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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조명
회상 또는 기타 외 4편
김자현
1994년 『문학과 의식』 등단, 2017년 경기문화재단 수필부문 <혜화동 썸머타임> 입상, 장편해양소설 <태양의 밀서>, <태양의 밀사>, 시집 <화살과 달>, <앞치마를 두른 당나귀> 외 다수
내 안에는 늘 기타가 살지 삶이 늘 기타 등등 안에 있었으므로 파랑치는 생애의 이랑 이랑을 건너 뛸 때마다 달 아래 슬픈 짐승처럼 기타아 울린다네 기타아 둥둥 기타 등등
패전이 예정된 전장처럼 전승된 기억이리라 내 청춘의 밤은 불안의 전조등이 깜빡거렸지 어제도 불발이었던 생 내일도 불발일까 다시 돋는 열꽃 같은 불안 위로 밤은 지친 혀를 내밀고 떨림과 떨림의 입자 비집고 절망적으로 기타가 우네 아침이 온다는 것은 오십 미터 삼십 미터 그 전방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패전을 향한 저격수 발소리 확인하는 것이었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의 관성이 붙을 때쯤 태양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속도에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지 나는 이제 불안이라는 전동자석의 구리선으로 기타아 줄을 맸다네 기타아 둥둥 기타 등등
내 안에는 늘 기타가 울지 불안과 초조가 건너는 간헐 사이에 체념이라 서명된 포기각서를 흔들자 기타는 이제 다른 음역에서 소리 낸다네 달맞이 꽃그늘 아래 우울이 기른 푸른 밤의 잔등을 타고 앉아 기타아 둥둥 기타 등등
아버지의 풍차
내 푸른 유리병은 비어 있어요 그들이 다 마셔버렸으므로 술이었는지 지하 몇 백미터 암반수였는지 그건 나도 모르죠 내 생애 아직 남았으므로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 푸른 유리병에는 아버지 고장 난 풍차와 가락지마저 뽑힌 어머니 흰 손가락 들어 있어요 어머니가 연지를 곱게 바르고 핀으로 머리를 높이 올릴 때면 아버지가 밟는 페달에 가속도가 붙을 때죠 돌다가 서다가 하는 아버지의 풍차말이에요
존 에프 케네디 암살 소식을 말하는 아버지의 두개골에서 총성이 들리던 어느 날 그 때쯤, 어제 이태리에서 직수입한 마카로니 기계가 공장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루사이에 백골처럼 하가마가 된 아버지 돌아와 읊조리셨죠 그 후로 아버지 풍차는 내 푸른유리병 속으로 거처 옮겼어요 동풍이든 서풍이든 바람이 불면 푸른유리병 나는 기울이고 흔들어대요 석고 되어가던 어머니 흰 손가락 아버지 대신 바람개비 건반처럼 눌러요 이승에 놓고 간 안타까운 박자에 유리병 노래를 해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푸른 아버지의 풍차 말이에요
말판
정월 대보름 친구들 모였으니 윷 한판 놀아보자
느티나무 앞 마을을 깔고 앉아 네 개 윷가락
더덩실 춤을 춘다 걸 나오면 개를 잡고
모 나오면 모퉁이를 돌자
또 모가 나오면 저 눔을 잡을 텐데 으랏차차-
쌍 윷 놓고는 오늘도 운 좋게 줄행랑이다
고무줄 끊던
웬수 같은 저 눔 저거 이름이 뭐더라
말판이 달린다 왕년 달리기선수 광숙이 달린다
강원도 충청도 깨복쟁이 친구들 동창회 한다
다단계 걸려 함정에 빠졌다 달려온 말판
삶이라는 엇박자에 넘어지고 자빠지고
펄쩍 건너뛰던 생의 징검다리 징하게 미끄러
눈깜짝할 새가 물어간 살빛 고운 시간들
쉼 없이 열리고 닫히던 인생 경첩에
속수무책 삭아버린 얄미운 청춘들
덕석 같은 세월 앞산이 받아칠 때 멍석보다
두꺼운 이쁜이 넉살에 뒷산이 흔들린다
중년마당이 윷놀이 한다 성도 몰라 얼굴도 몰라
동창이라는 외간 남자와 불어터진
수제비 같은 여자들 계절을 던진다 으랏차차!
