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중 하나로 동해 일출경으로 유명하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일출 경관으로 유명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의상대 일출
낙산사는 관동십경에 옛 모습이 잘 남아있고, 삼국유사, 동문선,
동문여지승람 등의 고문헌에 많은 시인묵객 등의 낙산사 창건 및 중수
기록과 유람기, 경관을 노래한 시문이 다수 전하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큰 명승지로 홍령암과 함께 대한민국 명승 제27호로 지정되어있다.
새벽녁의 의상대(義湘臺)
의상대는 낙산사의 정자로 의상대사가 좌선수행을 했던 곳이라
전해지는 곳이며, 원래는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언젠가 소실되었고,
1925년에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웠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유산이다.
동해안 일출경
일출전의 동해안
관음보살상, 종각, 연하당(蓮河堂)과 홍련암(紅蓮庵)의 일출전 풍경
붉은 여명이 밝아온다
의상대의 여명은 좋았으나 먼 바다에 검은 해무가 일어
둥글고 산뜻한 일출은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검은띠 위로 솟아 오르는 일출
의상대 일출
잠시 솟아 오른다
밝은 빛을 발하는 일출
아침 햇살에 붉게 비치는 언덕위의 홍련암
종각
한 점의 그림같은 의상대
해안 절벽위의 홍련암
홍련암 불상
홍련암 용왕단
아침 햇살에 비치는 해국과 홍련암
해국
연하당의 풍경(댕그랑)
햇살을 받는 동종
의상대 일출과 홍련암을 둘러보고 낙산사로 향한다
의상기념관(義湘記念館)
의상기념관은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전시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낙산사의 옛 모습과 의상에 대한
전시물들, 2005년에 있었던 화재에 녹아버린 동종과 화재 당시
타고 남은 대들보로 만든 바이올린 등을 전시 한다고 한다.
관음지와 보타각, 그뒤로 지장전
보타전은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근래에 지어진 건물로,
건물 안에는 관음상 1,500좌를 봉안하였으며, 천수천안 관음상을
비롯하여 얼굴과 팔이 여럿인 불상이 다수 세워져 있다.
사천왕문 ~ 2005년 화재 때 불타지 않은 건물
낙산사는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오봉산 동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11년인 671년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낙산사라는 사명은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인도의 보타락가산
(補陀落迦山)을 낙산(落山)이라고 줄여 부른 데서 따왔다.
범종루
보타락가산은 불명(不明)으로 인도 동남쪽 바닷가에 면하였다고 하고,
혹은 섬에 있다고 전하는데, 그래서 동해바다에 있는 오봉산에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절을 세우면서 보타락가산에 빗대어 낙산사라 이름 지었다.
빈일루(賓日樓)
삼국유사에는 의상이 관세음보살을 만나고자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
(水晶念珠)를 건네주며 "내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대나무 2그루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圓通寶殿) 터라고 한다.
응향각(凝香閣)
이를 계기로 오봉산을 관세음보살이 있는 낙산(보타락가산)이라 여겨
낙산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며, 이외에 부속건물로 의상대(義湘臺),
홍련암(紅蓮庵) 등이 있으며 일대가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었다.
대성문(大聖門)
3대 관음기도도량으로도 손꼽히고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며,
경내에는 조선 세조 때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및 홍예문이 있다.
원통보전과 7층 석탑
7층 석탑은 보물 제499호이며, 원통보전 내부의 보물 제1362호인
건칠관음보살좌상도 2005년 불에 타기전 옮겨 놓아 화를 면했다.
원통문(圓通門) ~ 해수관음상 가는길(꿈이 이루어지는 길)
낙산사는 2005년 4월 4일 발생한 산불이 이튿날인 4월 5일
낙산사로 번져, 승려와 신도들은 물론 소방관들의 끈질긴 진화에도
산불을 막아내지 못하고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으며, 보물
제479호이던 낙산사 동종도 녹아 내려서, 7월 7일 지정해제 되었다.
해수관음상 측면
화재 후, 낙산사가 가장 번성했던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이 나면서,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복원불사에 착수하여
2년뒤인 2007년 4월 5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종각과 해수관음성상 조성연기비
해수관음상
해수관음상은 높이 15m, 둘레 3m의 거대한 관음불상으로
강화 석모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3대 해수관음기도 도량으로
꼽히며, 해수관음상은 1971년 조각을 시작, 1977년에 완성하였다.
훤히 보이는 동해바다
한눈에 보이는 설악산
홍예문(虹霓門)
홍예문은 1467년(세조 13)에 세조가 친히 낙산사에 행차하여 세운
무지개 형태의 석문으로, 근처 강에서 나온 돌들을 사용해 쌓았는데,
홍예를 조성한 석재 26개는 당시 강원도의 고을 수를 표시한 것이라고
전하며, 2005년 화재 때 문루도 불에타 홍예만 남았었다.
산불에 살아 남은 낙산사 송림
관음성지 낙산사 일주문을 뒤로하고 속세로 나온다.
낙산 해수욕장 모래사장
낙산사가 있는 북쪽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