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자라는 밭
마태복음 13:24~30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태복음 13:29,30)
찬송가 381장(나 캄캄한 밤 죄의 길에)
얼마 전에 휴가 때에 시골에서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전도하게 되었는데, 아직 믿지 않는 친척이 말하기를 자기 주위에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 때문에 시험들어서 도리어 교회 못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교회 안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하나님은 없는 것 같고, 죽으면 그냥 끝이지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다는 말은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일부가 덕을 세우지 못한다고 해서 교회가 진리가 없고 참 신자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는 것은 논리 비약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차고 다니는 목걸이 중에 가까 진주 목걸이가 있다고 해서 보석상에 있는 모든 진주 목걸이가 다 가짜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주유소에서 가짜 석유, 가짜 휴발유를 팔기도 하여 뉴스에 뜨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주유소에서 파는 기름이 다 가짜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방앗간에서 가짜 참기름을 판다고 해서 방앗간마다 팔고 있는 참기름이 다 가짜 참기름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는 신자 중 일부가 덕이 되지 않고 속이기도 하고 세상적인 모습을 여전히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신자가 모두 가짜 신자인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 중에는 성숙한 신자도 있지만 아직 연약한 어린아이 신자도 있습니다. 어린아이 신자는 성령으로 거듭났으나 아직도 육신에 속한 기질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에서 세상적인 것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지내다 보면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 마음 속에서 계셔서 그들을 지키고 깨우쳐주시고 회개의 마음을 주시어 순간 순간 붙잡아주시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시간이 흐르면 성숙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연약한 성도가 화도 잘 내고 이기적이고 속이는 말도 때로 하고 욕심대로 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가짜 신자는 아닌 것입니다.
물론 가짜 신자가 있습니다. 교회 다닌 지 세월이 오래 되었으나 여전히 그 마음속에 성령이 아니계시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고 죄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내세의 심판도 안 믿고 천국 지옥도 안 믿고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신자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점점 세월이 갈수록 교만해지고 자아가 강해지고 인간 자랑이 많아집니다. 그의 입술에는 예수님에 대한 자랑과 감사가 없습니다. 교회와 주님에 대한 뜨거움 없이 습관적인 종교 생활로 교회를 다닙니다.
그래서 가짜 신자와 연약한 신자와 잘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상 교회에서는 성숙한 신자도 있고 어린아이 신자도 있고 거듭나지 아니한 육에 속한 불신앙자도 있습니다. 그들이 지상 교회 가운데 함께 섞여 자랍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린아이 신자와 가짜 신자를 경험하고 저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 못 다니겠다고 말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니다가도 분명히 연약한 신자나 가짜 신자들 때문에 마음이 상할 일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는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상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은 용서받은 죄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덜 다듬어진 점들이 남아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완벽한 성도, 완벽한 신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야곱의 열두 아들들도 다 불완전하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을 일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 베드로가 “형제가 자기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줄까요, 일곱 번이라도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에 주님은 대답하시기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번씩까지라도 하라”(마태복음 18:22)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 자신부터 시작하여 다들 불완전하기에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신앙 생활하면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면서 서로 용서하며 인내하며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죄를 발견할 때 늘 곧장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함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회개 공동체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사죄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그 은혜를 늘 간구하면서 평생에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넘어짐을 보면서 질타하고 비난하기보다는 불쌍히 여기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주고 격려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리할 때에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열매를 맺어가게 될 것이며, 우리 때문에 실족하는 자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보면서 신앙의 복스러움을 발견하고 자기도 교회에 나가고 싶어하는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분명 교회는 주님이 오실 그 날까지 불완전한 모습으로 존속할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가짜 신자를 뽑아내려다가 자칫 연약한 어린아이 신자까지 뽑혀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놔두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의 불완전함을 보면서 불평하지 말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까지 하나님께서 용납해주시고 오래 참아주심을 생각하며 도리어 감사합시다. 그렇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넓은 아량으로 형제 자매의 연약함을 용납합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자가 되고, 성숙한 신자가 되어서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됩시다. 주님께서 경고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태복음 18:6,7)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신자들의 걸림돌이 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합시다. 그리고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를 인하여 주님을 발견하고 교회 나오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보이는 전도지, 전도의 나팔수들이 됩시다. 참으로 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자라나는 불완전 모임이므로, 사람을 바라보기보다는 항상 완전하신 우리 주님을 늘 바라보고 주님 닮아가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