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9절 지금도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욥은 처절한 고독과 고통의 순간에서도 자신의 대속자가 살아계셔서 언젠가 일어나 반드시 자신의 의를 변호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불의가 승리하는 것 같고 하나님도 의인의 고통에 무심하신 것 같지만, 언젠가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지고하신 뜻을 우뚝 세우실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까? 때가 되면 모든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처절한 고통 소리를 환희의 찬송으로 바꾸실 주님을 인내함으로 기다립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5절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한 말은 위로가 아니라 괴롭힘이었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이의 마음과 형편을 돌아보지 않고 정답 아닌 정답으로 모든 것을 짓부순 학대였습니다. 고난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입니다. 설령 잘못이 있더라도 정죄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나은 길입니다.
6-12절 욥이 불평하는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닙니다. 고난의 이유입니다. 자신의 순전함을 아뢰고 싶은데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시고 나무를 뽑듯 희망을 뽑으셨다고 말합니다. 이유 모를 고난으로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아무리 구해도 하나님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아무런 소망도 없는 것 같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이 다 헤아리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해야 합니다. 나중에 욥은 그렇게 하지 못한 시간을 회개할 것입니다(42:6).
13-22절 욥은 소외당하고 고립된 자신의 상태를 탄식합니다. 하늘도 친구도 친지도 자신을 멀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원수로 여기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욥은 자기를 불쌍히 여겨줄 사람을 간절히 원합니다. 고통스러운 사람이 고독하기까지 하면 괴로움이 배가됩니다. 다가가서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있어줘야 할 사람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첫댓글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너무도 고통스러운 가운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겻을까 아버지 저는 주일성수도 잘하고 힘든 중에 헌금도 하고 봉사도 했어요 아버지 제 기도 들으셨습니까 한없이 슬프고 힘들다는 외침을 들으셨나요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고통을 보고는 계신지요ᆢ예전에 한꺼번에 모든 고난이 찾아왔을때 그래도 예수님믿는다고 선하게 살았는데 이해할수 없는 나의 상황속에서 모든것을 체념하고 붙어있는 숨으로 다시 시작했을때 아버지는 니가 울던 방안에서 같이 있었다고 니가 힘내서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시고 환경을 회복시켜 주시고 기쁨으로 찬송케하신 역전의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여호와를 찾는 이에게 만나 주심을 보여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