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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는 말 그대로 살아 있을 때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두는 재(齋) 의식입니다. 다음 생을 대비해 죽은 후에 행할 불사(佛事)를 생전에 미리 닦는다고 하지요.
어떤 분들은 자신의 49재를 미리 지내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천도재가 사람을 죽은 후에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조상들의 의식이라면 예수재는 살아 있는 사람, 즉 나 자신을 위한 의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경전에서는 예수재를 행할 때 3.7일을 기도 정진하고, 등을 켜고 번을 달고 스님네를 청하여 경전을 읽고 복을 지으면 한량없는 복을 이루고 소원대로 과보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경전을 읽어야 할 빚과 돈으로 지은 두 가지의 빚이 있어서 이것을 생전에 갚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생년월일을 따져 경전 빚은 경전을 직접 독송하거나 구입해서 보시함으로써 갚고, 돈 빚은 지전(紙錢)을 시왕전(十王殿)에 올리는 것으로 갚지요.
이렇게 빚을 다 갚으면 일종의 영수증 격인 증표를 받아 하나는 불에 태우고 다른 한 조각은 가지고 있다가 죽은 후에 명부(冥府)의 시왕들에게 보여 주어 빚이 없음을 인정받고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 대략의 예수재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재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스스로의 노력이라는 관점입니다.
불교의 철저한 인과법은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행위 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의 삶의 방식이 정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고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항상 최선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의 삶이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경우, 그것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예수재를 지내는 목적이기도 하구요.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나의 후손들이 죽은 나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생전에 나 스스로가 행하는 수행이나 공부, 미리 닦는 예수재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윤달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봅니다.
윤달은 `공달`입니다. `덤달`이라고도 합니다.
요즘 말로 바꾸면` 보너스달`이라고 하면 쉽겠네요.
윤달은 평년의 12개월 보다 1달이 더 보태진 달로 몇 년마다 한번 씩 듭니다.
예로부터 이 달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이 인간에 대한 감시를 멈추어서 무엇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윤달에는 아무 걸릴 것도 없고 탈도 없다고 합니다.
수의(壽衣)를 만들어도 불효가 안 되고, 이장(移葬)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답니다.
절 집에서는 윤달에 불사나 재를 올리면 공덕이 더욱 뛰어나다고 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월급 말고 보너스를 타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사실 평소의 삶은 정상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으로 잘 꾸려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가 들어오게 되는 보너스는 자칫 잘못하면 불필요한 곳에 쉽게 쓰여질 수 있겠죠.
공짜라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이것을 평소에 하기 어려운 일, 특히 좋은 일에 써보면 어떨까 합니다.
아주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윤달이라고 하는 보너스 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쉽게 생각하고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그런 수행의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뜻 깊지 않을까요?
예수재는 살아 있는 동안에 진 빚을 참회하고 미리 업장을 해소시켜 청정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죽음에 대비하는 불교의 수행의식입니다.
요즘 웰-다잉(Well-dying)이라고 해서 죽음을 잘 준비하자는 취지의 사회적 현상이 유행입니다.
미리 유서도 써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많이 갖는데, 웰-다잉의 대표적 방법으로 예수재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생전예수재로 의식을 깨운다.
(1) 임종후 49일간 들을 법문 미리 공부한다.
생전예수재란 임종 후에 49재를 지내는 것을 미리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에 이르게 되면 겪게 될 과정을 미리 학습해두고,
탐진치의 삼독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받는 과정이 됩니다.
즉 죽은 후에 49일간 들을 법문을 미리 듣는 것입니다.
생전 예수재에 입재하면
<이 기간 중에 법문을 듣는 것과 동시에 매일 나무아미타불 염불이나 참선>을 해서
불자의 의식을 깨우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 염불수행으로 벽과도 수행이 효과도 빠르고 좋습니다.
그래서 임종 시에 어둠에 빠지지 않고 의식이 뚜렷하게 깨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재로 다음 생에 받을 재앙 미리 다 겪고 간다.
