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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몰래 탈출하기
김종렬/ 창비
괴이한 소문은 사실이었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자 정말 붉은 방이 나타났다. 붉은 방 안에는 세 개의 문이 있었고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문고리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붉은 방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왠지 불길했다. 방문마다 함정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자칫 엉뚱한 문을 선택했다가 엄마와 마주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었다. 붉은 방을 찾으려 애쓴 보람도 없이, 이제 와서 엄마가 휘두르는 몽둥이나 우산, 심지어 선인장 화분에 얻어맞고 허무하게 쓰러질 수는 없었다.
‘어차피 게임인데, 뭘 그러냐?’
문득 종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작 플래시 게임 때문에 골치 아픈 수학문제를 풀 때보다 더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내 모습이 너무나 한심했다. 엉뚱한 문으로 나가다 엄마에게 들킨다고 해서 정말로 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임보다 더 살얼음판 같은 상황은 따로 있었다. 거실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방문 틈으로 들려왔다. 엄마가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불벼락이 떨어질게 뻔했다.
‘너, 게임하고 있을 줄 알았어! 학원 갈 때까지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지? 회초리를 맞아야 정신 차릴 거야!’
그렇다고 게임을 그만둘 생각은 결코 없었다. 이 플래시 게임은 아주 특별했다. 두 눈으로 붉은 방을 목격한 이상, 인터넷에 떠도는 괴소문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얼마 전부터 정체모를 ‘붉은 방’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미니 홈피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소문은 인터넷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로 퍼지며 마구 부풀어 갔다. 빨간 마스크 귀신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갈 때만큼이나 뜨거운 반응이었다.
붉은 방에 관한 괴소문이 떠돌기 전에도 플래시 게임은 큰 인기였다. 피시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반 모범생 반장과 게임에 시큰둥한 여자아이들까지 플래시 게임을 꿰고 있을 정도였다.
특히 ‘사장님 괴롭히기’나 ‘엄마 몰래 탈출하기’같은 게임이 유행할 때는 피시방에서 자리를 구할 수조차 없었다. 전략게임이나 온라인 게임을 한 방에 누를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열기가 많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지금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새롭게 올라오는 ‘괴롭히기’와 ‘탈출하기’시리즈를 금방 찾을 수 있다.
플래시 게임은 크레파스로 대충 그린 듯한 캐릭터도 재미있고 게임 방법도 무척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를 실컷 혼내주거나 엄마의 서릿발 같은 감시를 피해 탈출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생각보다 짜릿하고 통쾌하다. 더 놀라운 건 플래시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구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엄마 몰래 탈출하기’게임을 초등학생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콧방귀를 뀌며 믿지 않았다. 하지만 종수가 만든 플래시 게임을 보고 난 뒤에는 할 말이 없었다.
공부뿐만 아니라 게임과 컴퓨터도 척척박사인 종수는 자기가 만든 ‘나쁜 친구 혼내주기’게임을 보여주며 은근히 자랑했다.
“이 정도는 코흘리개도 만들 수 있는 거야.”
혼내 줄 아이의 이름을 적어 넣고 시작 단추를 누르자 무표정한 아이가 화면에 나타났다. 게임방법은 그 아이가 엉엉 울 때까지 마구 때려 주는 것뿐이었다.
“어때, 끝내주지? 이름만 바꾸면 아무나 혼내 줄 수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는 아주 짱이라니까!”
종수는 낄낄대며 우리 반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아이는 눈가에 멍이 든 채 코피를 철철 흘렀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종수가 비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게임인데 뭐 어때. 너도 해볼래?”
나는 그 아이가 정말 코피를 흘리며 엉엉 우는 것 같아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
“영철아, 학원 갈 시간 다 됐다!”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모니터 게임 창을 얼른 아래로 내렸다. 방문이 벌컥 열릴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엄마는 어디론가 또다시 전화를 거는 모양이었다. 엄마의 전화통화는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게임 창을 다시 띄웠다. 기회는 단 한번,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방을 탈출해야한다. 종수는 붉은 방을 무사히 빠져나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학원에 나타나지 않을 리 없다.
