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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론 스크랩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강철무지개 추천 0 조회 247 09.05.05 00:3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평등이란 무엇일까요?


평등이란 타인이나 또는 타의에 의해 강제로 통제당하거나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란 자유가 보장되고 모두가 평등한 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와 정치체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란 무엇일까요?


자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이며 나는 무슨 권리가 있는가?”라는 철학적 고찰을 고민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 2차대전 독일이 패망하고 히틀러의 직속이었던 히뮬러가 세계전범재판소에 붙들려 왔습니다.


세계전범재판관들이 판결하기를“너는 6백만이라는 유태인을 학살하였으므로 사형이다”라고 선고하자 히뮬러는 “아니다, 나는 독일제국이 건설한 법을 집행했을 뿐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자기 변론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명했던 법철학자겸 형법 학자였던 라드브르흐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천부권(생존권,자유권,평등권등 불가침의권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너는 법이라는 핑계로 6백만을 학살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사형이다”라고 선고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서울대 법대 최종고 교수님의 법학통고에서 발췌)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므로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든 타인에 의해 구속 또는 지시받거나 통제 또는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자유란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속에 스스로의 사고와 판단에 의해 자신의 양심과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배우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되는 상태를 우리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행동이란 체제라거나 제도에 의해 강제로 주입되거나 강요된 판단이 아니라 인간본성과 자율성에 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타인의 휴식과 자유를 방해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위와 타인의 권리를 짓밟으며 재물을 갈취하는 사기행위, 그리고 타인을 무력과 폭력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는 행위들을 자유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유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해야만 성립되는 것이며 상호 존중이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서로가 존엄성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평등한 질서의식이 있어야지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람들만이 자유를 요구하고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지 인간을 존중하지 않고 존엄성을 보장하지 않는 자들은 인간으로 존중받을 권리와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자유를 부정하고 통제하며 지시하고 억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자들은 인간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눈으로 보는 권리와 귀로 들을 권리가 있지만 또한 보지 않을 권리와 듣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자신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 큰소리로 떠들며 타인의 휴식을 방해한다거나 혐오감을 주는 행동을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방종한 행위를 한다고 하여 그 행위나 언행을 통제하거나 제지한다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이 되어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길은 가는데 누군가 길을 막고 통제한다면 그것은 억압이고 제약이 되며 그러한 억압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이며 권리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길을 가는데 앞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거나 쓰러진 고목이나 바위돌이 가로 막고 있다면 다른 길이 있으면 돌아가면 됩니다.


하지만 길을 막고 타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무리가 있다면 스스로 인간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포기한 자들이거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짐승들로 존중받을 가치가 없어 깨트리고 진행하는 것이 가장 옳은 행동입니다.


자유란 타인을 존중하는 속에 지켜지는 것이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사색과 휴식을 방해하거나 통제하고 억압하며 착취하거나 지시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을 넘어 파괴되야 할 독선적 독재 행위인 것입니다.


말은 존칭어를 사용하면서 상대를 무시하거나 욕설을 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고 행동은 공손하면서 타인에게 위화감이나 공포감을 조성하고 신체에 위해를 가하고 무력으로 억압하며 통제하거나 지시하는 것은 타인을 존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행동들은 자기기만이며 자기이익만을 위해 상대를 억압하고 지시하고 지배하고 싶어 하는 삐뚜러진 인간망종들이 욕망을 숨기고 있는 이중적 성격을 나타내는 정신병적 행동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또는 제도적 모순에 의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억압받고 피해 입은 사람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권리인 자유라 할 것입니다.


제도적 모순에 의해 인간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피해 입은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잘못된 제도로 발생될 피해를 예방하고 대비책을 찾기 위한 행동을 한다면 전체를 위한 행동으로 보호하고 존중받아야 할 정의입니다.


하지만 자유가 있다고 하여 인간의 권리를 침범 당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타인의 행위를 방해하는 것은 간섭이 되고 제지하려 한다면 억압이며 통제가 되어 자유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법률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고 거짓 선전하며 휴식과 사고할 시간을 방해하고 소란스럽게 하는 행위는 자기 이익을 위해 소음을 일으키는 상인과 같이 자유를 착각한 방종을 넘어 사기행각인 것입니다.


