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리이냐의 물음은 떠나서.
제가 작금의 교회나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얼척없게 들리실 지도 모르겠으나, "기능성"입니다.
종교를 가짐으로 해서, 그게 그 당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종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주변의 크리스찬들을 보면 대개는 행복해 보입니다. 행복해 보여요.
유수의 연구에서도,
크리스챤의 심신이 더 건강하다는 자료들이 넘쳐나고,
(그렇겠죠, 심신을 해롭게 하는 것을 금하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니까)
크리스챤이 본질적으로 지닐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대한 귀인 본능(즉, 모든 것의 이유를 운명으로 귀결시킴)은,
그들로 하여금 강한 안정감과 희망을 갖게끔 합니다.
(크리스챤은 사고를 당해도, 그 사고의 이면에 숨은 의미를 찾습니다.
시험이니, 이만한 게 다행으로 역시 주님께서 날 지켜주셨느니. 그 분의 의도가 있을 터이니, 기타 등등. 등등등)
또한, 믿음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대적 가능할. 매우 강력한 동기원이죠.
믿으면,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내 신은 결코 날 포기하지 않을 거다, 결국 날 되돌려 놓을 것이다라고 믿게 되면,
생과 치료에의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기가 더 쉬울 거에요.
뭐든지, 지독스레 하면, 자연스레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크리스챤이 믿음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 치료에 전념하고, 공부에 전념하고, 일에 전념해서,
치료되고, 판검사가 되고, 사업이 성공하면,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성공은, 신의 존재에 대한 아주 강력한 간증이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개인은 더 강한 믿음을 갖게 되고,
사회 단위에서는, 해당 종교의 세력이 커지게 되는 거겠죠.
그래요, 오케이라 이겁니다.
문제는, 이게 "그들만의 잔치"에 머무르고 있어 뵌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겁니다.
크리스챤은 즐거운데, 비 크리스챤은 그들의 즐거움을 이해치 못 하는 거죠.
근데, 어쩔 수 없이, 크리스챤은 그들의 주변 비 크리스찬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비 크리스챤 가족, 비 크리스챤 애인, 비 크리스챤 친구 기타 등등. 등등등
전도나 구원의 명목으로 가기 싫다는 교회를 억지로 가게 한다던지.
종교의 서로 다름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던지.
뭐 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하느니 마느니, 아예 제사를 해야 하느니, 하지 말아야 하느니.
비 크리스챤 부인이 개처럼 일해 벌어 온 돈의 십분지 일을, 크리스챤 남편이 교회에 헌금한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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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매직과도 같아서, 한 번 빠지게 되면, 당사자의 모든 것을 앗아갈 만큼 매력적인데, 문제는,
그 믿음이란 게 쉽사리 누구에게나 오진 않는다는 것이고,
누군가의 끊임없는 강권에 노출된다면, 오히려 반감만 생기기 쉬워지겠죠.
저도 크리스챤입니다만, 제 생각에,
비 크리스챤이 크리스챤을 싫어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크리스챤은 너무나도 융통성이 부족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모 아니면 도의 마인드라고나 할까요?
크리스챤이 아니면 지옥행, 우상숭배하면 지옥행, 십일조는 꼭 해야되는 것이고, 뭐는 안 하면 안 되고, 뭐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이러한 식은, 이미 그 테두리 안에 있는 당사자들의 믿음이나 결속력을 강하게 하는 데는 즉효일 수 있겠지만,
테두리 밖의 사람들을 안으로 끌어들이기에는 최악의 방식일 겁니다.
비 크리스챤과 크리스챤 간에 갈등이 생기게 되면,
당연히 비 크리스챤은 크리스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싫은 거에요.
크리스챤의 방식이 싫은데, 어찌 그들의 테두리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 하겠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클 수록 더 심해지기 마련인데,
여의도 S 교회의 C 목사를 보세요.
헌금의 명목으로 신도들이 갖다 바친 걸, 그 따위로 가족들끼리 노나 먹고 앉았으니,
비 크리스챤들이 기독을 개독으로 부르는 것도 일견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 나라 대표 교회의 담임 목사라는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그에 대한 후폭풍은 당연한 것이겠죠.
