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1-111 영사詠史 11 애문산哀文山 문산文山을 슬퍼한다 3首
1
국파가망의약하國破家亡意若何 나라 망하고 집 망하니 마음이 어떠한가?
평생신계전차타平生身計轉蹉跎 평생의 계획한 모두가 허사였네.
애산랑도천방궐崖山浪倒天方蹶 애산崖山이 물결에 넘어지면 하늘도 무너지고
연지풍미사이차燕地風靡事已差 연燕땅에 풍미하니 일은 이미 틀렸네.
대송기무여판적大宋旣無餘版籍 송나라에 이미 남은 국토가 없어지고
조호금욕지간과噪胡今欲止干戈 더러운 오랑캐도 이제는 무기를 거두려 하였네.
가련이백년전사可憐二百年前事 가련하다! 2백년 전의 일들
경작어초일곡가竟作漁樵一曲歌 끝내는 어초漁樵의 한 곡조 노래되었네.
나라 망하고 집 망하니 마음이 어떠신가
평생에 뜻한 바 허사로구료
애산이 기울어 하늘이 무너지고
연 땅으로 쏠리니 끝장났구나
송나라는 터조차 없어지고
오랑캐도 무기를 거두었다네
가련할쏜 이백 년 전의 일들
마침내 풀피리에 부쳐졌구나
►문산文山 문천상文天祥의 호.
자字는 이선履善, 송서宋瑞, 호는 문산文山. 송宋 나라 江西省 吉州 사람.
朱子學을 배웠고 元兵에게 잡혀 순절殉節했으며 저서로<문산집文山集>이 있다.
덕우德祐 초년에 元의 군사가 침범해 들어오니
천상天祥은 郡內의 豪傑 및 산만山蠻을 발동하여 조서에 응하여 근왕勤王하였다.
좌승상左丞相에 승진되어 江西를 도독都督하다가 元軍에게 패하여 순주循州로 달아났는데
위왕衛王이 들어서자 신국공信國公을 봉했다.
나중에 원장元將 장홍범張弘範에게 패하여 잡혀서 연옥燕獄에 3년 동안 구금되었으나
끝내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고 시시柴市에서 피살되었는데
형刑에 임하자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뜻을 보였다.
원元 세조世祖는 참으로 남자라고 칭찬했다.
►차타蹉跎 세월을 헛되이 보내다. 시기를 놓치다. 헛디디어 넘어지다.
‘미끄러질 차蹉’ 미끄러지다. (엇디뎌)넘어지다. 지나가다
‘헛디딜 타跎’ 헛디디다. 때를 놓치다. (등에)짐을 싣다
►애산崖山
광동성廣東省) 신회현新會縣 남쪽 海中에 있는 산으로
송宋나라 마지막 임금이 이 애산 앞 바다에서 죽고 송나라는 멸망하였다.
애산厓山이라고도 한다.
►애해崖海의 삼충三忠 문천상文天祥ㆍ장세걸張世傑ㆍ육수부陸秀夫.
임안臨安 즉 杭州가 서울이었던 南宋에서 몽고를 상대로 항거하며 끝까지 혈투를 벌였던 의사들.
애해崖海는 온주溫州 애산崖山 일대의 바다를 말한다.
南宋의 마지막 거점인 애산이 元나라에 의해 격파된 뒤에
육수부陸秀夫가 위왕衛王을 업고 애해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써 남송은 멸망하게 되는데
이 남송의 최후를 문천상은 적진에 서서 목격하였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卷451 陸秀夫列傳>
►방궐方蹶 무너지다 ‘넘어질 궐/일어설 궐, 뛰어 일어날 궤蹶’
►풍미風靡 초목草木이 바람에 쓸리듯 어떤 威가 널리 社會를 휩쓸거나 또는 휩쓸게 함.
‘쓰러질 미, 갈 마靡’ 쓰러지다, 쏠리다. 따르다
►판적版籍 호구戶를 적은 책冊. 서책書冊.
