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땡, 학교 종이 울린다. 이수도 짠바람과 포근한 햇살을 타고 종소리가 들린다. 점심시간이니 밥 먹으러 오란다. 서두르지 말고 늦지 않게 쉬엄쉬엄 오란다.
어렴풋이 초등학교 시절의 종소리가 떠올랐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당번이 빵을 받으러 갔다. 빵은 한판에 여러 개가 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당번이 받아 온 빵을 하나하나 떼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동생이 있는 아이는 다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갔다. 도시락 시절의 혼분식 검사, 난로 위의 도시락, 밥 위의 달걀부침, 우물가의 친구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이수도 1박 3식 여행은 경험 있는 선배의 도움을 받아 한 달 전부터 계획하고 추진했다. 매화회 여행 목적을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봄바람 따라 떠나자, 2월 말에 퇴직하는 회원의 정년 퇴임을 색다르게 축하하자.’라고 정했다. 퇴직 현수막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란 주제로 준비했다. 숙식 장소는 ‘학교민박’으로 정하고 1인당 10만 원에 예약했다. 숙식비는 인원수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학교민박은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된 장목초등학교 이수분교를 숙박시설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승용차 3대에 나눠 타고 11시쯤에 시방항에 도착했다. 시방 전망대에서 ‘새섬과 살방’의 전경을 구경하고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승선 시간으로 인해 건너뛴 것이 아쉬웠다.
이수도까지 도선 운임료는 왕복 8천 원으로 2월부터 10월까지는 8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이수도까지 운항 시간은 10분 정도로 시방항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시방항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평일에 운항하는 이수도 아일랜드호에 올랐다. 출발 시간은 운항 시간표와 다르게 승선 인원이 차면 출발하는 것 같았다. 섬들에 둘러싸인 바다를 보며 귓전에 들려오는 여행자들의 경험담을 듣다 보니 어느덧 이수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학교민박은 선착장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방갈로 형식의 방 두 개를 배정받고 흡연자와 비흡연자로 나누어 사용하기로 했다.
짐 정리를 하다가 종소리에 이끌려 식당으로 갔다. 항구와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는 11명의 점심상이 차려져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대표 먹거리 중에 맛없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하물며 이수도의 특산물인 사시사철 나는 돌문어, 봄의 해풍 맞은 쑥과 고사리, 여름의 보리새우와 갑오징어, 겨울의 대구, 아귀, 물메기, 생톳, 물미역 등을 중심으로 만든 반찬에다 좋은 사람들과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국, 문어, 멸치젓과 볶음을 맛있게 먹었다. 간간이 잔을 들고 “매화, 춘풍”을 외치며 여행의 의미와 흥을 끌어 올렸다.
점심 식사 후에는 이수도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2.9km 코스다. 여객선 터미널 앞을 지나며 이수도 마을의 유래에 대한 안내문을 읽었다. 멸치잡이 권현망이 들어와 마을이 부유해지자 바닷물이 이롭다고 하여 ‘이로운 물의 섬’이라는 뜻으로 이수도(利水島)라 불렀다고 한다. 이수도는 이물도, 학섬으로도 불린다. 지금은 육지에서 남강물을 끌어다 쓰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물이 좋아 건너편 시방 사람들은 이수도까지 와서 물을 길어다 먹었을 정도였다. 이수도는 거제의 동쪽에 있는 섬으로 대금산에서 내려다보면 한 마리의 학이 서쪽을 향해 날아가는 모양이라 한다.
시계방향으로 섬을 돌아보기로 하고 여객선 터미널에서 해안 낚시터길을 지나 파도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눈앞에 보이는 거가대교와 섬들을 보며 오전의 운전 길을 되짚어보니 20리가 넘는 교량과 터널, 해저 침매 터널로 구성된 거가대교의 전체 구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해돋이 전망대를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 이수도 중심에 있는 삼 층으로 된 이물섬 전망대에 올랐다. 오늘이 우수(雨水)라 그런지 햇살은 포근하고 해풍에도 온기가 묻어온다. 남쪽 바다에는 갈매기가 노닐고 파도는 잔잔하다. 물새 전망대를 지나 해안 둘레길을 걷다가 바위와 파도, 해초가 어우러진 물가로 내려갔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물미역과 생톳을 따서 맛을 보며 여유를 즐겼다. 큰 바위 쪽으로 간 선배는 한 움큼의 소금을 가져왔다. 오목한 바위에 바닷물이 들어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소금이었다. 잠시 쉬어가는 자리에서 자연산 소금을 맛보며 선배의 ‘청산에 살리라’를 듣는 귀 호강도 누렸다.