종교라는 특성을 이용하여 교역자 또는 목회자라는 자들을 먹여 살리는 신자를 확산시키기 위해 선전하며 소란을 피우는 행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현혹하는 사기행각으로 금지시켜야 할 지탄의 대상인 것입니다.


종교인이란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갔다 받치는 십일조의 헌금과 각종 명분으로 거둬드리는 기부금 또는 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기도만으로는 먹을거리 입을 거리가 생기지 않음에도 종교인들과 그 가족까지 노동도 하지 않고 혹세무민하여 호의호식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종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종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권리를 가지고 있거나 예수의 아들딸들이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졸업해야 자격이 취득될 이유가 없습니다.


심지어 금란교회의 어느 목사는 신자가 아파트와 퇴직금등을 소유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교회에 헌납해야 한다는 되지도 않는 내용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종교를 빙자하여 신자들에게 세뇌시켜 놓은 신앙심을 악용하고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사기행각이고 강도짓일 뿐입니다.


이성과 양심도 없이 인성을 상실하고 타인의 존엄을 부정하며 저 혼자 잘살겠다고 짐승같이 살아가는 흉폭한 도적놈 마음밖에 없는 정신병적인 사기행위는 처벌대상이지 존중받거나 존엄성을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존중이란 상대방의 생각을 비난하거나 행동을 억압 또는 통제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서로를 존중하고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초유를 먹기 시작할 때는 아이가 한없이 귀엽지만 아이가 조금 더 성장하면 빠는 힘이 강해지고 이가 날려고 잇몸이 근질거려 엄마의 유두를 힘껏 빨고 물게 되어 통증을 느낀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게 됩니다.


모성이 제지하는 행동은 아이의 행위로 통증은 느낀 엄마의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가 되어 통제라거나 억압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성장하여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이들이 칭얼거리거나 울면 강제로 그치도록 강요한다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제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제재행위들에 의하여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통제와 지시에 복종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인은 우리국가의 사회여건(안전불모)과 가정환경(관습)이 자녀들을 인간으로 본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복종시키려는 목적으로 구성되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보살핌이라는 핑계로 어려서부터 간섭하고 규제하므로 자녀들의 본성을 억압하고 자유롭게 성장할 권리를 통제하며 지시에 복종하도록 강요하여 자녀들이 통제와 복종에 익숙한 노예로 길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엄격한 규제와 통제로 절제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자기 자신 가문의 전통이고 양반가문의 잔재라고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천부권에 의해 존중받고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음에도 자녀라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천부권은 박탈되고 통제와 지시에 익숙해지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격한 규제 속에 통제되고 지시받고 제한당하는 것은 말 못하는 짐승들이나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노예들에게 적용되고 강제하는 것이지 자율성을 가진 인간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이라는 틀 속에서 부모와 자식간에 또는 형과 동생이라거나 삼촌과 조카라는 명분으로 통제와 규제 속에 자연스럽게 길들려지게 지시하고 통제하고 있는 형태의 습성들을 바꾸어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본성에 의해 성장할 수 있도록 자유와 자율을 보장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의 첫발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시설인 유치원과 학교라는 틀 속에서 또 다시 통제하고 지시받는 것에 익숙하게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그 후 군이라거나 회사생활 속에서 상관이라거나 또는 상사라는 명분으로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타인을 통제하고 규제하는데 길들려진 습관에 의해 나도 모르게 타인의 자유를 부정하고 지시하고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법질서와 체제유지라며 각종법률과 공권력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며 착취 질서를 유지하려는 틀 속에 만들어 놓은 규제를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길들려져 인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제는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체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조직관리라는 핑계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에 의해 인간 본성을 억압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차별의 근원은 그때 그 시기의 계급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으로 시작하여 그 투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국가며 제도이고 지금 자본주의체제는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착취당해야만 존치되는 불평등 할 수밖에 없는 체제와 제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현되는 자본의 야만성인 것입니다.