생전 예수제란 다음 생에 받아야 할 재앙이나 고통을 이생에서 미리 다 받아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대성사란 절에서 18년간 법당보살을 하던 정 보살이란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3개월간 크게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또 이와 관련한 실제 사례를 역사 속에서 찾아봅니다.
중국 송나라 때 어떤 스님이 다라니와 경을 매일 지극정성으로 염송하고, 독경하고, 기도와 참선을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하였는데, 그 스님에게 어릴 때부터 주어서 기른 상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나이 70이 되자 몸에 등창이 생겼는데 등창이 점점 크게 되어 허리를 굽히게 되고, 더 나아가 앉은뱅이가 되고, 또 꼽추가 되더니 마지막에는 눈도 멀게 되어 결국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상좌는 너무도 분했습니다.
일생을 그렇게 염불하고 기도하고 독경하고, 하였건만 노스님의 말로가 마지막에 이렇게 몹쓸 병에 걸려 허무하게 가게 되니, 분명 불보살님께 공을 들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상좌는 노스님 손에 “불무공덕(佛無功德)”라 쓰고 노스님을 화장하고 그 절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절을 떠나다가 상좌가 “스님이 죽어서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겨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죽어서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것이 화두가 되어 오매불망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간절히 불보살님께 목숨을 바쳐 귀의하오니 (지심귀명례) 우리 스님이 죽어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삼매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상좌의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삼매 중에 그의 스승님을 보니, 고려 국 문종의 4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손바닥에 “무불공덕(佛無功德)”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 이것은 다음 생에 받을 고통을 생전에 미리 다 받았다는 뜻입니다.
(3) 영가에게 주는 무상(無常)법문
생사필멸(生者必滅)인데~
태어난 자는 언젠가 다 죽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데~
그대들은 그 이치를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해가 저물어 가는데~ 내가 갈 곳은 어디인고?
내가 죽어서 머무를 곳을 모르니~ 수심이 가득하는구나!
그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해야 한다.
삼보에 귀의해야 한다.
부처님께 정말 매달리면~ 그대의 정성에 의해
49재를 지내는 동안 그 정성의 기운(에너지=氣)이 쌓이고 쌓여서
양적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 정성의 기운인 에너지가 하늘(천계)에 닿게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스님과 불자, 그리고 자손이 함께하는 염불공덕, 기도공덕이 지극정성으로 힘을 받으면
엄청난 에너지가 생겨 부처님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49일 동안 중음신(윤회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 되어 깜깜한 세상에 있게 됩니다. (유명幽冥을 달리한다.)
그런데 죄업이 두터우면 49일 지나서 지옥, 아귀, 축생 등 3악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 깜깜한 세상에 밝은 달빛과 같은 인공명월(=부처님의 가피)로 어둠을 밝히게 되는 것입니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에서는 예수를 하려면
① 매달 두 번 불, 법, 승 삼보를 공경한 뒤 시왕(十王)을 모신 다음 이름패에 자기 이름을 써넣는다.
② 그런 후 예수경(豫修經: 불설예수시왕생칠경)을 지심으로 외우며 불(佛)과 지장보살, 시왕(十王)을 염(念)한다.
③ 이렇게 하여 건강, 장수하고 죽어서는 정토(淨土)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장보살본원경 「이익존망품(利益存亡品)」에서는 ‘만약 어떤 남녀가 살아 있을 때 많은 죄를 짓더라도 죽은 뒤 그의 후손들이 그를 위해 복덕을 닦아주면 그 공덕의 1/7은 망인(亡人)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공덕은 산사람이 차지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에 스스로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석문의범 「방생편(放生篇)」에서는 ‘적선도인(積善道人)의 일곱 가지 방생’을 소개하는 가운데 “예수재를 행하려거든 방생부터 먼저하라.
