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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일(화)
* 시작 기도
(엡 1:22-23)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주님...
이 말씀은 교회의 사명이자 존재 목적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만물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님의 능력을 지극히 인간적인 능력으로 격하시켜 문제해결과 병고침 등 세상의 일에 적용시키곤 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자기 이름을 내고 수많은 지지자들을 모았습니다.
이는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챙기는 제2 제3의 아담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내가 바로 그런 데 마음을 빼앗겨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했던 자임을 고백합니다.
창세전 언약을 통하여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나 또한 아들에게 주신 영생을 주셨으니 이전에 육신으로 행하던 일을 쓰레기 취급하며 내어던지기 원합니다.
오직 예수로 인하여 참된 생명인 영생을 누리는 자로 살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오늘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호 1:1-2:1
제목 :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라 하라.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브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2:1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 나의 묵상
남 유다의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계속해서 통치할 때 북쪽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 2세였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인 여로보암 2세는 주전 793-753년까지 40년간 통치하였으며 그 기간은 북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융성한 시기였다.
이스라엘의 위험요소였던 아람은 신흥강국 앗수르에 의해 쇠약해졌으며, 그런 이유로 북 이스라엘은 아람의 수도 다메섹과 함께 모압까지 빼앗아 그들의 영토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이런 강력한 군사력으로 정치를 안정시켰으며 또한 교역의 확대로 경제적 성장을 가져왔다.
문제는 이런 정치 경제 군사적 번영을 이루는 이 시대에 그와는 정반대로 영적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해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가치는 추락하고 말았다.
이 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선지자 아모스를 비롯한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지적하고 돌이킬 것을 호소하였는데 특히 영적 종교적 범죄를 그칠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구라서 몸과 마음이 더러워진 음녀와 결혼하고 싶겠는가?
세상적으로 한 번쯤은 이런 음탕한 여인과 즐기는 것은 그래도 모르겠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인 호세아 선지자에게 명령하시기를 음녀인 고멜과 한두 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결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호세아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아 있는 실물 설교를 하고자 하심이다.
호세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며 고멜은 영적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음탕한 고멜은 자신의 남편인 호세아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 안겨 그의 욕정을 탐닉하며 쾌락을 즐기는 자였다.
하나님의 선민이요 제사장 나라로 세움 받은 이스라엘은 마땅히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제사장 나라로써 모든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 선택받고 자신들만 구원 받은 양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을 떠나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는 자리까지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부르시고 그에게 명하시기를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도록 하셨다.
그래서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음녀인 고멜과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낳는다.
첫째는 아들로써 이스르엘이라 이름을 짓고 둘째는 딸로써 로루하마라 지으며, 셋째는 아들로써 로암미로 짓는다.
그런데 이 3명의 자녀 이름이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아들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으로 북이스라엘 왕인 아합이 빼앗은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지역의 이름이다.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이 나봇을 잔혹하게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았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악행을 저지른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을 심판하여 개들이 그곳 이스르엘에서 그들의 피를 핥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왕상 21:19) 너(엘리야)는 그(아합)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그 후에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아합의 아들 요람을 이스르엘 땅에서 죽여 그의 시체를 나봇의 포도원에 던졌다.
또한 아합의 아내 이세벨도 죽여 이스르엘 땅 들판에 버려 개들이 그 시체를 먹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후는 아합의 아들들을 비롯하여 남은 자손들을 모조리 죽이고 더 나아가 전국에 있는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인다.
이런 예후를 하나님께서 칭찬하신다.
그러나 그가 점점 잔악한 행위를 일삼으며 하나님을 떠나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동기로 사람들을 죽이고 살육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그 진노는 본문 4절의 말씀처럼 그가 처형했던 아합 왕가의 피를 이스르엘에 쏟아부었는데, 그 이스르엘의 피로 하여금 예후의 죗값을 치르게 하실 진노이다.
결국 첫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붙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후 왕조에 대한 심판을 속히 단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래서 호세아 1:5절에서는 바로 그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고 흩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라고 하였는데, 그 이름의 뜻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이다.
셋째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로써 이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이스라엘이 그들의 교만과 악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 심판이 속히 실행되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하며,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지 않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실 때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게 되고 그 때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 공식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 안에 머물지 않으므로 결국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지도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이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하신다.
(호 1:10-2:1)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실 것이라고 했는데 그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완전한 회복이 일어나 멸망당한 저주의 땅 이스르엘이 이제는 큰 이스르엘의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로루하마 곧 긍휼을 입지 못하던 자들이 루하마,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이 된다.
로암미 곧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 이제는 암미,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것이다.
