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에 몇 번 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버스의 운행 간격도 문제지만, 시간도 일정치 않아 끼니를 거르기 일수인데다, 도보이동의 한계상 맛집 탐방은 언감생심이고, 운좋게 들어선 식당에서도 1인성 메뉴밖에 주문하지 못하는 애로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녁무렵 서해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배도 출출하던 차에 해변에 늘어선 조개구이식당 한군데에 들어가 호기롭게 소주와 함께 삼합 2인분을 시켰다. 바깥 풍경을 내다 보니,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을 비롯 연인 친구 등 많은 사람들이 바다의 낙조를 배경으로 연신 스마트폰을 눌러대고 있었다. 그들의 환한 얼굴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들 삶이 그려놓은 문명(文明)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2 현대 과학문명은 이제 AI 시대를 넘어 소위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문명의 의미를 인간이 이룩한 물질적 사회적 발전으로 한정한다면, 문명은 만들어 가는가? 아님 바뀌어 가는가?
굳이 해묵은 창조론(創造論)이나 진화론(進化論)을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문명의 다양한 측면 -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지적 - 의 이면에는 인간이 인식(認識)의 주체(主體)라는 사변철학적 사고(思辨哲學的 思考)가 깔려 있는 듯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창조 노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힘으로 완벽한 생명체를 창조해내고 싶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도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괴물의 탄생에 당혹해 했듯이 세상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야심찬 시도는 자칫 '배가 산으로 가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법이다.
3 한편, 오랜 농경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는 중국, 인도를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인간의 감성(感性)과 직관(直觀)에 비중을 두고, 공동체(共同體)의 윤리적 교훈(倫理的 敎訓)을 중시하거나, 자연(自然) 혹은 운명(運命)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자연히 인간이 주체가 된 문명의 창조 진화적 측면(創造 進化的 側面)보다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된 순환적 성격(循環的 性格)을 띠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동양적 사고방식은 비록 주류 과학문명의 흐름에는 뒤떨어질 지 모르나, 인간 본연의 탐욕(貪慾)을 경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유지하는 데는 오히려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균형점(均衡點)으로 돌아가려는 자연(自然)의 힘을 기대해 본다.
4 문명(文明)을 어떻게 바라 보든, 우리는 사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살아가야 한다.
마치 끝없이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리고 있는 시지프스(Sisyphus)처럼, 오지도 않을 고도(Godot)를 숙명처럼 기다리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들 문명의 모습에서 소중히 지켜가야 할 게 있지 않을까? 가족(家簇)? 종교(宗敎)? 그리고 그 무엇?
내일은 또 다른 문명의 박물관인 부여 공주 지역으로 간다. 빡센 여정에 대비해 잠이나 푹 자둬야겠다.
(금년 6월 여행 명상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