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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0일~21일(1박2일), 경기도 수원 및 용인시에서 제27회째 '우리모임'을 가졌다. 금년도 집행부를 맡으신 김 회장님과 신 총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서울 부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총 19명 중 17명이 참석을 하셨으며, 고향쪽인 남쪽(광양, 순천, 광주, 목포, 부산 포함)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11명 중 10명이 참석하시어 이번 모임에는 총 30명 중 27명이 참석(참석율 90%)을 하였습니다.
금번 모임엔 개인사정으로 참석을 하지못한 친구들도 있었고, 집안일, 결혼 때문에 잠시만 얼굴을 보여주고 헤어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서로가 다 이해를 하시는 친구들이기에 잘 마쳤을 줄로 믿습니다. 1년에 두 번의 '우리모임'에서 조금 섭섭한 일이 있더래도 모다들 조금씩 이해 하시옵고, 넓으신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오니 즐거운 추억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금년 봄철모임 때에도 지난번에 집행부를 주관하신 조 회장님(배 총장님)의 뜻깊은 설명으로 모든 회원들이 이해가 쉬웠으며, 참석을 하지 못한 친구들도 잘 이해 하실줄로 믿습니다. 집행부에서는 1박2일의 모임일정을 모든 회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카톡에다가 올려 주시고, 우리모임의 발전을 위해 수고하신 집행부와 협조를 하여주신 여러 친구들께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제27회의 우리모임을 갖인후 몸이 다소 불편하여 지금까지 휴식을 취하다 이제사 일정별로 정리하여 제가 촬영한 사진과 친구들이 카톡에다 올려주신 사진을 편집하여 '우리모임 카페'에다 올립니다. 건강을 위해 제일 좋은 운동이 걷기 운동이오니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 모임일시 : 2019년 4월 20일(토) 13:30 ~ 4월 21일(일) 14:50
◈ 모임장소 : '한봉석할머니 순두부'식당<팔달문 옆,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62. (031) 241-6676>
◈ 식사장소 : '한봉석할머니 순두부'식당, '본수원' 갈비집(팔달구 우만동), '한화콘도' 및 '송산한정식'식당(화성 송산동)
◈ 숙박장소 : '한화콘도'<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로 153번길 79, 전화 : (031) 332-1122>
◈ 참석인원 : 27명 < 남자 친구들 17명 및 여자 친구들 10명 > ※ 불참인원 : 3명(무홍, 종선, 승재)
○ 남쪽친구들 : 10명 <광양(5), 순천(2), 광주(1), 부산(1), 목포(1)>
○ 윗쪽친구들 : 17명 <서울(7), 경기(6), 인천(3), 강원(1)>
◈ 관람장소 : 수원시 '화성행궁', '광교호수공원(원천호수)' 및 용인시 '와우정사', '농촌테마파크'
◈ 협의사항 : 금년도 가을철 모임은 2019년 11월 9일(토)~11월 10일(일)으로 결정 협의하고, 장소는 추후에 협의키로 함.
① 수원시 팔달구 '한봉석할머니 순두부'식당과 '화성행궁'에서...
2019년 4월 20일(토) 13시 전·후에 '우리모임'(초딩친구)의 친구들은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한봉석할머니 순두부'식당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매년 봄, 가을철에 모임을 가졌었다. 난, 걷기 운동때문에 그 식당에는 조금 늦게 도착을 하였으나 아직 5~6명 밖에 참석치 않고 나머지는 서울 사당역에서 14시경에 이곳에 도착하시는가 보다.
먼저 오신 친구들은 부추전, 도토리묵 등의 안주에 막걸리, 동동주를 한 잔씩 하고 있었다. '한봉석할머니 순두부'식당에서는 보리비빔밥에 순두부국(매운것과 덜매운것 2가지)이 유명하단다. 친구들은 만 6개월만에 만나서 막걸리 한 잔씩을 나누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눈 뒤 화성행궁을 구경하였다.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이다. 화성행궁은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 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화성은 창룡문(동), 화서문(서), 팔달문(남), 장안문(북) 4개의 문루로 이어져 있으며, 뛰어난 건축술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개발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조선 22대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그 무덤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던 수원(현재의 화성시)으로 이장하였고, 능 주위에 살던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도시와 성곽을 축성하였다. 시간을 맞춰 잠시 華城을 둘러 보려다 가는 길이 막혀 화성은 걷지를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