인간은 배고프면 먹고 싶고 먹으면 배설하고 싶으며 등 따시고 배부르면 누워 잠자고 싶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길을 가다가 배설을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어 길거리에 배설한다면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배설하지 않아도 되도록 길거리에 배설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인간 본성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는 자들은 길거리에 배설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노상방뇨라는 법률을 만들고 억압하며 벌금을 부과하고 착취하면서 통제하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흡연자의 흡연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항에 강력한 흡입환풍기를 설치하고 공항에서도 흡연할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하지만 우리는 금연구역을 지정하여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며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당한 듯 착각하도록 주입하기 위한 제도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잘못된 관습과 제도와 체제 속에서 통제되고 지배받고 지시받는 속박 속에 살아 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체제모순에 의해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거나 고통을 당해 아프다고 소리치면 드러난 사실이 알려질까 봐 억압하고 통제하며 본질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것을 방해하고 금기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 무리들은 인간의 자율성을 말살하고 통제를 고착화하기 위해 상명하복의 관료주의 명령체계에 충실하도록 강제하면서 자유와 인간본성을 박탈당한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억누르며 노예의 삶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주장하거나 평등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면 빨갱이나 간첩이라며 반공이데올로기로 덮어씌우고 인간본성과 자율을 부정하고 억압하며 소수가 누리고 살 수 있는 불평등한 세상이 민주주의라고 거짓을 세뇌하는 정신병자들 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타인을 통제하고 통제받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들여지고 습관화 되어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을 상실당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란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라거나 또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아니면 학벌이 높거나 돈이 많다는 이유로 타인을 지배하거나 통제해도 된다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잘못된 제도를 엎어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동식물은 어떠한 환경에서든 그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고 행동하며 변화하고 진화하는 과정 속에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관습과 제도 그리고 체제가 이렇다 보니 타인을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마음보다는 지배하고 통제하고 지시하고 명령받고 행동하는 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현상인양 길들려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거짓된 삶을 강요받고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조장하는 잘못된 체제와 제도는 깨 부셔야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평등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이념입니다.


평등이란 공평하다는 것이고 공평하다는 것은 결국 그 무엇이라도 차별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등을 권한평등과 경제평등으로 분리하여 왜곡하고 있습니다.


권리의 평등 또는 권한평등이란 무엇입니까?

권한평등이란 정치적 권리의 행사나 또는 공권력의 사용(적용이 아님)이 평등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법률은 누가 만들어 내고 어떠한 내용으로 제정되고 있습니까?


모든 국민이 참여하여 누구나 공평하고 평등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느냐 아니면 소수가 국민들의 자율과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법률들을 제정하고 있느냐를 보면 너무나 확연해 지는 것입니다.


선출되어 기득권을 누리는 소수자들이 법률을 제정하면서 모든 국민의 자유가 보장되고 평등하게 사는 법이 아니라 국민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쉽도록 규제하며 불평등에 저항하지 못하게 억압하는 법을 만들고 저희들끼리 기득권을 유지하려 발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정된 법률의 행사 또한 판사,검사,감사원,경찰,근로감독관 등 일부 임용이라는 명칭으로 국가기관에 채용된 자들이 질서유지와 체제유지라는 명분으로 휘두르고 있을 뿐 일반적인 대중 또는 국민이 집행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을 쥐거나 지배한 자들에 의하여 60년이라는 세월동안 민주주의는 오히려 빨갱이라고 매도하며 비난하도록 반공에 세뇌되고 지금의 자본독재 체제가 민주주의 인양 왜곡된 삶을 살아 온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대하는 영화나 소설, 잡지나 만화책 또는 많은 대중들이 접촉할 수밖에 없는 TV나 연속극, 문화라는 명분으로 접하는 연극과 소비(화폐를 사용하는)를 유발하는 일상생활을 통해 인간본성을 말살당하고 지배와 통제라는 자본독재체제 속에 길들여져 온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보고 듣는 것이 돈이 없어 고생 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또는 무슨 수를 쓰던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끝없이 듣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본독재주의제도와 체제에 세뇌되고 길들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권한의 평등권을 상실당하고도 마치 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 듯 강요된 질서의식 속에 세뇌되어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되어 노동할 권리를 달라고 하면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며 억압하고 체포하여 구속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행해지고 선출직으로 당선된 자들과 사법권을 휘두르는 무리들은 체제유지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억압행위들을 외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길들여지고 세뇌되고 습관화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권한을 박탈당한 자본독재체제에 저항하지 못하고 억압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평등

그렇다면 권한의 평등이 아닌 경제의 평등이란 무엇일까요?


