독이에요. 여러분 감독은 보여요?
안 보여요 여러분 감독 보이면 이상해요. 감독 보이면 그 드라마 끝났다는 거예요.
감독 보임이 연극 끝났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입니다.
그럼 예수님 보일 때가 있을 거예요? 언제예요? 이 세상 대쟁투의 드라마가 끝날 때 예수님이 자기 모습 드러낼 거예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근데 지금도 은뜻은뜻 보인다는 거예요.
그게 영적인 눈이 열려 있는 사람은 보인다는 거예요.
우리가 물리적인 빛을 보고 살아갑니다. 없으면 죽으니까 영적인 빛을 내가 경험하고 사는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빛을 내가 경험하고 사는지 우리는 확인하셔야 합니다.
한 아내의 간증을 좀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분은 목사 사모엘 저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변했습니다.
나 좀 행복하게 해줘 하는 요구가 그쳐졌습니다. 남편한테 이제 이런 요구 안 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저를 뭐 하게 해 주시기 때문에 행복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위한 기도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남편을 건강하게 해달라고 설교도 잘하고 목회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게 해달라고 남편에 대해서 거는 모든 기대와 부족한 점들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눈으로 남편을 보면서 남편의 외로움 지고 있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낍니다.
그래서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으니 남편이 주 안에서 쉼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분이 예수님 잘 모르고 살았을 때는 남편이 성공했으면 좋겠고, 설교도 잘했으면 좋겠고, 목회도 잘했으면 좋겠고, 이거 부족하고 이거 부족하고 이거 부족하니까 하나님 이거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했는데, 자기가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경험하고 빛 가운데 사니까 바뀌어버렸어요.
그래서 이제 남편한테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해주자 말 안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거 못 해주니까 예수님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니까.
근데 기도가 바뀌어버렸어 예수님의 눈으로 남편을 보니 목회한다고 뭐 이렇게 쫓아다니고 하는 거 보니까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아서 예수님 제 남편이 저 짐을 홀로 안 지고 혼자 목회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그 짐 내려놓고 예수님과 십자가를 쥐고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어요?
예수님 때문 예수님이 자기를 뭐 하게 해주셔서 행복하게 해주셔서, 남편이 자기를 행복하게 안 해줄 때도 예수님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셔서 바뀌어버린 거예요.
여러분 이게 빛 대신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살아야 돼.
비슷한 이야기 같지만 조금씩 달라요. 이 떡은 늘 진설이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제 안식일에 물릴 때는 제사장들이 먹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먹고 살기 힘들어요. 어려워요.
쉽지 않죠 이런 안타까운 기사들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쉽지 않아요.
여러분 저는 이렇게 지나다니다가 운전을 하다가 아파트 또 이렇게 막 크게 올라가는 걸 보면 생각이 듭니다.
저 아파트들이 지어지면 집 없는 사람들이 집 한 채씩 가질까 아니면 돈 많은 사람들이 투기 목적으로 더 가질까 여러분 어떠셔요?
집 많이 지어지죠? 그럼 집 없는 사람 집 생겨요. 그런 경우도 있어요.
근데 그것보다 훨씬 더 뭐예요? 가진 사람이 더 가져요.
여러분 제가 책을 보니까 이 세상에 인구 80억인데 식량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재배가 된대.
근데 왜 아프리카나 이런 데서는 굶어 죽어요.
어떤 데서는 많이 먹어가지고 다이어트를 해야 돼.
왜 그래요? 여러분 그래서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빵 문제가 아니에요.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문제가 아니에요.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무슨 문제예?
이기심의 문제 다른 말로 이게 죄 문제지. 그래서 이거는 누가 경제를 잘 살린다고 해서 좋은 세상 오지 않아요 예수님이 뭘 제거해야 돼?
이기심 죄의 문제를 제거해야만 이 세상의 문제는 사라져요.
여러분 어느 만큼 있으면 만족하시겠어요? 어느 정도 있으면 만족하실까요?
이게 우리가 빨간 부분을 읽습니다. 시작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조카인 줄로 알 것이니라.
입을 거 없는 분 손 들어보시요. 먹을 거 없는 거 손 들어보세요.
그거 만족하셔요. 무슨 소리를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요.
재림 신자도요. 욕심 많아요. 여러분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거 보면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곳이 없는데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를 못해요.
그러면 여기에 사는 동안 우리는 먹고 입어야 돼.
근데 얼마만큼 있으면 조카라 그래요. 먹을 것하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조카인 줄로 알라 그래요.
조카 쉬어요. 여기 보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하게 뿌리가 된다 그랬어.
여러분 우리 많은 신자들이 오해하는 성경 구절 대표 중에 하나가 빌립보서 4장 13절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좋아하죠.