종수는 학원을 다섯 군데 다녔다.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모두 돌고 나면 밤 열 시가 넘는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학원 숙제와 학습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컴퓨터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감시하고 있다니까. 학원 안 가고 컴퓨터 게임이나 실컷 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종수는 엄마가 정해 놓은 시간표대로 학원에 가는 일을 끔찍이 싫어했다. 컴퓨터 학원은 꼭 가고 싶지만 수학, 영어, 학문은 그만두고 싶어 했다. 특히 피아노 학원은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엄마의 성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닌다며 울상이었다.
나는 종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종수의 꿈은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니까. 가끔은 꿈이 있는 종수가 부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학원에 가기 전까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내 처지가 더 좋았다. 학원도 두 군데만 다니면 되었다. 비록 골치 아픈 수학과 재미없는 영어를 배워야 하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러나 내 처지도 곧 종수와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엄마가 전화기를 놓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니까.
“너도 곧 육학년이야. 어물쩍거릴 시간이 있는 줄 알아? 학원이다 과외다 벌써 입시 준비 수준으로 공부하는 애들이 수두룩하더라. 엄마가 좋은 학원 알아보고 있으니까 넌 그냥 따라오면 되는 거야. 세상에 공부보다 쉬운게 있는 줄 알아? 엄마가 너만 했을 때는…….”
전화 통화가 길어지는 날이면 엄마 잔소리도 귀가 따갑도록 이어졌다. 결국 학원을 더 보내겠다는 말이었다. 언젠가 용기를 내서 “학원 안 가면 안 돼?”하고 묻자, 엄마는 한동안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 가슴에 못을 박았다.
“학원 안 가면 컴퓨터도 못 할 줄 알아!”
나는 세 개의 문을 찬찬히 살폈다. 문고리 색깔만 다를 뿐 눈에 띄는 차이가 없었다. 무엇을 선택하든 문 뒤에 엄마가 있는게 아닐까? 문득 의심이 들었다. 세 개의 문은 마치 엄마가 내 앞에 내밀던 학원 광고지 같았다. 초일류 첨단시설, 전문 맞춤 교육, 명문 대학 출신 강사, 무엇을 고르든 나는 결국 원치 않는 학원에 갈 수밖에 없다.
“종수 녀석, 정말 탈출에 성공한 걸까?”
종수는 한 번도 학원을 빼먹은 일이 없었다. 그런 종수가 이틀 전부터 학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멍한 얼굴로 앉아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잤다. 아주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학원 때문에 잠이 모자란 종수는 평소에도 꾸벅꾸벅 졸곤 했으니까.
“붉은 방, 너도 알지?”
며칠 전, 하굣길에 종수가 불쑥 물었다. 그 게임을 모를 리 없었다. 정체 모를 괴소문은 바로 ‘붉은 방’게임에서 시작되었으니까.
붉은 방게임은 ‘엄마 몰래 탈출하기’와 같은 방식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가 학원에 보내려는 엄마의 감시를 피해 집을 탈출한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게임이 인터넷에 퍼져있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게임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 붉은 방이 화면에 뜨고, 세 개의 문중에서 하나를 잘 골라 탈출에 성공하면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그 목소리가 ‘정말 학원 가기 싫으니?’하고 물을 때 ‘네!’하고 대답하면 엄마가 그 소원을 정말로 들어준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탈출에 성공했다는 아이도 없었고, 붉은 방을 직접 목격한 아이도 없었다.
언젠가 한 번, 붉은 방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퍼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초등학생이 미니 홈피의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이라 는 게 들통이 났고, 분노한 아이들의 무시무시한 댓글 공격으로 미니홈피는 곧 패쇄 되고 말았다.