경제의 평등을 이해하기 위해선 경제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경제란 자본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노동자들이 땀 흘린 노동으로 생산한 물질의 생산과 분배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 한 방울, 전기, 의류, 주택, 컴퓨터, 자동차, 기차, 비행기, 전쟁물자, 기름, 도로 주택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노동자들이 땀 흘려 생산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대학교수가 가르치는 책 한권, 종이 한 장도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것이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도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농부와 어부들이 땀 흘린 노동으로 인류의 먹거리를 생산하지만 어부들이 포획하거나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망,어선,낚시도구농부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쟁기,기구,기계 등 그 어떤 물질도 노동자들의 땀 흘린 노동으로 생산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상인(자본주의에 의해서 존재함)이란 잠못자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결국 노동자, 농민, 어민들이 만들어 내거나 포획한 물건을 가져다가 판매(물질을 상술이라는 명분으로 비싸게 팔아(눈치,말품사기)이익을 남김)하는 행위로 살아가는 것이지 그 어떤 물질도 생산해 내지 못합니다.


수출로 외화도 벌어들인다고 하지만 화폐는 아무리 산처럼 쌓아 놓아도 거기서 인류가 마실 물 한 방울 쌀 한 톨 만들어지지 않음에도 화폐를 인정하는 것은 그 나라에서 노동자,농민,어민이 땀 흘려 생산한 물질을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수출도 물물교환이다, 땀 흘려 생산한 물질을 가져올 수 없다면 그 국가 화폐란 인정되지 않는 쓰레기다)받아들이는 것이지 화폐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창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용하는 돈(화폐)이란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만 필요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구일 뿐 아무리 쌓아 놓아도 거기서 인류가 마실 물 한 방울 쌀 한 톨 생성되지 않고 썩으면서 악취만 풍길 뿐인데도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세뇌당해 마치 화폐가 모든 물질을 생산해내는 신이라도 되는 양 숭배하는 거짓된 세뇌 속에 살아온 것입니다.


