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북스>, 이 책은 표지에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존,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 라고 밝힌 것처럼 진화론 입장에서 쓴 것입니다.
서은국은 서문에서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다. 꿀벌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꿈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행복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아무튼 나로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 인간 존재(두뇌-신경조직-DNA 등)의 본질적 관심사는 행복(쾌락-기쁨-즐거움-기분 좋음 등)이 아니라, 生存(생존)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다고 죽는 사람은 별로 없다. 행복하지 않아도 사람은 산다.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생존이 우선이다. 살다보면 행복 할 수도 있다.
* 행복감은 생존을 위하여 인간의 DNA에 내장 -설계된 경험이다. 행복감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본래 값으로 초기화 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적응이란? 승리-사랑-돈-성취-진급-금메달 등 어떤 일을 통하여 천하를 얻은 듯 기고만장하던 행복감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 라고 한다. 인간 존재의 생존을 위하여 내장된 “적응 현상”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사람도 장기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諸行無常(제행무상-모든 것은 영원 할 수 없다) 이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하기 때문에 행복은 “한 방”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한 방의 큰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많이 누리는 것이 절대적이다. 즉, 행복은 기쁨의 강도 문제가 아니라, 기쁨의 빈도 문제라는 말이다.
* 행복지수는 외향성-사회성-인간관계가 좋은 사람,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한국-일본 같은 집단주의 사회보다 “나는 나다” 하는 미국-유럽 같은 개인주의 사회가 높다. 왜냐하면 행복감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행복하기 원한다면,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고 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