……세간의 자선(慈善)에는 방생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내가 자비한 마음으로 방생하여 불보살의 자비에 감응하면 반드시 부처님과 보살님의 복을 입을 것이다”
라고 하여 예수재를 행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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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록
(쥐띠)
갑자생-전생빚 53,000관/금강경17권/제3고/원/제4오관대왕/금수지옥(26, 86세)
병자생-전생빚 73,000관/금강경24권/제9고/왕/제6변성대왕/독사지옥(14, 74세)
무자생-전생빚 63,000관/금강경21권/제6고/윤/제2초강대왕/화탕지옥(2, 62세)
경자생-전생빚 110,000관/금강경35권/제9고/이/제5염라대왕/발설지옥(50,110세)
임자생-전생빚 70,000관/금강경22권/제3고/맹/제9도시대왕/철상지옥(38, 98세)
(소띠)
을축생-전생빚 280,000관/금강경94권/제15고/전/제4오관대왕/금수지옥(25, 85세)
정축생-전생빚 43,000관/금강경94권/제15고/전/제6변성대왕/독사지옥(13, 73세)
기축생-전생빚 80,000관/금강경25권/제3고/최/제2초강대왕/화탕지옥(1, 61세)
신축생-전생빚 110,000관/금강경36권/제18고/길/제5염라대왕/발설지옥(49, 109세)
계축생-전생빚 77,000관/금강경10권/제8고/습/제9도시대왕/철상지옥(37, 97세)
(범띠)
갑인생-전생빚 33,000관/금강경11관/제30고/두/제9도시대왕/철상지옥(36, 96세)
병인생-전생빚 80,000관/금강경26권/제10고/마/제4오관대왕/금수지옥(24, 84세)
무인생-전생빚 60,000관/금강경20권/제11고/곽/제6변성대왕/독사지옥(12, 72세)
경인생-전생빚 51,000관/금강경28권/제15고/모/제2초강대왕/화탕지옥(60, 120세)
임인생-전생빚 96,000관/금강경22권/제30고/최/제5염라대왕/발설지옥(48, 108세)
(토끼띠)
을묘생-전생빚 80,000관/금강경26권/제18고/유/제9도시대왕/철상지옥(35, 95세)
정묘생-전생빚 23,000관/금강경9권/제11고/허/제4오관대왕/금수지옥(23, 83세)
기묘생-전생빚 80,000관/금강경25권/제26고/송/제6변성대왕/독사지옥(11, 71세)
신묘생-전생빚 80,000관/금강경26권/제45고/장/제2초강대왕/화탕지옥(59, 119세)
계묘생-전생빚 12,000관/금강경8권/제20고/왕/제5염라대왕/발설지옥(47, 107세)
(용띠)
갑진생-전생빚 25,000관/금강경10권/제19고/등/제5염라대왕/발설지옥(46, 106세)
병진생-전생빚 33,000관/금강경11권/제35고/가/제9도시대왕/철상지옥(34, 94세)
무진생-전생빚 52,000관/금강경18권/제14고/풍/제4오관대왕/금수지옥(22, 82세)
경진생-전생빚 57,000관/금강경90권/제24고/유/제6변성대왕/독사지옥(10, 70세)
임진생-전생빚 45,000관/금강경15권/제1고/조/제2초강대왕/화탕지옥(58, 118세)
(뱀띠)
을사생-전생빚 90,000관/금강경30권/제21고/양/재5염라대왕/발설지옥(45, 105세)
정사생-전생빚 70,000관/금강경30권/제16고/정/제9도시대왕/철상지옥(33, 93세)
기사생-전생빚 72,000관/금강경24권/제31고/조/제4오관대왕/금수지옥(21, 81세)
신사생-전생빚 57,000관/금강경19권/제37고/고/제6변성대왕/독사지옥(9, 69세)