►조호噪胡 시끄럽다 ‘떠들썩할 조噪’ 떠들다. 지저귀다
►어초漁樵 물고기를 잡는 일과 땔나무를 하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2
소환견정지불이素患堅貞志不移 평소부터 강직함이 병 되어 뜻 변하지 않았으니
가망평석독서시可忘平昔讀書時 예전에 글 읽던 때를 잊을 수 있겠는가?
종용취의녕종폐從容就義寧終斃 조용하게 義에 나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구활투생기감위苟活偷生豈敢爲 구차히 살려 하고 목숨 아끼는 짓 어찌 감히 하리!
견시일조생삭막犬豕一朝生朔漠 개·돼지들 하루아침에 사막에 일어나서
풍도천장기남수風濤千丈起南陲 천길이나 되는 풍파 남쪽 땅에 일어났네.
고신하필다언어孤臣何必多言語 외로운 신하 어찌 꼭 말을 많이 해야 하랴?
사이녕론사후지死耳寧論死後知 죽으면 그만이지 죽은 뒤를 어찌 논하리.
강직도 병이런가 고치지 못해
글 읽던 시절을 어이 잊으리
조용히 의로써 죽을지언정
구차한 삶 원치 않았고
사막의 오랑캐 일어나서
천길 풍파가 남녘에 미쳤네
외로운 신하 꼭 말이 많으랴
죽어진 뒤에는 그만인 것을
►終斃 끝내 죽다 ‘죽을 폐斃’ 죽다. 넘어져 죽다. 자빠지다
►삭막朔漠 북쪽에 있는 사막沙漠(砂漠).
►풍도風濤 바람과 큰 물결.
3
차차호갈박구견嗟嗟胡羯迫驅牽 슬프도다! 오랑캐들이 몰고 끌면서 55)구박하는데
남망애산로기천南望崖山路幾千 남쪽으로 애산崖山 바라보니 몇 천리 길이더냐?
지대욕능굉봉일志大欲能肱捧日 뜻은 커서 팔뚝으로 해를 받들려 했지만
재소녕득장탱천才疎寧得掌撑天 재주 적어 어찌 맨손으로 하늘을 떠받치리?(疎↔疏)
생전유설수언어生前有舌雖言語 생전엔 혀가 있어 비록 말을 하였지만
몰후무심저간편殁後無心著簡編 죽은 뒤엔 역사책에 이름날 마음 없었다네.
유흠일사나갱문唯欠一死那更問 오직 한번 죽지 못했을 뿐 무엇을 다시 물으리?
위신군국지전전委身君國志專專 임금과 나라에 몸 바치려는 뜻뿐일세.
오랑캐의 모진 학대 속에서
애산을 바라보니 몇 천리
팔뚝으로 해를 받들려니
맨손에 하늘 받칠 재주 없었고
살아서는 혀가 있어 말을 했지만
죽어서 역사책에 남으려 하지 않았네
한번 죽지 못했는데 무얼 더 물으리
이 한 몸 충성으로 바칠 따름이라
►‘불깐 양 갈羯’ 불깐 羊(≒거세한 양) 오랑캐
►박구迫驅 강요하다
문천상文天祥은 최후까지 항전하다가 포로가 되어
北京으로 끌려갔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고 죽었다.
►‘팔뚝 굉肱’
►‘버틸 탱撑’ 버티다. 취取하다. 헤치다
►전전專專 오로지. 전적으로.
●문천상文天祥(1236-1282)
1255년 20세때 진사에 수석으로 합격한 수재였다.
1259년 몽골군의 쓰촨성四川省 침입으로 합주合州가 포위되고 천도설이 유력하게 대두되자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천도를 강경히 반대하는 글을 올려 그날로 면직되었다.
후에 복직하였으나 가사도賈似道와 의견이 맞지 않아 사직하였다.