폐허에서
오월 눈부신 햇살 삽날에 매달려 반짝거릴 뿐
폐허 속에는 쥐새끼 같은 바람만 남아
검붉은 눈을 치뜨고 있다
다락방 교회 낡은 십자가가 육중한
크레인에 들려갈 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퀭한 눈동자 부서진 골목길 여기저기
유리구슬처럼 굴러다니고 어디선가
삶이었을 듯한 곳에서 비명이 찢어진다
뭉개진 하늘 귀퉁이
가시내 브래지어가 펄럭이는 오후
헛간과 장독대도 찌그러지고
태양을 향해 뜀박질하던 유년도 천국도 박살나고
은발을 쓰다듬던 느티나무 아래
서늘한 그늘도 쓰러져
숨을 곳 없는 북한산 땅거미 절뚝거리다 훌쭉
배 꺼진 똥개에게 툭- 한 마디 던진 뒤
헐린 바람 삐꺽이는 기억의 계단을 찾아든다
치사한 시대와 손잡은
수상한 노을의 따귀를 갈기고 손 털고
돌아선 여기저기 넝마 같은 살점들 투덜거린다
* 은평구 재개발지구를 지나며...
*엔니오 모리꼬네
엄마-구멍 난 중절모를 쓴 말 없는 엿장수 또 왔어요
우그러진 냄비, 광분이 찢어진 말표 고무신 서울사이다
병들이 리어카 앞으로 줄줄이 뛰어나와요 엿판 밑
나팔 달린 축음기에선 또 엔니오모리꼬네 걸어나와요
무릎뼈 허연 아이들 백동전 입에 물고 만화방 텔레비전
앞으로 달리던 날들이었죠 엄마는 황소 들랑거리는
문창호지 밖에 계셨어요 시래기국 끓이느라
할머니 드릴 참기름 바른 굴비를 굽느라구요
흰 와이셔츠 속에서 아버진 늘 음악다방 디제이에게
리케스트뮤직 메모지 내밀듯 오이지보다 더 마른 목의
오빠에게 <돌아오라쏘렌토> 활보의
<내친구에게내말전해주>를 청하셨죠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오빠의 <성불사의 밤>을 타고 내려오면
마카로니웨스턴, 앨라배마보다 더 사막 같은 날들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글오글 만화방 라이파이와 팝콘
처럼 쏟아지는 텔레비젼 외화의 어쩐지 빛나는 둥근
언어 앞에서 우린 날마다 총을 맞았죠 앙가슴을 우리
영혼을 그들 총구 앞에 들이댔어요 서부 총잡이들
절묘한 백발백중 앞에 가난이 산산이 부서지는 줄 알았더니
남은 건 북악 밑에, 설맞아 너절한 전통이라는 것들이었죠
니노로타에 열광하던, 알랑들롱과 태양이 가득한 지중해
날아가던 언니는 날개에 총을 맞고 구멍 난 엿장수
가위질 소리 들리는 그 동네로 떨어졌어요 헐리웃 키드
대열에 합류했던 거지요 지금도 갈 길 모르는 젤소미나
그리워 *페델리코펠리니의 “길”에서 우리 머리 허옇게
늙어가고 있지만 구멍 난 중절모, 나팔 달린 축음기에
엔니오 모리꼬네 엿장수 출몰하던 그 골목에 가면
행주치마 두르고 내 젊은 어머니 아직도 거기 계신가요
* ?엔니오 모리꼬네-6~70년대를 풍미한 이태리 영화음악의 거장 페델리코 펠리니 ?모리꼬네와 호흡을 맞추던 세기의 영화감독
썩을 것들만 함께 가자 외 4편
이제 가자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가자
겪을 만큼 겪었으니 이제 가자 올 만큼 왔으니
우리 이제 돌아가자
포물선 그으며 별똥별 떨어지는 그곳으로
쇠꼬챙이에 산 사람을 걸어 놓는 인간 푸줏간 너머
우리는 빈손으로 가자 총균쇠와 돈신의 신당
모조리 부수고
총균쇠 좋아하는 놈들은 모두 떼놓고 가자
우리의 일을 빼앗는 AI와 놈들의 어미 아비들까지
모두 떼놓고 우리는 홀가분하게 가자
일회용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모조리 일회용 컵에서부터
일회용 사람들, 사이비들도 모두 떼놓고
줄기세포도 모조리 두고
이승에 놓고 갈 썩을 목숨들만 함께 가자
여간해선 썩지 않을 똑바른 정신만 들고 가자
저 몽골 대초원을 넘어 해가 지면 으드득 떨릴지라도
말 발굽 소리 대지를 흔들고 무노동
일확천금을 모르는, 허리굽혀 이삭을 주울 줄 아는
도도히 다가오는 인생에
든든히 박차를 가할 줄 아는 우리 젊은이 잠시 쉬면서
필릴리 각주를 불고 있는 그 언덕을 찾아가자
검은 구름도 셰도우 커튼도 없이
밤이면 모깃불 연기 자욱한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새파란 하늘에 두레박 드리우고
퍼올리고 퍼올려도 바닥 드러나지 않는 은하수 강가에서
별을 건지는 그리운 그곳으로 우리는 가자
찰랑거리는 은하수에 별 둘을 건지면 이웃에 나눠주고
별 셋을 건지면 하나는 공동의 곳간에
갈무리하는 마을
똬리에 떨어지는 물방울 훔치며 물동이 이고 가는 숙이를 만나러
우리는 거기로 가자 쑥부쟁이며 마타리
다리 긴 개미취 흔들리는 들판에서 눈 맞은 남남북녀
꽃반지며 화관을 끼워주고 씌워주는
선남선녀 합궁의 밤, 축제가 열리는 마당을 우리는 찾아가자
집집마다 북두칠성의 눈을 한 아이들
