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뜨리치안 회의 몇 가지 원칙
1. 집단 심리를 활용하자.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집단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만일 그 집단이 훌륭한 정신과 규칙을 지니고 있다면 그에 맞는 큰 영향력을 구성원들에게 행사하게 된다. 각 개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힘껏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때로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각 개인은 완전히 수동적으로 집단을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을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참여하며, 일단 집단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얻으면 곧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원리를 빠뜨리치안 회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드러나 보이지는 않으나 억제할 수 없는 집단의 힘이 가장 뒤처져 있는 회원을 포함한 모든 회원을 움직여서, 그들이 이 회합을 통해 듣고 배운 바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밖의 다른 면에서도 함께 어울리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도의 성과를 내고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집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빠뜨리치안 회는 높은 수준의 정신을 지닌 간부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새롭고 훌륭한 의견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보장해 주므로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집단 심리의 작용으로 회원들은 새로운 의견과 사상을 제대로 흡수하게 된다. 따라서 빠뜨리치안 회는 항상 질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2. 괴로운 침묵의 순간을 참고 기다리자. 토론 중 발언이 오랫동안 끊기면 괜히 불안해진다. 그때 사회자는 회원들에게 발언을 재촉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촉은 옳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재촉에 의해 생기는 긴장감은 회원들로 하여금 오히려 발언하려는 마음이 없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가족들끼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라. 따라서 이따금 대화가 멈출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발언이 끊기면, 집안에서 가족들이 하듯이 모두 잠자코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잠잠한 분위기는 곧 깨진다. 그리고 다물었던 입이 일단 열리면, 대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변한다.
3.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문가에게 곧바로 해답을 얻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문제를 풀고자 노력하는 방법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방법은 직접적이고 간편한 방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육이 이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의 단점은 학생들이 전문가의 해답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력과 책임감이 향상되지 않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푸는 두 번째 방법은 힘이 더 든다. 이 방법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맡김으로써 그들 스스로 해답을 얻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서툰 해답을 마련하면, 전문가가 나서서 지도해 준다. 그 다음 다시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좀 더 나은 방안을 찾도록 한다. 이와 같이 남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성과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제시된 문제의 내용과 해답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서서히 노력하여 문제를 풀었으므로, 배운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겨 자신을 갖게 된다. 바로 이것이 빠뜨리치안 회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어떤 정확하지 않은 발언이 나오더라도 지도자가 이를 즉시 바로 잡으려고 할 일이 아니라 그대로 토론에 내맡겨 두어야 함을 알려 준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문제는 토론 과정에서 해결된다. 만일 그것이 끝까지 해결되지 않고 크게 잘못된 상태로 남게 되는 경우에는 물론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발언한 당사자가 창피를 느끼지 않는 방법이라야 한다. 이런 경우,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을 가르치실 때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4. 질문을 하지 않도록 하자. 일반 강의에서는 청중의 반응이 질문을 통해 나타나므로 질문을 환영한다. 질문을 하면 즉시 강사가 답변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질문을 반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토론을 중단시키는 것으로 여긴다. 이를 마치 전기(電氣)의 경우에서 누전을 일으키는 현상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여 토론에 기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질문만 하려 하고,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다 보면 토론은 타격을 입게 되며, 결룩 토론의 장(場)이 강의실로 바뀌고 만다. 이런 강의실에는 회원들이 끝까지 앉아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꼭 지켜야 할 황금률이 있다. 그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의견(해답)을 덧붙여서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질문은 대개 토론의 흐름을 바꾸지 않고도 적절히 합류시킬 수 있음이 경험을 통해 입증되어 있다.
5. 빠뜨리치안 회의 형성 원리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려 놓듯이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빠뜨리치안 회원은 단순한 덧셈이 아니라 곱셈을 한다.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이른바 살아 있는 벽돌을 쌓아 올린다. 새로운 의견 하나 하나가 이미 발표된 다른 모든 의견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의견들을 생산해 낸다. 즉,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의견이 수정되고 새로운 사상이 싹트는 것이다. 특히 은총으로 이어지는 이 복잡한 상호 작용은 각 사람의 마음에 풍부한 열매를 맺는 누룩의 역할을 하게 되며, 집단 전체에도 공동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마치 밀물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회원들의 각기 다른 성격이나 생각들을 한데 모아서 같은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침체된 믿음과 소극적인 신앙에 강한 추진력과 더불어 방향까지 제시해 주면, 삶은 틀림없이 변화를 가져온다.
