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위험공익제보센터’를 준비하면서
최근 장안의 화제를 몰고 있는 ‘미드 체르노빌’의 첫 장면에 현장실무자들의 인상깊은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제대로 한 거야, 그런데 뭔가 이상한 일이 터진 거야.’ 상급자의 잘못된 판단을 직감하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제대로 수행했다고 자위하는 독백이다.
지구촌의 크고 작은 원전사고들을 분석한 연구결과는 세 가지 특징을 지적한다. 첫째, 상상가능한 사고는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 둘째, 사고시에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사고는 예상치 못한 때 발생해서,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 이 셋은 최근 일어난 위험천만했던 한빛1호기 사고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후쿠시마도 비상용복수기라는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사고원인으로 드러났는데, 그동안 설마하면서 한번도 예상실험을 하지 않았던 것이 현장실무자에게 결정적인 오판을 불러 일으켰었다.
따지고 보면 스리마일이나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모두 관계자들이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들도 안전하게 관리하려는 마음은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고가 난 것이다. 후쿠시마사고에 독일인들이 놀란 이유도 다른 나라에 비해 고도의 안전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조차 속수무책으로 사고가 나버렸다는 것.
원전은 자동차보다 훨씬 복잡한 기계다. 자동차가 사고가 나고 고장이 나듯이 원전도 고장이 나고 사고가 난다. 하지만 원전사고는 전쟁보다 위험하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생존이 위협받는다. 다른 종류의 위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 원래 원자력이나 핵기술은 과학의 영역이다. 전쟁무기로는 쓰였지만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하기에는 아직 인류의 능력밖이다. 그런데도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 세상에 나온 것이 불행이다.
핵발전소는 본래 비밀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은폐성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바깥세상에서 위험을 감지하기가 무척 어렵다. 현장관계자가 건의하여도 묵살이나 은폐당하기 일쑤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내부로부터의 고발, 즉 공익제보다. 만약 바깥에서 그 사연을 제때 알 수 있다면 바로 잡기가 어렵지 않다.
현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은 했지만 안전대책은 나아진 게 없다. 선진국처럼 교차감시를 해야 하는데 그 체제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정부와 담당기관이 ‘4개의 눈’ 개념으로 교차감시를 하고 있고, 프랑스는 의회도 안전감시를 직접 챙기고 있으며, 미국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C)자체에 의회가 교차감시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는 행정부가 감시까지 도맡아하는 ‘끼리끼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간에서 먼저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약간의 용기만으로 쉽게 위험의 진실을 알릴 수 있도록 한다. 제보를 받으면 그 위험의 유형을 세밀하게 진단하고 처방하고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운영자쪽에서도 보다 제대로 된 관리체제를 갖추게 될 것이다. 견제와 보완의 효과로 안전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공공의 가치를 다루는 일에는, 정부 혼자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민간이 더 잘하는 일이 있으며, 민과 관이 협력해야 할 일이 있는가 하면 드물기는 하지만 민과 관이 상호 견제하면서 감시해야 할 일이 있다. 원전이 바로 마지막 그것이다. 정부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쌍으로 위험을 알리는 민간기구가 있어야 구조적으로 안전이 업그레이드된다.
가칭 ‘원전위험공익제보센터’는 바로 견제와 보완의 민간기구다. 만약 원전이 있는 40개국에서 이런 기능들을 발휘하는 기술적 실체들이 있게 되고, 그들이 기존 단체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지구촌의 위험을 예방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영 (수원대교수,‘원전위험공익제보센터’ 준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