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의 약력
1억 4천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현존했었다는 기원의
우포늪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한결같은 신의 사랑으로
온갖 식생을
청태 낀 질척거리는 눈동자 속에
품어 길러온 우주의 자궁
태초부터
생성과 소멸의 먼 길을
심장 박동으로 걸어왔으니
놀라워라
어림할 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명쾌히는 측량해 낼 수 없는
먼먼 우레 같은
세월의 깊이
생각해보면 동식물 간에
살 가운 제 살 같은
물로 빚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인가
물 버드나무 그늘에서 제풀에 놀란
쇠물닭이 푸르르 날고
달개비 풀 사이 물뱀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는 데도
그린 듯이
뚫어질 듯
수면만을 응시하는 저 왜가리의 포즈는
허공 한 자락 접어 만들었던가
동식물 간에
물의 산물 아닌 것이 그 무엇이든가
거대한 늪을 가득 채운
공존 공생의
함께 출렁거리는 양수
눈 속에 푸른 늪을 새겨
녹내장 하는 나 또한
한 방울의 물로 빚은 염색체
손잡고 걸어가는 한 쌍의
저 젊은 아베크족도
이 거대한 생태의
모자이크 한 조각이 아니든가
창조주의 뜻대로
서로 품어 웅숭깊이 사랑하라는,
류윤모 시인
※ 약력
-『예술세계』 등단. 시집 『내 생의 빛나던 한순간』.
[출처] 늪의 약력 / 류윤모 시인|작성자 시산맥
신 춘향뎐
류윤모
방자한 놈 방자야
안 그래도 좀이 쑤시고
으슬으슬 몸살끼가 있는
싱숭생숭한 이봄날
뭔놈의 그네타는 구경을 나서자고
방자하게 독촉질이냐
남녀가 유별한 터에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구질구질 주절주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고익힌
명심보감 구절 국밥간에 말아 먹고
고리타분한 자손인 나더러
색이나 밝히자는 게냐
천생의 사대부 가문 자손으로 과거에나
골싸매고 앉아
면벽의 책상물림으로
봄날이고 뭐고 낭비해야 허거늘
먼 발치에서라도
고운
색동 저고리 끝동을 마음에 적셔 어쩌잔 말이냐
새침한 낮달에 실린
저 저 외씨 버선코 로 차올리는
지분 냄새 밀물결에
설익은 장부 가슴 두근반 서근반 미혹되어
어쩌잔 당치도 않은 말이냐
온 산하에 초록이 바긴세일로 번지고
뻐꾸기 울음 잡새울음 비빔밥으로
자웅 동체를 불러쌓고
꾀꼬리 울음
꼬리를 치며 간드러지게
꼬여 대는데
허허실실 살아서 날로는 어쩌란 말이냐
온 세상이 남녀 칠세 부동석을
헐고 낡은 헌법인양 외쳐 대는터수에
네놈은 남녀 십칠세 자동석을
흔들리는 팔랑귀의 내 귓구멍에다
쉰내나는 입김으로 불어넣는데
날로는 어히 살란 말이냐
이 날것을 어쩌란 말이더냐
이 방자한 비행 청소년놈 방자야
내 널따라 칠렐라 팔렐레 살아야 한단 말이냐
그래 알앗다 알긋다 알았다니까
오늘 하루만은 과거고 나발이고 급제고숙제고
일체 다 작파하고 네 말대로
도끼 자루 썩히는
그네 구경이나 나서자꾸나
나서보자꾸나
그래 대문 밖이 천리라더니
대문밖이 지척이로구나
네 이놈 방자야
집나서니 해방감 째지는 베리굿이로구나
지금 이 기분대로라면
당장 서책을
아궁이에다 쓸어넣고
분서 갱유해 버리고 싶구나
내일이야 산수갑산을 갈망정
걸음아 날 죽여라
설레는 마음 앞서지 못하고
왜 이리 콤파스조차 더디단 말이냐
색에 동하여
저절로 색을 찾아가는 색동자인
내꼴이 우습겠구나
남녀가 유별한 터에
오월 단오라는 빅 이벤트를
이미 알 것 다아는 십칠세 장부인
내가 눈 질끈 감고 넘길 줄 알았더냐
방자한 놈 방자야
오늘 하루만은
사대부 가문이고 나발이고 다 작파하고
음양의 이치에나 눈뜨고 싶구나
저기 저 색기어린 계집은
뉘 집 여식이더냐
"예 ! 되련님 저 아이는
퇴기 월매의 딸로 춘향이라 .."
