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리학자 에론슨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유쾌한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진은 퀴즈왕을 뽑는 대회인 척 퀴즈쇼 장면을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쇼 장면의 음성 파일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누구를 퀴즈왕으로 선발할지 투표하게 했습니다. 음성 파일에는 네 명의 참가자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참가자는 문제를 대부분 맞췄고, 두 번째 참가자는 반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참가자는 첫 번째 참가자처럼 문제를 대부분 맞췄고, 네 번째 참가자는 두 번째 참가자와 같은 정답률을 보였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그리고 두 번째와 네 번째 참가자가 똑같은 것 같지만, 여기서 다른 점 하나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참가자에게는 퀴즈 도중 옷에 커피가 쏟아지는 돌발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에론슨은 대학생들에게 네 사람 중에서 가장 호감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예외 없이 모두 세 번째 참가자를 지목했습니다. 즉, 정답을 모두 맞혔지만, 커피를 옷에 쏟은 참가자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실수 효과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빈틈없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에게 빈틈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빈틈없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나의 모습은 완벽한 자기 모습입니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힘을 쏟고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겸손하라고 강조하신 것은 쓸데없는 힘이 아닌, 중요한 곳에 힘을 쏟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랑에 온 힘을 쏟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에서 예수님의 양옆에 앉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을 올립니다. 치맛바람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시고, 그들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제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도망치고 맙니다. 또 다른 제자들은 이런 청을 올렸다고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삶에 있어서 흑역사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복음에 등장시켜서 부끄럽고 부족한 자기의 모습을 세세 대대 알립니다.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만 남겨도 될 것을, 왜 이런 모습을 남겼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빈틈 많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 얼마나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느냐입니다. 과거의 부족한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랑하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사는 환경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바뀔 때 인생도 바뀐다(앤드류 매튜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