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건입동 1106-5번지(연무정로 63-1) 제주동초등학교 후문 서쪽 첫골목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고건축
건입동 1106-5번지(연무정로63-1) 제주동초등학교 후문 서쪽 첫골목에 일본식 건물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의 특징은 비늘판벽(판자를 수평으로 잇대어 만든 벽)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스패니쉬기와가 올려져 있다. 건물 정면은 중앙부에 벽보다 밖으로 돌출된 현관이 있고 서쪽으로는 그 벽과 일직선으로 벽이 이어진다. 현관 양쪽에 창이 있으며 측벽에도 창이 있다. 동쪽 측벽에는 출입문이 있다. 뒤에는 정면의 현관과 대칭되는 모양으로 돌출되게 만들었으나 같은 위치에 문이 아니라 창이 있다.
1940년 공사를 시작해서 1943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무수주정제주공장이 완성될 즈음 지어진 주정공장 임원들의 사택(私宅)이었던 건물이다. 지역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 일대에 비슷한 형태의 사택들이 십수채 지어졌으며 이 동네를 사택동네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본 패망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어 불하의 대상이 되었다. 주민의 말로는 ‘끗발있는 사람들이 불하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원래 이 지역 주민들은 제주동초등학교 서쪽 마을을 사택동네라고 부른다.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에 따르면 이 건물은 ‘건입동 유씨 주택’이라고 되어 있으며, 주정 공장설립 이전인 1936년 2월 건축허가를 받아 몇 년 후 건축된 집으로 기록돼 있다. 현 소유주는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현모씨이다. 사택은 이 건물 딱 한 채만 남아 있으며, 이 건물도 지금은 낡은 채로 방치되어 있고 늘 문이 닫혀 있어 사람이 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주택은 유일하게 일본가옥의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식 주택에서 흔히 보는 다다미(疊)와 가미다나(神壇)를 설치한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고, 벽면도 일식주택에서 사용된 비늘판벽으로 돼 있으며 그 당시 다다미는 거실용도로 사용하고 있고, 가미다나는 장식이 놓여있다고 했다. 462㎡ 면적에 들어선 목조주택은 대나무를 가로세로로 엮어 사이사이에 흙을 바른 후 외벽을 세웠고, 여기에 널판을 덧붙여 마감했다. 밖으로 돌출된 현관으로 들어가면 입구는 복도식으로 설계됐다.
기록에는 1930년대 말부터 사택단지가 들어섰는데 1호, 2호, 3호 등 호수가 붙여졌다. 1호는 공장장이 살았고, 이어 차례대로 임원들이 거주했다. 일반 사원들은 집 한 채에 대문을 동·서로 내고 2세대가 거주했다.(제주일보 20130805)
서쪽 울타리의 북쪽에 출입구가 있다. 원래는 넓은 대지에 울타리 없이 건물들만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던 것인데 광복 후 정부에서 민간인에게 불하할 때 직사각형으로 나누고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건물과 울타리, 출입구 등이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주택은 일제시대 주택이나, 비교적 제주의 바람 기후 등 제주 풍토성을 반영한 당대 건축물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건축학계에선 평가된다고 했으며, 주택이라는 성격상 보존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일제강점기 제주건축사의 한 건축어휘로서 정밀실측과 기록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했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1950년도에 불하된 주정공장사택들이 동초등학교 북쪽에 외부만 개조한 채 몇 채 남아 있다고 하나 필자가 본 바로는 남쪽에 붙여서 건물 형태가 비슷한 것이 하나 있기는 하나 판자벽으로 남아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반듯한 직사각형인 집터들이 이 사택에 인접하여 몇 곳이 남아 있어 이 땅들이 사택부지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2014년 6월3일 철거되었다.
《작성 120917, 보완 130805, 140604, 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