아무런 물질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화폐가 교환수단이 아닌 축적수단이 되어 새로운 귀족(은행,주식,보험등 금융관련자본과 부동산)을 만들고 이자가 붙고 투기(투자)가 되면 무차별적으로 서민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도구가 되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누리고 살수 있다며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고 의식을 잠식하며 경제를 왜곡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경제란 노동자,농민,어민이 땀 흘린 생산품으로 인류가 의,식,주를 해소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 그 외의 것은 그 무엇도 경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노동자,농민,어민의 땀 흘린 노동생산품에 의해 대통령에서부터 가장부자까지 또한 설교만 하는 목사나 노숙자와 동냥을 얻어먹고 사는 거지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지옥 같은 노동으로 국가와 인류를 살리고도 주거,교육,먹거리가 부족해 허덕이는데 노동력을 착취한 자들은 1살짜리가 몇 억의 주식이 있고 세살 먹은 아이가 몇 십억짜리 빌라를 소유하며 투기꾼 착취꾼들은 1인이 100채 심지어 1000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달내 뼈 빠지게 일해도 88만원을 받고 있는데 20살도 않된 젊은이들이 최고급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하루 저녁에 몇 백만원씩 유흥비를 탕진하고 한쪽에서 서민들은 굶어 죽거나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창출하는 노동자들은 감시받고 지시받고 통제되는 틀 속에서 밤잠 새벽잠을 못자며 시간에 쫓기고 노예처럼 노동하며 하루에도 수십명씩 산업재해로 순직하거나 불구자가 되는 환경 속에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노동을 하지 않고 누리며 살고 있는 공직자들과 변호사, 의사, 연예인, 목회자, 기업체 임원, 사기꾼, 투기꾼 등은 집 걱정 없이 호화주택에 황제처럼 호의호식하고 해외여행이나 다니며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건강을 위해 세계를 돌며 유명한 관광지와 휴양지를 찾아다니고 회춘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식의 영어교육과 자유로운 인생을 위해 노동자가 힘들게 벌어들인 외화로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국내에 외국인 학교와 국제중학교까지 설립하고 외화로 영주권을 취득하며 차별화된 교육을 만들지만 노동자의 자녀는 학원도 갈 수 없지만 합격해도 1000만원이 넘는 학비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가난과 학벌까지 대물림되는 자본독재체제에서 돈으로 사드린 거짓 졸업장과 학위가 마치 큰 권위인양 특권을 행사하는 비뚜러진 제도 속에서 통제되고 억압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득권을 행사하는 자들은 누구나 공직에 시험을 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먹고 살기위해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과 서민들에게 주어진 자유란 노동력을 착취당할 자유와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할 자유, 대를 이어 노예로 살아갈 자유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속이라는 제도와 가족애라는 명분 하에 자기 자식들에게 권력과 재물을 대물림하지 타인에게 권한이나 재물을 물려주거나 사회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배운 의료기술을 내 자식에게 가르쳐 주고 내가 배운 법률 지식도 내 자식에게 가르치지 타인의 자식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그것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지 타인에게는 주지 않듯이 국제중학교를 설립하여 동등하게 혜택 받아야 할 공교육이 무너지고 가난과 학벌 마져 대물림되는 불평등한 자본독재체제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한심스러운 것은 이렇듯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좌파니 빨갱이니 매도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간첩으로 까지 몰면서 탄압하는데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국민들이 일부는 동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빨갱이 사상이라면 빨갱이체제가 오히려 자유가 보장되고 누구나 평등한 민주주의국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가 됨에도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우민들은 반공에 세뇌되어 진실을 분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자유와 평등)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존중할 줄 알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사기질, 도둑질, 투기질, 도박질, 협작질도 모자라 공권력이란 명분으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협박과 폭력으로 재물을 강탈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빨갱이 타령으로 횟 칼 휘두르고 가스통 불 지르며 온갖 욕설을 퍼붓는 것은 폭력을 즐기는 인간망종들입니다.


기득권층들만을 위한 불평등한 정책에 반대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면 무력과 경찰폭력으로 억압하고 그 주장이 마치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인양 묘사하며 민주주의는 폭력을 동반하는 독재체제이고 자본독재가 마치 민주주의인양 속이는 세뇌 속에 살아 온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지배받거나 통제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스스로 의무를 찾아 수행할 수 있는 사회를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사회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반공에 세뇌된 우민들은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착각하고 자본독재의 수호자인양 거짓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으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직접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합니다.


두뇌는 있어도 돈이 없어 교육을 못 받는다거나 또는 두뇌가 따라가지 못함에도 갈취하고 착취하고 도둑질한 돈으로 외국으로 나가 졸업장이나 수료증을 사고 마치 그것이 계급장인양 권위로 내세우며 누리고 살아가는 비민주적 금전만능주의 제도를 타파해야 합니다.


공동양육 무상교육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재생산과 국가 미래를 유지해갈 아이들의 양육은 부모가 개인의 자유까지 박탈당하며 노예로 육성하고 있는 현재의 제도를 깨부수고 아이들만의 생활과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여 자녀들이 본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양육하는 탁아소를 건설해야 합니다.


탁아소의 생활은 아이들이 성장과정에 본성이 상실당하는 제재 없이 존중받으며 본성이 지켜지고 본성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깨달아 양심을 지키며 자율 속에 행동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제도화해야 합니다.