왜 기독을 개독이라 욕하느냐라며 기독을 개독이라 칭한 사람들을 비난하기 이전에,
왜 그들이 기독을 개독이라 욕했는 지 생각해보고. 반성하고. 고치는 게. 먼저일 겁니다.
알고 나면 재밌는 현상 중 하나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교회의 목사님 자녀들은
보통 해외에 나가 있습니다.
왜?
목사라는 타이틀에 급여의 명목으로 돈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월급을 많이 줄 수 없다는 얘기),
속칭 보너스의 형식으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 주는 것이죠.
한편, 작은, 매우 작은 교회의 목사님 자녀들은
목사님 사모님마저 생계를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하실 정도로,
불안스런 가족 재정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게 웃긴 거죠.
이러한 불균형, 이러한 간극이, 그 분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싶은 장면일까요?
내가 아들이 10명인데, 3명은 부자고, 7명은 가난해, 그럼 정작 아비인 내 심정은 어떨까요??
동네 교회들의 아귀다툼 에피소드인데,
A 교회에 엄청난 부자가 들어와, 그 부자가 꼬박꼬박 내는 십일조, 감사 헌금 등을 모아,
증축도 하고, 뭣도 하고, 여튼 엄청나 발전을 이뤘나 봅니다.
그러던 와중, 그 부자가 A 교회에 뭔가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동네의 다른 B 교회로 적을 옮겨 버린 거죠.
그리고나서, A 교회와 B 교회 간 신도쟁탈전이 벌어졌다 이겁니다.
왜 우리 교회 신도를 빼 가느냐? 이 신도가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것인데, 우리보고 뭐 어쩌란 말이냐??
아니, 아버지 집이 여러 군데 있어서, 성령의 아버지께서는 이곳 저곳 동시에 계시는데,
왜 이곳이어야 하고 어째서 저곳이어야만 하는 건지. 교회를 옮기면 안 되는 거였어?
신실함으로 예배 드리면 그걸로 족한 게 아니였던 건가??
교회는 신전이지, 기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은 세력이 생기면, 욕심을 부리게 되죠.
이러한 세력 중, 혈맹(가족)보다 더 강력한 것은 아마도 없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겁니다.
목사님들도 사람이죠, 따라서,
목사님도 가족이 생기면, 욕심을 부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여의도 S 교회의 C 목사를 보세요.)
그 누구라도, 돈을 손에 쥐게 되면, 그 돈을 두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은 법입니다.
나에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내 유전자를 후대까지 지속시켜 줄 후계자들이 있다면, 더더욱이 그러하겠죠.
큰 교회와 부정부패는 어쩌면, 당연한 상관관계 아래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성당은,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은 결혼을 안 하시죠. 즉, 나 대서부터의 독립된 가정이랄 게 없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청렴할 수 밖에 없어요. 돈을 쌓아 놓고 있다 해도, 물려 줄 가족이 없는데, 욕심부려봤자 뭐 하겠습니까?
성당은 교회처럼 헌금봉투 돌리면서 돈을 걷지 않죠.
헌금함이라는 게 있어서 비교적 자유롭게, 낼 사람만 내는 구조라고 하더라고요.
한편, 우리나라에선, 속칭 이단이라 불리우는 "여호와의 증인".
이들의 특성은, 성경 연구와 봉사에 특화돼 있다고 합니다.
소수 인원으로 공부를 엄청 하고, 봉사를 지독히도 많이 한대요.
헌금도, 그 달 운영비만 뽑으면, 더 이상 안 내도 되고, 여유분은 다음달로 이월시켜,
충분자금이랄 게 없는 구조랍니다.
성경 연구 열심히 하고, 봉사 열심히 하는 이 집단이 근데 왜 이단이냐?
성경에 대한 해석과 세상에 대한 접근 방식이 기존의 프로테스탄트들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죠.
저도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지옥에 대한 개념 등이 다르고,
우리가 흔히 아는 바로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군대를 거부하잖아요. 사람 죽이는 법을 배울 순 없다구요.
