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드림보다
누런 황소와 함께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저희 집 소가 아닌 작은 아버지네 소입니다. 집에서 키운 소인데, 작은 아버지께서 이 소를 이른 아침에는 깊은 산속에 고삐를 풀어 마음껏 풀을 먹게 하고, 해가 서산에 질 무렵이면 소를 찾아 다시 고삐를 메어 끌고 오는 일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산속에 풀어 놓은 소중에는 여러 친구네 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를 찾아오는 것은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때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셈입니다. 이 일로 인해 작은 아버지께로부터 여러 차례 용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골에서의 소 한 마리는 엄청난 자산이었습니다. 당시 암소를 잘 키워 판 금액이 형 누나들의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등록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가 새끼를 낳으면 암소는 팔고 새끼를 잘 키우는 일이 반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는 자녀 교육의 자산이었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소는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끌어 주시고도 하고, 지금은 농기계가 개발되어 보기가 드물지만 소는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논과 밭을 갈아주기도 했습니다.
소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에도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주된 임무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진 하나님 앞에 제사(예배)를 지내는 제물로 쓰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소는 인간 편에 있어선 참으로 고마운 동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악을 대신해 희생제물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소는 인간의 죄악을 대신해 죽지만 인간은 소의 희생으로 인해 그때마다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곳곳에 이와 같은 말씀이 등장합니다.
“만약 바치는 번제물이 소라면 흠 없는 수컷으로 바쳐라. 그리고 나서 너희는 그 짐승을 회막 입구로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그 예물을 받으시도록 하여라.”(레위기 1:3)
‘번제’(燔祭)물이란 히브리어로 [올라] 인데 ‘피워 올리다.’, ‘올라가다.’란 뜻을 지닙니다. 따라서 번제란 희생 제물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하나님께 피워 올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에서 소를 드릴 때, 꼭 지켜져야 할 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흠 없는 수컷 소’입니다. 신체적으로 아무런 결함이나 하자가 없는 온전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번제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질 희생 제물의 가장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황소가 인간의 죄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어떤 마음을 알게 된 것일까요?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편 69:31).
‘이것이(?)’
무엇이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물인 황소보다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된 것일까요? 한 절 앞서 기록된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시편 69:30).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고 황소를 가져와 죄 사함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굳이 황소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왜 인간은 죄를 지으면서 황소를 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황소를 제물로 드리지 않아도 되는데... 하나님은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더 기뻐하시는데 말입니다. 죄의 번제물인 황소를 드림보다 매일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는 것이 황소를 드림보다 더 나은 예배입니다.
섬김이 박희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