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의 하늘의 성전 그대로 세우는 성전
열왕기하 16장
시 작 기 도
주님이 영원히 신실하게 나와 함께 하시고 그 마음과 시선을 나에게서 절대로 떼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봅니다. 그처럼 나도 주님께 신실하게 나아가고 내 마음과 시선을 주님께로 늘 향하도록 내 마음을 주님께로 기울여 주소서. 내 눈이 허망한 것을 보려고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내게 생명을 부으사 회개하여 주님께 돌이켜 주님께로 향하는 마음과 시선을 완전히 회복하게 하소서. 회개하는 생명을 부으소서.
본 문 요 약
유다에서는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었고 16년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주님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하지 않았고, 조상 다윗이 한 대로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북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걸어가서 아들을 불 앞에 제물로 드리는 일까지 하고 주님이 쫓아내신 이방민족들의 풍속을 본받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산당과 모든 언덕과 나무에서 제사를 했습니다.
그 때에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고 함락되지는 않았습니다. 시리아의 르신 왕은 엘랏의 지배권을 유다에게서 도로 빼앗았습니다.
이에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에게 스스로 봉신국이 되기로 하면서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으로부터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모든 금은을 다 바쳤습니다. 그래서 앗시리아의 왕은 그 요청대로 다마스쿠스로 진군하여 함락시키고 시리아 왕을 살해하였습니다.
아하스 왕은 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을 알현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갔다가 거기에 있는 신전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형과 도본을 그려서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냈고,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 왕이 돌아오기 전에 그대로 제단을 완성하였습니다. 왕은 돌아와서 그 제단을 보고 그 제단 위에 올라가서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부어드리는 제물을 바치고 화목제물의 피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집 주님 앞에 있는 놋제단을 한쪽으로 치우버리고 그것을 다른 주술적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명령하여 모든 백성들이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부어드리는 제물을 거기에서 드리고 제물의 피를 그 위에 뿌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우리야 제사장은 명령대로 하였습니다.
아하스 왕은 성전의 놋대야를 훼손시키고 그 자리에서 옮겨 다른 곳에 다른 방식으로 옮겨서치웠습니다. 그리고 앗시리아 왕을 두려워하여서 왕의 안식일 전용 통로와 왕의 바깥 통로를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본 문 의 뜻
그 전에 유다는 아달랴가 다윗의 자손 왕자들을 다 죽이려할 정도로 북이스라엘의 바알숭배로 인하여 타락할 때 즈음에 여호야다 제사장이 성전에서 다윗의 무기로 무장하고 바알숭배자들을 척결하고 주님과 새롭게 언약을 맺고 새롭게 시작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왕하11). 그래서 이어진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요담 왕까지는 ‘주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하였고 산당만 제거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솔로몬의 타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공식적으로 솔선수범하여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고(왕상11.7), 거기다가 더해서 주님의 제단과 물두멍등의 중요 기구들을 다 치우고 훼손하고 더렵히면서, 주님께 드리는 제사와 주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의 성전에서부터 시작한 개혁과 우리야 제사장이 왕권에 눌려 성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우상숭배를 하는 일이 크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성전 제단을 치우면서 이방신전의 제단모양을 그대로 본받아 제단을 세우고 주님의 성전 제단은 주술적인 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널리 퍼져 있는 창자점, 간점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동물의 창자 특히 간등의 내부장기를 들여다보면서 점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들여온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행태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자식을 실제로 불로 태우든, 불에 지나가게 하든 중요한 것은 자식을 불 앞에 던져서 이방신에게 바치는 행위를 하여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하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주님의 성전에 관한 타락입니다. 모세는 주님과 백성들의 언약을 맺고 주님의 율법을 받고 바로 시작한 대업이 주님의 처소인 성막을 세우고 그 기구들을 만드는 일입니다. 출애굽기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은 주님의 처소를 세우고 기구를 만들 때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한 것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40장 이후 에서는 환상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의 모양과 치수와 양식을 하늘의 영원한 성전을 본으로하여 계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은 주님이 보이시고 명하신대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이방민족의 신전에서 이방제단을 본 대로 하나님의 성전의 핵심을 바꾸어 버리고 있습니다. 희생제물을 바치는 제단을 다른 제단으로 바꾼 것은 다른 종교로 바꾼 것이고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고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성전으로 출입하는 문 안식일에 드나드는 문을 없앰으로써 하나님의 성전과 왕의 통치가 상관이 없는 것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주님의 채찍이 닥쳐와서 시리아와 북이스엘이 침공하였을 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키고 주님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지 않고 그가 선택한 것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강대국왕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의 우상숭배의 시작도 그랬지만 더 진행하여 하나님의 성전까지 더럽히게 만들어 극심한 타락에 이르게 하는 중요한 원인은 바로 이렇게 구원요청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강대국 왕에게 간절히 모든 것을 바쳐 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의 죄악은 끔찍하고 또 회개하지 않고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 큰 죄악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시작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 대속의 제사와 죄씻음이 있는 곳, 자기를 온전히 드리는 곳, 참 예배가 드려지는 곳, 그리고 거기에 주님의 은혜가 내리고 그 은혜의 강물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흐르는 곳이 성전입니다. 이제는 그 성전은 예수님의 몸, 교회이자, 각 성도의 마음 속입니다.
