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떼같은 남편을 삼킨 저 바다...
칠순 가까워오는 밤실댁은 널름거리는 동해의 푸른 바다만 보면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40여년도 더 된 늦여름 어느 날, 폭풍우가 거세고 날이 어둑해져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룩바위로 미역을 따러간 남편은 그만 세찬 파도에 휩싸여 그 파도를 따라 영영 돌아오지 못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삼간도 아닌 달랑 두간 초가밖에 가진 것이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외아들 집에 시집을 와서 올망졸망한 사남매를 두고 뱃속에는 다섯 번째 아이를 또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치매가 심한 홀시어머니...
기가 막혀 울음도 나오지 아니하였다. 동네 장정들이 몇날 며칠 여러척 쪽배를 타고 몇십리 해안가를 이잡듯 뒤져 봤지만 남편의 시체는 찾지 못하였다.
밤실댁은 끼니도 거른 채 하루종일 망부석처럼 바닷가에 서서 남편을 앗아간 바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흡사 이름모를 커다란 괴물덩어리같이 느껴지는 어두운 담청색의 바다를 뒤로 하고 산비탈에 있는 초가로 돌아 왔다. 그럴때면 저녁놀은 피를 뿌려놓은 것처럼 붉게 불타 올라 햇빛에 까실해진 밤실댁의 얼굴을 온통 벌겋게 달구어 놓았다. 밤실댁은 바다도 싫었지만 일없이 뻘건 그 저녁놀도 싫었다. 어쩐지 그 핏빛같이 뻘건 저녁놀과 남편을 끌고 들어간 음험한 바다가 한통속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구러 열흘이 지난 다음 동네 노파 서넛이 몰려와서 이제 그만 단념하고 남편을 묻어야 한다고 밤실댁을 타일렀다. 그래도 밤실댁은 꼭 남편이 어디선가 웃으며 달려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크게 가로 저었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나가 왼종일 원수같이 느껴지는 바다만 멀거니 쳐다보다가 저녁이면 또 타는듯한 저녁놀을 온몸 가득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밤실댁은 서서히 지치고 말라갔다.
밤실댁 남편의 행방이 묘연한 지도 달포가 훌쩍 지나간 어느 날, 동네사람들이 반 강제로 푸닥거리를 하여 남편의 원혼을 달랜 후에 시체없는 장례를 치뤘다. 어린 자식들은 까만 눈망울만 초롱초롱할 뿐 자신들의 처지가 더 어려워졌다는 걸 깨닫지는 못하였다. 다만 좁디좁은 집 안팎에 사람들이 끓는 것만 신기하고 좋은지 가끔은 작은 입으로 웃기까지 하였다. 산기슭 한 귀퉁이에 남편을 초라하게 묻고 돌아오는 길은 초가을로 들어서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 쪼여 베적삼 입은 밤실댁의 등짝을 사정없이 따갑게 하였다.
장례를 치른 그 다음날부터 밤실댁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우선 두어달 후면 소작 얻은 논의 추수도 해야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시어머니와 네아이 입의 풀칠과, 한달 후에는 해산도 해야했다. 쌀독에는 쌀은 고사하고 겉보리 한됫박도 남아있지 않았다. 외아들이 죽은 것도 모르는 가엾은 시어머니는 오로지 밥 달라는 소리만 연신 해댔다. 배를 곯은 어린 자식들은 눈이 퀭하니 들어가고 배는 올챙이 배모양 볼록 하여져 갔다.
며칠을 풀죽으로 연명한 밤실댁은 재너머 밤골에 있는 역시 가난한 친정으로 가서 묵은 콩 두말을 힘겹게 이고 와서 물에 불려 밤새도록 맷돌에 갈고, 가마솥에 삶고, 간수를 부어 두부를 만들었다. 두어 시간 눈을 붙였을까? 누룩바위를 때리는 파도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 만들어 놓은 두부를 나무함지에 이고 재를 두개 넘어 30여리 밖 읍내로 나가 골목골목 다니면서 두부사려를 외쳤다. 물론 처음에는 두부를 사라는 외침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식구들의 굶주린 얼굴을 떠올리니 어디서 이런 힘이 남아 있었나 자신이 의아해 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나왔다.
