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일본 '반도체 밀착' … 한국과 전략적 연구개발 친구 될 가능성 / 3/26(화) / 중앙일보 일본어판
오늘의 라이벌은 내일의 친구가 될까? 그동안 반도체 산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온 한일과 대만이 세계적 반도체 공급망 재편 속에서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미국의 대중 규제와 중국의 공습이라는 거대한 높은 파도 앞에 한국의 메모리, 일본의 재료, 대만의 제조가 의기투합할 가능성이다.
제1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국제포럼이 22일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열렸다. 한국·대만·일본의 정치·안보·산업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모여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반도체 산업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부속 민주주의사회신기술연구소(DEST)와 대만공상협진회, 일본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국제문화회관 지경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 점점 밀착하는 '대만+일본'
지난달 일본 구마모토현에 TSMC 반도체 제1공장이 개설된 것을 반영하듯 포럼 시작부터 대만과 일본은 '반도체 우정'을 과시했다. 대만 반도체 정책의 설계자인 국가과학위위원회 우정중(吳政忠) 주임위원(장관급)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심각한 경쟁이 될 것으로 보여 민주진영인 우리가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조연설을 한 지경학연구소의 스즈키 카즈토 소장(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은 "일본과 대만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취약한 국제질서 속에서 상호 협력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들은 특히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일본 재료의 만남에 주목했다. 양광레이(楊光磊) 대만국립대 겸임교수(전 TSMC 연구개발 이사)는 TSMC는 앞으로 파운드리 분야에서 업계를 계속 지배할 것이며 일본은 반도체 장비와 재료를 강점으로 (노광장비 제조업체인) ASML에 대항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며 양국 협력이 긴밀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스즈키 소장도 일본 기업들은 대만을 이미 반도체 생태계에 편입시켰고 대만에 대한 일본 기업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 "3국 연구개발 협력" 제안
대만과 일본의 밀착과 달리 포럼 전반에서 한국과 협력에 대한 언급은 적었다. 한국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파운드리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에 이은 2위인 만큼 경쟁자로 보는 분위기였다.
이날 강연에 나선 13명 중 한국인은 반도체 삼국지 저자인 권석춘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가 유일했다. 권 교수는 "한국·대만·일본이 연구개발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 장기적으로 기술 협력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럽은 반도체 생산능력이 적지만 벨기에·프랑스·네덜란드 3개국이 공동 설립한 반도체연구소 IMEC가 ASML의 차세대 극단자외선(EUV) 노광장비 개발과 테스트를 전담해 업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3개국도 전략적 친구로 뭉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 교수는 반도체가 이미 기술적·물리적 한계에 도달했고 AI용 반도체 혁신이 시급하며 이미 반도체 팹의 소비전력·비용이 높아졌기 때문에 3국의 협력 필요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도 지금 한국과는 솔직히 협력보다 경쟁관계라면서도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고 AI 시대에는 메모리와 로직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협력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 3국 공통의 고민 '트럼프 시대'와 '중국'
세 나라는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할 경우 대외정책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강화에 공동 대처할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스즈키 소장은 「(트럼프 씨 재선시) 중국에 대한 제재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기업이라고 일본의 고민을 토로했다.
일본에는 반도체 재료 수출 기업이 많다. 권 교수는 "미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옛 공정반도체 시장을 10년 안에 장악할 것이다. 우리 세 나라는 이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한 배를 탔다고 말했다.
경쟁자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행진하기 위해 민간 교류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RCAST)의 이가타 아키라 디렉터는 TSMC 같은 외국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일본 내에 있다.
3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만 국방안전연구원(INDSR) 션밍시(沈明室) 소장은 기술은 더 이상 가치 중립적이지 않으며 초세계화 시대에 신뢰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