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씨를 얻어다 심은 목화의 꽃과 열매!!
2024. 10. 9(수)
에즈라기서 5장~6장
하까이서 1장~2장 끝
(하까 1,4-5)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뿌려도~ 먹어도~ 입어도~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하까 2,16)
너희가 하는 일들이 어떠하였느냐?
누가 스무 섬 더미에 가면 열 섬밖에
없고, 쉰 동이를 푸려고 포도 확에 가면
스무 동이밖에 없었다.
(하까 2,18)
주님의 성전에 기초를 놓은 날부터
생각해보아라.
곳집에 씨앗이 없지 않으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없지 않으냐?
묵상-
묵상 지점이 넘쳐나는
에즈라기서와 하까이서다.
문어체보다 구어체가 많아
주님께서 내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친숙하고,
주님의 마음은 물론
하까이 등 예언자들의 심정이
더 와 닿은 느낌이다.
에즈라기서의 예언자 즈카르야와
즈루빠벨은 하까이 예언자와
함께 사이좋게 주님의 크신
계획을 실행해 나간다.
키루스 왕에 이어 다리우스 왕
역시 하느님의 집을 짓도록
안배하며 도왔는데, 그 기초는
‘세스바차르’라는 사람이
놓았다.
하까이서에서 주님은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신다.
⓵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⓶(주님 성전의 돌을 쌓기 전에)
너희가 하는 일들이 어떠하였느냐?
⓷주님의 성전에 기초를 놓은 날부터
생각해보아라.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니, 주님이 뭘
주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구멍 난
주머니에 넣은 꼴이 된 거다.
우리 하는 일이 어떠했는지 돌아보니,
스무 섬 더미에 가도, 쉰 동이를
푸려고 가도, 열 섬, 스무 동이밖에
안됐던 거다.
주님 성전에 기초를 놓은 날부터
생각해보니, 곳집에 씨앗이 없고,
온갖 나무에 열매가 없는 형상인거다.
주님께서는 위 세 질문을 물으시고,
그 답까지 알려주신 건데, 내 인생을
돌아봐도 틀린 말씀은 아니라는 것,
‘그땐 그랬죠.’가 아닌 ‘지금도 그렇죠.’
라고 답하게 될까봐 떨린다.
밑 빠진 독에 물 물 붓기
(구멍 난 주머니에 넣기)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너희가 가꾼 모든 것을 쳤지만)
부자청년처럼 재물을 쌓기.
(씨앗과 열매가 없지 않으냐?)
왠지 억지로 갖다 붙인 느낌이 나면서,
조악해진 나를 발견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심히 내 과거가 돌아봐지고, 지금의 삶 또한
성찰하게 되는 대목이다.
결국엔 그거다.
아무리 능력 있고 지혜롭다 해도,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형제자매들과
협심하지 않고 오직 자기 힘으로만
거두고 쌓은 것들은, 주님께 복을
받을 수 없고, 그 열매 역시 없거나
빈약하다는 것 말이다.
주님께서는 또 당신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도 제 집 돌보는
데에만 바빠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하늘은 너희에게 이슬을
내리지 않고 땅은 제 소출을 내주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의 결실에 가뭄을
불러 들였다.’(하까 1,9-10)
라고 덧붙이신다.
가톨릭 성가 94장 <하늘은 이슬비처럼>
가사가 떠오른다.
‘주를 찬송하던 성전이 황무지가 되었나이다.
하늘은 이슬비처럼 의인을 내려다오~’
우리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펼쳐놓은 것 같은
이 공감대, 어찌 이리도 친숙할까.
그렇다고 절망과 후회만 있는 건 아니다.
주님께서는 하까이 예언자를 통해,
엄청난 희망의 말씀을 전하셨다.
‘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하까 2,9)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까 2,19)
과거에 그랬을지라도, 지금 다시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집을 돌보고,
우리 손이 하는 일들이 부정해지지 않도록
애쓴다면, 즈루빠벨과 즈가리야에게
하까이 예언자와 조력자들을 붙여 주시어,
과업을 잘 완수하게 해주셨듯이,
우리에게도 같은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너를 인장 반지처럼 만들리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하까 2,23)
첫댓글 좋은 글 공유해주신
박지현 요셉피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