하루종일 다리품을 아프게 판끝에 다행히 두부는 하나 남김없이 다 팔렸다. 장사하는 첫날에 팔러나간 두부를 다 팔고보니 없던 힘이 나고 용기도 생겼다. 날은 이미 뉘엿거리고 있었고 어김없이 저녁놀은 눈이 부시게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저녁놀을 쳐다보며 밤실댁은 죽은 남편에게 다짐을 했다. 다시는 울거나 약해지지 않겠노라고, 시어머니를 정성껏 공경하고 다섯아이를 누구보다 훌륭히 키우겠노라고...
두부를 다 팔아버려 빈 함지박에 아직은 덜 자라 여리고 가지많은 생솔을 서슬퍼런 산간수가 볼새라 허겁지겁 꺾어 담았다. 불이 잘 붙지 않고 연기만 부엌가득 앞을 안보이게 만드는 그 다복솔로 콩을 삶느라 밤새 밤실댁의 두 눈에는 매운 눈물이 가득하였다. 그러한 힘겨운 나날이 여러날 지나가고 나니 장사에 이력이 생겨 두부를 판 돈으로 떡도 만들어 팔고, 곡식이나 채소도 받아 되팔고 하여 조금씩 돈을 불려 나갔다.
남산만한 배를 하고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사를 하던 밤실댁은 돌아오던 길에 느닷없는 진통을 하다가, 결국 인적없고 호젓한 풀섶에서 막내아이를 낳았다. 해산의 죽을 고통을 참고 낳은 핏덩이를 향해 웬 파리떼가 그리 달려드는지...
그 들파리 떼를 피해 금방 낳은 아이를 황급히 치마에 감싸안고 정신없이 집을 향하는 밤실댁의 두 볼위로 다시는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물론 함지박은 길옆 구덩이에 그냥 버려둔 채였고 다복솔도 꺾지 못하였다.) 그날따라 저녁 노을은 더 붉었고, 아이를 감싼 밤실댁의 치마 밖으로도 저녁노을 못지않게 붉은 피가 흥건히 배어 나왔다. 죽을 힘을 다해 초가로 돌아와 갓난아이의 입에 젖을 물린 밤실댁의 마음은 더없이 서러웠다. 자신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원망스럽고 또한 한없이 그립기도 했다.
유복자를 낳은 후 사나흘 몸조리를 한 후부터 그 아이를 줄곧 업고 다녔지만, 불쌍하게 태어난 막내아이는 요행히 별탈없이 잘 커주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집안에는 윤기가 흘러갔다.
'이러니 홀애비 집에는 이가 서말이고, 과부 집에는 쌀이 서말이라는 말이 생겼지...'
밤실댁은 아이들의 해어진 옷을 호롱불 아래에서 밤이 늦도록 꿰매면서 혼자 흐뭇해 했다. 그러나 집안의 가장이 없고 보니 답답하고 억울한 일도 생기고, 업신여김을 당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는 집에서 기르는 토종닭을 잡아준다, 아끼던 참깨를 닷되씩이나 준다하며 올 때마다 무어라도 손에 쥐어주고 사또행차를 맞은 것처럼 황송해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마름 영감이 와서는 어김없이 뒷짐을 지고 헛 기침을 에헴에헴 해댔다.
"어허- 이 집에 사람이 없나?"
체면이 상한 마름이 연실 헛기침을 하는데도 밤실댁은 장사다니느라 걸레쪽이 된 머리 다듬는 일만 계속했다. 얼레빗으로 먼저 빗고, 참빗으로 곱게 쪽을 지은 머리에 동백기름을 자르르 윤이 흐르게 정성들여 발라 머리 매무새를 차근차근 다 마친 후에 방문을 반쯤 열고는, 무슨 볼일이라도 생겼수?하는 양으로 앉은 자리에서 마름을 쳐다보았다.
"허어, 이것 참..."
