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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장 영광과 교만 (2)
- 제환공(齊桓公), 초나라를 굴복시키다.
이것이야말로 제환공의 여러 업적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이 아닐까.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듯 제환공의 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점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았다. 제(齊)와 초(楚)나라의 불가침 조약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초성왕(楚成王)은 끝내 자신의 야심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이듬해부터 다시 중원 진출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흐름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초(楚)나라의 이러한 재시도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주왕실이었다.
"초자(楚子, 초성왕)가 진공품으로 청모 한 수레를 헌상하였습니다."
임치로 돌아온 제환공은 초성왕에게서 받은 포모(苞茅)를 낙양으로 올려보냈다. 제나라를 대표하는 사절단도 동행했다. 제환공(齊桓公)의 대리인으로 공손습붕이 낙양성으로 들어갔다.
"우리 주공께서는 초자(楚子)가 앞으로 복종하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회군했습니다."
공손습붕으로부터 초나라 원정에 관한 보고를 받은 주혜왕(周惠王)은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앓던 이를 빼낸 듯한 시원함을 느꼈으리라. 주왕실의 부흥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기도 하였다.
"제환공(齊桓公) 앞날에 영광 있으라."
주혜왕은 보기 드물게 성대한 잔치를 벌여 공손습붕을 대접했다. 잔치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뒤늦게 주혜왕의 태자 정(鄭)과 그 이복동생인 왕자 대(帶)가 잔치 자리에 참석했다.
공손습붕은 공손히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한순간, 공손습붕의 안색에 변화가 일었다.
'이상하다.'
왕실의 서열을 보면 태자 정(鄭)이 왕자보다 한 단계 위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가. 차자(次子)인 왕자 대(帶)가 앞서 나오고 그 뒤를 따라 태자 정(鄭)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공손습붕은 곁눈으로 주혜왕(周惠王)의 기색을 살폈다. 그러나 주혜왕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들을 맞이하여 자리에 앉게 했다. 마련된 자리 또한 왕자 대(帶)가 태자 정(鄭)보다 더 높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공손습붕은 이렇게 직감했다.
수일 후, 공손습붕은 낙양을 떠나 제(齊)나라로 돌아왔다. 복명하는 자리에서 제환공에게 말했다.
"장차 주왕실이 어지럽겠습니다."
"난데없이 그게 무슨 말인가?"
주혜왕의 장자(長子)는 정(鄭)이다. 첫번째 왕후인 강씨 소생으로 이미 태자의 위(位)에 올라 있었다. 반면 왕자 대(帶)는 후궁인 진규의 소생이다. 왕후 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진규는 주혜왕의 총애를 받아 일약 왕후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혜후(惠后)이다.
왕자 대(帶)는 왕실 내에 은밀히 세력을 모으는 한편 주혜왕의 비위도 잘 맞추었다. 어느새 그는 왕실 내의 지위에서 태자 정(鄭)보다 앞섰다. 왕실 사람들 또한 왕자 대(帶)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를 태숙(太叔)이라 부르며 따랐다.
이런 왕자 대(帶)의 소행을 주혜왕은 오히려 지지하며, 내심 나약한 태자 정을 폐하고 호걸풍인 대를 태자로 삼으려는 마음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주왕실에 어찌 적서(嫡庶) 분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주공께서는 대책을 마련하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이는 왕실 문제이다. 과연 내가 끼여들어도 괜찮을까?"
"주공은 모든 제후의 맹주이십니다. 맹주는 천하의 안녕을 책임져야 합니다. 본가인 주왕실에 어지러움이 발생하려는데, 모르는 척 그냥 계시는 것은 맹주로서의 직분을 소홀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관중(管仲)이 끼여들었다.
"공손습붕의 말이 옳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천하는 하나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주왕실이 어지러워서는 결코 천하가 하나로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관중의 눈빛만 보아도 그의 심중을 알아차리는 제환공(齊桓公)이었다.
- 제(齊)나라의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하라.
주왕실은 아직 모든 제후의 정신적 지주이다. 이 정신적 지주를 안정시킴으로써 제나라의 제후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극대화하자는 관중(管仲)의 암시였다.
"중보(仲父)에게 좋은 계책이라도 있소?"
"짐작컨대, 태자 정(鄭)은 지금 몹시 외롭고 위태로운 처지에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먼저 태자 정의 마음부터 안정시키고 위로해드리십시오."
"어떻게 하면 태자 정(鄭)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소?"
"여러 제후를 소집해 회맹을 하시되, 주왕실에도 사람을 보내어 태자를 참석하게 해달라고 청하십시오."
"왕실을 존중하기 위해서, 라는 뜻을 밝히면 태자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제야 제환공(齊桓公)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곧 격문을 써서 주왕실을 비롯한 중원의 여러나라로 보냈다.
- 내년 여름 5월에 수지(首止)에서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는 회합을 가집시다.
워낙 명분이 분명했다. 주혜왕(周惠王)으로서는 태자 정을 보내기가 꺼림칙했으나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이듬해 여름이었다.
제환공(齊桓公)은 먼저 수지로 달려가 그 곳에다 별궁을 짓고 태자 정(鄭)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수지는 수대(首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역사서에는 위(衛)나라 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도상으로 보면 송(宋)나라 도성인 상구(商丘)와 인접해 있다. 지금의 하남성 수현 동남쪽 일대이다.
회맹일이 가까워지면서 중원 여러 나라의 제후들이 속속 수지(首止)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왕실의 대표인 태자 정(鄭)이 수지 땅에 당도하였다.
제환공(齊桓公)은 맹주 자격으로 모든 제후를 거느리고 나가 태자 정을 성대히 영접했다. 태자 정(鄭)은 감격했다. 언제 이런 대접을 왕실에서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새삼 제환공의 위세를 실감하였다.
그 날 밤이었다. 모두들 잠들어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은밀히 제환공(齊桓公)의 처소를 향해 다가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태자 정(鄭)이었다. 제환공은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이었다.
"이 깊은 밤중에 태자께서 웬일이십니까?"
제환공(齊桓公)은 깜짝 놀라 황망히 태자 정을 방 안으로 모셔들었다. 제환공과 마주 앉은 태자 정(鄭)은 그러나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제환공(齊桓公)이 짐작하고 조용히 말했다.
"태자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이 곳은 아무도 엿듣는 자가 없습니다."
그제야 태자 정(鄭)은 한숨을 내쉬고 제환공에게 호소했다.
"내가 위태롭소. 믿을 사람이라곤 그대밖에 없소."
짤막한 말 속에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음을 제환공이 어찌 모르겠는가.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위로했다.
"태자께서는 아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번 회합은 태자의 앞날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 가진 모임입니다. 이 소백(小白, 제환공의 이름)이 책임지고 태자를 다음 왕위에 추대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십시오."
제환공의 말에 태자 정은 눈물로써 자신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