그 하나님의 성전은 주님이 명하시고 보이신 그대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하늘 위의 하늘의 성전의 모형을 본 뜬 것입니다. 이제 그 영원한 하나님의 성전을 따라서 나와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그 핵심은 열왕기서에서 강조하듯 다윗의 마음과 다윗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되찾아야합니다. 제단이 교체되었습니다. 제사가 변형되었습니다. 물두멍이 훼손되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성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타락자가 제사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우상숭배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전인 내가 더럽혀졌습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여야 하지만 회개에 실패하여 계속 이전의 죄악으로 돌아갑니다. 어떻게 회개하여 돌아가서 어떻게 주님의 성전인 나를 세워야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곳을 오랫동안 찾아 다녀보았지만 잘 가르쳐주는 곳이 없습니다. 주님께 돌아가고자 외로운 투쟁에 도움이 없었습니다. 내가 회개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께 돌아가고 어떻게 주님의 성전이 온전히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구원)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주님의 열정이 승리하였습니다. 그 열정으로 성전을 엎으시며 정화하신 것을 봅니다. 그 열정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 열정이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였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그 열정을 이루어내셨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어서 나의 육신의 성전을 다 허물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어 그 성전을 하늘의 성전으로 온전히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입니다. 더렵혀진 육신의 성전을 허물어지고 새로운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산제물로 오르게 하셔서 온전한 제사를 회복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아버지품) 예수님의 공로로 생명을 받아 아버지가 임재하시는 성전으로 세워졌습니다. 내 안에 성전에 늘 거하며 안식을 누립니다. 그리고 그 문으로 생명의 강이 흘러 나가고 있습니다.
기 도
더럽혀진 성전과 제사를 온전히 고쳐주소서. 하늘의 성전의 모양 그대로 내 마음이 주님의 성전으로 세워지도록 성령을 부으소서. 그 성전 완성의 길을 보이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온전히 세워지게 하소서. 복음과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에게 참 성전을 보이시사 그글이 그 성전으로 주님을 만나러 몰려오게 하소서.
마지막때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러나 전쟁과 기근과 염병과 기후변화 속에서도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거두지 마소서.
생 명 일 기 (9월 30일 월)
시험이 찾아와 나를 흔들고 그 약해진 틈에 마음 속의 우상이 되살아나 죄에 넘어지나 실망과 슬픔을 안고 주님 앞에 섭니다. 상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 장사된 것과 주님이 부활하시어 새 생명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도 중에 비춰진 것은, 그 대속의 죽음이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 일인 것처럼, 주님이 영광받으신 후 새 생명을 주심은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함께 하셔서 대속하셨고 주님이 함께 하셔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과 분리되어서 속죄와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따라오는 효과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단 한 순간도 주님과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삶의 기초요 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시선이 늘 주님을 향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다른 것들이 그것에 영향을 줄 때 손해와 눈총을 받더라도 과감히 다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