6. 주관자의 역할 쁘레시디움의 운명이 간부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빠뜨리치안 회도 주관자들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주관자는 자신의 역할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관자가 너무 드러나게 행동하면 할수록 일반 회원들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학교 교실과 같은 분위기로 빠져 들고 만다. 영적 지도자, 사회자 및 주제 발표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간과 그 밖의 규정들을 잘 지켜야 한다. 참석한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은 전문가나 권위자 앞에서는 불편을 느낀다. 그러므로 이 회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회원들에게 지식을 성공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진리를 가르칠 때 쓰신 방법을 따라야 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주관자들이 두드러진 행동을 하지 않을 수록 토론은 더욱 자유롭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주관자들이 꼭 정해진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주관자들도 일반 회원과 마찬가지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되도록이면 자제하라는 뜻이다.
7. 해석의 원리 빠뜨리치안 회의 특성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해석의 원리'이다. 토론 중에 대다수의 회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발언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런 경우에 이 해석의 원리는 회원 모두가 발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는 아무리 수준 높은 사상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토론을 거치면서 보통 회원들도 모두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학식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서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공동의 발판을 마련하는 능력은 값비싼 보석처럼 귀중한 것이다. 이제 이처럼 귀중한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가령, 주제 발표(또는 어떤 다른 발언) 내용이 수준이 너무 높아서, 참석한 회원 가운데 10%만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하자. 만일 일반 강의의 내용이 그처럼 어려웠다면 그 강의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빠뜨리치안 회합에서는 내용을 이해한 10%의 회원 가운데 몇 명이 그 발언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들은 대다수의 회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토론을 벌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내용이 일반적인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회원들도 발언에 참여하게 되고, 마침내는 밀을 갈아서 고운 밀가루를 만들어 내는 결과가 나온다. 당초 발표된 내용에 들어 있던 불명확한 점이 풀이가 되고 설명이 가해져서 모든 회원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에 알맞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누가 무슨 발언을 하든, 어느 것 하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이러한 빠뜨리치안 회의 특성은 선교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매우 독특한 가치를 발휘한다. 이곳에서 선교사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현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톨릭 교리를 충분히 이해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빠뜨리치안 회의 '해석의 원리'는 마치 깊은 구렁에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은 큰 힘을 드러낼 것이다.
8. 하느님께 일거리를 드리는 일 이 일에는 단순히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것 이상의 현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은총의 원리이다. 즉, 은총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을 초월하여 우리가 가진 재료와 능력으로 지을 수 있는 집보다 훨씬 더 큰 집을 지을 수 있게 해 준다.
계시 종교에서는 신앙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아무도 완전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모든 일에 초자연적인 믿음과 은총이 늘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토론이었다 하더라도 항상 아쉬움은 남게 마련이다. 하물며 토론이 다소 충분치 못했다고 느껴지면, 흔히 그 토론이 아무 쓸모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미천한 우리의 노력마저도 당신 손에 받아 주시고 써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문제가 의외로 해결된다. 과연 그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소한 것이었기 때문이지, 아니면 문제의 정도에 비추어 우리의 노력이 훨씬 컸던 것인지, 혹은 하느님께서 모자란 부분을 대신 채워 주셨기 때문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은 우리가 바랐던 대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우리의 철학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물론 이 철학은 단지 빠뜨리치안 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철학을 통해서 빠뜨리치안 회합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훌륭한 발언을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발언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미약한 노력이라도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므로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결국 가톨릭 신자들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이느냐 기울이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차라리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 낫지' 하며 우물거리기만 하는 한, 그러한 노력을 기대할 수 없다. 가톨릭 신자 공동체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 이러하므로, 빠뜨리치안 회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치유하는 도움의 손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