여러분 이게 원래 뜻이 뭔 뜻일까요? 앞에 읽어보면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거 아니고 어떤 형편이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죽게 하면서 이 얘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이게 뭔 뜻인가 하면 내가 돈이 있든지 없든지 궁핍하든지 많든지 내가 일체의 모든 환경 속에서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모든 것을 내가 이런 가운데에서 만족할 줄을 배웠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이게 1차적인 의미예요. 내가 하나님이 예수님이 우리한테 능력 주시면 우리가 모든 걸 할 수 있어 맞아요.
그건 2차적인 의미예요.
근데 이 첫 번째 의미는 내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힘 주시고 능력 주시고 은혜 주시면 내가 어떤 환경에서도 돈 없고, 집 없고 차 없고, 어떤 환경에 있어서도 직장은 없고 하더라도 내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만족 누리고 싶지 않아요 별로 안 좋아하잖아.
예수님 믿어도 사업 잘 되고 좋은 직장 없고 여러분 이것은 세상에 있어서 영원한 하늘이 없는 사람들도 그걸 기다리며 살아요.
그럼 우리가 영원한 하늘을 소망하고 있다. 그러면 좀 달라야 되지 않아요 어떻게 생각하셔요?
예수님이 내가 생명의 떡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 하고 물고기 두 마리를 5천에 먹였을 때 난리가 납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 뭐 만들려고 그랬어요? 임금 만들려고 그랬습니다.
왜 굶어 죽지 않겠대? 그 예수님 관심 있었어요? 없었어요.
여러분 우주에서 왕인 예수님이 여러분 나라에서 대통령 하다가 이제 낙향해가지고 저기 시골 동네에 가서 사는데 주민들이 모여가지고 당신 통장 하십시오.
여러분 대통령 하던 사람은 통장 반장 관심 없어요.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왕 되는 거 뭐 별 관심 없어요.
그거 근데 사람들은 관심이 있죠. 사람들이 또 쫓아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든 빵이든 이걸 들으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아셔요.
이 말씀은 뭐 하도다 어렵대 아니 자기가 생명의 빵이다.
여러분 생명이 빵에 가라면 자기를 뭐 하라는 거예요?
먹으라는 거지 이 사람 돌았나 어렵대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 시작.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은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여러분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을 말씀을 먹는다는 뜻이에요.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성경 말씀을 먹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먹는 사람하고 먹지 않는 사람은 삶이 달라요.
성서의 첫 번째 그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은 그 말씀을 경험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 잘 알죠 유명한 가수고 영화 배우인 이 사람들이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약 55억 자기들이 이벤트를 해서 이 기부를 받아서 한 것이 약 한 40억 95억 정도가 돼.
이분들이 어떻게 그런 기부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거냐 하면 결혼하고 나서 신혼여행을 갔어요.
너무 행복한 거죠. 야 우리만 이렇게 행복하지 말자.
우리가 다음 결혼 첫 1주년 될 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유익한 일을 좀 하자.
그래서 우리가 하루에 만 원씩 모으자. 그래서 365만 원을 모아서 결혼 1주년 때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자.
그래서 매일 만 원씩 모았어요. 그리고 정말로 결혼 1주년이 될 때 365만 원을 기부를 합니다.
더하자. 이제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이 남자 셔닝 노승환 씨입니다. 미국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한 청년들 집회에서 청년이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연예인인데 가수고 그 연예인들 사회가 그렇게 정말 세속적이고 향락적인데 어떻게 그렇게 믿음을 유지하고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샤 이렇게 대답합니다. 진짜 맛있는 뭐를 맛본다면 빵을 맛본다면 저절로 예전에 아무리 맛있었던 빵도 맛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잘 먹지 않게 되잖아요.
신앙도 똑같은 것 같아요.
한 번 예수님의 뭘 보고 나면 빵 맛을 보면 예전에 맛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 그리고 세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한테 집중하다 보니까 연예계 속에서도 예수님께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이분 대답이에요. 이수한 빵 맛을 보고 나니까 다른 데 관심 안 생기더라 이 말이에요.
사람들은 스캔달 일으키고 문제 일으키는데 나만 행복하지 말자 우리만 행복하지 말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까? 그래서 예수님만 초점을 맞추고 걸어가니까 연예계 상황하면서도 신앙생활하는 거 어렵지 않대요.
이 말입니다. 누구한테 초점을 맞추니까 예수님한테 초점을 맞추니까.
여러분 이 생명의 빵을 먹어본 사람의 이야기 여러분 제가 유학 중에 파트타임으로 섬겼던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거기 출석한 한 남 지사님이 계셨는데 50대 초반이에요.
결혼도 안 했어 일찍 이민을 가가지고 힘들게 살았어요.