교육 또한 명령체계를 통해 자유와 자율성을 박탈하고 강제로 거짓(자본독재에 적응하는 노예교육)을 주입시키며 아이들에게 대학을 핑계로 경쟁시켜 개별적 이기주의를 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능력에 따라 학술의 성취를 이루어 인류발전에 공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교육의 내용이란 기초교육부터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므로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든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거나 착취할 권한이 없다는 내용과 개개인 서로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 경제는 땀 흘린 노동으로 생산한 물질에 의해서만 전체 지구인구가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율 속에 인간의 본성을 상실하지 않고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진실을 추구하고 화합하며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정으로 맺어지는데 탁아소에서 양육되면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부정하고 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려는 자유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며 반론하고 비판하려는 무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씩 이혼으로 가정이 파산하여 버려지는 아이들과 부모의 잘못 세뇌된 가정관에 의하여 학대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 본인의 자유로운 생활과 정체성을 위해 개인부담으로 탁아소에 위탁하는 행위들은 가정이라는 핑계로 아이들의 천부권을 말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질과 재능에 관계없이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노예가 되기 위해 부모의 욕심과 욕구에 맞춰 강제로 교육받으며 양육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자율성을 박탈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가족제도는 인간성이 무시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불평등한 체제에서 가족의 생계를 이유로 임금노예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기 위해 기득권자들이 정이라는 핑계로 세뇌시키고 묶어 놓은 것입니다.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으로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할 수없는 이성생존하기 위해 성과 종족번식(자녀)을 이유(?)로 인간존중은 무시되고 상대의 노동결실과 성까지 착취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정당한 듯 왜곡시키고 있는 잘못된 제도인 것입니다.


집단 또는 무리에서 실업자가 있다면 실업자의 생존은 집단 또는 무리에서 책임져야(가족을 적용하면 이해가 빠름)함에도 소수가 호의호식하기 위해 체제의 모순으로 발생된 실업자의 생존을 개인에게 전가(유럽은 국가에서 실업수당을 지급함)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이 땅 시장자유주의 체제(실상은 식민 지배체제)의 가족제도는 깨 부셔야 하는 것입니다.


국토와 생산수단의 사유화 폐지

주택 또한 국가가 관리하고 분배하므로 주거 때문에 착취당하거나 고통 받는 국민이 없이 누구든 힘든 노동을 마친 후 내일의 노동을 위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단란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국토란 국가재산이지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없습니다.


국토가 개인 재산이 된다면 돈 있는 기업들이 엄청난 토지를 구입했다가 회사경영이 어렵다는 핑계로 외국인들에게 팔면 외국인이 그곳에 자치 군대를 파견해 무장하고 지켜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땅은 우리 국토가 아니라 외국 땅이 됩니다.


국토란 국가 소유로 전체 국민 것이지 정권을 쥔 놈들이 개발이라거나 경제라는 핑계로 마음대로 참절하거나 또는 개인이 사고팔고 할 수 있는 개인소유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국토와 생산수단을 개인재산으로 인정하는 모순으로 인해 지금의 불평등한 자본독재주의가 탄생된 것이며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인민들의 평등한 생활을 보장한다던 거짓 사회주의와 소비에트 공화국들이 몰락한 것입니다.


소비에트나 사회주의라고 지칭되던 많은 국가들은 만인이 평등한 국가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혹은 부패한 관료주의국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을 이렇게 분류하는 것은 국토를 개인소유로 인정하면서 선출직 국가 관료와 기술 관료들이 두 채 이상의 별장을 차지하며 불평등을 조장하고 권력을 남용했으며 자본주의체제의 착취도구인 화폐가 통용되는 구조가 한몫했기 때문에 무너진 것입니다.


토지란 농민들이 땀 흘린 노동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거나 또는 노동자들이 주택을 짓거나 지하자원을 채취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이윤도 발생하지 않음에도 개인소유를 인정하여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타인의 주거권과 노동결실을 착취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는 잘못된 개인소유제는 끝장내야 합니다.


노동자,농민,어민의 땀 흘린 노동으로 전체 지구인구가 먹고 살고 있는 것이 진실인 이상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소수가 누리기 위해 경제평등을 부정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생산수단의 개인사유화를 폐기하고 사회화 공동화해야 합니다.


