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휴거와 대환난(3-2)/ † 교회가 휴거된 후의 하늘의 광경/ 영에 속한 구속받은 성도들(계7:1-14)
이스라엘의 선택받은 남은 자들에 추가해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백성들, 곧 교회의 구속받은 성도들(7:9-17)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 삽입부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환난 동안 그분의 구속된 성도들을 보존하시는가를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선택받은 남은 자들을 보존하시는 방법은 그들에게 인장을 쳐서 땅 위에 남겨 두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땅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인 반면에,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들처럼 그리고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사람들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22:17). 하늘에 속한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별들이요, 땅에 속한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변의 모래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속한 그분의 백성들을 보존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인장을 쳐서 땅위에 남겨 놓으신다. 그분은 그들을 땅에서 하늘로 데려오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구속받은 그분의 백성들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그들을 땅 위에 두시는 것이 아니라 휴거를 수단으로 그들을 데려가시는 것이다.
그 휴거는 단지 한 번에 그치거나 혹은 다만 한 종류만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두세 종류의 휴거가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교회 안의 모든 구속받은 성도들이 땅에서 하늘로 휴거될 것이다. 교회에 관한 이 이상 안에 있는 삽입부는 휴거 때로부터 영원까지의 전반적인 전망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계12:5, 11; 14:1-5; 3:10; 14:14-16; 11:11-12; 살전4:15-17).
그렇다면 7장 9-17절은 구속받은 성도(교회)가 휴거된 후에 하늘의 광경을 언급하는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 수를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다(9절). 최초로 휴거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 가운데서 여러 차례 휴거된 이들의 집합일 것이다.
(2)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4장 2절은 ”하늘의 보좌를 베풀었고“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보좌 앞에 서는 것은 이미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 말씀은 여섯째 인 이후와 일곱째 인 이전에 기록되었으므로 이것은 네 차례의 휴거가 있음을 암시한다.
(3) 14절의 대환난은 곧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한 고난이다. 그러므로 능히 셀 수 없는 사람들은 역대 이래의 주님을 위하여 핍박받고 순교한 자들이다. ”보좌 앞에 서“ 있기 때문에 이들은 분명히 휴거된 자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늘에 서 있을 수 있는가? 15-17절까지는 21장 3-7절까지의 새 하늘과 새 땅의 광경을 묘사한다.
이 구절들은 전적으로 휴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여기에서는 어떻게 휴거될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다만 대다수의 믿는 이들의 휴거를 개략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미리 교회가 휴거된 후의 하늘의 광경과 영원 세계 안에서의 종국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9절은 “그 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동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 큰 무리는 모든 세대에 걸쳐 열국들에서 나온 구속받은 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며, 그들은 대환난 시대의 사람들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롬11:25; 행15:14-19). 어디에서 왔는가? “모든 민족과 동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와”, 모든 세대에 걸쳐 각 민족에서 구속받은 사람들로 구성된다(계5:9; 롬11:25; 행15:14-19).
5장 9-10절을 참고해보면 “모든 민족과 동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은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선택되고 하나님께 드려진 무리 곧 교회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유대인들이 교회시대에 주님을 믿고자 한다면 그들은 이방인의 위치에 처해 있어야 하고 이방인의 예에 따라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회가 바로 구원받은 이방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한 교회 안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희고 긴 겉옷을 입고,”를 직역하면 흰 겉옷들(복수형), 곧 겉옷은 믿는 이들의 의로운 행위를 의미한다. 희다는 것은 믿는 이들의 행위가 순수하고 어린양의 피로 씻겨서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야자나무 가지(종려나무 가지)는 성도들이 이기고 승리한 것을 의미하며, 그들은 주님을 위해 이 환난을 겪었다(계7:14; 요12:13). 종려나무는 또한 물을 공급받음으로써 얻은 만족을 의미하는(출15:27) 하나의 표징이다. 종려나무 가지는 장막절에 사용되었는데,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누림에 만족하며 즐거워했다(레23:40; 느8:15).
이 예표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큰 무리가 영원한 장막절을 누리게 될 때에 성취될 것이다. 이 무리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종려나무처럼 번성할 것이다(시편92:12-13).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구속받은 사람들인 이 큰 무리가 이미 하늘로 곧 하나님 앞으로 휴거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가리킨다.
다니엘 7장 9-17절에서 말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하나님은 오직 믿는 이(교회)에게 들림받을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믿는 이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때에 유대인에게 돌아와서 그들을 다루시는가? 이방인의 수가 찰 때이다(롬11:25-26). 그들은 바로 교회이다.
또한 어린양 앞에 서서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서서,”(눅21:36)와 일치하며, 이것은 분명히 휴거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실이 여섯째 봉인을 뗀 직후에 언급된 것은 믿는 이들의 휴거가 분명히 여섯째 봉인이 떼어지기 전에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계7:9-17절까지의 기록은 믿는 이들이 휴거 되는 때부터 영원 안에서 그들이 누림을 갖기까지의 광경을 일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7장 10절은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큰 음성으로 외친 찬양에서 오직 구원만이 언급된 것은 찬양하는 이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큰 무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로 충만하다.
7장 11절은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말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계4:6-9절을 보면, 원로(장로)는 모든 천사를 대표하고, 네 생물은 다른 모든 생물을 대표한다. 사자와 같은 첫째 생물은 야생 짐승을 대표하고, 송아지와 같은 둘째 생물은 가축을 대표하며, 사람과 같은 셋째 생물은 인류를 대표하고, 독수리와 같은 넷째 생물은 조류를 대표한다(계4:7).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여섯 범주의 생물 가운데(창1:20-28) 두 범주의 생물, 곧 땅에 기는 것들과 물속의 생물들을 대표하는 것은 여기에 없다. 땅에 기는 것들의 머리는 뱀이며, 이 뱀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상징하는데, 사탄은 불 못에 던져져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물속에 있는 생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물속에 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 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계21:1).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이 두 범주의 생물을 대표하는 것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네 생물 가운데 송아지와 사람은 온순하고 온화하지만, 사자와 독수리는 거칠고 사납다.
그러나 구속을 통하여 그들은 모두 함께 살 수 있게 된다(사11:6-9).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람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만물을 위한 것이다(골1:20).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히2:9).
7장 12절은 “아멘, 우리 하나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하늘에서 기뻐한다는 누가복음 15장 7절의 말씀과 유사하다. 여기에서 천사들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찬양할 때, 그들의 찬양에 대해 “아멘”이라고 말한다.
7장 13-14절은 그때에 원로(장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마태복음 24장 21절에서 언급된 대환난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이 역대로 체험한 환난과 고난과 박해와 고통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대환난 직전에 유대인들의 충만한 수가 인을 맞으며, 믿는 이들 중 이기는 자들이 이 기간에 보좌로 휴거 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땅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시기 직전에 그분의 백성을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보여 준다. 삽입부가 왜 7장에 기록되었는가? 그것은 여섯째 인에는 다가 오는 대환난에 대한 경고가 있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