이듬해 원元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수도 임안臨安에 다다르자
문관으로서 근왕병勤王兵 1만명을 이끌고 임안 방위에 급히 참가하여 분전奮戰하였다.
송宋나라가 원나라에 항복하자 공제恭帝의 명을 받아 원나라로 가서 강화를 청하였다.
원나라의 총수總帥 백안伯顔과 회견하면서 항론抗論하다가 구류되었다.
그 동안에 임안은 함락되고 송나라는 멸망하였다.
포로가 되어 북송北送되던 중 탈주하여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에서
제왕을 칭하고 있던 탁종度宗의 장자 익왕益王을 받들었다.
잔병殘兵을 모아 싸웠으나 광둥성廣東省 오파령五坡玲전투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독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大都(北京)로 송치되어 3년간 감옥에 갇혔다.
원나라의 세조(쿠빌라이칸)가
그의 재능을 아껴 벼슬을 간절히 권하였으나 끝내 거절하고 사형되었다.
시詩에도 능하여 옥중獄中의 작 <정기가正氣歌>로 유명하다.
문집에 <문산전집>이 있다./두산백과
●정기가正氣歌 바른 기운의 노래(1281)
남송의 문천상이 옛 성현들이 남기고 떠난 바른 기운을 지니고 보전하면
온갖 악한 기운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보고 고인의 법도에 따라 자신의 바른 기운 지키며
남은 인생 부끄럽지 않게 보내기로 다짐하는 시이다.
천지유정기天地有正氣 천지에는 올바른 기운이 있어
잡연부류형雜然賦流形 엇섞여 유동적인 형체에 부여되더니
하칙위하악下則為河岳 땅에서는 강과 산이 되고
상칙위일성上則為日星 하늘에서는 해와 별이 됐구나.
어인왈호연於人曰浩然 사람에게 있어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불리고
패호새창명沛乎塞蒼冥 아주 많아지면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운다.
황로당청이皇路當清夷 왕도가 맑고 안정되어 있을 때는
함화토명정含和吐明庭 조화로움 머금고 밝은 조정에 펼쳐지나
시궁절내견時窮節乃見 시절이 곤궁할 땐 절개를 보여
일일수단청一一垂丹青 하나하나 역사에 드리워진다.
재제태사간在齊太史簡 제齊나라에서는 태사의 죽간이 되고
재진동호필在晉董狐筆 진晉나라에서는 동호의 붓이 됐네.
재진장량추在秦張良椎 진秦나라에서는 장량의 철퇴가 되고
재한소무절在漢蘇武節 한漢나라에서는 소무의 부절符節이 됐네.
위엄장군두為嚴將軍頭 장군 엄안의 머리가 되고
위혜시중혈為嵇侍中血 시중 혜소의 피가 되기도 했고
위장휴양치為張睢陽齒 휴양을 지키던 장순의 이빨이 되고
위안상산설為顏常山舌 상산 태수 안고경의 혀가 되기도 했네.
혹위료동모或為遼東帽 어떤 때는 요동에 관녕의 모자가 되어
청조려빙설清操厲冰雪 맑은 지조는 얼음이나 눈보다 매서웠네.
혹위출사표或為出師表 어떤 때는 제갈량의 출사표가 되어
귀신읍장렬鬼神泣壯烈 귀신도 장렬함에 울어댔네.
혹위도강즙或為渡江楫 어떤 때는 강 건너 삿대가 되니
강개탄호갈慷慨吞胡羯 강개함이 오랑캐를 삼킬만했고
혹위격적홀或為擊賊笏 어떤 때는 역적을 치는 단수실의 홀이 되어
역수두파렬逆豎頭破裂 역적의 머리를 깨뜨렸네.
시기소방박是氣所旁礡 이러한 정기 온 세상에 가득하여
름렬만고존凜烈萬古存 늠름하고 장렬함이 만고에 전해진다.
