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의 흐름(4)
이승하
2023. 11. 4. 5:00
이제 2023년 올해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일별해 보겠습니다. 한동안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지나치게 난해하다고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었습니다. 시인들 사이에서도 ‘심사위원이 이 시를 이해하고 뽑았을까?’ 하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가 이해가 되고 소통이 되면 시가 아니라는 일부의 통념이 일반화된 2000년대, 2010년대 20년 동안은 아마도 신춘문예 당선자들보다는 문예지 신인상 당선자들이 우리 시단의 뉴페이스로 각광을 받은 연대가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공통분모는 시인 각자가 소소한 자신의 체험을 토로하는 ‘일상성’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와 사회 같은 거대담론은 물론 보이지 않고, 이웃과의 유대나 연대 같은 민중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일견 사소하기도 하고 소소하기도 한 사적 체험을 다룬 시가 당선작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서른다섯 번을 울었던 남자가 다시 울기 시작했을 때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람이 슬퍼지려면 얼마나 많은 복선이 필요한지
관계에도 인과관계가 필요할까요
어쩐지 불길했던 장면들을 세어보는데
처음엔 한 개였다가 다음엔 스물한 개였다가
그다음엔 일 초에 스물네 개였다가 나중엔 한 개도 없다가
셀 때마다 달라지는 숫자들이 지겨워진 나는
불이 켜지기도 전에 서둘러 남자의 슬픔을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니까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니까
이 사이에 낀 팝콘이 죄책감처럼 눅눅합니다
극장을 빠져나와 남은 팝콘을 쏟아 버리는데
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다고
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라고
누군가 중얼거립니다
이런 얘기들은 등뒤에서 들려오곤 하죠
이런 이야기들의 배후엔 본 적도 없는 관객을 다 아는 세력이 있죠
문득 다시 궁금해집니다
뻔한 것들엔 아무 이유도 없는지
안 봐도 안다는 말에 미안함은 없는지
우리의 관계는 상영시간이 지난 티켓 한 장일 뿐이므로
텅 빈 극장엔 불행과 무관한 새떼들이 날아다니고 있을 테지만
그것들은 다른 시간대로 날아가지 못합니다
가끔 이유 없이 슬픈 꿈을 꾸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진우, 「멜로 영화」 전문
버스를 기다린다 신호가 바뀌고 사람이 오가고
그동안 그를 만난다
어디를 가냐고
그가 묻는다
나무를 사러 간다고 대답한다
우리 집 마당의 이팝나무에 대해 그가 묻는다
잘 자란다고
나는 대답한다
그런데 또 나무를 심냐고 그가 묻는다
물음이 있는 동안 나는 어딘가 없었다
없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무슨 나무를 살 것이냐고 그가 묻는다
내가 대답이 없자
나무는 어떻게 들고 올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다
먼 사람이 된다
초점이 향하는 곳에 나무가 있었다
잎사귀로는 헤아릴 수 없어서
기둥으로 그루를 세야 할 것들이
무수했다
다음에 나무를 함께 사러 가자고
그가 말했다
아마도 그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그를 나무라 부른 적이 있었는데
다시금 지나가는 비슷한 얼굴의 나무는
―권승섭, 「묘목원」 전문
앞의 시는 조선일보 당선작이고 뒤의 시는 동아일보 당선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신춘문예의 역사가 가장 긴 두 신문사의 당선작인데, 역사도 그렇지만 두 신문사에는 가장 많은 작품이 투고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멜로 영화」는 심사위원에 의해 “생의 변곡점일 수 있는 순간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그러쥐고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시적 명증성을 붙잡은” “범속한 생활 감정을 의미가 분광하는 이미지로 빚어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런 언어 감각과 섬세한 느낌의 표현은 시의 풍부화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었다. 숙고와 머뭇거림에서 길어낸 사유를 자기의 리듬에 실어 전달하는 능력, 능숙한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듯이 시를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 귀한 재능이다.” “이 응모자가 첫 시집을 낸다면 서점에서 누구보다 먼저 시집을 구입해 읽고 싶다는 게 우리 속마음이다.”란 격찬을 들었습니다. 「묘목원」은 심사위원에 의해 “과장과 작위가 없이 단정한 문장을 통해 체험의 일단을 문제적인 시적 상황으로 변환시키는 기량을 믿어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건에서 중층적인 의미가 배어나게 하는 시적 구성도 돋보였다. 군더더기 없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란 칭찬을 들었습니다. 두 작품은 그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만 50〜90년대의 당선작들에 비하면 시가 무척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비범한 상상력이나 신선한 비유를 보여주지는 않고 자신의 진솔한 경험 토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시를 관념적으로 쓰지 말아야 하고 경험 그 자체의 시화를 강조했던 황동규 시인의 지론이 일반화된 덕분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중앙일간지의 당선작들은 부분 인용을 합니다.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짙은 약속을 얼떨결에 움켜쥐었을 때
새끼손가락 끝에 검붉은 피가 모였을 때
치밀한 혀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어떤 밤엔 마침내 혀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발음했다
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
태어나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갔다
한밤중엔 그런 소리들에 놀라서 문을 닫았다
너무 규칙적인 것은 무서웠다 치열하게
몸을 움직이는 초침 소리나
몸을 웅크린 채 맹목적으로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그랬다
―민소연, 「드라이아이스―결혼기념일」 전반부
추우면 뭉쳐집니다
펭귄일까요?