계사생-전생빚 29,000관/금강경30권/제5고/배/제2초강대왕/화탕지옥(57, 117세)
(말띠)
갑오생-전생빚 40,000관/금강경30권/제21고/우/제7태산대왕/애대지옥(56, 116세)
병오생-전생빚 33,000관/금강경12권/제60고/소/제8평등대왕/거해지옥(44, 104세)
무오생-전생빚 90,000관/금강경30권/제39고/사/제10전륜대왕/흑암지옥(32, 92세)
경오생-전생빚 62,000관/금강경20권/제43고/진/제1진광대왕/도산지옥(20, 80세)
임오생-전생빚 70,000관/금강경33권/제44고/공/제3송제대왕/한빙지옥(8, 68세)
(양띠)
을미생-전생빚 40,000관/금강경13권/제51고/황/제7태산대왕/애태지옥(55, 115세)
정미생-전생빚 91,000관/금강경29권/제52고/주/제8평등대왕/거해지옥(43, 103세)
기미생-전생빚 43,000관/금강경15권/제55고/변/제10전륜대왕/흑암지옥(31, 91세)
신미생-전생빚 13,000관/금강경32권/제59고/상/제1진광대왕/도산지옥(19, 79세)
계미생-전생빚 52,000관/금강경17권/제49고/주/제3송제대왕/한빙지옥(7, 67세)
(잔나비띠)
갑신생-전생빚 70,000관/금강경23권/제56고/여/제3송제대왕/한빙지옥(6, 66세)
병신생-전생빚 33,000관/금강경11권/제57고/하/제7태산대왕/애태지옥(54, 114세)
무신생-전생빚 80,000관/금강경36권/제58고/시/제8평등대왕/거해지옥(42, 102세)
경신생-전생빚 61,000관/금강경21권/제42고/호/제10전륜대왕/흑암지옥(30, 90세)
임신생-전생빚 42,000관/금강경14권/제49고/묘/제1진광대왕/도산지옥(18, 78세)
(닭띠)
을유생-전생빚 40,000관/금강경24권/제2고/안/제3송제대왕/한빙지옥(5, 65세)
정유생-전생빚 70,000관/금강경49권/제29고/민/제7태산대왕/애태지옥(53, 113세)
기유생-전생빚 90,000관/금강경29권/제32고/손/제8평등대왕/거해지옥(41, 101세)
신유생-전생빚 37,000관/금강경13권/제15고/정/제10전륜대왕/흑암지옥(29, 89세)
계유생-전생빚 50,000관/금강경16권/제12고/신/제1진광대왕/도산지옥(17, 77세)
(개띠)
갑술생-전생빚 25,000관/금강경9권/제27고/병/제1진광대왕/도산지옥(16, 76세)
병술생-전생빚 80,000관/금강경25권/제35고/좌/제3송제대왕/한빙지옥(4, 64세)
무술생-전생빚 40,000관/금강경14권/제36고/보/제7태산대왕/애태지옥(52, 112세)
경술생-전생빚 110,000관/금강경35권/제2고/신/제8평등대왕/거해지옥(40, 100세)
임술생-전생빚 73,000관/금강경25권/제4고/팽/제10전륜대왕/흑암지옥(28, 88세)
(돼지띠)
을해생-전생빚 48,000관/금강경16권/제42고/성/제1진광대왕/도산지옥(15, 75세)
정해생-전생빚 39,000관/금강경30권/제45고/길/제3송제대왕/한빙지옥(3, 63세)
기해생-전생빚 72,000관/금강경25권/제55고/정/제7태산대왕/애태지옥(51, 111세)
신해생-전생빚 101,000관/금강경45권/제40고/석/제8평등대왕/거해지옥(39, 99세)
계해생-전생빚 72,000관/금강경24권/제45고/구/제10전륜대왕/흑암지옥(27, 87세)
생전예수재의 성립과 역사적 전개
생전예수재는 사람이 죽은 뒤에 행할 불사(佛事)를 살아있는 당시에 미리 닦기 위해 올리는 재의식이다. 살아있을 당시에 자신이 전생에서 진 빚을 미리 갚고 미리 닦아 놓는 불사이다. 사후의 명복을 미리 기원하여 생전에 선근공덕을 닦아 사후 왕생할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을 마련하자는 재의식이라 할 수 있다.
