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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井邑). 용안(龍安). 함열(咸悅) 세 읍 사이의 드넓은 터에서는 매년 중원일(中元日)이면 호남 모든 도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양식을 싸들고 와서 씨름을 겨루는 놀이가 벌어졌다.
한 중이 완력이 뛰어나 모든 도의 사람들을 모두 굴복시켰는데, 하루 종일 싸웠으나 더불어 대적할 사람이 없어 드디어 씨름판을 휩쓸고 끝냈다.
어떤 서울 서생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장하게 여겨 친분을 맺고 가는 곳을 묻자, 서울로 향한다고 하였다. 서생은 그와 함께 길을 가면서 그에게 의지해 뜻밖의 일에 대비하고자 했다.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한 길은 서울로 향하고 다른 한 길은 경상도로 향했다.
그 때, 어떤 젊은 유생이 나타났는데, 비쩍 마르고 심약해 보였으며 삼척동자만을 데리고 경상도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서생과 중은 서울 길을 취해 북쪽으로 올라 가는데 그 유생이 말을 멈추고 소리쳤다.
중놈아, 이리 오너라.
중이 그를 업신여겨 응대하지 않고 가자, 유생은 더욱 화를 내며 외쳤다.
중놈아, 네가 감히 오지않는 것이냐?
그러고는 동자를 시켜 귀를 잡아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중이 석장으로 동자의 넙적다리 사이를 내리치니 한 길쯤 뛰어올랐다가 떨어졌다. 동자가 울부짖자 유생이 더욱 화를 내며 소리쳤다.
중놈아, 그래도 네가 감히 오지 않겠다는 것이냐?"
중이 드디어 고함을 지르며 나아가자, 서생은 '이 중이 반드시 저 철없는 유생을 콩가루 내겠으니, 내가 마땅히 힘써 화해시켜야겠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중이 유생과 마주치자 유생은 그를 휙 잡아채서 땅바닥에 엎어놓고 발로 그 목을 밟고는 석장을 빼앗아 마음대로 두들겨 팼다. 중은 감히 손발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다만 땅을 움켜쥐고 얼굴을 조아릴 뿐이었다. 서생이 급히 달려가 싸움을 말리며 말하였다.
"이 중은 나와 여러 날 동행했는데, 마음씨가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우연히 당신에게 실례한 것이니, 저를 봐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서생이 애걸하자 유생이 말했다.
처음에는 죽이려 했으나 어진 벗 때문에 네 목숨을 살려 주마. 앞으로는 삼가 힘을 믿고 남을 능멸하지 말거라."
중이 절뚝거리며 한발로 달아나면서 말했다.
내 평생 당할 상대가 없었는데, 오늘 파리한 한 유생에게 졸지에 곤욕을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선비님이 아니었다면 길가의 마른 해골이 될 뻔했습니다. 자고로 싸움은 교만함에서 패하고, 근심은 소홀함에서 생기는 것이니, 저의 과실입니다."
*중원일(中元日)---음력 7월 보름 백중날의 별칭.
첫댓글 신기한 이야기 감사합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