두 시간 남짓 걸려 민박집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까지 시간이 남아 시방항이 보이는 서쪽 동산에 올랐다. 산을 내려가 물가에서 손을 씻으며 맞은편을 보니 수영해서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보였다. 하트모양의 돌을 주워 들고 돌밭을 두리번거리다가 생톳을 뜯어 먹기도 했다. 같이 온 후배가 쌓은 돌탑에 돌 하나를 올려놓으며 멋있는 새출발을 기원했다.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기대감을 안고 들어선 식당에는 모둠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해물과 반찬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져 있었다. 반찬 수를 헤아리다 말고 사진을 찍었다. 창문 너머 노을과 함께 “매화, 춘풍”을 외치며 건배를 주고받았다.
분위기가 얼큰하게 오른 뒤에 방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퇴임 행사를 시작했다. 사람이 좋아 매화회가 좋다는 선배의 축사를 시작으로 퇴직하는 후배의 답사, 축가, 샴페인을 터트리며 새출발을 축하했다. 가져온 양주를 한 순배 돌리며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건배했다.
6시가 조금 지나 눈을 떴다. 따뜻한 방에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몸이 개운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장갑과 모자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오늘 거제도 일출은 7시 6분, 아직은 어둡고 파도 소리만 들린다. 해돋이 전망대가 있는 쪽은 더 시커멓다. 잠시 기다렸다가 바다로부터 서서히 어둠이 걷힐 즈음에 해안 둘레길을 따라 어제와 반대 방향으로 올라갔다. 새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침의 고요함과 신비감을 체험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전망대에 올라 보니, 동쪽 바다의 수평선에 누워 있는 구름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해는 구름과 한참을 실랑이하다 얼굴을 내밀었다. 바다에 붉은 길이 열리고 태양은 천천히 흰색으로 변해갔다. 올해 첫 해돋이다.
은빛 물결 춤추는 바다를 바라보다 밥 먹으러 오라는 선배의 전화를 받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도 전망대를 지나 민박촌으로 가는 갈림길 부근에 방시순석(防矢盾石)과 그 위에 올려 세운 방시만노순석(防矢萬弩盾石)이 있었다. 방시순석 뒷면의 임신년 11월을 근거로 비석을 세운 연도를 추정해 봤다. 안내판을 요약해 보면 예로부터 이수도는 황금어장으로 물도 풍부하여 시방보다 훨씬 살기 좋은 마을이었으나 어족 자원이 줄어들면서 시방마을보다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때 “학섬의 학이 시방의 화살에 맞아 죽는 형국이라 방패에 해당하는 비석을 세워 막으면 잘 살 수 있다.”라는 도사의 말을 듣고 마을 뒷산에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에 대응해 시방마을에서는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을 세우고 이수도에서는 다시 방시만노순석을 방시순석 위에 올려 세웠다. 갈대에 싸여 외롭게 서 있는 비석은 상생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속을 후련하게 다독여주는 미역국과 해산물 반찬으로 아침을 먹으며 하루 일정을 의논했다. 원래 계획된 매미성에는 가지 않고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를 둘러보고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짐 정리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나와 단체 사진을 찍었다. 웃는 얼굴에 봄바람이 머문다. 이수도에서 시방항까지의 여객선은 7시 50분부터 2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9시 50분에 이수도를 출발한 아일랜드호는 매미성이 눈앞에 보이는 시방항에 도착했다.
시방항을 뒤로하고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으로 차를 몰았다. 학동 몽돌해변에서 신선대까지의 드라이브 코스는 계절에 상관없이 절경을 이루고 동반자의 배려와 유머는 여행의 즐거움을 한껏 끌어 올렸다.
몇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바람의 언덕에 올랐다. 풍경은 변함없지만 바람이 다르다. 긴긴 겨울 칼바람을 이겨낸 바람의 언덕에도 동백꽃이 피고 언덕 위의 풍차는 바람을 가리지 않고 끌어안으며 돌아간다. 해풍에 올라탄 상큼한 봄바람은 온몸을 마사지하며 솜털을 자극한다.
2026.2.22.(84)
첫댓글 이수도 사실 처음 들어보는 섬 이름 입니다. 그렇지만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남해안 쪽에 좋은 섬들이 많지요..
멋진 여행을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면 좋은 글을 쓸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