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현수는 갑자기 밤에 작은 형님의 전화를 받고 작은 형님을 모시고 가는 중이었다. 작은 형님은 따로 차를 내어서 현수와 함께 창고로 갔다. 창고에는 타 조직원 끄나풀이나 경찰 끄나풀들을 족칠 때 쓰는 자그마한 지하실이 있었다. 작은 형님은 별다른 말없이 다만 그 곳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잡혀있다는 말만 했다.
현수와 작은 형님은 차에서 내렸다. 창고 입구에는 조직원들이 열 명 남짓이나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현수와 작은 형님을 가로막았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큰 형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너, 이 새끼. 지금 내가 누군지 안보여!"
작은 형님은 낮고도 강한 어조로 소리쳤다. 좀처럼 소리를 치지 않는 평소의 성격 때문인지 작은 형님의 앞을 가로막고 선 녀석의 표정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윽!"
녀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수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녀석은 그대로 배를 움켜잡고 고꾸라졌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이 움찔거리며 덤벼들 듯 자세를 취했지만, 현수의 눈빛을 보고는 이내 멈추었다. 어차피 현수의 상대가 되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덩치는 다들 산만했지만 어디까지나 동네에서나 자랑하던 주먹이었을 뿐, 그에 반해 현수는 제대로 무술을 배운 입장이었다. 녀석들 역시 섣불리 현수에게 덤벼들다가는 크게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수가 앞장을 서고 작은 형님은 현수의 뒤를 따라 천천히 지하실로 들어가는 복도를
걸어갔다. 낡은 계단의 철제 난간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검은 페인트가 칠해진 철제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문은 쾅하는 소리와 함께 벌컥 열렸다.
안에 있던 세 명의 조직원 중 두 명이 거의 반사적으로 현수 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수는 재빨리 머리를 뒤로 빼서 그들의 손을 피하고는 그대로 옆차기를 통해 한 명을
멀찍이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잇달아 나머지 한 명마저 뒷차기로 명치를 가격했다. 명치를 맞은 녀석은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안에 서 있던 팔호는 그대로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녀석은 큰 형님의 심복처럼 움직이는 녀석이었다. 큰 형님이 작은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큰 형님의 고향 후배랍시고
늘 곁에 붙어다니고 있었다. 현수는 작은 형님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 쪽으로 비켜섰다.
작은 형님은 느린 걸음으로 지하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의자에 묶여있는 여자와 팔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늘 표정 변화가 없는 작은 형님이지만, 늘 곁에서 작은 형님을
비호하는 현수는 금방 작은 형님의 일그러진 심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누가 시켰나?"
"큰 형님의 지시입니다."
팔호는 스스로도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듯 작은 형님의 물음에 버릇없이 대답했다.
"이제 됐으니까 나가봐라."
"그렇지만……."
팔호가 뭐라고 대꾸를 하려고 하는 순간 작은 형님은 고개를 들어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팔호는 그만 할 말을 잃고 그대로 걸어서 지하실 문을 나가버렸다.
현수는 작은 형님이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눈치를 채고 지하실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한 쪽 구석으로 물러서서 그대로 서 있었다.
의자에 묶여있는 여자는 현수도 아는 여자였다. 장호가 사고로 죽고 현장에서 시신을
확인하던 그 날 갑자기 작은 형님의 명령으로 현수가 직접 감시를 했던 여자였다. 물론 그녀가 서울로 올라오고 난 후 다른 조직원과 교대를 하긴 했지만. 현수는 나름대로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다. 사고 현장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슬퍼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웠다. 게다가 이번에는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직의 표적이 되어 생명을 위협 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현수 역시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장호가 숨긴 50만 달러 어치의 다이아몬드의 행방과 관련해서 이런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인지 작은 형님은 큰 형님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현수는 작은 형님을 믿었다. 작은 형님은 언제나 옳았다. 큰 형님은 작은
형님의 도움이 없다면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 것은 현수는 잘 알고 있었다.
현수는 어려서부터 각종 무술에 소질이 있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 아래서 자란 현수는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시는 외삼촌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혔고, 철이
들면서 반쯤은 겉멋에 취해 각종 무술을 섭렵했다. 인근에서는 그를 대적할 자가 없었고, 현수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 지역 조직의 엄청난 스카웃 제의를 받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자만심이 화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네에서는 큰 싸움이 일어났다. 학교와 학교 사이의 자존심
싸움 비슷한, 어떻게 보면 늘상 있는 싸움질이었다. 하지만 싸움에서 진 상대 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조직에서 일을 하는 선배들을 끌어들여 현수네 학교의 아이들을 손본
것이 문제였다. 현수는 지역의 거대한 조직에 맞서 혼자서 상대를 했다. 현수의 싸움
실력은 난다긴다 하는 건달패들이 떼거지로 덤벼도 전혀 주눅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는 고등학생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자들이었다. 현수는 집으로 돌아오는 한밤중, 난데없이 달려들어 현수의 배에 칼을 꽂던 자들을 아직 잊을 수가 없었다.