생전예수재의 교리적 근거는 여러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신앙적 바탕으로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佛說灌頂隨願往生十方淨土經)』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 그리고 『예수천왕통의(預修薦王通儀)』 등에 잘 나타난다. 여러 경전의 '자수(自修)' '역수(逆修)' '예수(豫修)'라는 표현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불설수생경』에서는 열두 가지 띠를 따라 사람으로 태어날 때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생명줄을 이어준 돈 '수생전(壽生錢)'을 명부에서 빌렸으므로 갚아야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생 빚은 갚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전생의 빚인 수생전을 바치지 않으면 살아서 18가지 고난이 있으며 죽은 뒤에는 천도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천왕통의』에는 북인도 유사국 병사왕이 25년 동안 49번에 걸쳐 예수시왕생칠재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열시왕의 종관들과 그에 따른 권속들의 명목(名目)을 몰라 명사들의 숨은 고통을 위로 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저승을 다녀온 후 다시 예수시왕생칠재의 35편을 올바르게 봉행함으로써 이후 미륵대성을 친견하고 수다원과를 증득하여 성자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예수재의 유래를 판단할 수 있다.
한국불교에서 생전예수재의 형태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기록은 조선 중종 13년(1518) 강원도 원주 사람인 진사 김위(金渭)의 상소문에 등장하는 '소번재(燒幡齋)'이다. 그 내용을 보면, 근일 이래로 두 세 승니(僧尼)가 머리를 땋아 늘이고 속인의 복장으로 몰래 내지(內旨)라 일컬으며 산중에 있는 절에 출입하며, 쌀과 재물을 많이 가져다가 재승(齋僧)을 공양하고, 당개(幢蓋)를 만들어 산골에 이리저리 늘어놓고, 또 시왕(十王)의 화상을 설치하여 각각 전번을 두며, 한 곳에 종이 1백 여 속(束)을 쌓아두었다가 법회(法會)를 설시(設施)하는 저녁에 다 태워 버리고는 '소번재(燒幡齋)'라 하였으며, 시왕상을 설치하고 번을 두며 한곳에 종이 1백 여 속(束)을 쌓았다가 저녁에 태워버렸다는 내용으로 보아 이는 생전예수재의 형태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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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 |
위의 기록으로 보아 16세기에는 '예수시왕재(預修十王齋)'의 명칭이 17세기 들어서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로 '생전(生前)'이란 명칭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생전시왕재(生前十王齋)', '예수대례(預修大禮)' '시왕생칠재(十王生七齋)' '예수재(豫修齋)'등의 여러 명칭으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현행 생전예수재는 조선시대 16세기 초에 소번재(燒幡齋)라는 명칭으로 시작되어 오늘날 생전예수재로 이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생전예수재의 기본 구성과 특성
예수재는 사찰에 따라 하루나 삼칠일간의 의식으로 치르기도 하고 7일마다 일곱 번에 걸쳐 칠칠재로 지내기도 한다. 삼칠재 형식이지만 회향일을 이틀에 걸쳐 치르기도 한다.
의례를 치르기 위한 설단은 상, 중, 하단의 삼단으로 설치하며, 설단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상3단' '중3단', '하3단'의 3단으로 이루어진다. 상단은 비로자나불 · 노사나불 · 석가모니불의 삼신불단이며, 상중단은 지장보살 · 무독귀왕 · 도명존자이고, 상하단은 대범천왕 · 제석천왕 · 4천왕으로 증명단이다. 중단은 먼저 중상단에 명부시왕을 봉안하고, 중중단에는 하판관, 지등관, 중하단에는 시왕의 안내 권속들을 봉안한다. '하단'은 별치단으로 조관단, 사자단, 마구단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단의 규식은 현행 생전예수재에도 통용되고 있다.
현행 생전예수재의 구성은 예수재 준비의식과 본 의식으로 나누어지며, 준비의식은 시련(侍輦), 대령(對靈), 관욕(灌浴), 영산작법(靈山作法), 괘불이운(掛佛移運), 조전점안(造錢點眼) 등으로 지역과 사찰 장소에 따라 다르게 진행한다.
