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鄭浩承·1950~ >, 시/ “수선화에게“ 전문입니다. ◇ 생각보다 감성이 여린 탓인지 나이를 먹어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역시 실존적인 외로움과 싸움입니다. 평생 책과 함께 바쁘게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쉽사리 곁을 떠나지 않는 끈질긴 고독과 외로움의 실체는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이나 마귀 그 자체란 생각을 할 때가 많았네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사는 삶인데 왜 외로우냐는 질타의 소리도 숱하게 들었지만, 여전히 다 떨치진 못하고 오늘도 삽니다.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외롭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믿음이 연약하거나 아니면 신앙생활을 아예 잘못하고 있다는 말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혹자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지요. 그런데도 온전히 떨치지 못하고 사는 오늘의 내가 얼마나 연약한가 싶어 절로 기도가 나오기도 하지요. 나의 고독은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 때, 이 시를 만났습니다. 무릎을 쳤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 시를 보내주셨단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함께 삽니다. 특별히 털어버리거나 떨치려고 몸부림을 하지도 않지요. 받아들이니 감사가 나오고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사람에 비하면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싶기도 하지요. 의인 오십 명을 찾으셨던 하나님! 그 숫자를 줄여가며 찾으실 때 하나님만큼 외로웠을까 싶습니다. <‘삶을 나르는 시(강남국, 등대지기, 2019)’에서 옮겨 적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