복부 속으로 파고들던 차디찬 금속의 감촉. 현수는 피가 줄줄 새는 배를 움켜쥐고서
담벼락에 의지해 걸음을 옮겼지만,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하던 그 길은 현수의 의식보다 길었다. 그리고 현수가 눈을 뜬것은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현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욱 큰 상실이었다. 녀석들은 현수의 어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현수는 그 날로 의지할 곳 없는 혼자가 되었다. 군대를 다녀온 뒤 얹혀지내던 외삼촌의 집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던 현수는 결국 홀홀 단신으로 서울행 열차를 탔고, 그 곳에서 만난 것이 작은 형님이었다.
"자네 꽤 괜찮은 재주를 지녔구만."
거의 거지꼴을 하고 있던 작은 형님이 길에서 어깨를 부딪힌 현수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현수는 작은 형님을 그저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네?"
"몸이 움직이는 게 보통이 아니야. 팔다리 놀리는 폼만 봐도 알지."
그제서야 현수는 작은 형님의 말이 그저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자네 나하고 큰 일 한 번 벌여보지 않겠나?"
그 말 한마디에 작은 형님을 따라 나선 것은 어쩌면 현수가 막 고향에서 올라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작은 형님을 따라 나선 것이 현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작은 형님은 조직을 이끌어 가는 중에도 결코 현수를 조직의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다. 현수 역시 조직의 더럽고 잔인한 일들에는 흥미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조직이라는 것 자체에 혐오를 품고 있었다. 어머니를 앗아간 개자식들과 같은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작은 형님은 마치 현수의 심정을 알기라고 하듯 현수에게 그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형님의 뒤나 따라다니며 수족 노릇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작은 형님의 밑에서 현수는 꽤나 많은 돈을 모았다. 작은 형님은 현수에게 얼마쯤의
수입을 고정으로 떼어주며 따로 돈을 저축해두라고 했다. 언제고 조직을 떠나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작은 형님은 현수에게 이민을 권유했다. 이 더럽고 상처 가득한 땅을 떠나서 네 길을 걸어가라고. 현수는 언제고 이 곳을 떠날 수 있었다. 다만
이제는 친형과 다름없이 되어버린 작은 형님과의 정을 끊지 못해 아직 여기에 머무르고 있을 뿐. 게다가 요즘들어 부쩍 큰 형님과 작은 형님 사이의 의견차이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현수가 작은 형님의 곁을 쉽사리 떠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했다. 이미 마약에 너무 깊이 빠져든 작은 형님은 도저히 여차하는 순간에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 일은 거의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작은 형님은 어디서 들었는지
이 여자가 잡혀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현수를 불러내었다. 그리고는 현수를 앞세워 이 곳 창고의 지하실을 들이닥친 것이었다. 현수가 없었다면 이런 일도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미안하게 됐군. 우선 내가 대신 사과하지."
작은 형님은 여자의 발에 묶인 밧줄을 손수 풀면서 말했다. 여자는 안도와 어리둥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작은 형님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여자가 여전히 겁에 질려 작은 소리로 물었다.
"나? 글세. 네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겠지."
"제 정체라니요?"
"사이코메트리라고 하면 알겠나?"
현수는 작은 형님이 말하는 것이 무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글쎄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착각을 하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분명히 널 알아. 어떻게 기관에서 나올 수 있었지? 초능력이 사라졌나?"
"……."
여자는 말이 없었다.
"능력이 사라져버린 거라면 사실대로 말해. 없는 능력을 발휘하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할 건 확실히 하자구. 넌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이야.
어릴 때 본 모습이지만 난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우린 네 능력이 필요해. 그게 유일한 희망이니까. 네 능력이 어느 정도 소멸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널 해코지하지 않을거야. 혹시라도 능력이 되살아날 수도 있으니까."
여자는 마치 고민하는 사람처럼 한동안 바닥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리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능력은 사라져버렸어요. 그리고 갖은 검사를 다 받고 완전히 능력이 소멸했다는 판단 아래 기관에서 풀려났어요. 미안하지만 난 더 이상 사이코메트리가 아니에요."
작은 형님은 여자의 말을 듣고는 낮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크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안주머니에서 코카인을 꺼냈다. 손가락으로 코카인을 콧구멍 앞에 얹은 후 약간의 콧소리를 내며 코카인을 들이마셨다. 환각으로 작은 형님의 어깨죽지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작은 형님은 앉아있는 여자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맙군. 어쨌든 널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하지만 문제는 그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야. 우리 조직 안에서도
나와 생각이 다른 녀석들은 널 잡아 족치려고 마음먹고 있고, 다른 조직에서도 네가
여기에 잡혀왔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널 잡으려고 들거야. 그러니 내가 경호원을 붙여주지."
작은 형님은 현수 쪽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현수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네가 수고 좀 해라."
"하지만 제가 형님 곁은 뜨게 되면……."
"걱정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부탁하마."
"예. 형님."
현수는 작은 형님의 명령에 대답을 했다. 내가 이 여자의 경호를 맡게 된다? 현수는 기분이 묘해졌다.
첫댓글 분명 둘이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꺼같은 .....-_-;;;;;;;;;;;;;;;;
그르게염 훔냥....넘 잼나영!! 자주감자님 팬되쓰여~~
기대되요-ㅁ-!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