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맞선 이야기
류 남옥
1 그날의 기다림은 지루하다기보다 고문이었다. 시곗바늘은 약속 시간을 훨씬 넘어 지나고 있었다. 곤혹스러운 그 자리를 힘들어하는 내가 행여 일어날까 염려하는 엄마의 손은 나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시어머니 될 분과 친구 엄마이기도 한 중매하는 분이 앉아 있었다. 약속 시간에 오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마흔여덟 시어머니와, 괜찮다고 말하며 겉으로는 웃고 있는 예순을 한참 넘긴 나의 엄마. 오월의 화창한 봄날에 있었던 그 일은 그날의 우리에게 너무나 난감한 시간이었다.
2 저벅저벅 큰 신발이 내 앞에 성큼 멈추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신발만큼이나 키가 큰 남자를 한참이나 올려 보아야 했다. 신랑감은 앉지도 않고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며 같이 나가도 되냐고 엄마에게 허락을 구했다.
3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달성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지금 생각에도 그 시절의 데이트코스는 달성공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혼 후 하필 왜 달성공원이었냐고 물어보았다. 너무나 오랜만에 병원 밖을 나왔고 햇빛을 맘껏 쬐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 멋진 장소를 알기에는 너무나 고단한 수련의 생활이었음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오월의 볕은 따가웠다. 손으로 볕을 가렸다.
힐끗 보더니 처음으로 그가 한 말이다. 얼굴이 흰데 왜 가리느냐고. 어이가 없었지만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을 걸었다. 휴게소가 보여 쉬어가자고 했더니, 할머니가 선볼 때 무얼 먹으면 성사가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며 그냥 가자 했다. 두 번째 한 말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화도 나고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그늘도 없는 벤치에 앉아버렸다. 조금 미안한지 따라 앉아 있다가 파란 혈관이 햇빛에 두드러진 내 손등을 내려다보며 그가 세 번째 한 말은 혈관이 선명해서 링거 꼽기가 쉽겠다고 했다. 나는 일어서고 말았다.
우짜든동 나이 찬 막내딸 시집 보내려고 나의 허벅지를 누르며 놓아 주지 않던 엄마가 생각났다. 참아야 하나. 공원을 나와 시내 다방으로 갔다. 우리는 그 흔한 좋아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도 물론 없이 그저 차만 마셨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내일은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으니 열 시, 열한 시, 열두 시. 만날 시간을 선택하라고 했다. 나의 인내는 바닥이 났다. 화를 내고 말았다. 그 제사 그는 본인의 무례를 사과했다. 사과한다고는 했지만 늦게 온 것 외에 무엇이 잘못된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이 나와 아들만 셋 있는 집의 맏이이자 종손인 남편과의 처음 만남이었다.
4 그 시절 대구에는 의과대학이 하나 있었다. 졸업생이 많지 않은 탓에 의사는 중매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고객이었다. 그 신랑감들은 병원 부근에서 막무가내 기다리는 소위 말하는 중매쟁이에게 집요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병원 생활이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고 결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수련의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중매하는 분들을 피하느라 거의 전쟁이었다고 했다. 아마 남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으리라.
5 아버지가 안 계셨고 의사와 결혼할 수 있는 세속적인 잣대인 열쇠 하나도 가져가기 어려운 그리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이었다. 새삼 생각하니 그런 내가 어떻게 그 맞선자리에 나가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6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만남. 엄마에게 등 떠밀려 만나던 어느 날. 나를 집에 데려다주다가, 골목길의 담장에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장미꽃을, 키가 큰 그가 꺾어서 어색한 모습으로 내게 주었다. 어정쩡하게 받는 내 모습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으리라. 프로포즈 였을까.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고 가시 때문에 조심스러웠고 예쁜 포장도 없었던 그날의 그 꽃 덕분에 나도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이 되었다.
그해 십일월. 늦게 낳은 딸이 아버지 없이 또 당신까지 나이가 많이 들었기에, 고아로 남을까 봐 그렇게도 노심초사하던 엄마에게 그는 막내 사위가 되었다.
7 결혼 후 서른여섯 나이였다. 오월에 생일이 있는 나는 며칠 전부터 누구 엄마는 생일 때 장미꽃을 나이 수만큼 받았다느니 하며 유난히 꽃 타령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남편을 알기에 기대가 아닌 그냥 한 말이었다. 생일날 아침에 남편이 출근도 못 하고 어색하게 방을 왔다 갔다 하였다. 장미꽃 한 송이가 얼마냐고 묻고는 설거지하고 있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장미꽃 서른여섯 송이가 들어 있음’ 이라고 겉면에 쓰여진 봉투였다. 그 봉투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어찌 버릴 수 있으랴.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8 엄마는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된 즈음 일흔아홉에 남편과 내가 만났던 계절.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오월 내 생일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 엄마의 손을, 나는 정작 잡아주지 못했다. 나의 가족이 낯선 땅에서 일 년을 보내는 사이 바람처럼 사라져가는 엄마의 숨결을 전화로만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이 위로했다. 엄마는 오매불망 막내 딸의 가슴에 늘 살아있는 모습으로 남고자 하는지도 모른다고.
9 자식들 바라지하느라 윗돌 빼어 아래 공구고 아랫돌 빼어 위에 공구며 살아왔다고 말하던 엄마. 집안이 되고 안되는 것은 그 집 안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던 엄마. 시집살이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그저 등 한번 쓸어내려 주면, 여자는 다 풀어진다고 말 없고 무던하기만 한 사위에게 늘 당부하던 엄마였다. 잔소리로 들렸던 엄마의 말들이었지만 덕분에 층층시하 우여곡절 시집살이를 해낼 수 있었다. 맏아들이지만 막내 사위가 된 남편은 사위 셋 중 엄마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10 나에게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은 그리움이다. 내 맞선의 기억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시작된다. 그날 나의 허벅지를 지그시 누르던 엄마의 두툼한 손길이 아직도 내 마음에 있으니.
첫댓글 그리운 엄마와 좋았던 젊은시절의 맞선 얘기와 키 큰 총각의 프로포즈도 받았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글을 동시에 올려서 최근순으로
읽어 나갑니다.
왜 이리 급하게 한꺼번에 올리는지요?
아직도 6주나 남아있는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