붉은 방은 단순했지만 결코 쉽게 깰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공략 법을 구할 수가 없었다. 붉은 방은 게임을 할 때 엄마가 나타나는 장소가 달랐다. 게임에 도전했던 아이들은 결국 엄마에게 발각돼 각종 도구로 흠씬 두들겨 맞다가 무참히 쓰러지고 말하다. 마지막 관문에 도달하기 위해 사흘을 뜬눈으로 꼬박 새우던 한 아이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까무러쳤다는 괴담도 떠돌았다. 그 때문에 붉은 방을 탈출하면 엄마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괴상한 소문이 날개 달린 듯 퍼져 나갔는지도 모른다.
“너도 붉은 방 하고 있니?”
종수는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종수를 힐금 쳐다보았다. 틀림없었다. 종수는 며칠 동안 게임에 도전했고, 마침내 붉은 방을 찾아낸 것이다!
“붉은 방을 찾았구나! 그렇지? 정말 소원이 이루어진 거야? 그 소문이 진짜야”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종수를 다그쳤다. 하지만 종수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비시시 웃기만 했다. 붉은 방을 나가는 문이 어느 것인지 캐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치사한 녀석! 네가 말 안 해 줘도 나 혼자 풀 수 있어. 보란 듯이 해낼 테니까!”
나는 마우스를 꽉 움켜쥐었다. 이틀 동안 엄마 몰래 붉은 방 게임에 매달린 보람이 있었다.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선생님한테 알밤을 먹고, 학원 숙제를 하지 않아 그 벌로 더 많은 숙제를 해야 했지만, 붉은 방을 탈출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다니기 싫은 학원 따윈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붉은 방을 무사히 탈출해야 한다!
“어머나! 그래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하잖아요. 우리 아이도…….”
거실에서 통화를 하던 엄마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 바람에 마음을 다잡던 나는 움찔거리고 말았다.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엄마가 알 리 없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붉은 방을 찬찬히 살폈다. 빨간 색 문고리일까? 노란색 , 아니면 파란색?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았다. 문 뒤에서 머리를 풀어 헤친 화장실 귀신이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하며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가운데 문에 달린 빨간 문고리로 선택했다.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게임일 뿐이야. 하고 무시하고 싶었지만 묘한 기대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와락 밀려들었다.
“제발……제발……!”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빨간 문고리를 꾹 눌렀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문 뒤의 공간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안은 온통 붉은 색이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바람이 불어올 리가 없는데도 나는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너, 정말 학원 가기 싫으니?”
아! 괴소문은 진짜였다. 목소리가 내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네!‘하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종수도 붉은 방을 무사히 탈출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붉은 화면은 정지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렇게도 학원 가기 싫어”
뜻밖에도 목소리는 등 뒤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천천히 돌아서자, 엄마가 활짝 열린 방문 앞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종수 얘기도 못 들었어? 종수는 벌써 과목별 그룹 과외 시작했다더라! 공부 잘하는 애들만 따로 모아서 최고로 훌륭한 학원 선생님이 가르친다는데 , 넌 왜 그 모양이야! 얼른 학원 안가!”
첫댓글 어떻게 읽으셨나요? 저는 읽으면서 왜? 가 계속 따라다니던데...
음... 전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에 빠진 아이, 화난 엄마, 학원에 가기 싫은 마음. 흥미로운 전개는 없었습니다.
종수 얘기의 마지막 반전에 피식 웃었네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부분이 틀린 것같아요.
"얼른 학교 안가!” 가 아니라 "얼른 학원 안 가?" 가 맞겠네요.
캐치맘님의 질문을 댓글을 쓰고 난 후 읽었네요.
근데 별 흥미는 없고 뻔한 이야기 같은데 궁금증을 풀어내는 방법도 글쎄요?
감사합니다~저의실수였어요.수정했어요.
사실 이글을 아이들과 같이 읽었어요. 아이들도 저랑 똑같은 반응이었어요.
무슨 소리야? 하는거요.
그런데 이 작가가 창비에서 많은책을 냈더라구요. 이 작품을 읽고 저는 창비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저도 마지막 반전에서 웃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이 좀 실망이네요. ㅎㅎㅎ 하지만 흥미로운 전개가 재미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