본 의례의 구성은 대부분 안진호의 『석문의범(釋門儀範)』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석문의범』의 내용에 나타나는 본 의례의 구성은 통서인유편(通敍因由篇)/보신회향편(普伸回向篇) 등의 3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문의범』의 절차는 35편이며,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절차는 31편으로 상단의 보례삼보편 제13, 중단의 제성헐욕편 제17,
기성가지편 제21, 공성회향편 제23등의 4가지 절차가 『석문의범』에 추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의례의 진행 구성은 크게 운수단 → 상단 → 중단
→ 고사판관 → 봉송의 5단계로 되어있다.
절차에 대한 내용을 보면 통서인유편은 생전예수재를 봉행하게 된 연유를 올리는 의식이다.
엄정팔방편은 관세음보살님을 청하여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시키는 의식이다. 주향통서편은 법사님을 청하고 모셔와 법문을 듣는 의식이다. 주향공양편은
일체의 불보살님과 성중들을 위하여 향을 올리는 의식이다. 소청사자편 · 안위공양편은 명부의 사자를 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봉송사자편은
사자들에게 예수재를 봉행하는 문서를 명부의 성중들에게 보내는 의식이다.
소청성위편 ·봉영부욕편 · 찬탄관욕편 · 인성귀의편 · 헌좌안위편은 상상단의 비로자나불 · 노사나불 · 석가모니불, 상중단의 지장보살 · 무독귀왕 · 도명존자, 상하단의 대범천왕 · 제석천왕 · 사천왕 등 증명의 존재들을 청하여 찬탄하고 찬욕을 행한 뒤 자리에 모시는 의식이다.
소청명부편·청부향욕편·가지조욕편·제성헐욕편·출욕참성편·참례성중편·헌좌안위편은 명부시왕을 비롯한 성중들을 청하여 찬탄하고 성욕을 행하고 상단에 배례한 후 자리에 모시는 의식이다. 기성가지편·보신배헌편·공성회향편은 상단과 중단의 모든 불보살과 성중들에게 간단히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소청고사판관편·보례삼보편·수위안좌편은 일체의 고사판관들을 청하여 상단과 중단을 배례하여 자리로 모시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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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의 광제사에서 열린 생전예수재에서 동참자들이 반야용선을 타고 탑을 돌고 있다. |
생전예수재의 축제적 성격
한국불교에서 축제적 성격의 의식은 삼국시대 신라의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정치이념과 결합하면서 연등회와 팔관회가 더욱 성행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지속되었는데, 세종 14년(1425) 효령대군 이보(李補)가 주관하여 수륙재를 7일 동안 성대하게 한강에서 개설했는데 임금이 향을 내려 주고, 삼단(三壇)을 쌓아 1천여 스님에게 음식 대접을 했으며 모두에게 보시를 주고, 길가는 행인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내용에서 축제적인 모습이 잘 나타난다.
불교의식이 지니는 이러한 축제적 요소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축제가 지니는 오락성, 유희적 요소, 나아가 참여자를 하나로 엮는 공동체 의식 등이 생전예수재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볼 수 있다.
첫째로 탑돌이에 내재된 축제성으로 한국의 불교의례나 불교적 축제행사에서 탑돌이는 빠지지 않는 절차이다.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탑 둘레를 도는 탑돌이는 불교의 오랜 신행 전통 중 하나이다. 스님이 목탁을 치거나,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등(燈)을 들고 그 뒤를 따라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이후 불교가 대중화되고 세대 간의 전승을 거치면서 민속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생전예수재에서 도량을 돌거나 탑돌이 형태의 의례는 시련과 명부의 시왕소청 그리고 금은전 이운의 탑돌이 등에서 설행하고 있다.