춘향이라!!, 보기드문 미색이로구나
내 저 계집아이의 미색에 반하여
비록 문자라도보내고싶구나
네 가서 전화번호나 따오거라
피끓는 청춘들이
이 싱숭생숭한 봄날을
일없이 낭비하잔 말이냐고 여쭈어봐라
어쩌구 저쩌고 밀당 끝에
순식간에 발전 좋당이라니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업당으로
역시 남녀 십칠세는 지남철이로구나
사랑사랑 내 사랑
업고 놀자 안고 놀자 물고 빨며 놀자
배우지 않아도 본능이 저절로 찾아가는
체위를 수시로 바꾸는
황홀한 봄밤
서릿발같은 아비의 분부
지엄하기로
내 어찌 몽매에도
새초롬한 고운 널 잊을 수가 있겠느냐
내 이번차 한양가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 꽂고
아비 안전에 나아가
무릎끓고
너와의 혼약을 내락 달을 터이니
눈물일랑 거두거라
서방님 이 언약 저바리시면...
정인을 두고
무거운 발걸음 떼 놓는몽룡의
입신 출세의 꿈
말 발굽 소리로 달리고....
장안에 자자한 춘향의 미색을 탐낸
신관사또 변사또의 수청 강박에
정절을 고수하다가
옥에 갇힌 춘향이
교교한 달빛 새어드는
옥창살 사이
칼을쓰고
가여운 꽃대처럼 목을 휘인 춘향이 ..
사정 이러 급박함에도
일자무소식의
낭군님 몽룡으로부터는
전갈 조차 없으니...
머리카락 풀어헤친 절망감에
절망을 가속할뿐
소쩍 소쩍 뭔놈의 소쩍새는
기별 아닌 기별이나
혼미한 춘향이 귓속에다
친절하게 넣어줄뿐.
이때 곡소리 창자를 끊는
월매나 속상햇을 월매의
문간을 두드리는그림자 하나
그림자가 행색이 번듯한
행차라면 월매나 좋으련
웬 거지 행색의 비렁뱅이 길손이되어
찾아들엇으니 코가 막히고기가 막힐일
에라이 식충같이 꼴에 먹기는 잘먹는 다
제 계집 목숨이 경각에 걸렸다는소식
귓구멍을 파고 심어주었는데도
꾸역꾸역 목구녕으로 밥이 넘어가나 이 화상아.
아이고 우린 이제 다 망햇다, 두다리 뻗쳐놓고
양반인지 한냥 반 두냥반인지 소용없다
신세한탄을 해대는 월매의 탄식 듣는둥 마는둥
잠이나 퍼질러 자는 사위 꼴 도끼눈을 뜬장모의
소금 바가지 덮어쓴 다음날
바람처럼 스며들어
진주 감영을 염탐하는 몽룡의 일행
사또인지 오또인지
변 사또인지 똥사또인지 곳곳에 싸질러놓은 만행들을 사전조사
드디어 닥치고.....
우우이 물렀거라
암행어사 출또야!!!
품안의 마패를 꺼내
해를 뚜다리고
달을 뚜다리고
대문을 뚜다리고
육간 대청을 땅땅 뚜다리는
암행어사 일행 앞에 산천 초목이 떨고
위세등등의 변사또가
사시나무가 되어 떨어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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