이분이 혼자 살아서 저희 집에 자주 불러가지고 식사도 대접하고 그랬습니다.
이분이 얼마 전에 연락이 왔어요. 한국에 나왔으니까 저 좀 보자는 것입니까?
만났어요. 그랬더니 이분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입만 열면 예수님 이야기만 해 입만 열면 자기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간증을 해요.
이게 얼마 전에 저한테 카톡으로 보낸 내용이 세상 살면서 먹고 마시고 있는 것에만 온갖 신경을 써왔고, 더 해서 지독한 취미였던 당구에 미쳐서 헛되고 헛된 당구 공부를 3년 동안 해왔던 마치 맹인처럼 살아왔던 나의 모습을 반성하는듯 이분 눈 딱 뜨면 제일 처음에 검색하는 건 주식 그리고 일주일에 무슨 수가 일어나도 1시간 이상의 거리를 가서 당구를 치고 와야 돼.
그리고 맨날 이렇게 당구 그려가지고 당구를 연구하는 거예요.
이게 이분의 삶이 낙이었어요. 왜 다른 낙이 없었어?
자식도 없고 아내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하나님은 항시범 그루쿠를 통해 이 주변에서 이 사람에게 계속 말씀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마음에 눈을 뜨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영적인 눈도 조금씩 뜨게 해주셔야 돼.
그러나 나의 마음은 얼마나 연약하고 의지가 부족한지 매일 순간마다 넘어지고 깨지며 허망한 생각에 빠지곤 한데, 매일이 전쟁이든 눈을 뜨게 된 맹인을 보면서 요한복음 9장 이야기 믿지 못해 의심을 다해 더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모는 바리새인들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오늘의 말씀을 통해 깨달으면서 자백하고 기도한다.
이분이 말씀으로 돌아서 가지고 자기 삶에 그런 안 하던 싸움을 하게 투쟁을 하게 영적인 투쟁이죠.
예전엔 그저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대.
그러면서 자기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이야기해 주는데 굉장히 놀라웠어요.
이제 주변에 불쌍한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여행을 하는 도중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하는데 서울역에 자기가 처음에 가니까 그렇게 노숙자가 많더래.
두 번째 갈 때부터는 만 원짜리 집회를 많이 바꿔가지고 넣어가지고 그 노숙자들에게 다 하나씩 주면서 돈만 주는 게 아니고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해도 되겠습니까?
그 노숙자 한 사람을 시험 붙들고 예수님 믿으라고 기도하고 다 이 사람 완전히 바뀌어버렸어요.
뭐 때문에 바뀌었어요? 생명의 양식, 생명의 빵과 떡이 이분에게 들어가니까 바뀌어버렸어요.
여러분 이게 성서의 첫 번째 칸을 경험하고 사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과 저의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마지막 분향단 생명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는 그리스도입니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올라갈까요? 어떻게 올라갈까요?
읽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 시작.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이걸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예배와 기도, 찬양과 회개하는 사람의 죄의 자복 등은 참된 신자에 게서 향연처럼 하늘 성소로 올라가지만, 그것들은 타락한 인간의 입 술에서 나왔기 때문에 매우 불걸하여 보혈로 정결케 되지 않으면 하 나님께 아무런 가치가 없다. . .. 하나님 우편에 계신 중보자가 자신 의 의로 그것들을 정결하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가납하실 수 없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담은 향로를 가지고 계 신다. 그 속에는 이 땅의 부패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분은 향로에 신 자들의 기도와 찬양, 죄의 자복을 모아 그 위에 자신의 홈 없는 의를 첨부하신다. 그 향은 예수님의 속죄의 공로로 향기롭게 되었기 때문 에 하나님이 온전히 받으실 만한 것으로 가납된다. 그 다음에 기도의 응답이 있게 된다." (원고 50, 1900년)
그다음에 기도의 응답이 있게 된다. 우리 기도는 굉장히 이기적이에요.
우리는 많은 기도가 이 땅의 것이 몸 안 아프게 해주세요.
자식들 좋은 학교 가게 해주세요.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
우리가 왜 그런 기도를 드리는가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기도를 못 해요.
여기 보시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도움을 주시되, 언제나 그들이 선택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 되는 것을 주시는데 빨간 부분 읽읍시다.
“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도움을 주시되 언제나 그들이 선택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되는 것을 주시는데, 이는 사람들이 근시안적이서 무엇이 그들에게 최고로 유익한지를 분별할 수 없는 까닭이다. ”(행적, 277)
여러분 왜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가 하면 그게 중요하기 때문에 드리는 거예요.
맞아요. 여러분 우리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위해서 기도해요.
맞아요. 근데 그게 하나님께 중요해요. 안 해요.