시련은 재의식을 위해 모든 불보살과 성현들, 도량을 옹호하는 신중들, 그리고 신도들의 선망조상, 무주고혼들을 청하여 도량의 설단으로
행렬하는 의식이며, 대성인로왕보살번을 선두로 사명기와 스님들이 합장한 채 따르고, 호적수와 취타대가 연주하며 합류한다. 이어 스님과 신도들이
78연(輦)을 들고 뒤따른다. 그 뒤를 영가의 위패들이 좇아가고, 이어 신도들은 각종 번과 기를 들거나 금은전의 지전을 머리에 이고 줄지어
따라가는 행렬을 이룬다.
명부의 시왕소청에서는 소청성위의 중단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신도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자신을 관장하는 시왕의 번
앞에 줄을 서게 한다. 각 줄의 제일 앞 사람부터 각각 초롱등, 창, 칼, 시왕번, 청사번을 들게 한다. 그러나 원칙은 그렇지만 시간 관계상
일일이 신도들에게 자신에 해당하는 시왕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임의로 시왕 번 앞에 10줄을 세운다. 이때 신도들에게 왜 줄을
서고 행렬을 하는지 설명한다.
이윽고 소청명부편의 중단에서 시왕과 판관귀왕 등의 청사가 시작되면, 시왕의 호명에 따라 나발, 태평소, 법라, 태징, 목탁을 든 인례승을 따라서 동참자들은 초롱등, 창, 칼, 시왕번, 청사번을 들고 지장보살의 명호를 연호하면서 탑 또는 법당을 돈다. 이때 초롱등은 행렬의 앞에서 불을 밝혀 안내하고, 창과 칼은 불법을 호위하는 팔부신장으로 행렬을 호위한다는 의미이다.
시왕번은 내가 명부에서 만날 시왕이며, 청사번은 시왕을 청하는 글이다. 이는 재가신도 스스로의 참여와 의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의식이 원만히 회향되도록 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탑돌이를 하거나 법당을 도는 것은 불법의 위신력에 의지하고자 하는 염원의 행위이다.
금은전 탑돌이란 신도들 각각의 전생 빚을 갚을 금은전의 이운과 이를 증명하는 함합소의 반을 봉투나 상자에 넣어 머리에 이고 도는 행위이다. 대성인로왕보살번을 선두로 호적수와 취타대에 이어 의식승과 승려들이 서고, 그 뒤를 영가의 위패와 금은전을 머리에 이고 따라간다.
이 의식은 탑돌이와 도량을 돌아 소대로 향하는 봉송행렬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전예수재에서 빠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도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며, 생전예수재의 목적이 담긴 가장 중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종파와 지역에 관계없이 금은전과 함합소를 머리에 이고 소대로 향하는 행렬은 그 자체로 장엄하며, 축제적인 모습을 느끼게 한다.
불교의 기본 사상은 수행을 통해 '업(業)'이라는 행위로 인한 결과인 '보(報)'에 따른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벗어나는 것이다. 업이란 과거의 행위에서 비롯되는데 그 결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무수한 죄업을 짓는다. 그것을 알든 모르든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報)'에 따라 윤회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업사상과 명부시왕사상의 결합으로 전생 빚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빚을 갚음으로써 전생의 죄업을 조금이라도 씻고자 하는 중생들의 열망은 사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앙적 기원이기도 한다.
이러한 신앙적 열망이 생전예수재의 '함합소' 로 나타났다. 함합소는 사람은 누구나 전생 빚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생전예수재 설행에서 갚아야하는 빚의 양을 기록한 문서이다. 전생 빚에 대한 내용은 『불설수생경』에 자세히 전하고 있으며, 「육십갑자십이생상속」에서는 자신의 생년의 육십갑자에 따른 각각의 흠전(欠錢)과 간경(看經)해야 할 경전[금강경, 수생경]의 권수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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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광제사에서 봉행된 생전예수재에서 신도들이 함합소 이운 탑돌이를 하고 있다. |
셋째로 음악적 놀이인 화청(和淸)으로 '화청'의 용어적 의미는 여러 불보살을 청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문(文)에 율(律)이 붙어 가창되면서 원래의 의미를 벗어나 음악적 용어로 해석되고 있으며, 화청은 대중들이 듣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율과 장단에 민속음악적 어법을 수용하고 있다. 즉 화청과 회심곡은 사설 형식의 가사로 이루어져 일반 대중이 쉽게 그 뜻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즉 대중들은 범패가 지닌 종교성과 음악성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화청은 이상과 같은 성격을 지녀 대중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결과적으로 화청의 생성 요인은 대중을 상대로 한 불교의 포교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작약산 생전예수재의 경우 공양시간 후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화청을 진행한다. 24시간 동안 재를 진행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과정에 화청을 함으로써 긴장을 풀고 여유를 제공하려는 배려이다.
