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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149편1~9절
제목 : 성도들의 찬양
마지막 할렐루야 시집(146~150편)의 넷 째시로,
이스라엘 성도들의 승리의 찬양과(1~5),
적국들에게 임할 심판을(6~9) 노래 합니다.
후반부의 격렬한 어조 때문에 마카비독립운동시대(주전168~164년)의 것이란 견해가 있으나, 보다 앞선 귀환기로 봅니다.
148편은 천지만물을 찬양하고 있으나 149편은 이스라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으신 자”이시며, “그들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찬양됩니다(4절).
“겸손한 자”는 자기를 믿지 않고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를 말하며,
5절의 성도와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1. 이스라엘 성도들의 승리의 찬양(1~5절)
“[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3]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1절).
“[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송하라”는 뜻이며,
할렐루야 시는 106, 111, 112, 113, 135, 146, 147, 148, 149, 150를 말합니다.
할렐루야로 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새 노래 - 본 시편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아 그 저작 시기는 포로 귀환 이후 성전을 재건하고 헌당(獻堂)한 시기 정도로 보여 집니다.
즉,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 받은 새 구원의 노래입니다.
(시33:3, 느4:7~23, 6:2~16).
*시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구원된 자는 즐거움으로 구원된 은혜를 노래하여야 합니다.
“새 노래”는 구원된 자가 부르는 노래이니 요한계시록 5:9에 보면 구원된 천국에서도 성도들이 새 노래를 노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14:3)고 하였습니다.
구원된 자가 아니면 누가 그 구원된 은혜를 알 수 있겠습니가?
그러므로 구원된 자는 이 구원된 은혜를 열심히 찬송하여야 합니다.
구원된 은혜는 즐거운 일이므로 즐거운 소리로 찬송하라고 한 것이고,
거기에 공교히 연주로 반주하여 즐거움을 더욱 높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새 노래'란 새로운 시대의 소망과 기쁨을 담은 노래를 가리키는 것일 것입니다.
(1) 죄의 노예에서 나를 속량하시고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롬6:17,18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18]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죄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창4:7).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노예에서 나를 속량하시고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롬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죄가 너의 주인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너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의에게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찬양하여야 합니다.
(2)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습니다(눅10:19)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 권한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셨습니다.
이것의 좋은 예가 요셉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그를 노예에서 해방시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로 세워 주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이 나에게도 이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권세를 누립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복을 모르고 예전에 죄의 노예였기에 지금도 그 주인이 나타나면 무조건 따라가는 나 자신이 바보라, 이것을 고치라 하십니다. ‘너는 너의 신분을 깨달아라!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육신의 생각의 종이 될 수 있느냐? 오히려 그것을 다스리고 대적하고 무시하고 쫓아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그런 요셉이 보디발이 왔다고 해서 그의 발이나 씻어 준다면 그 요셉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권세!
요셉을 통해 우리 복음을 설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일찍이 꿈으로 보여 주시기를 ’너는 다스리는 자가 된다’. 다스리는 최고의 권세는 내 안에 일어나는 죄의 것들, 나를 괴롭히는 것들, 내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들, 이것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 하지 마십시오. 자기를 다스리는 자가 제일 큰 권세 있는 자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한다! 맞습니다. 그런데 시편 1편 1절에 보면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유혹에 빠져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내 성격의 종이 되지 말아라, 그 성격을 다스리는 자로 하나님이 나를 높여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 보라, 거기에서 이제는 너를 빼 내주셔서 그것을 발로 밟도록 너를 높여 주셨으니 다스려라!
성도(하시딤) - 이를 마카비 시대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시디안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입니다(마카비전서 2:42).
여기서는 단지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들'을 의미할 뿐입니다.
5, 9절에서 연거푸 '하시딤'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본 시편의 특징적 용어인 것 같습니다(Perowne).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2절)
이스라엘 성도들이 여호와를 찬양할 것은
(1) 여호와가 그들을 지으신 조물주 되시기 때문입니다(시95:6).
*시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모든 인류에게 공통되는 은혜입니다.
(2) 그들을 통치하시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삼상8:7, 호13:10).
그들의 왕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 당시는 아직 다윗 왕가의 왕위에 앉은 자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는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때문에(68:24)
이같이 일컫고 있습니다.
이 왕은 이스라엘을 이방 통치 아래 남겨 두지 않으실 왕이며,
그들의 목에 있는 압제의 모든 멍에를 파괴하실 왕이십니다.