하나님께 별로 중요 안 해요.
여러분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피도는 내 아들 딸이 좋은 대학을 가게 해 주십시오가 아니고 하나님 제 아들과 딸이 좋은 대학을 못 가도 하늘에는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의기도 해야 돼요. 내가 육신의 암이 못 낳아도 내 마음의 죄의 암이 낫게 해주십시오.
이 죄의 암으로부터 내가 용서받고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이 기도는 해야 돼요. 근데 막 많은 우리의 기도가 이 땅의 기도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못된 세속적인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 우리를 어떻게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느냐 이거 바꿉니다.
우리가 그래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그 우리의 기도를 바꿉니다.
그거 하나님 앞에 올라가지도 않아요. 올라가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결국 죽을 거니까 여러분 죄인에게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순종할 수 있도록 약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취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순종할 수 있도록 약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더 나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병약함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도록 부를 달라고 기도했더니, 지혜로울 수 있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수 있도록 권력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필요를 느낄 수 있도록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인생(life)을 즐길 수 있도록 모든 것(all things)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all things)을 즐길 수 있도록 생명(life)을 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한 것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바라던 모든 것은 이루어졌습니다. 제 기도를 응답을 받았습니다."(미국 남북전쟁 당시 한 군인의 일기장에서 발견된 글)
여러분 정말 우리가 달라졌는지 안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거 보면 알아요.
여러분 우리가 기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이 내가 거듭나지 않으면 기도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기도를 드리느냐가 중요해요.
제가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이 한 남편의 고백을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한 남편의 고백
'저는 결혼한 후 한 동안 저를 위해 아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 도 드릴 때 주님은 제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 아내를 사랑하고 사랑해 줄 사 람을 찾고 찾다가 가장 사랑해 줄 사람으로 너를 찾았단다.' 순간 놀랐습니다. 저를 위해 아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철저한 착각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내를 사 랑해 줄 사람으로 저를 찾으셨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아파서 아내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기도는 전혀 예상 못한 방향 으로 흘러갔습니다. '주님, 저와 아내가 한 몸이라는데 저는 아프지 않은데 아내는 이렇게 아파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한 몸인데 저는 이렇게 멀정합니다.' 기도 는 점점 절박해져 갔고 제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아 내의 아픔을 제게 주세요. 그리고 제가 가진 평강을 아내에게 주세요. 우리는 한 몸 인데 아내 혼자서만 이렇게 아파하고 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아플 게요.' 저는 어깨를 들썩이며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000)
여러분 이거 한 남 집사에게 기도해요. 우리 이런 기도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제가 이제 시간이 다 됐습니다. 오늘 어제는 제가 성서에 첫 번째 뜰의 경험 본재단의 경험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성서의 첫 번째 칸의 경험을 하고 사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적용해 봅시다
[성소 첫째 칸의 경험]
1)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과 용서가 마음에 넘쳐나기 위해, 우리가 생명의 빛인 예수님이 마음에 계속 비쳐서 영적인 어둠이 아닌 빛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2)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과 용서가 마음에 넘쳐나기 위 해, 우리가 생명의 떡인 예수님의 말씀을 날마다 규칙적으로 배부르게 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3)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과 용서가 마음에 넘쳐나기 위해, 우리가 이기적인 기도를 꼭 필요한 기도로 바꾸어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힘입어 생명의 기도를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여러분 정말로 든든하게 먹으면 딴 거 안 먹고 싶어요.
근데 배가 안 차면 여기 기웃거리고 저기 기웃거리 뭐 먹을 거 없나 우리의 내면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랑과 용서가 마음에 넘쳐나기 위해서 우리가 이기적인 기도를 드릴 때 그것을 꼭 필요한 기도로 바꾸어서 중복하시는 예수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기도를 한번 드리기로 그 기도가 바뀌는 삶을 한번 살아보기로 선택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이게 성서의 첫 번째 칸 그걸 경험하고 사는 거예요.
이게 항상 일곱 등불이 항상 꺼지지 않고 있었고, 진설병이 항상 진설되어 있었고 그 분향단의 향이 항상 올라가고 있었던 것처럼 이게 지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에 마음을 맞추는 사람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생명의 빛인 예수님을 경험하고 사는지를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생명의 빛 때문에 따뜻한 사랑의 사람이 되고 밝고 맑은 사람이 되는지 다시 한 번 우리의 생각들을 비춰주시는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거절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생명의 떡을 양식을 말씀을 날마다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기도해야 되지만 그것이 얼마나 생명의 기도인지, 하늘을 소망하는 기도인지 아니면 그저 기복 신앙으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기도인지를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성서의 첫 번째 경험, 예수가 살아있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 경험을 하며 살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