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연줄, 지연, 학연, 괜시 - 작동원리와 효과 그리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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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연줄, 사적 관계를 중국에서는 괜시(Guanxi)라고 하는데, 중국의 경우, 문화혁명(1966~1976)과 경제 개방(1979)을 거친 후에도 인맥 관계는 기업이나 사회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궨시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괜시는 중국 문화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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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관계는 가족, 친척, 같은 고향,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이, 같이 공부하던 사이, 스승 - 제자 사이에서 발생하며,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사람을 붙잡고 얘기를 해봐야 확인할 수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가족 관계 하나가 친구, 이웃 관계, 직장 동료 관계를 합친 것보다 강력하다는 특징도 있다. 가까운 관계가 그보다 먼 관계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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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서양인들과는 달리, 인간을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보고, 사회 질서,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에 따라 인간관계를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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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의존적인 자아는 가족, 친구, 친척과 같이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삶을 의존한다는 의미이다. 뿐 만 아니라, 자신도 이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는 의무를 떠안게 된다. 즉, 서로 돕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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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한 후, 서구에서도 이런 인맥 관계를 연구했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익숙한 서양의 사회 과학자들은 이런 인맥, 괜시 관계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서양 사람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먼 친척이나 친구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념을 영어로 번역하기조차 어려운데, 보통 ‘personal connection’이라고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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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서양인들은 이런 인맥 관계는 족벌주의, 정실주의에 불과하며, 부정부패의 온상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으나, 재산권, 계약, 법률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인맥 관계가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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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완전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사회가 발전할까? 확신할 수 없다.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뜻이다. 모든 시민들이 합리적이기만 하다면, 사회가 오히려 붕괴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기 바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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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자동차가 정말로 믿을만한지, 나랑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정말로 믿을만한 사람인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고, 자칫하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인맥, 연줄, 괜시 관계에서는 어떤 놈이 사기를 치거나 나쁜 짓을 벌이면, 금방 눈에 띄고, 소문도 빨리 퍼진다. 나쁜 짓을 하다가는 바로 매장당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제도가 완비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인맥, 괜시 관계가 일종의 보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특히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맥, 궨시는 위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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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관계는 있다.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활용하는 추천제가 그것이다. 개인 추천을 통해 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일을 못하면, 추천한 사람의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동 감독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적절한 인맥 관계는 조직의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맥 관계는 특수한 자원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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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판사, 공증제도, 영수증, 예약금, 계약서, 증명서, 경비원 같은 것들을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겨났고,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인맥, 연줄, 괜시는 의무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므로, 이런 비용을 오히려 줄이는 효과가 있다. 상대방이 도와주면, 내가 도와주고, 상대방이 배신하면 가차없이 내쳐버리는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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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화교들이 경제를 장악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응집력이다. 이것은 인맥, 괜시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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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학연, 동문, 궨시 관계는 기본적으로 차별적이다. 사람을 가려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유대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결국 폐쇄적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인맥, 괜시 관계망은 무엇보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불리한 시스템이다.
돈이 없으면 선물이나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인맥, 괜시를 구축하기가 어렵다.
뿐 만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단지 친척이나 대학 동기라는 이유로,
아니면 인맥을 잘 활용했다는 이유로 인정을 받거나 리더가 될 가능성도 있다.
P.S
인맥, 괜시는 사회적 자본의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치명적인 부작용도 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단계, 피라미드라 하겠다.
어쩌면, 지금의 선거 결과와도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참조:
이정전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Xiang Yi ‘Guanxi and Leader Member Exchange in the Chinese Context’(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2002)
http://en.wikipedia.org/wiki/Guanx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