두 종류 온도만 있으면
버터는 만들 수 있습니다
뭉쳐지는 힘엔 추운 거푸집들이 있습니다
마치 온도들이 얼음으로 바뀌는 일과 흡사합니다
문을 닫은 건 오두막일까요?
마른나무에 불을 붙이면
그을린 자국과 연기로 분리됩니다
창문 틈새로 미끄러질 수도 있습니다
문을 꽉 걸어 잠그고 연기를 뭉쳐줍니다
고온에 흩어지는 것이 녹는점과 비슷합니다
초록색은 버터일까요?
버터는 원래 풀밭이었습니다
몇 번 꽃도 피워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들은 집요하게도 색깔을 먹어 치웁니다
이빨에 파란 이끼가 낄 때까지
언덕과 평지와 비스듬한 초록을 먹어 치웁니다
당나귀일까요?
―박선민, 「버터」 전반부
코끼리를 보라
코끼리끼리는 볼 수 없는 코끼리를 보라
꼬리를 위해 서 있는 네 번째와 세 번째 다리를 보라
걸음을 뗄 때 발을 남기고 벗겨질 것만 같은 발의 접힌 거죽을 보라
달라붙어 있지 않고
그것은 끌려다닌다
우리의 난제였던 바깥이다
실체는 헐렁헐렁하다
그 안에서 기관을 해체하는 망치질 같은 코끼리의 걸음을 보라
눈앞에 직접 정의된 코끼리를 보라
걸을 때마다 부서지고 있지 않은가
간신히 어금니로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코끼리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안과 바깥은 서로에게 통증이 그지없다
―임후성, 「볼트」 제 1연
물레 위에서 점토를 돌린다
선생님은 마음의 형태대로 도자기가 성형된다고 말했다
점토가 돌아가는 물레가 있고
물레는 원을 그린다
물레가 빚어내는 바람이 원의 형태를 부드럽게 손을 휘감는다
생각하는 동안 점토는 쉽게 뭉그러지고
도자기는 곡선이지만 원의 아닌 형태로 성형된다
가끔 한쪽으로 기울고 일그러진다
그러는 동안 창밖의 개들은 풀밭 위를 빙글빙글 돈다
꼬리를 쫓으며 도는 개의 주변으로 풍경이 둥글게 말린다
부드럽고 단단한 개의 몸속에서 튀어나오려 하는 수백 개의 동그라미들
개들을 보면 사람은 마음 속으로 무엇을 그리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잘 재단된 옷을 입고
같은 사이즈의 길을 걷는다
―김혜린, 「백자가 되어가는 풍경」 전반부
비 오는 새벽 요강을 몇 번이나 비워낸 할머니는 내가 잠에서 깰까 아침이면 부엌에 가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약을 많이 먹어 몸에서 쓴 내가 났다 나한테는 미묘한 매실 냄새가 비가 퍼붓는데도 두 냄새가 멈추지를 않았다
푸른 논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뚫린다던 엄마는 절대 할머니 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시골에 살면 우울증에 걸린다나 나 어릴 때 친구 하나가 너희 엄마 불 꺼진 매장에 혼자 앉아있더라 전해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방에 걸린 무수한 액자들과 함께 살고 있어 나는 양심이 없으므로 엄마에게 몇 마디를 했다 얼마나 불쌍한지 외로운지 결국은 심심한지 할머니가 엄마는 고집 있고 성질 나빠 아빠랑 살기 어려웠을 거래 우리는 웃다가 콧물을 흘렸다
다음날 어떻게 잘 지낼지 생각하느라 도통 밤에 잠을 못 잤다 희망을 벗어날 길 없어 욕망을 추스를 틈 없이 이른 아침 아이돌 노래에 맞춰 산책하다 고추밭에서 누군가 칼로 난도질한 복권 여러 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신나리, 「당산에서」 전반부
앞에서부터 차례로 세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문화일보, 한국경제신문의 당선작들을 절반 정도씩 인용해 보았습니다. 대체로 시인 자신의 소소한 일상이 시의 소재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시들이 별로 어둡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ㆍ경제적 현안이 소재가 되지도 않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생태환경의 파괴나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 현상, 인구가 줄고 있을 정도의 젊은 세대의 고용에 대한 불안,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고독사 빈발, 폭력사건의 증가 같은 것이 1월 1일자 신문에 실리면 안 된다는 신문사의 고려가 작용한 것도 같습니다. 문제는 이들 시편이 제게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감이 가는 시도 있지만 ‘옳아’ 하고 흔쾌히 동의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선한 충격을 주거나 심오한 깨달음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조차도 ‘현대시는 주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 우리는 모두 시인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이른바 ‘명시’나 ‘애송시’를 읽고 감동받지 않았던가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제게 눈물이 솟구치게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감동적인 시를 써보지 못했습니다. 저부터 심각하게 반성을 해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제 발표를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발표를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