전에 없던 홀대를 받은 마름이 성이 나서 벌개진 얼굴로 허리 뒷춤에 차고 있던 장죽으로 죄없는 돌담을 서너번 드세게 두드린 다음, 이 집에 농사지을 마땅한 일꾼이 없어 내년부터는 소작을 떼야겠으니 그리 알라고 기세좋게 이르고 갔는데도 밤실댁은 추호도 낭패한 기색을 얼굴에 내비치지 않았다. 이미 성미 사나운 마름이 동네방네 다니면서 밤실댁의 소작을 뗀다고 공공연히 외고 다닌다는 사실을 여러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있던 터여서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던 탓도 있지만, 뼈가 부서져라 농사를 짓느니 지금처럼 장사를 하는 것이 몇 배 더 나은 일이라는 확신을 얻은 다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름영감의 말대로 마땅히 농사지을 장정이 집안에 없는 탓이기도 하였다.
그날부터 더 이를 악물고 장사를 억척같이 하고 다녔다. 그리고 저녁놀을 받으며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함지에 또다시 생다복솔을 잔뜩 꺾어 이고 와서 좁은 부엌 아궁이에서 쉬지않고 피어나는 연기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며 두부를 만들고, 떡을 만들었다.
그런 날이 몇 년 계속되어 드디어 읍내에 생선가게를 열고, 아이들도 훌륭히 키워 다들 짝을 지워주고 살림을 내어주고... 큰 아이에게서는 증손까지 보았다. 그리고 주위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어려움에 처한 미망인이나. 부모를 잃고 아이들만 뎅그러니 남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려운 집안은 있는 힘껏 그들을 남몰래 도우면서 살았다. 거기다 더하여 딱한 아이들을 아예 집으로 데려다 키우키도 여럿 하였다. 그 아이들이 다들 제 몫을 하는 것을 보는 것 또한 밤실댁은 흐뭇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었다.
예전에 살던 초가는 여전히 팔지 않고 더러 수리를 해왔던 탓에 남편 생각이 나면 오늘처럼 가끔씩 이렇게 와서 하룻밤을 지새고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그렇게 흘렀건만 지금도 바다는 이름지을 수 없는 괴물처럼 싫었고, 하릴없이 뻘건 저녁놀도 싫었다.
다만 키 큰 소나무들 옆에 밤실댁의 두 눈을 매운 연기로 가득 채우던 다복솔이 세찬 해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무수한 가지를 내뻗은 채 자라고 있음이 신통하고 귀여웠다. 비록 연기가 많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따다닥 아픈소리를 내면서도 억지로라도 빨간 불꽃을 만들어 주어 솥안의 온갖 것들(두부나 떡같은)을 끓이고, 익혀 주어 온 식구를 굶주림에서 구해주고 생선가게를 만들어 주고 했던 참으로 귀한 다복솔이 아니었던가...
그날 밤이었다. 이제는 다복솔이 있는 언덕에 오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은 밤실댁이었지만 꿈속에서는 여전히 한 달음에 달려가 다복솔을 꺾어 불을 지피고, 연기에 갇혀 매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콩을 삶고, 떡을 찌고, 함지를 이고 두부사려, 찰떡 사려를 외쳤다. 돌아오는 길에는 붉은 저녁노을 아래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생전과 다름없이 속없는 너털웃음을 웃고 있는 남편과도 반갑게 만났다.
한편,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하는 담청색의 컴컴한 바다는, 그 옛날 밤실댁의 남편을 끌고 들어간 것과 흡사한 힘의 거센 폭풍우를 등에 업고 갖가지 꿈을 번갈아 꾸고 있는 밤실댁의 작은 초가를 삼킬 듯 기세좋게 으르릉거렸다.
그러나 그 사나운 바다도, 내자식 남의 자식 할 것 없이 정성들여 아이들을 키워오고, 어려운 이들을 내식구처럼 억척스럽게 돌보아 온, 그야말로 이웃사랑으로 곱게 늙은, 이제는 힘없는 노파가 되어 버린 밤실댁의 소중한 단잠을 더이상 훼방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