자본독재 체제는 경쟁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력을 무리하게 착취하며 무한한 물질을 생산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과잉생산하여 공황을 발생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과다한 경쟁으로 한정된 지구자원을 고갈하며 이윤을 위해 무계획적으로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황폐화시켜 이상기후를 발생케 하므로 지구까지 멸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의 자원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것이지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특정기업 또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것입니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생산단계의 자동화 기계화로 소수의 노동으로 많은 양의 물질을 생산하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값싼 노동을 강요하거나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길거리로 내몰면 노동자들은 살기위해 상업에 뛰어들어 소비자는 줄고 상인들은 늘어나 내수 경제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는 곳 기업이 망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아무리 많은 상품을 생산해도 존립하기 위해선 그 상품을 소비할 소득이 보장되는 소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노동자의 숫자를 줄이고 저임금으로 내몰면 소비할 여력이 없어 생산한 물건을 팔지 못하게 돼 기업도 망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대량의 실업이 만성화하면서 산업계, 금융계 전반에 걸친 대공황을 초래하여 경제사회 전체를 위협하게 됩니다.


특히 1929년 미국 월가에서의 주가폭락으로 발생한 만성적 불황은 공황을 수반하고 전 세계에 파급되면서 수많은 서민들이 아사(굶어죽음)당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케인스가 말한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사태가 나타난 것입니다.


1930년대 케인스는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경제사회의 큰 결함'을 '그것이 완전고용을 제공해줄 수가 없음은 물론, 그것은 부와 소득을 마음대로 그리고 불균등하게 분배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발생되는 공황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너무 많은 물질을 생산해내는 과잉생산의 공황이 있습니다.


과잉생산으로 공황이 발생하면 자본가들은 생산된 물질을 판매하고 축적한 재화(財貨)로 생존하거나 귀족으로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기 때문에 이윤을 위해 공장을 폐쇄하거나 노동자를 해고하고 최소노동력으로 착취제도를 이어가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은 먹고살 수 없게 되어 거리의 부랑자로 전략하고 아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과잉생산이 아닌 자본가들이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을 중단해 공급부족으로 인한 부족공황도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을 중단함으로 물질이 부족하여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자본가들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체제인 것입니다.


물질의 공황이 아닌 금융공황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 다중들의 여유소득과 소비력이 없을 때 은행이 돈을 빌려주며 부동산투기를 조장한 것이 모기지론입니다.


은행이 대출해준다고 부가 분배되는 것이 아니고 빌려준 돈이 갈 곳이 없으니 부동산으로 몰려 부동산은 거품을 일으키는데 환급시기가 돌아와도 구입할 대중은 돈이 없어 발생되는 것이 금융공황입니다.


금융공황을 해소하기 위해 화폐를 무한정 찍어내면 서민의 부채만 늘어나고 노동력의 가치를 무시한 화폐가 넘쳐나니 물질의 가격이 폭등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발생하게 되고 한가마의 쌀을 구입하기 위해 두가마니의 화폐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무한한 화폐를 찍어 내더라도 독과점의 형태와 양(量)에 따라 얼마만한 속도로 집중되는 가의 차이가 있을 뿐 또다시 화폐는 한쪽으로 치우쳐 자본귀족들의 재산 수치만 늘어날 뿐 부의 분배라거나 노동자의 굶주림과 산업재해로 인한 죽음 그리고 인류의 생존(전쟁,착취,지구환경파괴,불평등 등)불안은 해소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체제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민들은 자본주의의 잘못된 분배시스템 자본가의 욕심과 횡포에 의해 기아에 허덕이고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내 가족과 인류의 미래까지도 저당 잡혀 있는 것입니다.


1900년대 공황이 발생되자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리고 살던 자본귀족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며 생산된 물질을 파괴하고 재생산하며 기득권을 이어갔지만 분배모순을 해소하고 새로운 분배체제를 만든다는 핑계로 거짓 사회주의 국가들이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공동생산 필요에 의한 분배

그러므로 지구를 존속시키고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개인소유화를 폐지하고 생산량을 확인하고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평등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받을 수 있는 계획생산을 해야 합니다.