산에 들에 봄꽃이 피어날 때
칠 형제 칠 공주 칠 남매 나와서 파종을 하고
종마를 길들이는 흑백의 마을
흑백필름을 천천히
영사기 돌리는 그곳을 향해서 우리는 모두 가자
돈
한 조기 두 조기 순옥이네 나물처럼
동그랗지도 한복을 짓던 여자가 삶은 나물은 파랗지도 않아서
장에서도 늦게 팔렸어
사흘 모은 돈 2천 원으로
책보가
창피하다고 발광하는 막내의 빨간 체크무늬 책가방을 샀어
아버지 엄지 손톱만한 숫장식을 밀면
딸깍- 소리 나는 반짝이는 금장식이 달린
돈은 좋고 말고
사근동 다리 건너
을지로 6가 서울사대부고까지 석 달이 넘게
울타리만 걸치고 다니던
첫째의 맹꽁이 운동화를 장만하는 바람에
월세를 모으지 못했어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실신하는 엄마를 두고
막내는 모른 척 우물가에서 가끔 보리쌀을 씻었지
나물을 팔아
주머니에 들고 오시는 어머니의 푼돈은
질식해있던 목숨에 수혈을 하듯
큰돈은 구름 같아 우리는 잔돈을 좋아했어
막힌 혈류를 뚫고 식구들의 윽 죄던 공포를 따돌리니까
타들어가는 목마름에
해갈을 하던 냉수 한 대접처럼
애국의 길
최저임금, 비정규직보다 싼 노동을 구할 곳은 없소
왜요, 난민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난민을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하라면서
법으로는 금하고
불법으로 그들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루트를 슬쩍 열어놓으면 됩니다
정치가는
추방하겠다고 겁을 주고 난민을 탄압하란 말이군
그 틈에 기업은
불법 체류자를 잽싸게 고용하는 겁니다
체류비를 빼면 껌값 정도 남을 값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것이죠
인간은 본시 차별과 계급을 좋아 하지요
내국인 노동자는 그보다 약간만 차등을 두면
불평이 없죠
그리고는 그 난민의 나라에는
평화가 없도록 지속적으로 이간질하여 교란하고
정부군과 반군이 계속
전쟁하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무기도 팔아먹고
일석 이삼사조의 이득이 발생하는 겁니다
불법과 불의로 책정된 임금 아닌
착취와 갈취라는 노다지를 주울 수가 있죠
기업하고는 밀실에서 악수를 하고
애국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난민은
끝없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국경을 넘어오겠죠
푸줏간
콩나물 값을 깎아 모은 십 년 이십 년 후
작은 평수 한 칸 마련하는 돈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초식동물처럼 채소만 먹다가
양지머리 한칼 베어다 끓이는 고깃국 냄새는
삼동을 다 뒤흔들었어
마을 푸줏간 쇠고리에는 각이 떠진
여러 부위의 소와 돼지들이 전부였지
소박한 사람들이
차곡차곡 모으던 착한 배춧잎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공룡처럼 큰 덩치의 놈들은 종적이 묘연해
큰 숫자를 찾아서 지구 밖 별들의 나라도 헤맨다는 군
어떤 이는 조폐소에 가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토목이나 건설 현장에 가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다야몬드 광산에 가면 있다고도 하지
내전이 일어나는 곳에 뒷짐 지고 있는 놈들이라고도 하고
도처에 깔려있다는 놈들은 대체 만날 수가 없어
그들이 상륙했던 흔적으로 확인을 하지
놈들은 기아와 난민을 배설 하거든
쩍쩍 갈라진 대지에 고꾸라진 아이
염소의 항문에 머리를 박고 오줌 받아먹는 아이들
뒤에서 아이의 목숨을 기다리는 아이만한 독수리처럼
21세기 푸줏간에는 산 사람이 걸려있어
10초 후면 숨넘어갈 헐떡이는
앙상한 아이들을 촬영, 전 세계로 송출하면서
기아와 난민의 거처 자본주의의 푸줏간에서
그들은 또
난민기금이라는 이름의 돈을 긁어 들이지
박제된 노동자를 구출하라
별들 총총한 밤하늘보다
화려한 첨단 다투어 스스로 별이라고 자랑하는 곳
대한민국 제일의
경제 중심지 최고 소비의 거리 강남역 사거리에
초고층으로 자본이라는 콘크리트에
벌레처럼 낀 노동자들 발 딛을 지상이 없어
반 평도 안 되는 허공에 둥지를 튼 사람 있다
너희들의 명의로 된 자본의 본산은
목숨을 바친 억울한 청춘들의 원혼과 철벽에 압사당한 인권과
일한 만큼의 대가만을 주문하는 신성한 노동
그 착취로 지어졌음을 세상은 안다
자본주의가 갈취한 것은 풍족하진 않으나