고려시대 불교의 국가적 번성은 다양한 불교의식을 성행시켰다. 수륙재와 영산재, 그리고 생전예수재와 같은 죽음의례는 불교의 대중화, 민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의식의 발전에는 그에 따른 신앙의 발전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생전예수재가 지니는 대표적 신앙은 지장명부신앙과 관음신앙, 그리고 미타정토사상이다.
영산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찬탄하고, 수륙재는 일체의 물과 육지의 무주고혼을 구원하기 위한 의식이다. 생전예수재는 이와 달리 산 사람이 주체가 되는 생전 의식이다. 영산재는 석가모니불의 법화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수륙재는 아미타불의 구원을 기본으로 하는 정토사상이다. 그러나 생전예수재는 위의 두 사상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 지장명부시왕사상이 더해진다. 그러므로 생전예수재의 사상적 깊이와 신앙적 다양성은 영산재나 수륙재 보다 많고 풍성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의식의 진행에 있어서도 영산재와 수륙재 의식에 더해 산사람을 위한 의식이 포함되기 때문에 신도들의 적극적 참여가 뒤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승려들이 의식을 주도하지만, 신도들이 열성과 참여 없이는 불가할 정도로 승속이 하나로 결합하는 종합의례라는 특징을 가진다.
생전예수재는 죽음을 준비하는 한국의 전통문화 중 하나이다. 윤달에 ‘수의’를 장만하는 일과, 무속에서의 ‘산오구굿’, 그리고 지역 축제인 ‘답성놀이’ 등은 공통적으로 죽음준비 문화이다. 죽음을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사후관이다. 일상으로서의 죽음이기 때문에 슬프고 비극적으로 절망하기 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생전예수재는 ‘업(業)’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행위에는 반드시 ‘업보(業報)’ 라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업은 과거의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중생은 선업(善業)이든 죄업(罪業)이든 만들 수밖에 없다. 특히 죄업은 갚아야 할 행위이다. 현생의 죄업은 대상이 있어 갚을 수 있지만, 전생의 죄업은 대상이 없어 갚을 방법이 없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논리로 현생의 선업을 유도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생 빚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부처님과 명부시왕의 위신력에 의지하도록 한다. 생전예수재를 통해 이 빚을 갚음으로써, 사후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축제의 의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의 전생 빚을 갚을 금은전을 머리에 이고 그 증서인 ‘함합소’를 소지한 채, 도량과 탑을 즐거운 마음으로 행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마와 반야용선을 타고 사후의 극락세계에 이를 것을 약속받는 행위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운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자연스런 과정일 뿐이라는 믿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전예수재는 화청과 춤을 곁들여 도량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는 점이 중요하다. 불법을 수호하는 법당에서의 춤과 노래는 부처님에 대한 불경(不敬)이라는 선입관을 가진 대중들에게 축제의 장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인식변화를 가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와 같이 생전예수재는 종교적인 사상과 신앙심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귀중한 민속문화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전예수재와 맥락을 같이하는 오구굿을 연극으로 무대화한 사례 <오구>가 있었고, 불교의례 영산재를 무대화한 <니르바나>는 우리 전통문화의 현대적 콘텐츠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생사관 등을 다양하게 내재한 생전예수재는 단순히 과거의 종교의례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새로운 문화로서 재인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