생산수단을 사회화 한다고 하여 개인의 재산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사용하고 즐기는 자동차, 카메라, 등등의 물질들은 개인의 소유이며 분배나 공급은 자본주의식 판매가 아니라 화폐를 폐지하고 모두가 노동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물질을 자유롭게 가져가고 사용할 수 있게 배급(공급)하는 것입니다.


배급(분배)기준은 화폐단위가 아닌 노동시간단위로 결정하고 필요한 물질을 가족 또는 자신이 축적한 노동시간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며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한 사람에게는 힘들고 위험한 만큼의 시간을 더 할증(가산)하고 위험하지 않은 노동을 한 사람은 실 노동시간만큼 물질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공동생산을 하면 다같이 만들어서 똑같이 공급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잘못 세뇌된 판단이고 자기에게 불필요한 물질은 가져갈 이유가 없어 사전주문 식 계획생산이 가능하게 됩니다.


현재 소수의 노동자가 1일 8~12시간씩 해야 하는 생산노동을 전체 인구가 함께 한다면 1일 4시간으로 아니 그것보다 더 짧게 근무 하게 될 것이고 평등하게 노동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면 1주일에 1~2일만 근무하더라도 전체가 참여하여 노동하므로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기생하며 무위도식하는 자들이 없어지고 모두가 주인이 되고 계급이 없는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절대적 권력이 있고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임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면 권력에 기생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자들이 몰려들게 되고 권한을 사용하여 타인의 자유를 짓밟으려는 무리들이 창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직사회에 복무하는 자들이 권한을 휘둘러 개인의 사리사욕을 챙길 수 없도록 모든 공직자는 소수의 국민이 소환하여 언제든지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권한이나 권력이 형성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등 원칙이라며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면 똑같이 똑같은 범칙금을 납부하도록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 많은 자들은 금력을 과시하며 법을 위반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유린하며 특권을 내세우지만 서민들은 가혹하리 만큼 혹독한 범칙금 때문에 더 많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먹는 것 까지 축소하면서 범칙금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법률을 위반하면 소유한 재산에 비례하여 프로테지(%)로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어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똑같이 재산적 부담이 되므로 모두가 법률을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평등하게 법률이 지켜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선 현재 적용되고 있는 모든 법률을 폐지하고 “반민주 금지법”을 만들어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타인위에 군림하고 지시하며 지배하는 거짓민주주의 행위들을 처벌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움 속에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할 것입니다.


계급이 없는 세상이 되면 남을 지배하기위해 경쟁해야 할 이유도 없고 현 자본독재체제처럼 먹고 살기위해 또는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각종 추악하고 악독한 반인륜적이거나 비양심적범죄없으며 개인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 필요 없기 때문에 급한 일이라는 핑계로 시간에 쫓길 이유도 없고 모두가 평화롭고 편안하게 살아 갈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란 진보밖에 없으며 그 진보란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누리고 살려는 자들이 평등을 부정하고 통제하고 복종시키기 위해 주입한 사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등한 세상을 건설해도 그 속에서 새로운 모순이 발생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좌파니 빨갱이니 하면서 진보하는 역사를 가로막는 반역의 무리들과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촛불을 든 여러분들은 그 어떤 이익 또는 누구의 지시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잘못된 상식으로 배운 것처럼 조직관리를 위해 누구를 통제한다거나 지시한다는 생각과 거짓민주주의를 위해 조장했던 다수결의 원칙(분열을 조장하여 종파를 만들고 제안자 원칙에 의한 특권이 발생)이라는 사고들은 버리고 모두가 함께 논의하고 개개인들이 함께 결의하여 함께 행동하는 조직을 만들고 실천하므로 올바른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주역이 됩시다.


1인 독재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마치 뛰어난 카리스마적 능력인양 공동체 논의구조를 왜곡하고 일당독재와 1인을 영웅화하고 있는 잘못 세뇌된 사고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등하게 함께하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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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5.05 00:41

    첫댓글 길지만 읽어볼만한글이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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