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이 드디어 칼을 뽑기 시작했다.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등을 향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말을 1일 행동으로 옮겼다. '관세(무역) 전쟁이 발발했다'는 게 언론들의 분석이다.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를 기대하게 만든 말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이다. '24시간내 전쟁을 끝내겠다'는 게 그의 공약이었다. 그리고 당선 뒤 이어진 푸틴 대통령에게 대한 유화 발언, 취임후 달라진 강경한 어조. 그 진의가 모호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수를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켜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향한 그의 행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될까? 푸틴-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속내를 타진해보는 것으로 시작할 게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고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1월) 31일(현지 시간)에도 백악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과 대화할 예정이며, 아마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매우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고도 했다.
2일과 3일에도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각각 진행 중인 대화가 꽤 잘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고,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자원 개발을 원한다"고 긍정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사진출처:엑스(X) @화이트하우스
하지만 그는 '곧' '조만간'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는 나서지 않고 있다. "언제든지 대화, 접촉 환영"이라고 일찌감치 화답한 러시아 측의 애만 태우는 형국이다. 트럼프 특유의 협상술인지도 모르겠다.
설 연휴 기간 워싱턴에서 발생한 여객기와 헬기 충돌 사건으로 피겨스케이팅 코치 등 러시아 국적자 3명의 사망이 확인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미-러 양국이 사건 수습에 협력하고 있다고 지난 30일 밝혔다. '수습을 위해 푸틴 대통령과도 통화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 아니다"고 말꼬리를 흐렸지만, 간접적으로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이처럼 할듯 말듯 트럼프 대통령이 대(對)러 본격 접촉에 미적거리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관한 미국의 중재안(평화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나 대(對)우크라 정책 조율의 실무 책임자인 기스 켈로그 우크라이나 특사의 발언을 뜯어보면, 이제사 미국의 중재안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켈로그 우크라이나 특사/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켈로그 특사는 1일 우크라이나 최전선에서 휴전이 이뤄질 경우, 연말(2025년 말)까지 우크라이나 대선이 실시되기를 희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켈로그 특사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 중에도 선거를 치른다"며 "우크라이나도 그렇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은 로이터 통신에 "우크라이나에서 대선이 치러진다면, 승자(당선자)는 모스크바와 '장기 협정'(영구적인 평화조약)에 대한 협상 책임을 맡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 백악관은 '장기 협정'을 중재하기에 앞서 우선 최전선에서 휴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한다면, 미국은 지난해 5월로 공식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최전선에서 일단 휴전한 뒤, 우크라이나 대선을 치르고, 그 당선자가 푸틴 대통령과 맞상대하도록 할 계획이라는 뜻이다.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큰 걸림돌 하나가 치워지는 셈이다. 임기가 이미 끝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평화협정에 서명할 자격이 없다고 푸틴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J.D. 밴스 부통령의 전 고문인 스티브 코르테스도 최근(1월 23일) 뉴스위크 기고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적대 행위가 중단되면 즉각 선거(대선과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소위 '트럼프 계획(초안)'에도 대선 실시 방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의 대선 투표/사진출처:러시아 TV채널 5
이같은 우크라이나 대선 실시 주장 뒤에는 미국이 러시아와 젤렌스키 대통령을 교체하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우크라이나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분석했다. 드미트리 리트빈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3일 엑스(X, 옛 트위트)를 통해 "켈로그 특사의 계획이 단지 휴전과 선거에 불과하다면, 이것은 이미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젤렌스키 대통령)은 여전히 (적대 행위 중단 혹은 휴전이 아니라) 계엄령 해제 후에야 선거 실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켈로그 특사는 또 지난 31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100일 안에 끝날 것이라는 자신의 이전 예측을 재확인했다. 그는 "몇 달의 문제일 뿐, 몇 년은 확실히 아니다"며 "100일을 카운트다운해 전쟁이 휴전 상태인지, 지속 가능한 평화 상태인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미국이 평화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행동 계획을 갖고 있다"며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도 어떤 압력을 가하고,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할 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켈로그 특사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이 러-우크라 양측에 제시할 중재안을 다각도로 논의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 러-우크라 양측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채찍과 당근'을 함께 사용할 것임을 시사한다. 채찍은 러시이에게는 미국의 추가 제재, 우크라이나에게는 군사 지원 중단 등으로, 당근은 러시아에게는 유럽 질서 재편 논의와 제재 해제, 우크라이나에게는 안보 보장 등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는 이달 중순 키예프(키이우)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우크라이나 매체 NV(New Voice)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에게 내밀 미국 측 보따리가 조만간 키예프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크리아나 희토류 자원 개발에 관심이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3일 발언도 켈로그 특사의 키예프 보따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앞선 '통큰 제안'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가을 공개한 '승리 플랜'에서 미국이 이스라엘과 같은 직접적인 안보 보장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다면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게 희토류의 개발 기회를 제공하고, 우크리아나군이 유럽 주둔 미군을 대체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전 조기 종식 의지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최근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30일 미국 저널리스트 메긴 켈리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3년간의 전쟁으로 무려 100년 전으로 뒤돌아갔다"며 전쟁 종식의 화급함을 강조했다. 그는 "바이든 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기 전인) 2012년이나 2014년 국경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허황된 희망을 주는 우를 범했다"며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우크라이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막다른 골목에서 현상 유지에 급급하며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고 지적했다. 전임 행정부의 실책을 거론한다는 것은, 정책 전환에 나서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루비오 미 국무장관/사진출처:엑스(X)@화이트하우스
현실적으로 추론가능한 옵션은 3가지다. △러시아를 더욱 압박해서 우크라이나와 타협하게 하는 방안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러시아의 제안을 수락하도록 하는 방안,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에게 맡기는 제 3의 방안 등이다.
제 3의 방안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노력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니네들(러-우크라-유럽)까리 알아서 하라'는 말인데, 대러 제재를 해제하거나 강화하지 않고, 대우크라 지원에도 더 이상 동참하지 않으며, 유럽의 선택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나 유럽이 돈을 주고 미국의 군사 무기를 사겠다면 그것은 허용하겠다는 정도다.
우크라이나에게는 3번째 안도 2번째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 없이는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인정했고,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지원이 끊어지면 우크라이나는 한두달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푸틴 대통령과의 접촉과 그 결과에 달렸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국제 유가의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러시아는 전쟁 비용에 부담을 느껴 어쩔 수 없이 평화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3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셰일(가스) 유전과 사우리다이라비아의 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라고 썼다. 미국의 대러 압박 카드 하나가 이미 폐기됐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스트라나.ua가 지난 30일 '트럼프 취임 10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10 дней Трампа. Что сейчас происходит с переговорами о завершении войны в Украине)라는 기사 내용이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우크라이나 종전 이후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한 새로운(제2의) 얄타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고 썼다.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미국과 유럽과의 마지막 담판(2022년 1월)에서 주장한 '유럽 안보의 새로운 지도'를 제 2의 얄타 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사된다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땅에서 물러설 명분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어떤 옵션을 선택할 것인가? 가까운 장래에 러시아와 '빅딜'을 시작할 것인가, 러시아에 끝까지 압박을 가한 다음, 푸틴 대통령과 대화에 나설 것인가? 머지 않아 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