그래서, 이단이라 불리우죠.
근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여호와의 증인의 세력이, 현대 기독교들의 세력보다 컸다면,
지금 우리는 어느 쪽을 이단이라 부르고 있을까요?
아니, 인간들이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타당한 일일까요??
A도 B도 C도 다 똑같은 분을 섬기는데, 왜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이단이라 비방하는 걸까요???
당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동네에 매우 조그만 교회가 있는데, 그 집 사람들은, 매주 일요일만 되면,
아무 말 없이 차(茶)를 돌리고, 교회의 남녀노소가 다 나와, 서로들 웃으면서 동네 청소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인 저희 고모부께서는, 가난하지만, 여전히 남 돕는 일들에 열심이시죠.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님인 사촌형은 생계가 어려워, 자식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있습니다.
당췌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 자들의 간극이 이다지도 심하게 벌어져 있다는 현실이요.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들은.
신을 섬기고 있는 게 아니라, 신을 도구로,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는 건 지도 모르겠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믿어라, 그럼 믿어질 것이다. 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네요. 열혈 안티크리스쳔(Anti-theist)인 리처드 도킨스같은 사람이 21세기에도 있을거라곤 니체나 다윈이 상상이나 했을까요? 아닌게 아니라 아마 19세기쯤 사람들은 21세기에는 종교란 없어지고 과학이 대신했을거야. 라고 상상했을 것 같네요. 뭐든간에 믿음은 인간의 정신작용 중에 가장 강력한 것 같습니다. '위대한' 이성따윈 한 입에 씹어먹을만큼 말이죠.
무명자님의 글은 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다른 글들이 비교적 뚜렷한 하나의 주제에 묶여 있는 것에 비해 이번 교회와 개신교에 관한 글은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만큼 개신교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문제 제기가 이루어 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개신교는 크게 교리적 배타성과 종교지도자 및 교회 공동체의 부정부패라는 두가지 이유로 인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0여 남짓한 역사 가운데 이룬 외형적 성장에 비해 성숙한 교회 문화와 정신이 자리잡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많은 무명자 님 글 읽고 많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잘봤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그 중에서도 특히 대형교회들은 정권친화적 성격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죠.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실 때 빨갱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이전 정권에 대해서는 좌파정권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으며, 성조기를 흔들며 친미성향을 보이곤 하더라고요. '번영신학'이라는 논리로 무장하여 자신이 축적한 부의 양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은총이라 생각하며 이것이 또한 신앙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요. 교회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종류의 간증을 하곤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축적은 딱봐도 눈에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앙심이 깊을수록 그 증거로 부를 쌓게 해준다는것.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니겠죠. 그 옛날 도미니크 수도회나, 프란체스코 수도회같은-자본주의 사회에서 굳이 청빈까지는 아니더라도-모습을 보여주는 곳도 있고요. 이래저래 불안한 사회니까 모두들 기댈곳을 찾고 교회가 그것을 제공하는데서 생기는 부작용인데 조금은 안타까운 일도 많이 보이죠. 몇 년전만 하더라도 금니사역같은 터무니없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당장 그 교회로 달려가야겠네요ㅎㅎ 경쟁사회니까 신도들도 경쟁적으로 모으고 그 과정에서 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하다보니 성경의 진실된 가르침과 핀트가 안맞는 것도 생겨나고,,
교회 다니는 입장에서 교회 간 빈익빈 부익부 문제와 믿음을 명목으로 교회의대형화 문제를 막을 방법을 생각해봤는데요.. 성전을 건축한 목사님들은 무조건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A 목사님이 사명을 받아 성전을 크게 건축한 후 그 목사님이 새 성전에서 목회하는 것이 아닌 시골에 있는 교회에 목회를 도와주는 시스템이 된다면 믿음과 사명을 명목으로한 목사님들의 배를 불리는 행위가 줄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목사들이 미쳤다고 큰 교회 힘드려 짓고 시골로 내려가겠습니까?....
솔직히 말도 안되는 의견이라고 생각하구요, 님 생각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아마 지금 기독교가 지금같지는 않겠죠.