당기관일월當其貫日月 이러한 정기 해와 달을 꿰뚫으니
생사안족론生死安足論 살고 죽음 따위 어찌 논 하리오?
지유뢰이립地維賴以立 땅을 묶는 밧줄은 이에 의지해 우뚝 서고
천주뢰이존天柱賴以尊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은 이에 힘입어 높여진다.
삼강실계명三綱實系命 삼강이 실로 이로써 맥을 유지하고
도의위지근道義為之根 도의가 이를 뿌리로 삼아 뻗어간다.
차여구양구嗟予遘陽九 아아! 나는 재난을 만났건만
례야실불력隸也實不力 천한 몸은 실로 힘이 없구나.
초수영기관楚囚纓其冠 초의 죄수처럼 관을 머리에 묶고서
전차송궁북傳車送窮北 수레에 실려 황량한 북으로 끌려가네.
정확감여이鼎鑊甘如飴 가마솥에 삶겨죽는 벌도 엿처럼 달게 받으련만
구지불가득求之不可得 원한들 그리 될 수 없었네.
음방격귀화陰房闃鬼火 어두운 감방은 귀신불만 적막하고
춘원비천흑春院閟天黑 봄날 정원은 시커먼 하늘에 갇혀 있구나.
우기동일조牛驥同一皂 소와 천리마가 마구간을 같이 쓰고
계서봉황식雞棲鳳凰食 닭과 봉황이 같이 깃들어 먹다가도
일조몽무로一朝蒙霧露 하루아침 안개와 이슬이 내리면
분작구중척分作溝中瘠 제각기 도랑 속 시체가 되리라.
여차재한서如此再寒暑 이처럼 추위와 더위를 두 번 보냈지만
백려자벽이百沴自闢易 온갖 나쁜 기운들이 절로 피해가네.
차재저여장嗟哉沮洳場 아 슬프도다! 낮고 음습한 이 땅이
위아안락국為我安樂國 나의 안식처가 되었단 말인가?
기유타무교豈有他繆巧 어찌 달리 기묘한 방법이 있어
음양불능적陰陽不能賊 음양의 기운이 나를 해칠 수 없었나?
고차경경재顧此耿耿在 이 몸 돌아보니 밝은 기운 있어서 일 뿐
앙시부운백仰視浮雲白 고개 들어 올려다보니 구름은 희기만 하여라.
유유아심비悠悠我心悲 아득하고도 아득하여 내 마음 슬프나
창천갈유극蒼天曷有極 푸른 하늘 어찌 끝이 있겠는가?
철인일이원哲人日已遠 훌륭한 이들 떠난 지 이미 오래건만
전형재숙석典刑在夙昔 남겨진 모범은 여전하구나.
풍첨전서독風檐展書讀 바람 부는 처마 밑에서 책을 펼쳐 읽노라니
고도조안색古道照顏色 옛 성현의 도리가 나의 얼굴 비추어 주네.
문천상이 포로가 되어 연경燕京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힌 지 2년이 넘었을 때 쓴 시이다.
땅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음습한 기운, 죄수들의 땀 비린내, 시체나 동물 썩는 냄새,
푹푹 찌는 열기, 매캐한 곰팡이 냄새 등의 갖가지 惡氣들 속에서
자신이 2년 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바른 기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바른 기운을 지니고 지켜나가면 천하의 모든 악기를 물리칠 수 있음을 깨달아
이 시를 짓는다고 이 시의 서문序文에 밝혔다.
문천상은 元이 귀화시키고 싶어 했던 남송의 가장 명망 있는 저항가였다.
연경으로 압송한 후 원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문천상을 설득했지만 오히려 시에서
‘가마솥에 삶겨 죽는 벌도 엿처럼 달게 받으련만’이라고 표현한 바와 같이
사형을 당하려 하였을 뿐 어떠한 제의도 수락하지 않아 이 시를 쓰고 1년 후 끝내 사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