멸망당한 저주의 땅 이스르엘이 큰 이스르엘이 되며, 로루하마가 루하마가 되고, 로암미가 암미가 되는 것을 포함해서, 아무리 바닷가의 모래처럼 그 수가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나 노력 또는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곧 이스라엘에게는 걸림돌이나 거치는 바위와 다름없다.
그러나 그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가 오히려 그들을 살리는 생명의 반석이 되는데 그것은 바로 산 돌이요 모퉁이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벧전 2:4-8)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이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종 호세아와 결혼한 고멜이 이스르엘과 로루하마 그리고 로암미를 낳으므로써 그가 하나님의 심판 받았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오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
호세아와의 결혼이 고멜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걸림돌이나 거치는 반석이 될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고 하는 것마다 못하게 막아서는 호세아가 아마 죽도록 미웠을 것이다.
호세아는 분명 고멜의 인생에 걸림돌이나 거치는 반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고멜의 인생에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과 같은 호세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비록 당시는 호세아 때문에 넘어져서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깨질 수도 있다.
게다가 그 깨진 상처 때문에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우며 부끄럽고 비참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요 복인 것이다.
비록 사람 앞에서는 넘어져 부끄러움을 당하고 비참해질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니겠는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은 자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걸림돌이나 거치는 반석을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나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감추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걸림돌을 두어 넘어지게 하셔서 나의 추하고 더러운 모든 치부를 들어내게 하신다.
나의 부끄러운 치부가 온 천하에 공개되면 우스운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이래봬도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의 아들인데, 내가 모태신앙인인데,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무화과 옷이 되어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 하고 멋지게 포장하도록 하였다.
그야말로 나는 3A(Appearance보란듯함, Achievement성공, Affluence부요함 윤택)의 정점에 서서 나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드러내는 일에 선두주자 역할을 하곤 하였다.
은밀하게는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의 눈은 의식하면서도 하나님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행동하는 그런 자가 바로 나였다.
이런 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였으며 그 심판으로 죽어야 할 자였다.
그러나 나는 그 심판을 두려워하였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걸림돌을 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은밀한 곳에서 나의 신앙양심이 썩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게 행하였을 뿐이다.
나는 예후와 같은 자요, 로루하마나 로암미와 같은 자였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속에서는 주님 없이 바알(풍요의 신)과 아세라(쾌락의 신)을 나의 주님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였다.
이것들이 바로 나의 우상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에서 한 몫 잡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자 하였다.
학원 사업도 성공적으로 잘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신학을 하고 전도사 강도사 목사가 되어서는 하나님의 일들(?)도 능력 있게 잘 하였다.
그래서 정말 성도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다른 부교역자들의 시샘어린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나는 그것이 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악행이요 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공의의 심판을 받고 무덤의 자리에서 복음을 들으면서부터다.
나는 그런 죄를 먹고 마시던 자였다.
그런 나에게는 걸림돌이나 거치는 반석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걸림돌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던가?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피하려고 요리조리 도망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피하고 도망 다닌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걸림돌이요 거치는 반석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친히 심판하셨다.
그 심판은 곧 나를 심판하신 것이다.
이제 내가 주님의 심판 안에 연합하면 된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에 나도 연합하여 함께 십자가를 진다.
주님이 장사되신 무덤에 나도 연합하여 함께 장사된다.
그 때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나도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게 된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은혜다.
거치는 반석에 부딪혀 깨지고 부서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은 나를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또한 그의 메시야적 행위인 십자가이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고 부딪혀 깨지는 것은 아픔이요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부끄럽고 비참하지만 그러나 그 길만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이 바로 복음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고 아들 안에 있는 이 생명, 곧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을 때에만 온전한 영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죄성과 악행을 주의 심판 앞에 내어놓는다.
그리고 그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으로 인하여 내가 넘어지는 것을 이제는 기쁨으로 삼는다.
그것이 바로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져야 한다.
그것도 빨리 무너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그 공의의 심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두 손으로 죄악된 입을 가릴 뿐이다.
그저 주의 심판을 노래하며 기쁨으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께서 흩으실 때, 그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스르엘이나 긍휼이 없는 로루하마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 죽을 수밖에 없는 로암미인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런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나이다.
그런데 나를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을 십자가에 심판하셨사오니 그 심판 앞에서 나 또한 심판을 기다리며 그 안으로 들어가나이다.
주의 심판이 나를 살리오니 오늘도 나를 심판하여 주시고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자로 세워주소서.
주께서 한 우두머리를 세워 유다와 이스라엘 자손을 회복시키시며 그들을 큰 이스르엘로 삼으실 것이오니 오늘 나에게 유일한 우두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나를 장악하여 통치하여 주소서.
나는 그 안에서 감추어주시고 오직 주님으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그래서 이제는 루하마요 암미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뛰어 넘어 아버지의 자녀로써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자 되게 하소서.
그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