마을 앞 상가에서 골뱅이 소면과 기울이던 맥주 한잔의 단란한 저녁과
부녀와 모자가 함께
운동화를 고르던 날의 유열과
알뜰시장에서 다지던 살뜰한 미래
꽃무늬 원피스를 사러 상가를 헤매던 날의 설레임이며
조가비 줍던 어느 여름날
어촌의 붉은 낙조 속에 갈무리된
가족이라는 이름의 소소한 행복을 삼켜버리는 것
그리하여 좌절과 패배로 얼룩진 거리에는
각다귀 같은 사람 넘쳐날 것이며
불안과 공포가 자리를 잡고 살벌이 미래를 점유할 것이니
큰 자본은 각성하라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주의라는
이윤이라면 남의 목숨도 불사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막힌 수로가 뚫리고
공정한 분배가 따뜻한 공존이 이웃과 이웃으로 흘러들어야
웃음 짓는 세상이 올 것이니
자본과 노동의 하모니가 작업장에서 마을마을에서
축제처럼 열리는 곳에서 우리 2세와 3세들
발 뻗고 자는 날이 도래할지니…
* ?강남역사거리 삼성 노조 탄압에 김용희씨 고공 단식 농성 55일 째
글은 운명처럼 태어나야 한다
공부가 짧았으나 문단에 나오고 나는 상당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당시 하늘의 별 같은 조정권 선생과 기초부터 쌓았으며 “미팔군의 찝”으로 인생의 급전직하의 길을 걸으셨던 문단의 풍운아 정공채 선생의 시를 보면서 시가 시대와 역사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 그 역학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하게도 방송대에서 영문학에 입문하면서 시에 대한 지평이 조금 넓어지는 것 같았으며 또한 고대 불문학의 대가들과 보들레르 스타디를 하면서 내 시는 격을 달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닿은 인연들로 인해 당시의 별들을 나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소홀했다는 반성이 들곤 한다. 하지만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의 작용이기도 했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등단 초기부터 가졌던 생각, 글은 운명처럼 태어나야 한다는 것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산문도 그러함인데 시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예술의 꽃이라는 시 또한 상상의 숲을 지나는 동안 나무와 꽃과 별을 입힐 수 있지만 그곳에 작자의 영혼은 투영되고야 말므로 영혼의 작업이며 숙명이며 운명이다.
그렇다고 시가 단편적인 감흥의 작업일 수만은 없다. 예술은 선점이 그 본질이므로 시대와 역사를 아우르며 앞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앞서 나가기 위해 그 외양이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이 기괴로 빠져서야 되겠는가. 진보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 보편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듯 예술도 앞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불명의 착란적 기형아를 잉태해선 안 된다고 보여진다.
또한 은유니 암유로 수사를 동원하여 시어만 바꾸는 것을 시로 알기도 한다. 이는 언어의 기술자일 뿐이다. 이는 수학처럼 도식만 터득한다면 누구든지 얼마든지 시를 생산할 수 있다. 시는 수사라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사람을 포함한 세상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눈, 사람을 포함한 그 모든 자연이 차별없이 훼손되지 않고 공존해야 하는 지극한 시대정신, 미래를 가늠하여 제시할 수 있는 전 시대를 아우르는 역사성과 통찰력, 이런 것들이 혼합된 정신성이 전제될 때 그 토양에서 형질이 다른 각자의 시가 탄생을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 영혼의 작업이며 또한 시대를 앞서 가는 방향타가 될 것 아닌가!
(2019년 8월 설운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