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춘문예제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재의 빈곤
2020. 10. 10. 4:58
6) 신춘문예제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재의 빈곤
2012년에는 “골목”에 갇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십 수 년 동안 신춘문예에서 울궈먹은 낯익은 소재로 “구두”와 “구름”같은 소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2013년에도 예외없이 “구두”(강지혜/경제신춘문예)가 등장하고 있으며, “구름”을 소재로 한시 역시 그러한 이미지들의 결합이나 이미지의 유통에 대한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소재로 보인다.
이미 2007년에는 “구름에 대한 몇 가지 오해“(김륭/문화일보)가 당선된 적이 있고, 2009년에는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매일신문), 2010년에는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심명수/부산일보)와 ”구름의 화법“(하기정/영남일보) 두 편이 당선작이 된 적도 있을 만큼 이미 많이 다루어 온 낡은 소재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이나 시 창작 활동에서 ‘유통된 이미지의 결합’을 의심받을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2013년에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 시가 등장한 것이 있는데 몽골의 유목민 생활을 시화한 내용으로 2011년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김지혜/국제신문)에서 보이는 “바람”의 “게르”라는 이미지가 2013년에 다시 “떠도는 지붕”(장유정/경인일보)로 다시 살아나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 이미지 표절이나 소재”라는 혐의를 피해갈 수 있을까?
이미 2010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나타나던 단골 소재가 ‘골목’이라는 소재다.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정원/경상일보/2009)’, ‘골목의 각질(강윤미/문화일보/2010), ’오래된 골목(장정희/전북일보/2011)‘, '골목(한국문학방송/2012) 등, ’2020년에도 해묵은 소재 ‘골목’이 다시 등장하였는데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 작품이 있었다.
2015년에도 어김없이 “신발”을 주제로 한 시---‘오래된 신발(고창남/한라일보)’, ‘신발(박진이/영남일보)’---가 등장하였다. 소재의 빈곤이거나 시창작 과정 등에서 함께 이미지를 다뤄온 혐의가 짙다.
어쩌면 같은 지도 시인의 지도를 받은 시인들의 작품이 어떤 혜택을 받아 당선작이 된 것이 아닐까?하는 합리적이고 불편한 의구심 때문이다.
2018년에도 경인일보와 광주일보의 시에 같은 소재들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소재의 이미지는 몇 해 전 2015년 9월 2일 ‘시리아’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던 3 살배기 ‘시리아’난민 어린이(아일란 쿠르디)의 곤히 자는 듯 엎드린 채 죽은 모습이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발견되어 마음을 울렸던 사진 한 장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경인일보 작품이나 아래에 나오는 광주일보 작품에서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건 다만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음모와도 같은 불편함을 지우기 어렵다.
위의 예에서처럼 2018년 광주일보 당선시 “물의 악공들”에서도 시리아 난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조문’(영남일보)과 ‘첫차‘(광남일보)와 소재에서도 “조문“이라는 유사성이 보였다.
이러한 소재의 편중은 습작 경험을 나눈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 그 평가(당선)를 받게 된다는 데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7) 신춘문예제도에서 일어난 표절의 문제
2003년 동아일보 문학평론 부문에선 “전체적인 논지는 새롭지만 부분적으로 인용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유로 취소된 적이 있었다.
유사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표절”에 관한 시비는 오래전 동방문학에서 제시한 이시환 시인.평론가가 조선일보 당선작(2005)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김승해)는 시에 대한 표절 논란---서지월 시인의 “진달래 산천”을 표절한 것 이라는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에는 “삼거리 점방”(김승필/광주일보)이 표절 시비로 당선을 취소된 바 있으며, 이 작품은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 작품 표절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9년 세계일보(역대 가장 작은 별이 뜨다/박신우)의 경우도 표절문제로 당선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표절이나 이미지 모방은 신춘문예를 목표로 공부하는 모임이나, ‘시 창작 주제’를 주어 창작합평을 하는 대학의 교육방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으리라는 혐의에 대한 짐작이 어렵지 않다.
참고로 이번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품 중에서도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의 작품이 함께 시 창작 공부를 하던 습작생의 시를 많은 부분에서 표절한 흔적이 발견되어 당선이 취소 되었다.
2. 금년도 신춘문예 당선작품에 대한 경향과 조감鳥瞰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에 대한 견해는 시를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많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어찌 보면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도 있는 질문일 수도 있다.
언젠가 공석에서나 사석에서 만난 백운복 교수(서원대)와 필자는 “시에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러므로 시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시는 비시非詩일 터이다.
시인들이 쓴 시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자기가 쓴 시에 얼마나 감동을 느끼고 있을까?
자신도 감동하지 못하는 시를 쓰고 그 시를 읽고 독자들에게 감동해 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므로 “감동”이란 시의 요체다.
“감동”이란 “마음에 느끼어 일어나는 급격한 정신의 흥분, 또는 그것을 느낌.”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니까 시를 읽으면 어떤 형태로든 ‘마음에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가 없다.
이번에도 신춘문예당선 시를 받아들고 필자 자신부터 얼마나 감동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1) 전반적 인상 ; 금년도의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은 전반적으로 평년작 수준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인상이 짙다.
몇 편의 시에서 새로운 발상전환이나 시적정서의 발현이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평범함을 뛰어넘기 위하여 도입한 상징을 비틀어 왜곡하여 난해함에 다가서려는 시도 산견散見되었다.
게다가 ‘낯설게 하기’를 위해서 인지 쓸데없이 행이 길어지고 장황하다는 점이 두드러지고 있다.
2) 시재詩材의 문제 ; 오래전부터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해묵은 과거의 시재詩材--2000년대에 유행되던 구두(신발), 구름, 골목 등과 같은 시 창작 단골 詩材--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2011년에도 전북일보 당선작(오래된 골목/장정희)이 있었는데, 또 다시2020년에는 전북일보 당선작(골목의 번식/ 김은숙)이 당선작으로 선정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일까.
이 원고를 작성 중에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품 중에서도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의 작품이 함께 시 창작 공부를 하던 습작생의 “비닐봉지의 원죄”라는 시 중에서 많은 부분 표절한 흔적이 발견되어 당선이 취소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이를 참고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함께 실어 두기로 하였음을 밝힌다.
3) 난독難讀의 문제 ; 굳이 실험적 난해함으로 무장한 시를 볼 수는 없었어도 부분적으로 자주 끼어들었던 난해함을 흉내내어 난독을 요하는 작품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4) 언어의 유희 ; 덧붙여 금년에는 시적 이미지의 확장이라는 미명아래 언어적 유희를 동반한 시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동음이의어나 동음에 웃음이나 울음을 덧씌운 시적 유희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신문사의 심사위원들이 말하는 이 시대의 시에 요청되는 시적 몇 가지의 착안점을 요약하여 보았다. 작품을 쓰는 시인들에게는 참고가 될 만한 의견임으로 그 요약한 부분을 덧붙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