*삼삼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호13: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이스라엘과 세우신 특수한 언약(창17:2~8)에 의해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는 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으신 자”이시며, “그들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즐거워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3) 찬양의 방법입니다(3절)
“[3]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춤추고 소고와 수금 등 악기의 반주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춤추는” 것은 종교의식에 흔히 있었고(시101:4,출15:20, 삼하15:20),
이것은 큰 즐거움을 나타내는 표현임과 아울러 당시에 일반화되어 있던 예식 행위이기도 했습니다(30:11).
“소고”는 애굽에서 도입된 뎀버린으로 흔히 여인들의 악기였습니다(시68:25,
출15:20, 삿11:34, 삼하6:5)
“수금”은 보다 일반적 악기였습니다(시33:2, 71:22, 92:3).
-시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71:2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92:3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뻐하십니다(4절).
“[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본토로 귀환시키심으로 밝히 드러났습니다(사 54:7, 8).
*사54:7, 8 “[7]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8]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겸손한 자 - 자기를 믿지 않고 여호와를 의뢰하는자를 말합니다.
상반절과의 평행을 고려할 때 이는 특정한 어떤 소수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오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겸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또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구원하사 아름답게 하십니다.
“겸손한 자”도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5) 성도들은 구원 받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한 것입니다(5절)
“[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앞 절의 “겸손한 자”는 “성도”와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 심지어 쉬기 위하여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인해 도래할 승리의 날을 고대하며 기쁨의 새 노래를 터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시6:6, 77:2~6).
*시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이는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혹은 죽은 이후에도 영원히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2. 적국들에게 임할 심판(6~9절)
“[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7]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1)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6절)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여기서 '그들의 입에는'으로 은 그들의 '목구멍에는'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아무튼 이 구절은 목청을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이것은 잘 드는 칼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사령관으로 모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전투란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손에 든 칼로는 적(敵)을 섬멸하는 것이었습니다(수 6장).
그들이 소수의 병력으로써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구속 역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당신의 뜻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전투에 임하는 그 백성들의 배후에서 역사하사 소위 성전(聖戰)을 승리로 이끄셨습니다(수 5:13-15 강해, '성전'(聖戰)을 참조하라).
한편 본 시편 기자는 이러한 전쟁 모티브를 다시 회상시킴으로써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이 그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다시 승리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해주고 있습니다.
*느4: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대적을 물리칠 권세를 주십니다.
2)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7절)
이것은 베벧론 포로 시대 당시 그 성을파괴하고 늑탈하였던 바벧론을 위시한 이방 세력들에 대한 징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6절과 연결시켜 생각할 때 그 징벌은 이스라엘의 칼에 의해 되어진다는 의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벧론 군대를 징벌한 역사는 없었던 사실을 기억할 때 이 징벌이란 또 다른 민족을 통한 바벧론 심판을,
더 나아가서는 세상 끝 날에 있게 될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바벧론은 페르시아에 의해 징벌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3)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8절)
이것은 바로 앞절의 의미인 바벧론을 위시한 이방 열방에 대한 심판의 구체적 실행에 관한 대표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전쟁에 패한 국가는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로로 잡혀가곤 하였는데 정복 국가는 그들의 철저한 승리, 위용을 과시하기 위하여 그들을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갔습니다(사 45:14, Barnes).
*사45: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민족을 멸하십니다.
4)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9절)
“[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 직역하면 '기록된 심판을 그들에게 집행할지로다'입니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 본 구절은 율법에 기록된 내용에 따른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미래의 모든 의로운 복수 행위의 전형으로서의 가나안인 추방(Stier) 혹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신 32:40-43에 기록된 율법을 위반한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 설명되어져 왔습니다.
*신32:40~43 “[40]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41]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42]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43]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그러나 여기 '기록한 판결'을 성경의 특정한 구절을 나타낸다고 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각 사람 혹은 각 민족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기 위해 모든 일들을 기억하시는 소위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무난하겠습니다.
아마도 본 구절의 '심판'이란 확정된, 고정된 무엇으로서의 심판, 말하자면 그 영원성, 불변성을 암시하기 위하여 문서에 기록하도록 그래서 확정된 무엇으로 알리기를 원하는 심판에 강조가 두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 65:6이 말하는 바와 일치합니다.
*사65: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 문자적인 의미는 '이것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자를 위한 영예이다'입니다.
여기서 '영예'란 일차적으로 앞 구절들에 묘사된 바,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 나타난 영예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 세력들에 대한 심판과 같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들은 결국 택한 백성을 영예롭게 하시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총과 사랑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는 복음의 최후 승리를 예표한 시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