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스디의 폐위에 따른 왕후 간택과 모르드개의 등장
(에스더 2장 1-6절)
1-4.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아하수에로 왕은, 그녀의 축출 사건 전 과정을 생각해보면서 자신의 처사가 성급했을 뿐만 아니라 과도했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아하수에로가 와스디를 폐위시킨 것은 그의 즉위 3년(B.C. 483년) 째 되던 해에 일어난 일이며, 에스더를 왕후로 맞아들인 때는 그의 즉위 7년(B.C. 479년)이었다. 이 기간 사이에 아하수에로는 그리이스 정복에 나섰다가 살라미스해전에서 대패하고 돌아왔다. 이러한 암담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아하수에로 였기에 더욱 더 왕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이 같은 신하들의 제안은 왕이 이미 폐위된 와스디에 대해 연민의정을 느낀 나머지 다시 와스디를 복위시키거나, 혹은 그렇게는 하지 않더라도 폐위 사건과 관련된 신하들을 원망할 경우 그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신하들은 빨리 다른 왕후를 세워서 왕으로 하여금 와스디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일곱 책사는 와스디의 폐위와 함께 그 대신 또 다른 왕후를 선택해야됨을 왕에게 제안했었다. 새로이 선택될 만한 왕후의 자격 조건으로서 용모의 아름다음에 주된 강조점이 주어지고 있다. 이는 용모가 아름다웠던 와스디를 왕으로 하여금 빨리 잊게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아름다운 용모의 소유자를 왕후로 세워야만 한다고 신하들이 간파한 결과였다.
당시의 지방 관리 중 어떤 사람을 후궁선택을 위한 집행관으로 특별히 임명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처럼 특별히 관리를 세우고자 했던 까닭은 왕후 간택이라는 대사를 일사불란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배려 외에도, 아름다운 딸을 후궁으로 보내기 싫어서 감출지도 모를 부모들의 비협조적 자세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궁녀는 결혼 적령기의 처녀 혹은 젊은 여성을 가리킨다. 궁녀를 주관하는 관리는 모집된 여자들을 감독 교육하여 왕의 후궁 혹은 더 나아가 왕후로서 적절한 여성이 되게 교육시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왕실의 법도로는, 왕에게 나아오는 여자가 특별히 육체 정결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으며 그 기간은 정확히 1년이었다. 여기의 물품은 몰약이나 향품 등을 뜻한다.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는 왕을 기쁘게 할 만한 처녀이다. 기쁘게 하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전통적 법도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은 반드시 페르시아 여자와 결혼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신하들이 출신과 상관없이 모집된 모든 여자들 중에서 왕후를 택하도록 제안함으로써, 아하수에로 왕으로 하여금 선택의 여지를 보다 넓게 갖게끔 했다. 이에 따라 왕은 귀족 가문 출신 중에서 왕후를 뽑는 경우보다, 훨씬 더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왕후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5-6.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유다인이라는 말은, 포로 후 시대에 들어와서는 한 지파 곧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만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일반화된 술어로 변하였다. 사실 그 때에 유다 지파와 베냐민지파 등을 제외한 나머지 지파들은 성경 역사의 무대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이상 지파단위로 분류하는 일은 필요치 않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던 두 지파 중 보다 인구가 많고 또 영향력이 컸던 유다 지파의 유다 라는 명칭으로 대체될 정도가 되었다.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베냐민 자손은 남유다에 속했던 지파로서, 남유다 멸망시 유다 지파와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왔었다. 그들의 일부는 스룹바벨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이 바벨론 등지에남아 있었다.
모르드개는 바벨론에 거주했던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처럼 히브리식이 아니다. 모르드개 라는 이름이 바벨론의 영향을 받은 바벨론식 이름일 가능성이 많다.
기스, 시므이, 야일이라는 인물은 바벨론 혹은 페르시아 땅에서 살다가 죽은 모르드개와 가까운 시대의 조상일 가능성이 높다.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B.C.605년에 다니엘 등을, B.C.597년에 여고냐 등을 , B.C. 586년에 시드기야 등을 붙잡아 갔었다. 그런데 여기의 여고냐는 유다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왕이었던 여호야긴의 다른 이름이다.
(요약 정리)
에스더 2장 1-6절은 와스디 왕후의 폐위 사건들 이후의 상황을 설명한다. 와스디 폐위와 에스더의 등장 사이에 일정 기간이 경과했음을 의미한다. 이 기간이 그리스 원정 시기와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스를 상대로 한 대규모 전쟁에 참여했다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한 후 귀국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왕이 와스디를 회상하게 된 시점과 연결되는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로의 불복종에 보였던 극도의 분노 상태가 진정되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폐위된 왕후를 회상하는 시점이 되었는데, 이 회상은 후회와 상실감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인식도 포함한다.
이런 상황에서 왕의 책사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왕의 마음을 전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왕후를 책봉하는 의견을 내고 왕이 이를 받아드리고, 하나님께 준비하신 에스더가 등장하기 전에 먼저 모르드개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계획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과 결정을 통해 진행되는지 보여준다. 왕의 회상과 그로 인한 새 왕후 선발은 에스더가 왕후가 될 길을 열어주며, 이는 나중에 유대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연결된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섭리적 계획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연극에 올려진 배우와 같이 연출자의 의도대로 행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도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가 있다.
비록 그들이 행하는 일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가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움직이고 실행되는 것이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과 관련된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택한 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