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빠진 날
친구 생일 축하 모임을 가졌다. 이런저런 일도 있고해서
한동안 어울리지 못했는데,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명이 귀 빠진 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잖아도 다들 마음은 주저주저하면서도 몸은
근질근질했는데 좋은 구실이 생긴 거다.
모처럼 모여 한잔 했다. 자연스레 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침에 미역국은 얻어먹었냐 부터 이제
우리 인생에 생일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하는
쓸쓸한 대화까지 나누다
생각지 않게 많은 걸 깨닫게 됐다.
쓸데없이 한 친구가 물었다. 생일을 왜 귀 빠진
날이라고 부르는지 알아?
그러게 코나 눈 빠진 날도 아니고 왜
하필 귀 빠진 날이지? 태아는 머리부터 세상에
나오는데 산모에겐 그 때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던 시절 시골집에서 순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들은 해산할 때 댓돌 위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내가 다시 저 신을 신을 수 있을까하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태아는 머리가 어깨너비 보다 크다. 그래서
일단 귀가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귀가 빠져나오면
몸통과 다리는 순조롭게 따라
나오니 출산은 다 한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 그런데 생일은
어머니가 가장 고생한날인데 왜 축하는 저희들끼리만 하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아이를 낳는 걸 보며 생일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생일에는 꼭 어머니 아버지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리거나
맛있는 걸 사드리고 선물을 드렸다고 한다.
아머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의
아이들도 자신의 생일에는그렇게 따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결혼 후 내 생일에 부모를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어머니가 멀리 계시긴 하셨지만 아내와 아이들 하고만 즐겁고
오붓하게 생일상을 먹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내 생일에는
가족과 좋은 데 가서 외식하라고 전화를 하시곤 했는데 난
정작 어머니에겐 스웨터 하나 선물한 적이 없다. 다른 때는
문안 전화를 곧잘 하면서도.
막상 생일에는 '저를 낳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요.' 라는 감사
전화 한번 한 적이 없다. 생일은 내 것인 줄만 알았다. 친구는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 습관은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귀 빠진 날에는 자기가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라 귀를 빼준
어머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위는 모르겠으나 귀는 귀퉁이에 붙어있어서 귀가 됐다고 한다.
사람이 잘났다고 말할 때 왜 이목구비가 반듯하다고 할까?
눈 입 코도 있는데 왜 귀를 앞세웠을까? 귀는 얼굴의 핵심 지점도
아니고 변방에 달려있는 데도 말이다. 그건 그만큼 귀가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맨 앞에 간 거라고 한다. 늘 남과
세상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귀엽다는 단어는 '남의 말을 잘 귀담아 듣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는
우스개 까지 곁들였다.
말을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지만 듣는 것은 가려 들을 수는 없다.
듣는 것은 그래서 신의 뜻이라고 한다.
남이 내 험담을 할 때 귀가 가렵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라. 입은 하나인데 눈과 귀가 두 개인 건 말하는
것보다 듣고 보기를 두 배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공자는 나이 60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이라 했다. 이는 원래
무슨 말을 들어도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는
의미이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선현들은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달려가 시냇물에 귀를 씻는다 했다. 난 칠순의 나이가
넘었지만, 그 경지에 언제나 도달 할 수 있으려나.
늘 내 얼굴 귀퉁이에 붙어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귀!
많은 걸 생각하고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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