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이야기30
어머니의 장독대, 뒤란의 풍경
<뒤란과 여성>
“너는 뒤란에서 낳았다.”
어머니가 어쩌다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우리 집 뒤란[댄]에서 태어났습니다. 뭔 말이냐고요. 어머니가 아침에 밥하러 나갔지요. 그리고 뒤란에 놓인 장독대 안에서 장을 뜨러 가다가 갑자기 진통이 왔고, 저는 뒤란 바닥에 뚝 떨어졌습니다. 미쳐 방으로 들어올 틈도 없었나 봅니다. 음력 10월 초이레라 꽤 추운 날이었습니다. 제가 눈물은 많지만, 아직 건강하게 잘 지내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차가운 바닥의 가혹한 환경을 이겨냈거든요.
그 당시 상황은 제가 전혀 생각해낼 수 없지만, 뒤란 바닥에 떨어진 아기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아찔한 순간입니다. 그래도 팔다리 멀쩡하고 얼굴 어디 한데도 찌그러지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어머니도 건강하시고요. 허허허. 웃음만 나오지요. 그때 찬 서리 내린 뒤란 바닥에서 저는 “으앙!”하고 울었겠지요.
저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내 태어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머니,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쩌면 금방 태어날 것 같은 아기를 가진 만삭의 여인이, 그 많은 식구의 아침밥을 혼자 하려 했을까요. 아궁이에 불 때고, 감자 깎고, 보리쌀 불리고, 강냉이 타개서 밥을 하는 일은 큰 노동이었습니다. 그 집안의 대는 며느리가 잇는다는 말이 생생하게 아직도 귓가에 들려 옵니다.
<어머니의 음식 맛>
“음식 맛은 장맛이다.”
우리 정선 사람들은 장맛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장 담는 일은 일 년 농사야.”
매년 봄이면 듣는 말이었습니다. 간장, 고추장, 막장, 된장이 장 항아리에 가득하면 배가 불렀지요. 아침 점심 저녁 끼니마다 장 항아리를 열었고,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가끔 고추장과 된장에 박아두었던 장아찌를 꺼내 도시락을 싸기도 했습니다.
또한 막장은 강원도 맛이라 할 수 있지요. 구수한 막장은 보리밥, 강냉이밥, 호밀밥까지 뭐든 맛나게 잘 어울리는 최고의 장이었습니다. 봄날 냉이와 달래를 넣어 끓인 막장은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그 장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가족 사랑이 깃들었기에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장을 담글 때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개울가로 내려가서 예쁜 자갈을 주워왔습니다. 장독대를 꾸미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독대 주변은 언제나 깨끗했습니다.
아무도 범접하기 어려운 장독대였지요. 간장 항아리에 귀신을 막는 매운 고추와 정화(淨化)의 대명사인 숯이 들어가고, 항아리 둘레에는 부정을 막는 금줄이 쳐졌습니다. 어떤 귀신도 가까이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장독도 아낌없이 열 때가 있었습니다. 가난해서 장을 담지 못하는 이웃에게 퍼주는 장이었습니다.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아낙네의 작은 항아리에 어머니는 아끼던 장을 큰 주걱으로 퍽퍽 퍼주었지요.
“다 떨어지면, 또 오게.”
정말 눈물 나는 장면이지요. 장으로 맺어진 이웃의 정이요, 대동의 맛 아닐까요.
<신성의 공간 장독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아무 탈 없이 한 해 나게 해 주십시오,”
할머니와 어머니는 매년 영등날이 되면 장독대에 정화수 올려놓고 빌었습니다. 2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아침마다 이어진 기도였지요. 비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인 영등할머니를 제사하는 영등제였습니다. 대풍을 기원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일 년 열두 달 늘 가족의 안위를 할머니와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그렇게 기원했습니다. 하얀 저고리와 치마가 장독대와 정화수에 참 잘 어울렸습니다.
그랬습니다. 뒤란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공간이었습니다. 정선의 전통가옥에서 뒤란[댄]은 여성들이 살림하고 가족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였지요. 뒤란에 있는 여성들의 필수 장소 곳간, 뒤주, 장독대는 부엌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 의미가 참 깊었습니다. 남성들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뒤란은 나무 울타리가 빽빽하게 쳐진 신성의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그 울타리 설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집안의 남성들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물질문명의 변화는 이런 아름다운 분위기를 앗아갔습니다. 정선 여인들이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음식 만들고, 그리고 어쩌다가 아이 낳는 공간이었던 뒤란의 풍경은 사라졌지만, 그 멋스러운 이야기와 기록은 여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