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무라는 고유형체나 고유색이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할 것 같군요.
나무도 하늘의 별만큼 종류가 많고, 그리는 방법도 세상에 살아 있었던 사람만큼 많다고 생각하시죠. 그러나 크게 분류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조형의지에 의해 모양이 바뀐 나무, 그리고 심상에 비쳐 추상화한 나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무는 프레데릭 바젤의 그림에서 볼 수 있습니다. 1867년에 그려진 비교적 고전적이면서도 인상파적인 기법이 가미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나무 둥치가 있고, 나뭇잎들이 나무줄기를 가리기도 하고, 줄기 뒤에 숨기도 하고, 어떤 나뭇잎은 밝게, 또는 어둡게, 나뭇잎 사이에 하늘이 보이기도 하죠? 이런 그림은 유화의 경우 먼저 어두운 부분에서 밝은 부분을 찾아 그리면서 나중 물감이 마른 후에 하늘을 칠하게 되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수채화는 밝은 색부터 그리니까 하늘색을 칠한 후에 밝은 나뭇잎-나무 그림자 순으로 그려나가면 됩니다. 다만 어둡다고 해서 까맣게 칠하는 것은 나중에 익숙한 후에는 괜챦은데 처음부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면 그림이 칙칙해지고 발전이 없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라면 미술적인 이론이나 관념, 주장에 따라 대상을 변형해나가는 것인데요, 세잔의 소나무입니다.
여기서 나무는 원통, 생 빅뚜아르 산은 원추, 집은 입방체로 처리됩니다. 소나무는 과감하게 까만 윤곽선이 둘러져 있으며 소나무는 하나하나의 침엽이 그려지는 대신 하나의 색면과 다른 색면이 교차하는 색면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밝은 나뭇잎은 앞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색채의 진출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다음 단계라면 내면의 감성이나 '음악적 리듬' 혹은 심미안에 따라 추상화한 나무를 들 수 있겠네요. 보나르의 작품입니다. 실제로는 인상주의적 관점에 따라 그려졌습니다 마는 보는 사람에게는 음악적인 리듬이 느껴지죠?

이러한 나무 그림들이 비교적 형체를 알 수 있는 경우라면, 아예 나무의 모습이 사라진 추상도 가능합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볼까요?
그런데 이 나무그림은 몬드리안이 구상형체로부터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는 형체를 제거하면서 추상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상화론의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세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실제 스케치입니다.
맨 아래 그림은 반구상 형태입니다. 어떻게 반구상화 하는지 보이죠?

그리고 몬드리안 작품사진 중 가운데처럼 추상화합니다. 점, 선, 면, 색채-나아가 색면, 기하적 도형화 하는 거죠. 이렇게 차분하게 추상화 하므로 써 몬드리안의 화풍은 차가운 추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무라는 고정관념, 나무는 이렇게 그려야 하고, 이렇게 그려진 그림이 잘 그린 나무그림이라는 편견을 지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잘 그리건 못 그리건 나무를 스케치하고 색칠해 보고, 다른 집이나 사람들과 조화시켜가면서 살릴 것은 살리고, 죽일 것은 죽이면서 완성해나가면 비록 묘사력이 모자라는 경우라 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술학원에서 가르치는 정밀묘사나 정형화된 묘사기법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기교는 한국적인 현실에서 대학입학에서나 필요할 뿐입니다. 대학에 입학하면 먼저 그 타성적인 묘사기법에서 벗어나고, 졸업과 동시에 완전히 탈피하지 않으면 작가로서 입신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toowr7700@empas.com 의 질의에 대한 답글
2016년 補遺
옛날 옛적에...프랑스의 아카데미즘을 흉내낸 일본의 교육과정을 베낀 한국의 미술대학 입시에 석고데생이 도입되었습니다. 쪼끔 옛날에 입시편법이 판을 칩니다. 코부터 그리기, 연필로 잔재주부리기...외어서 석고상 그리기 등입니다.
이화여대 정벙관 교수가 어느 전시 '주례사'에 썼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버릴 때 진정한 작가가 탄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잊지는 말아라...그런 거였습니다.
참 무서운 집념으로 체질화 잠재의식화한 뎃생을 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이후 미국식의 창의교육이 한국입시의 석고데생을 밀어냅니다.
어느 쪽이 미술의 길일까요? 충분한 기량을 닦고서 잊어버린 후 자신의 길을 찾을까요? 애초에 창의만을 추구하다가 미술의 배냇정신까지 팽개친 얼치기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