지금은 말도 안되지만 그게 정착되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을 우리나라 목사님들이 인정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믿음 안에서의 건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 그리고 참고로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 이재철 목사님이란 분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건축보단 국민의 의무인 납세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중요하다고 봅니다.
배스맨님 의견대로 납세할 것들만 해도 좋겠네요 그리고 극극극소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현실성없는 대안이라는 증거일 수 있죠
이재철 목사님 정말 멋지시네요.~!
개신교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계 안에서 권위에 대한 도전과 더불어 타인과의 공존에 대한 인식에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독교 신학의 경우 다원화 사회에 대한 많은 작업들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종교적 보수, 근본주의로의 회귀를 이루려는 움직임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똑같은 신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조차 천차만별의 견해와 태도를 보이는가? 믿음의 영역 안에서 개인의 인식론적 한계(자신의 경험 밖에 말하지 못함)에도 생존을 위해 자신의 것을 늘 우월한 것으로 여기려는 인간 존재의 한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의 유무를 떠나서요.
어쨌든 저는 인간의 이성과 더불어 믿음의 영역은 진리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의 방법으로서, 둘 간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윈의식탁'이라는 책의 부록에 종교에 관한 재미난 가상 대화가 나오더군요.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행위를 빙자하여 인간 정신의 해방을 가로 막는 요소들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개혁의 움직임이 있어야 되겠지요.
진정한 성찰과 개혁이 진정 이루어질 수 있을 지가 전 의문입니다. ^^;
권력과 지배 구조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 급진적 해방신학자들 조차도 그 진정한 해방의 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 상 먼지하나 안남을 정도로 탈탈 터는 깨끗한 조직이 탄생할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다만 헤겔의 '정반합'처럼 보수(Conservation이 아닌 repair)와 갱신을 부르짖는 움직임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 기독교 역사가 특출한 지도자나 사상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름 없고 소박한 민초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신을 도구로 자신을 섬기고 있다는말 공감되네요..
성경엔 문제가 없죠. 그걸 지맘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문제...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잘봤습니다. 저는 왜 무명자님의 글이 눈에 안띨까요ㅜㅜㅋ 다음부터는 제목이 눈에 띠게 해주셨으면 하네요ㅋㅋㅋㅋ
제가 제목 짓는 소질이 없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리스챤으로써 상당히 공감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감사히 글 보고있어요.^^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기타 종교들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대부분 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문제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개별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규율이나 시스템 등이 문제가 되었던 적은 적지 않나 싶습니다. 제일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그 종교를 가짐으로써 그 종교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을 배우고 실행함으로써 작게는 가족과 친지들 부터 넓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에 까지 '본'이 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나싶습니다.
무명자님 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일단크리스챤이라고하시니 직접적으로 쓰겠습니다. 일단 성경과 교리에 대해 모르시는 것 같군요.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습니다. 그것을 공부해보시면 지금쓰신글들의 해답을 얻으실 것같네요. 글을쓰신것들을 보니 성경과 무관한 주관적글이라 생각이듭니다. ^^
이단의 특징은 일단 신성부정입니다. 성부성자성령 중 하나를 부정하던가 하나를 자신이라고 주장하죠.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 정하는 것입니다^^
아. 물론 한국교회가 잘못되어가고 있구 망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ㅋㅋㅋ 그것을 개혁해나가야하는 것도 교회의 임무겠죠. 제가 다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도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으로 목사를 믿고 교회 건물을 믿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천주교신자인데요 개신교에 대해서 뭐 별로 악감정은 없지만 선교자체가 너무 일방적이고 강요적인것이 싫엇습니다 얼마전 성당 미사중에 개신교신자가 들어와서 선교햇다는 그런 일을 알게된후로 진짜 이건 쫌 아니더라구요;;
개신교의 일방적인것과 소통이 안되는 부분은 비종교인에게 진심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죠.
전 아직 종교가 없지만.
그런 이유로 개신교는 앞으로 갖게 될지도 모를 제 종교목록에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앞으로 다니고 싶고...불교는 한번 공부를 해보고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