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독(尺牘)은 주로 1자(약 30cm) 정도의 짧은 종이에 안부, 소식, 일상 등을 간략하고 문예성 있게 적어 보내던 편지(서간, 서찰)를 뜻합니다.
사적인 소통 수단이었으며, 짧은 글 속에 깊은 정과 풍류를 담은 한국 전통 서간 문학의 한 형태입니다.
의미: '척(尺)'은 1자(30cm)를, '독(牘)'은 편지를 쓰는 나무판을 의미하며, 긴 편지보다는 짧은 서신을 지칭합니다.
특징: 내용이 간결하고, 상대의 안부를 묻거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 특징입니다. 문예적인 느낌을 풍겨 예술적인 가치도 높게 평가됩니다.
구성 요소: 척독에는 인사말(시순, 詩順), 본문(소식, 용건), 맺음말(건강 기원) 등이 포함되며, 일종의 편지 작성법인 척독대방 같은 예시집도 존재했습니다.
가치: 조선 시대 선인들의 소통과 공감, 당시의 일상과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우봉척독(又峰尺牘)
우봉척독(又峰尺牘)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화가인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척독, 尺牘)를 모은 글 모음입니다.
그는 문필과 서화에 두루 능했던 인물로, 이 척독에는 그의 예술관, 일상, 친지들과의 교류 등이 담겨 있어 당시 예술계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핵심 내용 및 특징:
저자: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 추사 김정희와 교류했으며, 매화 그림과 괴석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구성 및 내용: 조희룡이 직접 가려 뽑은 『수경재외 척독(壽鏡齋外 尺牘)』과 함께 그의 문집 등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심징려(齊心澄慮): 특히 '우봉 척독'에 포함된 내용 중,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의 찌꺼기를 걷어내라는 '제심징려(齊心澄慮)'라는 문구가 조희룡의 예술철학을 보여주는 문구로 자주 인용됩니다.
가치: 조선 후기 여항 문인(중인층)의 교류와 예술관, 그리고 조희룡의 섬세한 필치를 엿볼 수 있는 편지 모음입니다.
참고: 중국 원나라 조맹부의 척독(致中峰和尚尺牘)과 혼동될 수 있으나, '우봉 척독'은 조선 후기 조희룡의 글을 의미합니다.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임자도를 만나다.
천사섬 신안군의 임자도에 가면 이흑암리에 우봉 조희룡(1789〜1866)의 적거지(謫居地)와 그가 살던 옛집을 복원한 만구음관(萬鷗唫館)이 있다. 그리고 대기리에는 기념관이 있다.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1786∼1856)와 같은 시기를 살았지만, 추사의 위세에 눌려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조희룡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의 모임, 또 실시학사(實是學舍) 고전문학연구회 등의 노력으로 2004년 1월에 문화관광부 선정 ‘이 달의 인물’로 지정되면서 주목받았다.
그 후 15년이 지난 작년 9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우봉 조희룡의 문학과 예술’이란 주제로 ‘조희룡 탄신 23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천사섬 신안군과 한국미술사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학술대회였다. 유수한 학자들에 의해 조희룡의 예술세계가 풍부하게 재조명되면서 이른바 ‘묵장(墨場)의 영수(領袖)’1)로서의 위치가 더욱 확고해졌다. 그의 집안은 조선후기에 영락하여 무반직(武班職)으로 출사하다가, 아버지와 그의 당대에 이르러 중인계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조희룡은 임자도에 유배 오면서 신안군과 인연을 맺었다. 안동 김씨 세도가들과 왕실의 전례(典禮) 문제를 둘러싼 공방으로 권돈인·김정희 등이 유배를 가게 되는데, 이때 김정희의 조아심복(爪牙心腹)으로 지목되어 함께 유배당하였다.
그는 78세까지 살았다. 그 중 임자도 유배기간은 1851년 8월 22일2)부터 1853년 3월 18일까지, 햇수로는 3년이지만, 실제 기간은 19개월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길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에게 소중한 성취를 이루게 하였다. 원치 않았던 뜻밖의 유배였지만, 그의 예술에 획기적 전환의 계기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